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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민주당 ‘이재명 2기’의 강온 양면 전략 

정치 투쟁은 강경해지고 정책 경쟁은 유연해졌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역대 최고 지지율로 대권가도 향한 친정체제 완벽 구축
실용적 민생정책 ‘먹사니즘’으로 중도층 민심 공략 시동


▎7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기 전 지지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 시즌 2’가 시작됐다. 이재명 후보는 8월 18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 당선을 확정 지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8월 16일 최고위원회의를 끝으로 ‘이재명 1기’ 체제를 종료했다.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은 “지난 2년간 이재명 1기 지도부는 ‘이재명 죽이기’와 윤석열 검찰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며 “이 전 대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총선 승리였고, 당원주권시대의 개막이었다”고 자평했다.

이재명 1기 체제는 2022년 8월 출범해 임기 2년을 채웠다. 이 대표가 지난 6월 연임에 도전하려고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 2개월 동안 박찬대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으로 이끌었다.

당대표 경선에서 기록한 압도적인 지지율은 이재명의 일인 지배 체제가 더욱 굳건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더 강해진 ‘이재명 2기’가 출범하면 잠시 숨 고르기 중인 정국이 또 한 번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2기 지도부 멤버인 최고위원들은 1기보다 친명 쏠림이 뚜렷하고 강성 일색으로 채워지게 됐다. 8월 16일 현재까지 최고위원 후보들의 권리당원 지역순회 온라인 누적득표율은 김민석(18.03%), 정봉주(15.63%), 김병주(14.02%), 한준호(13.66%), 이언주(11.56%), 전현희(11.54%), 민형배(10.53%), 강선우(5.03%) 순이다. 총 5명을 뽑는 최고위원 경선에서 김민석·정봉주·김병주·한준호 4명이 당선 안정권으로 분류된다.

정봉주 전 의원 외에 3명 모두 친명계로 분류된다. 2기 지도부에서 수석최고위원 물망에 오르는 김민석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 집권 플랜 본부장’을 자처하고 있다. 최고위원 후보 중 이 전 대표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의원은 군사·안보 분야의 뛰어난 역량을 내세워 정권 공격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이재명 팔이’ 척결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대여 관계에 있어선 초강경 노선을 주도할 적임자란 평가를 받는다. 정 전 의원은 최고위원 후보 중 가장 먼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한준호 의원은 MBC 아나운서 출신이어서 민주당의 언론개혁 드라이브에 힘을 보탤 전망이다.

다섯 번째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이언주, 전현희, 민형배 의원이 박빙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민 의원은 호남에서 큰 지지를 받았지만, 수도권에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전 의원은 최근 여권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김건희 살인자’ 발언 이후 오히려 당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있을 때 윤석열 정권과 대립했던 터라, 지도부에 합류할 경우 대여 강경 노선에 힘이 실릴 거란 분석이 나온다. 이언주 의원도 이 전 대표가 영입한 인연 때문에 친명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때 ‘여전사’라고 불릴 만큼 흔치 않은 강성으로 평가받는다.

더 강한 친명 강경파로 채워진 지도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8명의 최고위원 후보들. 이재명 2기 체제 지도부는 친명 강성 색채가 더 짙어졌다. 후보 8명 모두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 온라인 커뮤니티인 ‘재명이네마을’ 주민이다. / 사진:재명이네마을 캡처
이재명 1기 지도부의 가장 큰 미션이 이 전 대표의 구속 저지와 총선 승리였다면, 2기 지도부의 지상 과제는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르면 올가을부터 이 전 대표의 재판 1심 선고가 나올 예정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선 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는 경우다. 자칫 대선 출마가 막힐 경우 이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대장동·백현동·성남FC 등 뇌물·배임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사건에 얼마 전 기소된 대북송금사건까지 4개다. 가장 혐의가 무거운 대북송금사건은 최근에 기소됐다. 법조계에선 대선 전까지 확정판결이 나올 가능성을 작게 보고 있다. 대장동 개발 특혜 등 뇌물·배임 사건은 여러 사건이 병합돼 그만큼 심리가 길어지고 있다. 위증교사 혐의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9월에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

사법부가 의도적으로 재판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정치권 등 외부 개입으로 재판 일정이 영향을 받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다. 국민의힘의 한 정책통 인사는 “민주당이 이 전 대표의 재판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동시에 사법부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회유했다는 이유로 대북송금사건 수사 검사 등 현직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법사위에서 검사 탄핵 청문회를 시작했다. 법조계는 민주당이 장악한 법사위가 마음만 먹으면 판사 탄핵 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서초동에 사무소를 둔 한 중견 변호사는 “탄핵 소추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유죄 선고를 앞둔 결정적 순간에 탄핵을 시도해 재판을 지연시키는 본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처럼 정권을 상대로 한 강경한 정치 투쟁과 별개로 정책에 있어선 국민의 마음을 잡으려는 노력이 감지되고 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관련 정책 노선에서 민주당의 기조가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먹사니즘’으로 눈 돌리는 민주당


▎8월 1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 셀트리온주주연대 등 12개 투자자 단체 회원들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셀트리온주주연대
우선 이 대표가 경선 기간에 화두로 던진 ‘먹사니즘’을 지원할 전국 조직이 출범했다. 김태형 서울 강남 갑 지역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원외 인사들이 주축이 된 ‘먹사니즘 전국네트워크’는 8월 16일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다가오는 대선에서 이 대표와 더불어 민주당의 승리에 기여해 먹사니즘이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먹사니즘은 좌우 진영의 이념이 아니다”라며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기후위기, 남북 평화, 양극화 등 국가적·전지구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출발한다”면서 “차기 지방선거에서 먹사니즘에 동의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 당선에 기여해 먹사니즘이 풀뿌리 단위에서부터 자리하게 할 것”이라고 조직의 역할을 규정했다.

‘먹사니즘’은 이 대표가 7월 10일 당대표 연임을 위한 출사표를 던지면서 꺼낸 화두다. 당시 그는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면서 앞으로의 정책 노선을 이 단어에 축약했다.

기존 이 대표의 정책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기본 사회’였다. 먹사니즘은 이 대표가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을 의미하고, 기본사회는 먹사니즘이 실현된 사회 모델, 기본소득은 방법론에 해당한다. 이 대표는 “출생기본소득, 기본주거, 기본의료, 기본교육 등을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AI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에 대비해 기본소득을 포함한 기본사회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구상이다. 이는 챗GPT의 아버지 샘 알트먼을 비롯해 미국의 주요 IT 기업인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샘 알트먼은 AI 시대를 대비해 암호화폐를 활용한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금투세 유예·종부세 완화” 우클릭


▎한동훈(오른쪽)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생각에 잠겨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와 함께 눈에 띈 점은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와 종부세(종합부동산세) 완화 필요성을 언급한 이 대표의 입장 변화다. 이 대표는 출마 선언에서 “(종부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부동산 정책에 관해 일관된 기조를 유지해온 기존 민주당 입장과 결을 달리하는 것이어서 이목을 끌었다.

이어서 KBS 주관으로 열린 2차 방송토론회에서 그는 “종부세 자체를 없애는 것보다, 조세는 국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지 개인에게 징벌을 가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 점에 대해 반발이 있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라고 종부세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 대표는 “내가 집 한 채 가지고 평생 돈 벌어서 우리 가족 오순도순 살고 있는데 그 집이 좀 비싸졌다는 이유로 거기에 대해 징벌적 과세를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너무 심하니 1가구에 대한 실거주 1주택에 대해선 대폭 완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2년 대선 때부터 여론의 반발에 떠밀려 시행이 계속 미뤄진 금투세에 대해서도 유예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8월 13일 MBC가 주관한 민주당 당대표 후보자 5차 방송토론회에서 ‘증시 안정을 위해 금투세 완화 또는 폐지에 관한 동의 여부’를 묻는 OX 질문에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일시적 유예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금투세는 거래세를 줄이면서 도입한 대체입법”이라며 폐지에는 반대하면서도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나쁜데 원인이 주로 정부 정책 잘못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선 잠시 유예하거나 일시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겠다”고 설명했다.

금투세는 본래 2023년에서 한 차례 유예돼 2025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증시 불안정과 미국발 ‘R(경기침체)의 공포’가 고조되면서 금투세를 유예하거나 폐지하라는 여론이 커지기 시작했다. 15일 저녁에는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투자자 단체 회원들이 ‘금투세 폐지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대표가 민생 중심으로 노선을 변화하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앞으로 펼쳐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정책 경쟁을 암시하는 전조”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일단 이 대표는 대선을 겨냥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에 선을 그었다. 그는 14일 [오마이TV]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라며 “보수층을 겨냥한 ‘우클릭’이나 대선 전략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건 정당의 기본적 역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입장 변화가 민주당을 대선 전까지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뒤에 나왔다는 점에서 때를 기다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금투세에 관한 이 대표 입장이 정치 이벤트를 거치며 변해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선 때 이 대표는 금투세 대신 ‘증권거래세 폐지’를 내놨다가 당대표가 된 뒤에는 금투세 유예에 합의하며 조금씩 유연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실용주의자 면모 부각해 중도층 붙잡기

주요 당직자 인선을 마무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한 한동훈 대표도 민생에 방점을 찍고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한 대표는 최근 에너지 취약계층 130만 가구 대상 전기요금 지원과 반도체 특별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법)’에 반대하는 대신 약자를 위한 맞춤형 지원 정책으로 차별화하는 것으로 읽힌다. 또 금투세에 대해선 폐지하겠다는 입장으로 민주당을 압박했다.

이처럼 한 대표가 민생 정책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 대표로선 실리를 추구하는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정책 노선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정치권 해석이다. “1기 체제에서 이 대표가 당원을 중심으로 한 진영의 대표에 머물렀다면, 대선 체제로 이어질 2기 체제에선 국민 전체를 상대로 국가 운영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한 정책통의 설명이다.

지난 2년은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드는 기간이었고, 앞으로 2년은 국민에게 이재명의 비전을 보여줘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이한주 전 가천대 교수가 이 대표의 정책 설계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성남에서 이 대표와 함께 시민운동을 해오며 기본소득 정책을 설계한 이 대표의 ‘경제 교사’로 꼽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자”라며 “지난 대선에서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교훈을 얻은 만큼 앞으로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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