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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수만, 하이브의 SM 경영권 인수 원치 않았다” 

SM 인수대전 뒤 숨겨진 이전투구(泥田鬪狗)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SM이 하이브 하위 레이블로 전락하는 상황 탐탁치 않게 여겨
이성수, 이수만 배제하고 SM 내 영향력 확대 위한 ‘암중모략’
이수만 “탁영준·이성수, 2022년 여름부터 이상해졌다 느껴”


▎이수만은 그간 SM 구성원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존경받는 K팝 대부로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인수대전 사태를 거치면서 그 뒷모습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합뉴스
이수만은 최근 오랜 지인과의 대화에서 “하이브가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하이브가 SM을 가져간다면 중국 시장에서 NCT(중국 활동 유닛명 WayV)는 더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카카오-하이브 간 인수대전(大戰)이 경영권을 확보한 카카오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가운데,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하이브가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월간중앙〉이 단독 입수했다. 이수만의 오랜 지인 A씨는 SM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을 당시 이수만이 자신에게 이 같이 속내를 털어놨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이수만은 “하이브가 경영권을 가져갔다면 중국 시장에서 NCT(중국 활동 유닛명 WayV)는 더는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수만은 SM이 하이브 산하 레이블로 들어갈 경우 SM 아티스트들이 하이브 아티스트에 비해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브는 앞서 ‘자사는 북미, SM은 중국 채널에서 강세인 만큼 양사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SM엔터 인수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또 이수만은 SM 이사진(이성수·탁영준)이 이수만에게 반감을 품게 된 계기가 지난해 여름 자신에게 질책받으면서부터였다고도 말했다. SM 내부 사정에 밝은 B씨에 따르면 이수만은 최근 B씨에게 '2022년 여름쯤부터 애들(이성수·탁영준)이 이상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B씨는 “당시 선생님(이수만)은 회사 규모에 걸맞은 이슈 대응도 안 되고 얼라인파트너스에도 대처 못 하는 모습에 이성수, 탁영준 대표에게 ‘너희가 원래 잘하던 일(프로듀싱) 하라’고 한 적 있다”며 “선생님은 ‘애들이 그 일로 삐딱해진 게 아니겠냐’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실세는 이수만… SM 복귀 우호 여론 조성 압력


▎중앙포토
이수만은 공식적으로 2010년 경영직에서 물러난 뒤 SM엔터 사내 별도의 직함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에스파, 레드벨벳 등 소속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에 참여했고 앨범 발매를 잇따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수만은 여전히 SM 구성원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있었고, 인수대전에서 드러난 그의 모습은 ‘무소불위’의 실권자였다.

이번 SM사태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것이 ‘라이크기획(이수만 지분 100%)’이라는 프로듀싱 회사다. KB자산운용이 2019년 발간한 ‘에스엠,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는 길’ 자료에 따르면 라이크기획이 2000~2019년 SM 소속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한 대가로 받은 인세 누적액만 965억원이다. 2015년부터는 인세 지급 방식을 변경했는데, 음반매출의 최대 15%에서 총 매출의 최대 6%로 조건이 바뀌며 2015~2019년 4년간 인세 규모 증가분은 168억원에 달한다. KB자산운용은 이수만과 주주들 간 이해 상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에 2022년 등장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SM 주식 보유량 1%대)는 감사 선임을 통해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조기 종료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지난해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얼라인의 요구는 주주 80%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고, SM은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조기 종료하는 등 요구 조건을 대부분 수용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성수는 홍콩의 ‘시티 플래닝 리미티드(CT Planning Limited, 이수만 지분 100%)’라는 회사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며, 이수만의 역외 관세탈세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다. 이성수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CTP는 해외판 라이크기획”이라며 정식 SM 소속이 아닌 이수만이 회사의 돈을 착복한 창구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성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수만이 회사 복귀를 위해 직원들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피력하도록 강요했다고도 주장했다. 이성수는 이수만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이수만으로부터 ‘SM 아티스트들은 이수만이 필요하다고 언론에 성명을 내라’, ‘SM은 이수만과 임시 고문 계약을 맺고 프로듀싱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해라’, ‘SM 내 이수만을 위한 주총 대응팀을 만들어라’라는 등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고 폭로했다. 해당 녹취 속 이수만은 이성수로 추정되는 이에게 “지옥의 계곡에 가더라도 너는 확실하게 나하고 같이 서 있어야 되는 거야. 그래야 (이 회사) 관두더라도 너 좋은 데 간다”라고 말했다.

"이수만 측근 빼고 SM 직원들 연봉 700만원 올려줘"


▎이성수는 이수만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며 ‘정의의 기사’라는 이미지를 가져갔지만, 실상 그 또한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사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에 맞서는 모습으로 대중에 각인된 이성수는 과연 ‘정의의 기사’였을까. 월간중앙 취재를 종합하면, 이성수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SM엔터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시도했던 정황도 포착됐다. SM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성수가 프로듀싱 본부장으로 재직하던 6년 전 선생님(이수만)과 그 측근들 사이에 끼어들어 소통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선생님을 만나러 갔는데 이성수가 ‘선생님이 너무 늙어서 컨펌할 수 없다’면서 자신이 직접 컨펌하겠다고 막아섰다”고 말했다.

이는 이수만이 이성수를 후계자로 낙점한 이후다. 이성수가 승승장구하면서 이수만의 측근들과 사내 헤게모니를 두고 깊은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인수대전에서 이성수는 SM 직원들에게 ‘이 모든 것은 선생님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감방 갈 수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성하면서도 실제론 이수만을 철저하게 배제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월 3일 SM 이사진이 독자적으로 이수만과 결별하는 내용의 ‘SM 3.0’을 발표하고 카카오와의 협력을 선언하면서 사태가 급물살을 탔다.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수만은 국내 SM 이사진과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SM 측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이수만은 충격받은 나머지 술에 잔뜩 취한 상태로 넘어져 골절상을 입었고, 귀국하자마자 SM 사옥으로 가서 “나는 하이브와 갈 거다”라고 선언했다. 2월 8일 이수만은 카카오를 대상으로 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이브는 2월 10일 이수만의 지분 14.8%를 인수하고 공개매수 계획을 발표한다. 이수만이 직접 하이브 측에 전화해 매수 의향을 확인했다고 한다.

SM 측 핵심 관계자는 “(하이브의 계획 발표 이후) 이성수가 직원들에게 울면서 ‘이거 적대적 M&A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M&A 찬반 투표에서 인수에 반대한다고 투표해도 여러분들한테 손해 하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며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 연봉을 700만원씩 올려줬다”고도 했다. 취재 결과 SM엔터는 통상적으로 연봉협상 등을 거쳐 4월부터 봉급이 오르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성수는 올해만 시기를 당겨 연봉협상 및 직원 업무평가를 진행했고 2월이 끝나기 전에 임금인상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수만을 보좌했던 이들은 연봉인상에서 배제됐다. 이수만 측 핵심 관계자는 “(700만원) 연봉인상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선생님의 전 비서진이었던 2명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수만의 전 비서진들은 이전 업무와 전혀 다른 사업 파트에서 근무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카카오는 SM 경영권,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 합의

카카오와 SM 이사진이 인수전을 리드하는 모양새로 흘러가던 중, 3월 3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이수만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사태는 변곡점을 맞는다. 카카오는 SM 지분 9%를 선 확보하며 2대 주주로서 경영권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공개매수로 선회했다. 양측의 지분 확보 전쟁에 SM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3월 12일, SM엔터 인수전은 갑작스러운 결말을 맞는다. 카카오와 하이브가 합의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대신 플랫폼 협력을 얻었다. 3월 말 예정된 SM엔터 정기 주총에서 하이브가 추천한 이사 후보들도 전원 사퇴하기로 하면서 하이브는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3월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이번 인수에서 후퇴하면서 우리 미래의 가장 중요한 축인 게임 플랫폼에 관해 카카오와 합의를 끌어냈기에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의 우군이었던 이성수는 돌연 3월 말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대표이사 연임을 포기했다. 그는 지난 2월 17일 “대표이사·등기이사에서 사임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심경의 변화에 대해 SM 관계자는 “이성수가 개인 채널에 SM과 관련된 폭로 영상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본 카카오가 이런 불안정한 인물을 경영자로 둘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편에선 카카오가 3500억원을 들여 설립할 신규 퍼블리싱 회사의 대표직을 이성수에게 주는 대신 연임을 포기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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