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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역사학자 10명이 바라본 尹의 ‘역사전쟁’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바로잡는 과정”…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국론 보수화” 반박도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尹의 공산·친북 이력 역사인물 재평가 발언에 찬반 갈려
보수 성향 유권자 30~40% 결집 효과… ‘총선용 정책’ 시선도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의날인 10월 1일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5사단 상승전망대를 찾아 최성진 25사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이날 군 병력과 장비는 10년 만에 서울에서 시가행진을 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역사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는 발언이 시작이었다. 그 직후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에 제동을 걸었다.

실제로 정부는 공산주의나 친북 이력이 있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검증에 나선 상태다. 국가보훈부는 해당 이력을 가진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북한 김일성 정권을 만드는 데 또는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받아들일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고 재론의 여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즉각 반발했다. “대통령의 역사관이 철 지난 냉전적 사고에 불과하다”며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 삭제 등의 움직임에서 보듯,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이념 논쟁을 자처해 국론 보수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주도하는 역사 바로세우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월간중앙은 저명한 역사학자 10명에게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보내 의견을 물었다. 특정 학회의 주장이 편중되지 않도록 보수·진보 성향 학자에게 골고루 의견을 청취했다. 대체로 보수 성향 학자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국가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한 과정이라고 입을 모은 반면, 진보 성향 학자들은 역사적으로 결론이 난 사안을 뒤집는 것은 학계의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놓고 학자들 의견 분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7월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사진:국가보훈부
먼저 윤 대통령의 역사관에 대해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승만학당 교장)는 “1910년 이래 대한민국이 건립되는 1948년까지 전개된 독립운동의 주류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국민 다수가 공유토록 하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맞춘 우파적 역사관이다. 쉽게 말하면 기존 한국사 연구자들은 민족을 주어로 세상을 봤는데, 윤 대통령은 국민을 주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진보성향 학자들은 윤 대통령의 역사관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지금 정부는 독립운동의 법통도 부정하고, 4·19도 부정한다. 대통령 스스로 헌법을 부정하고 있어 너무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미국·일본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과 적대관계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의 역사관을 보면 우리가 꼭 중국과 멀어져야만 한다고 피력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논란이 된 육사 내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놓고서는 학자들의 입장이 저마다 달랐다. 보수 성향 학자들은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이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공산주의 세력을 주적으로 하는 육사의 교육 목적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독립전쟁 영웅으로서는 존경할 만하지만 육사에 흉상을 그대로 두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한민국의 가치와 상반된 전력을 가진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그대로 두는 것은 육사 생도들의 가치관 형성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허동현 교수도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육군 교재에서 북한은 주적이 아닌 게 됐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하고 협력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공산주의 세상을 꿈꾼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호국 강성의 요람인 육사에 존치된다는 것은 육사 생도 입장에서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도 “홍범도 장군은 1920년 자유시 사변을 전후로 공산주의자로 전향했다. 따라서 홍범도 장군을 정치적 측면에서 판단한다면 한국 근대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연결되고, 그런 면에서 그가 자유대한민국의 육사 표상으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진보 성향 학자들은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가입 이력은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상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특히 우파 독립군을 학살한 자유시 참변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는 전면 부정하는 공통된 의견을 나타냈다. 전우용 역사학자(전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연구교수)는 “1927년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는데, 그 당시 공산당이 무슨 잘못을 했나? 당시에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려 했던 시절이다.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독립운동하던 동지들과 일했다. 조금 도움 받고자 공산당에 입당한 것이다. 이를 놓고 ‘공산주의자는 안 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를 넘어서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라고 말했다.

“홍범도 자유시 참변 재판 참여하지 않았다” 주장도


▎10월 13일 광주광역시 남구 정율성로에 있는 정율성 흉상이 기단 위에 놓여 있다. 해당 흉상은 지난 1일 보수단체 회원에 의해 기단에서 떨어진 채로 바닥에 놓여 있었다. / 사진:연합뉴스
이준식 전 관장은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 재판위원으로 적극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게 학계의 결론이다. 국방부는 ‘적극적 활동을 한 자료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만약 자료가 있다면 공개했으면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자유시 참변 재판과 관련해 홍범도 장군이 어떤 적극적 역할도 한 적 없다고 이미 논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병률 명예교수는 “홍범도 장군의 재판 참여는 사실 ‘명의도용’이다. 홍 장군은 재판에 참여하지 않았다. 저도 이런 사실을 만 2년 전인 2021년에 처음 알게 됐다”며 새로운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중도 성향의 학자들은 흉상 설치나 이전과 같은 사안은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는 “육사에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념물을 세우는 것은 공공역사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과제다. 생도 대표·육군 대표·시민 대표·정치권 대표 등 위원회를 꾸렸어야 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렸어도 합의를 거쳐서 했으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흉상을 세우는 것도 위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정율성 역사공원을 놓고서도 격론이 일었다. 이명희 교수는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도전이고 용납돼서는 안 된다. 정율성은 중공군으로서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공격했다. 그가 음악가로서 재능이 있는 한국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는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침략한 반역자”라고 주장했다. 강규형 교수(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도 “정율성은 중국공산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의 항일운동은 대한민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정율성은 6.25전쟁 때 공산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기에,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반역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엔 진보 학자들도 갸웃

진보성향 학자들은 의견이 엇갈렸다. 대체로 정율성의 항일운동 이력 자체는 인정하지만 이후 그가 북한과 중공의 군가를 여럿 작곡했다는 점에서 과연 세금으로 기념할 만한 인물에 적합한지가 쟁점이었다. 공원 조성에 찬성한다는 이준식 전 관장은 “정율성이 서훈이 안 되는 점에는 학자들의 논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인으로서의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도 부정돼야 하는가? 이것은 서훈과는 별개의 문제다. 너무 이념의 잣대만으로 평가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우용 역사학자도 “정율성은 그 누구보다 독립을 우선시한 분”이라며 역사공원 조성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반면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율성은 대한민국 국민정서상 완벽히 수용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광주에서 정율성 공원을 건립하는 것보다는 ‘한·중 우호 공원’ 정도로 건립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병욱 교수는 “정율성 같은 ‘역사자원’은 지금 단계에서는 국민의 공감을 받지 못하지만 한·중 관계를 고려하면 나중에 충분히 활용해야 하는 자원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에 반대하는 정서가 강해서 정율성 공원 건립을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약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대해서는 긍정적 의견이 조금 더 많았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에게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 사업을 도와달라는 뜻을 전하면서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영훈 전 교수는 “종래의 역사 연구는 일제와 총칼로 맞선 무장투쟁을 독립운동의 주류로 평가해왔지만 무장항쟁은 1920년대 초반 짧은 기간에 아주 적은 활동에 그쳤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면서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정이 펼쳐진 독립운동 마지막 3년 동안 이승만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공산화의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고 세운 근대 국민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이라며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찬성했다. 강규형 교수도 “기념관 건립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한성정부는 대통령 격인 집정관 총재에 이승만을 추대했으며, 상해의 통합임시정부도 대통령에 이승만을 추대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임시정부 100주 년에 이승만을 고의로 제외했는데, 이는 온당치 못한 처사다”라고 지적했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이승만 재평가는 예전부터 뉴라이트들이 들고 나왔던 주장”이라며 깎아내렸고, 정병욱 교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선거에서 30~40%의 유권자를 결집하는 효과는 확실히 있다”면서 정부·여당의 총 선용 정책이라고 바라봤다.

※ 월간중앙 질의에 답변해주신 역사학자 10명(가나다순) - 강규형 명지대 교수(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승만학당 교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관장,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전우용 역사학자(전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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