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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대학을 가다] ‘우주항공·방산’ 분야 글로컬 선도대학 경상국립대학교 

국가 전략산업 키우는 담대한 개척(開拓) 정신 빛났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국내 최초 우주항공대학, 2027년까지 입학정원 250명 목표
수요자 중심 대학 선포, IC-PBL(산업 연계 프로젝트 기반 학습) 등 창의 융합형 교육 눈길


▎경상국립대는 지난해 11월 우주항공·방산 특성화로 교육부의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됐다. 경상남도 진주에 위치한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의 모습. / 사진:경상국립대
"짧게 살고도 오래 사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이 개척자다. 그의 눈은 앞을 보는 눈이요, 그의 가슴에는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故 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의 ‘개척시’ 중)

기와로 멋들어지게 꾸며진 진주역에서 내려 버스로 10여 분 서쪽으로 이동하자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의 ‘개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리산처럼 우뚝 솟은 개척교, 개척탑 등 학내에는 교훈(校訓)인 개척(開拓)과 관련한 상징물이 많다. ‘새로운 영역, 운명, 진로 따위를 처음으로 열어나간다’는 뜻처럼 경상국립대는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경상대·경남과학기술대 통합 시너지


▎경상국립대는 지난 2월 경남도·교육부·한국연구재단 등과 ‘글로컬대학30 혁신이행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경상국립대형 서울대 10개 만들기 완성’ 등 혁신적인 내용이 담겼다. / 사진:경상국립대
2021년 3월 옛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경상국립대’로 통합에 성공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실상 한 도시의 두 국립대가 각 대학의 평가에서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자율적으로 통합을 추진한 첫 사례다. 2020년 6월 경상대 총장으로 시작해 2021년 3월 통합 경상국립대 총장이 된 권순기 총장은 교육부와 두 대학을 오가며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리더십으로 통합을 이끌었다.

권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심화, 낮은 평가지표 등 미래를 내다보면 두 대학의 통합은 필연적이었다”며 “통합 후에도 유사 중복 단과대학·학과를 통폐합하고 시대와 지역이 요구하는 학과를 설립하는 논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경상국립대의 역사는 ‘개척의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합 이전 경상대 생명과학 분야는 2005년 ‘청와대보고서’에 실렸을 정도로 대학 특성화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꼽힌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경상국립대는 지난해 11월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권순기 총장 체제에서 우주항공·방산 분야 특성화로 교육부의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사업 첫해에 이뤄낸 성과로, 경상국립대는 현 시점 경남 지역 유일한 글로컬대학이다.

교육부 안팎에서는 “‘경상국립대형 서울대 10개 만들기’ 모델이 혁신성과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최고였다”고 평가한다. 우주항공·방산 분야에서 서울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소한다는 경상국립대의 구상이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는 의미다.

경상국립대가 올해 설립한 우주항공대학은 ‘경상국립대형 서울대 10개 만들기’ 모델의 구체적 실행 파일이다. 단과대학으로는 국내 최초인 우주항공대학은 경남 지역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우수한 지역 인재 입학→지역 업체 취업→지역 사회 정주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대내·외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는 교육부의 입학정원 증가에도 드러난다. 우주항공대학은 올해 첫 신입생으로 107명을 모집했는데, 2025학년도에는 174명으로 67명이 증원됐다. 박재현 우주항공대학장은 “이번 정원 순증은 우주항공 분야를 지속적으로 특성화해 온 경상국립대의 노력과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출범한 우주항공 단과대학의 역량과 발전 가능성을 정부가 인정해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경상국립대는 우주항공대학 입학정원을 2027년까지 250명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제도 개선을 통해 세계적인 석학을 JA(Joint Appointment·겸직) 교원으로 임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나사(NASA)를 표방하는 우주항공청(KASA) 개청은 경상국립대의 우주항공·방산 특성화에 순풍을 달아줄 빅 이벤트다. 오는 5월 말 경상국립대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사천에 문을 여는 우주항공청은 국가 우주항공 기술개발 및 산업발전의 컨트롤타워다. 지난 1월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경남 사천에는 우주항공청과 연계한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권 총장은 “우주항공대학은 우주항공청과 다양한 협력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우리 대학은 우수한 전문인력 양성에 주력하고, 해당 분야 교수들의 연구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우주항공청 개청 외에도 경상국립대를 성장시킬 요인은 경남 지역에 넘쳐난다. 졸업생들은 지역 내에 조성 중인 항공국가산단, 강소연구개발특구, 우주산업 클러스터 위성특화지구 등에 입주한 우주항공 관련 기업(관)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등 국내 우주항공 관련 다양한 산·학·연·관으로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 전략산업 발굴하는 허브 역할


▎지난 3월 경상국립대는 글로컬사업단 현판식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 이행에 들어갔다. / 사진:경상국립대
우주항공대학은 취업보장 연계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국내 우주항공 산업을 이끄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에이엔에이치스트럭쳐(ANH Structure) 등과의 맞춤형 교육과정은 물론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네바다대학교, 프랑스 인사 톨루즈, 영국 크랜필드대학교, 벨기에 몽스대학교 등 해외 유수의 우주항공 분야 대학 연수 및 석·박사 진학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경상국립대는 우리나라 우주항공 인재를 양성하고 미래 전략산업을 발굴하는 허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경상국립대가 창의 융합형 인재 육성 교육을 선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주항공대학에서 중점을 두는 것 중의 하나가 IC-PBL(산업 연계 프로젝트 기반 학습)로, 업체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학생들에게 실습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회사의 니즈를 파악하고 교수, 회사 엔지니어들이 학생들의 캡스톤 디자인에 참여해 이들을 트레이닝시키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실무 역량을 갖추고 기업체에 들어가는 졸업생들은 ‘서울 아덱스(ADEX)’ 등 국내외 내로라하는 우주항공·방산 전시회에서 우수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항공 산업을 선도하는 연구자가 꿈이라는 우주항공대학 1학년 김재연 학생은 “대학에서 제공되는 해외 우수 대학 파견, 서울대나 미국·유럽의 우수 학생들과의 공동 인턴십이나 경진대회 참가와 같은 파격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매력적”이라며 “우주항공 산업에서 꿈을 펼치고 싶은 고교생이라면 우리 대학에 지원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렇듯 경상국립대는 수요자 중심 대학을 목표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주항공대학 입학생들은 등록금과 생활관비 및 식비 장학금 전액을 지원받는다. 성적·활동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월 10만원에서 50만원까지 생활장학금이 지급된다. 무전공으로 입학해 기초 전공 소양을 갖춘 후 항공우주시스템공학전공, 항공우주모빌리티전공 등 세부 전공을 선택할 수도 있다.

경상국립대는 2022년부터 학생이 교과목을 설계하는 ‘교양 교과목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방법, 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권 총장의 철학이 프로그램 전반에 짙게 배어 있다. 대학이 학생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다면 세계적인 석학이나 기술자로 자라나는 것도 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외 탐방의 경우에도 경상국립대는 큰 틀만 잡아주고 학생들이 직접 계획을 짜게 하는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GPP·Global Pioneer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크로디그리(MD·Micro-Degree)는 빼놓을 수 없는 수요자 중심 교육 사례다. 경상국립대는 2022학년도부터 항공드론, 빅데이터, 반도체 등 12개 분야 53개 교육과정에 MD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수할 수 있다. 앞으로도 경상국립대는 MD 과정을 3개 이상(36학점) 누적으로 이수하면 학위를 부여하는 ‘마이크로디그리 누적형 학위제’를 도입해 융·복합 교육을 강화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에듀베케이션 등 혁신 프로그램 눈길


▎경상국립대 학생들이 ‘2023 캡스톤디자인 작품 전시 및 발표회’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화성 탐사를 위한 UAV&UGV 협력시스템이 대상을 차지했다. / 사진:경상국립대
경상국립대의 과감하면서도 담대한 도전은 혁신융합캠퍼스를 통해서도 엿보인다. 밀양산업대학이 부산대로 통합되며 남겨놓고 간 캠퍼스 부지를 활용해 평생교육 시스템을 만든다는 구상으로, 밀양의 특화 산업인 스마트팜, 도시재생, 문화예술과 관련한 수업을 MD 과정으로 원격 교육할 계획이다. 만약 혁신융합캠퍼스가 성공한다면 경상국립대는 경남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국내외 곳곳에 뿌리내릴 수 있다. 교육이 꼭 학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것이다. 권 총장은 “혁신융합캠퍼스는 대학혁신지수 9년 연속 1등인 애리조나주립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의 혁신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통영 체험·탐방형 평생교육’(Edu-Vacation)도 기대되는 혁신 프로그램이다. 여행 트렌드 가운데 하나인 에듀베케이션은 교육(Education)과 휴가(Vacation)를 합친 말로,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여행을 말한다. 쉽게 말해 한려해상국립공원, 이순신 리더십 스쿨, 해양 스포츠, 통영의 섬과 자연, 예술과 문화 등 통영이 자랑하는 여러 관광 상품을 체험하며 MD로 학점을 받는 과정이다. 권 총장은 경남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교육과 맞물렸을 때 엄청난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듯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소멸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경상국립대는 대학 주도형 국토균형발전 모델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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