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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경기] 경기도 기후위기 대응 빛났다 

다회용기·햇빛으로 만든 전기, 경기도에선 일상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정부 정책 뒷걸음질 치는데 경기도는 투자·정책 적극 확대
공공·기업·도민 모두 윈윈하는 ‘경기 RE100’ 성과 돋보여


▎경기도는 4월 24일 시흥시 시화국가산업단지의 태양광발전 설비업체인 마팔하이테코에서 ‘경기 RE100 비전 선포식’을 갖고 김동연 지사 임기 내 공공기관이 소비하는 전기를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경기도
2024년은 글로벌 캠페인인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시작된 지 10년째를 맞이한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더클라이밋그룹과 탄소공개프로젝트에 의해 발족된 RE100 캠페인은 ESG 경영 바람과 함께 기업의 중요한 녹색 경영의 일환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구글, 애플, 제너럴모터스, 이케아 등 400개 가까운 글로벌 기업들이 RE100 실천에 동참했다. 국내에서도 2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RE100은 본래 민간의 자발적 탄소중립 실천활동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이 열악해 민간의 의지만으로는 실천하기가 어렵다. 기후위기 앞에서 민간의 자발적 의지에 인류의 운명을 맡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에 있어 공공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아직 정부 차원의 기후환경 대응정책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당초 30.2%에서 21.6%로 대폭 하향했다. 재생에너지 분야 예산도 2023년 1조490억원에서 2024년에는 6054억원으로 무려 42%나 삭감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대 지방정부인 경기도는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4월 24일 ‘경기 RE100 비전 선포식’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중앙정부가 하는 게 부족하다면 경기도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가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정면으로 부딪쳐서 기회로 삼는 선도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부 재생에너지 예산 반토막, 기후대응정책 점점 퇴보


▎11월 1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옛 도지사 공관인 도담소에서 이영희 삼성전자 사장, 김형민 에넬엑스코리아 대표, 김광일 한국중부발전 부사장이 ‘기업 RE100 달성을 위한 재생에너지 공급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평택 산업단지 지붕에서 생산하는 태양광에너지를 삼성전자가 향후 20년간 구매하게 된다. / 사진:경기도
김 지사의 선언 이후 경기도는 산업단지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실천적 조치를 취하는 등 중앙정부보다 더 확고하고 일관된 정책으로 국내 기후변화대응 분야를 선도했다. 또 기후위기를 내일의 성장 기회로 전환하는 비전을 담은 프로젝트도 내놨다. 이른바 ‘스위치 더 경기(Switch the 경기)’ 프로젝트다. 지난 9월 20일 경기환경산업전 개막식에서 김 지사가 선언한 이 프로젝트는 ‘지구의 열기를 끄다, 지속가능성을 켜다’라는 비전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제시했다.

프로젝트는 8대 분야 28개 추진과제로 세분돼 있다. ①스위치 더 에너지(Energy): 신재생에너지 ②스위치 더 시티(City): 도시·건축·산림 분야 ③스위치 더 모빌리티(Mobility): 교통분야 ④스위치 더 파밍(Farming): 농업분야 ⑤스위치 더 웨이스트(Waste): 자원순환분야 ⑥스위치 더 액티비티(Activity): 도민들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활동 문화 조성 ⑦기후테크 육성 ⑧기후위기 적응 등이다.

2023년에는 그중에서 첫 번째 분야인 스위치 더 에너지를 실천하기 위해 ‘경기 RE100’ 정책에 집중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경기 RE100은 공공·기업·산업·도민의 네 분야에서 RE100을 실현하겠다는 비전이다. 지난 4월 경기 RE100 비전 선포와 함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발족해 RE100 실행계획을 추진했다.

#1. 기업 RE100: 경기도 의지에 기업 통 큰 투자로 화답

무엇보다 경기 RE100 가운데 2023년에 가장 큰 성과를 보인 분야는 기업 RE100이다. 경기도가 보여준 의지에 민간은 대규모 투자로 힘을 보탰다.

그중에서도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제조시설 지붕이나 유휴부지를 태양광발전시설로 활용해 전기를 생산한 산업단지 RE100이 눈길을 끌었다. 경기도는 지난 7월 SK E&S 등 8개 민간투자 컨소시엄과 4조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맺고 2026년까지 도내 50개 산단에 태양광 2.8GW를 보급하기로 했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2기의 설비 규모와 맞먹는다.

11월에는 한화솔루션이 화성시·화성도시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1호 경기 RE100 산단이 탄생했다. 화성시 양감면 일대에 조성돼 분양을 앞둔 H-테크노밸리는 반도체·자동차 특화 산단으로, 시설물 지붕과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과 수소연료전지발전소 등 42MW를 설치해 산단 에너지 수요의 100%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같은 달 에넬엑스코리아와 한국중부발전 컨소시엄은 삼성전자 등과 재생에너지 공급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라 삼성전자는 컨소시엄이 산단 내 설치한 태양광 설비로 생산하는 45MW의 재생에너지를 향후 20년간 구매하기로 했다. 이는 민·관이 협력해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공급계약 중 국내 최대 규모다.

산단 RE100은 민간투자를 통해 신재생에너지를 만들고, 장소 제공 기업은 임대료 등 부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또 탄소규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윈윈 프로젝트다. RE100을 선언한 삼성전자의 경우 재생에너지를 확보함으로써 수출경쟁력을 갖추는 상생 모델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된 점도 긍정적이다. 경기도는 찾아가는 산단 설명회 등을 통해 산단 RE100을 도내 193개 산단 전체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제도개선을 통해 경기도에 추가로 조성되는 신규 산단은 재생에너지 도입계획이 있어야만 물량을 배정 받도록 하여, 사실상 재생에너지 설치가 의무화되도록 했다.

#2. 공공 RE100: 공공기관 사용 에너지 재생으로 전환

경기도는 2026년까지 산하 공공기관 지붕과 유휴부지 등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해 84MW 규모의 전기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산하 공공기관 전체가 RE100 실천에 나서는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통틀어 경기도가 처음이다.

이를 위해 도와 산하 28개 공공기관이 소유한 모든 청사 70곳의 옥상, 주차장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 이는 2024년부터 공공기관장 경영평가에도 반영해 추진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건립 예정인 공공청사 27개는 설계 단계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최소 36% 이상으로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도와 시·군이 소유한 공유부지에 도민참여형 태양광 보급을 추진하기 위해 부지를 발굴하고 있다. 공공행사를 진행할 때에도 행사에 소비하는 전력 100%를 신재생에너지를 충당하도록 했다.

#3. 도민 RE100: 마을 햇빛발전소로 ‘햇빛 기회소득’ 현실화

도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도민 RE100은 주로 주택, 마을 등 지역 특성에 맞춰 도민 참여를 확대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5월에는 ‘전력 자립 10만 가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2570가구가 단독주택 지붕이나 옥상에 태양광 설치비를 지원받았다. ‘미니태양광 보급지원사업’을 통해 아파트 베란다에 미니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1521가구도 설치비를 지원받았다.

취약 지역 마을의 에너지 자립과 기회 소득을 보장하는 ‘에너지 기회소득 마을 조성사업’도 도민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에너지 취약 지역 마을에 상업용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 여기서 얻은 전기 판매 수익으로 주민들에게 매달 소득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지난 5월 공모를 통해 5개 마을 142가구가 참여해 1821㎾ 규모의 태양광이 설치되고 있다. 두 개 마을이 사업에 선정된 파주시는 자체 분석을 통해 임대료와 관리비를 제외하고 가구당 매월 10만원가량의 소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의 개인 주택과 마을 공동시설에 태양광발전소 설치를 지원하는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에도 73개 마을, 1746가구가 참여해 6319㎾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를 앞두고 있다.

#4.산업 RE100: 4차산업과 에너지 융합 미래모델 밑그림

산업 분야에서 RE100을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경기도는 ‘경기 RE100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경기도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등 분산된 기후에너지 관련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볼 수 있다. 객관적·과학적 데이터에 기반을 둔 기후·에너지 데이터 포털을 구축하는 것은 국내에서 첫 시도다.

지난 12월 초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서 175억4000만원 규모의 관련 예산이 원안대로 의결됐다. 예산안이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경기연구원에 전담 조직을 구성해 플랫폼 구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2025년경이면 플랫폼 구축을 완료하고 운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회용 플라스틱 제로’ 공공 넘어 도 전체로


▎경기도는 광교 청사 내 다회용기 사용을 확대한 데 이어 크고 작은 축제 등 민간 부문에서도 다회용기 사용을 늘리도록 지원하고 있다. 수원 광교 도청사에 있는 배달음식 다회용기 수거함과 대학 축제장에 마련한 다회용기 반납 코너. / 사진:경기도
에너지 부문 외에 자원 순환과 기후테크 분야에서도 경기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정책의 성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년 전 경기도가 ‘일회용 플라스틱 제로’를 선포한 뒤 청사 내 일회용 컵 반입 금지, 도와 31개 시·군의 일회용 플라스틱 제로 공동선언 등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앞장서 추진해왔다. 2023년 11월에는 청사 내에 반입하는 배달음식도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1월부터 일회용기를 청사에서 완전히 퇴출시킨다는 목표에서다.

최근 정부가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규제하는 정책을 사실상 철회한 가운데, 경기도는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의지를 더 강하게 다지는 중이다. 현재는 공공부문에서 주도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2024년에는 도민과 함께하는 문화로 정착되도록 ‘일회용품 안 쓰는 게 맞잖아’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넓혀갈 예정이다.

탄소중립 관련 기업 육성을 위한 1030억원 규모의 ‘경기도 탄소중립 펀드’ 1호 조성도 눈에 띄는 성과 중 하나다. 경기도 탄소중립 펀드는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친환경·저탄소 기술을 보유한 유망 중소·벤처기업을 집중적으로 발굴, 탄소중립산업 생태계 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2022년에 처음 조성했다.

경기도가 60억원을 출자하고 민간 자금 등 970억원을 유치해 처음 목표인 3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경기도 출자액의 300% 이상을 도내 소재 기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해 경기지역 탄소중립 분야 산업의 고도화와 기업 성장, 고용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도는 2024년에 400억원 이상 규모의 2호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차성수 경기도 기후환경에너지국장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경기도의 의지는 확고하다. 올해 성과를 보인 스위치 더 에너지 외에 자원순환, 농업, 교통, 도시건축 등 다른 분야에서도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1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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