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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KTF 사장… 고종 황제의 최초 통화 

 

1896년 한 젊은 열혈 청년이 일본군 중위인 쓰치다라는 자를 맨주먹으로 때려 뉘었다. 주위에 모여든 많은 사람이 도망가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해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내가 이놈을 죽였노라, 해주 텃골 김창수’라는 글을 써 안악군수에게 보내라고 이르고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석 달 후, 그 젊은이는 인천감옥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내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던 그 젊은이는 1896년 10월 2일 고종 황제의 전화 한 통으로 사형 집행을 면할 수 있었다. 이날 궁내부에 최초로 설치된 전화로 고종 황제가 인천감리와 통화하면서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 젊은이는 2년 뒤 탈옥했고, 세월이 흘러 상하이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다. 그가 바로 한국 독립운동사의 위대한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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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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