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럭바위들 틈을 뚫고 솟아오른 노송들 사이, 바위를 주춧돌 삼아 세운 암서재. 세월의 흐름은 한때 푸르렀을 나무의 생명도 앗아갔다.암서재 마루에서 바라본 화양구곡. 부귀와 권세를 좇는 걷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은 이 강산 최고의 명승지를 ‘도둑놈의 소굴’ 혹은 ‘뒤틀린 권세의 발원지’로 퇴락시켰다. 금강산 이남 최고의 명승지로 일컬어지는 속리산 화양동 계곡이 바로 그곳이다. 천하의 절경을 권세욕으로 더럽힌 화양서원의 정치건달들을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은 ‘서민들의 피와 살을 빨아먹는 좀벌레들’이라고 표현했다.
부끄러운 역사의 시원은 죽어서까지도 절대권력이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시열은 당대 최고의 사상가·권력자로 군림했던 독특한 정치인이었다. 효종의 스승이었던 그는 야심을 갖고 북벌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를 후원하던 효종이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화양동 계곡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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