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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27)] 나무에 캔버스를 입히는 사진가 이명호 

“다 들어내는 게 바로 내 호명(呼名)의 방식” 

나무 실물 뒤에 대형 캔버스 만들어 그림 같은 작품 연출
엘튼 존, 우디 앨런,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앞다투어 소장


▎이명호는 피사체의 배경에 하얀 캔버스를 설치해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무너뜨린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사진가다. / 사진:조정화
"보고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게 사진이고, 예술이다. 이런 ‘판(장치)’을 만들어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다.” 이명호 작가는 ‘나무’ 뒤에 세운 흰색 캔버스(canvas)에 ‘판(板)’ 개념을 도입해 ‘판을 열다’, ‘판을 깔다’, ‘판을 벌리다’란 의미를 더한 [판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할 생각이다. 이 작업에는 일반 대중의 감각 경험으로 소통을 끌어내고자 하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지가 담겼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조 임금의 어진(초상화)을 모시는 덕수궁 선원전이 훼손되고 그 자리에 들어선 옛 조선저축은행 사택에서 최근에 개최된 [회화나무, 덕수궁…] 전시와 경복궁 영훈당 권역의 아트펜스 프로젝트 역시 같은 맥락에서 기획됐다. 그는 수백 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회화나무(괴화목)’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판(전시, 학술, 출간)’을 열어 우리 문화유산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재 조명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한 이명호는 2004년부터 나무 뒤에 세운 캔버스 형식에 따른 재현(Re-presence)과 재연(Re-produce)의 개념적 접근에 천착해왔다. 이를 통해 ‘사진-행위 프로젝트(Photography-Act Project)’와 ‘예술-행위 프로젝트(Art-Act Project)’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확장을 거듭해오고 있다. 2007년부터 만 17년간 예술의 메카 뉴욕의 요시밀로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현재 국가유산청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엘튼 존, 우디 앨런,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의 해외 유명 셀럽들이 작품을 소장했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 사진가 최초 佛국립도서관 작품 소장


▎120여 년 전부터 덕수궁을 지키며 한국 근현대사를 목격한 회화나무를 소재로 한 최근 작품 ‘회화나무, 덕수궁…’. 하얀 캔버스를 배경으로 삼은 나무와 주변 풍경을 통해 회화나무가 간직한 이야기에 주목하게 한다. / 사진:이명호
자신만의 고유 언어를 구축해 ‘Mist’, ‘Color Series’, ‘Petty Thing’, ‘Horizon_[drənæda]’, ‘Work View_Heritage’ 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가지고 요시밀로갤러리(뉴욕, 2009/2017), 성곡미술관(서울, 2010), 갤러리현대(서울, 2013/2018)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Tree’ 연작과 ‘Nothing But’ 연작은 모두 자연 풍경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다만 ‘Tree’ 작품은 실재하는 오브제(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해 가시적인 ‘드러내다(나타나다)’라는 화두로 우리가 보고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이도록 하는 반면, ‘Nothing But’은 ‘나무’ 연작의 주요 방법론과 달리 오브제(나무) 없이 텅 빈 캔버스 자체로 놓여 비가시적인 ‘들어내다(사라지다)’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는 관람자에게 눈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보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없는 것)을 보이게(있는 것) 드러내는 장치다. 이것이 이명호식의 호명(呼名)이다.

전자가 “밥상(판)에 한 가지 반찬을 차려 놨으니 맛있게 드시오”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면, 후자는 밥상(판)은 차려 놨으니 마음껏 먹고 싶은 대로 드시오”인 셈이다. 캔버스를 온전히 비운 ‘들어내다’를 통해 비로소 ‘드러내다’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국내 사진가로는 최초로 역사적 사진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작품이 소장되었고, 미국 장 폴 게티 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사진미술관,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등에도 소장될 만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작품 전시 중인 이명호 작가를 덕수궁 선원전 터의 조선저축은행 사택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의 안내로 ‘귀신을 쫓는다’는 회화나무를 마주했다. 만개한 꽃 때문이었을까. 상서로운 기운이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현재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홍보대사인데,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기존에 해왔던 홍보 방식과 달리 문화재를 촬영하고 기록하는 차원을 벗어나 저의 예술적 기획 내지는 작가와 협업해 홍보하고자 했다. 사진가로서 공식적인 홍보대사는 국내 1호다. 국가유산청이 아티스틱한 예술가의 참신한 기획을 접목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명호 작가의 가장 대표작 중 하나가 ‘Tree’ 연작이다. 작가에게 ‘나무’는 어떤 의미인가?

“좀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다. 나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흔하고 사소해서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 나무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평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름의 가치가 다 있는 데 각기 그 역할만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의 관점에서 자꾸 판단하고 평가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흔한 나무를 유의미한 존재로 만든 작업을 했다.”

흔하고 평범한 나무를 유의미한 존재로 만들다


▎이명호의 작품세계는 피사체 자체를 주목하기보다 ‘들어냄’을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는’ 행위 프로젝트에 가깝다. 2018년 작 ‘Nothing But #2’ 그리고 2012년 작 ‘Tree… #2’. / 사진:이명호
‘Tree’ 연작의 첫 작품은 언제, 어디서, 어떤 나무를 촬영한 것인가?

“학부생 때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다가 2004년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바로 나무 작업을 시작했다. 예술대학 서양화과 캠퍼스 벤치에 앉아 매일 커피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곳에 있는 느티나무가 내 작품에서 첫 번째로 등장한 나무다. 조소과 친구들 도움을 받아 나무 뒤에 비계를 4~5단 쌓고, 광목천으로 캔버스를 만들어 촬영했다. 당시 나무 첫 작품을 보고 교수님이 극찬하셨던 기억이 난다.”

가장 최근 개최한 개인전 ‘회화나무, 덕수궁…’ 작품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덕수궁 선원전 터에 아직까지 건재한 121년 된 회화나무를 소재로 삼은 작업이다. 프리즘을 통해 빛의 스펙트럼을 보는 것처럼 역사와 건축을 따로 떼지 않고, 덕수궁이라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심장부 한복판에서 유독 부침이 심했던 근현대사를 목격한 회화나무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스펙트럼을 보고자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20년 수령의 천연기념물 무궁화가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강릉박씨 제실 마당에 있다. 국내외에 특별히 역사성이 있거나 의미 깊은 나무들을 피사체로 담아볼 생각은 없나?

“작업 초기부터 주변의 흔한 나무를 선택했다. 해외 촬영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무의미한 것들만 계속하다 보니 유의미한 것들이 오히려 역차별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덕수궁 ‘회화나무’ 작업이 유의미한 작업의 시작으로, 기존의 무의미한 존재로서의 나무에서 유의미한 나무로 건너가고 있는 시점이다. 스토리가 있는 나무 작업도 의미가 있다. 강릉 박씨 제실 마당의 무궁화는 처음 알았는데 흥미가 생긴다. 사실 AI 시대에 인공지능이 다 잘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명호 작가를 생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무 뒤에 설치한 캔버스다. 굳이 설치하게 된 이유는?

“캔버스가 갖는 의미가 중요했다. 사진 매체는 결국 그림에서 나왔다. 역사를 추적해 보니 미술사의 가장 상징적인 재료가 캔버스였고, 무언가를 재현하기 위해 시작됐다. 다만 앞의 피사체를 뭘로 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 가장 흔한 대상을 선택해야만 피사체(나무)에 주목하지 않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 ‘행위 의미’에 주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업을 [사진-행위 프로젝트]라고 명명하고, 재현의 의미 등을 환기하려고 했다.”

사진 속 피사체보다 ‘행위’로 시선 유도


▎이명호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1903년에 찍은 덕수궁 전경이다. 사진 속에 최근 작업한 회화나무의 121년 전 모습이 담겨 있다. / 사진:이명호
검정, 빨강 등 다양한 색이 있는데 주로 흰색 캔버스를 설치했다.

“흰색을 채택한 것은 ‘텅 비어 있다’는 의미 때문이다. 유화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하얀 캔버스’를 ‘비어 있는 캔버스’라고들 하는데 ‘텅 비어 있다’는 개념이 담겼다. 처음 ‘Tree’를 시작할 때 ‘사진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무엇일까’란 질문을 작업화하는 게 목적이었다. 손의 중재를 통해서 그리던 것을 필름이라고 하는 곳에 손을 대지 않고 빛이 결상되게 하는 도구가 카메라다. 사진사와 회화사에 얽힌 관계성,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 대신 직접 캔버스를 들고 나가서 나무 뒤에 설치하고 사진을 찍으면 그게 하나의 재현 의미가 된다.”

오브제(나무) 뒤에 설치하는 캔버스 형태는 원과 삼각형 등 여러 형태가 있는데 한결같이 사각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형태라 생각한다. 가우디 건축가도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했다. 직선과 직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가장 인간적이고 ‘직관적인 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인간적이고 접근하기 쉽고 현실적인 형태가 사각이다. 점, 선, 면과 수직과 수평이 만나서 입체가 된다는 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나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첫 작품도 애정이 가고, 몽골에서 촬영한 나무 작품도 좋다. 몽골 작업은 봉고차 두 대를 빌려서 스태프 9명, 현지인 가이드, 통역 등 11명이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비포장 흙길 3200㎞를 다니며 2주동안 초원에 있는 나무 한 그루씩 캔버스를 설치해 촬영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다가 진흙에 빠지기도 하고, 추위에 밤새 덜덜 떨며 고생을 해서 더욱 애착이 간다. 그리고 최근 덕수궁의 ‘회화나무’도 유의미한 첫 작업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까지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드러내다’이다. 나무를 드러내겠답시고, 재현하겠답시고 뷰포인트를 찾아 제시했는데 나무가 ‘당신이 나를 알아? 무한대의 나를, 당신이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뷰포인트 하나로 나무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은 무한대인데 그중에 하나를 찾아 수학적으로 표시하면 무한대분의 1이 된다. 무한대분의 1은 0이다. 물론 0이라기보다 0에 수렴하지만, 수학적으로 0이라고 간주하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 대상이나 현상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방법이 무한대와 0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면 ‘0분의 1’이 무한대가 된다. 물론 0은 분모가 될 수 없지만 0만큼 작다는 의미로 해서 수학적으로 뒤집으면 0분의 1은 무한대가 되니까 ‘다 들어내면 다 드러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드러내다’이다. 이론가의 관점에서 내 작업을 분석해 학술지 논문으로 발표한 김성호 선생은 이를 ‘명호의 호명이다’라고 표현했다.”

“다 들어내야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난다”

예술-행위 프로젝트(Art-Act Project) 작업은 어떤 의미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내 작업은 사진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 전반으로 통하는 얘기라 [사진행위 프로젝트] 또는 [예술-행위 프로젝트]를 상황에 따라서 교차해 쓰고 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도 너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 주듯이, 존재가 있어도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면, 사실 있어도 있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이름을 불렀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처럼, 서로 의미를 관계 맺지 않으면 물리적으로는 보고 있어도 보지 않는 것이 된다. 그것을 관계 맺도록 해주는 게 나의 사진이고, 나의 예술 행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이 있다면?

“1903년에 촬영한 덕수궁 전경 사진이다. 사진 속에 이번에 작업한 ‘회화나무’가 있다. 121년 전 사진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초점도 안 맞고 오래되어 훼손이 많이 됐지만 내게 정말 각별하게 다가왔다. 작자는 알 수 없지만, 영국 뉴캐슬대학교에 소장된 것을 국가유산청에서 찾아내 크게 인화해 덕수궁 복원 현장 사무실에 걸었다. 덕수궁이 일제에 의해 철거되는 과정에서도 회화나무는 살아남았고, 그 현장을 지켜봤다. 2004년에 고사 판정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11년 만인 2015년에 부활했다.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다가 되찾은 것처럼 왕성하게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 ‘회화나무’ 작업을 하면서 역사적인 의미라든지 비이성적인 영역까지 각별하게 느껴졌다. 회화나무 뒤에 흰색 캔버스를 세웠는데 바로 그 뒤에 흥국생명의 건물이 보인다. ‘Heungkuk’(흥국, 興國)이라는 영문 글자가 또렷하게 보여 회화나무가 영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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