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국경제 평가 왜 극과 극인가? 

피치의 비관론과 크레디스위스의 낙관론 엇갈려 … “외신 인용자료 잘 관리하라”
해외 언론과 신용평가사 피치의 한국 경제 비관론 파문 

백우진 기자·cobalt@joongang.co.kr
정부가 불리한 외신 보도에 대해 전방위로 대응하고 있다. 해명자료 배포와 반박 기고에 이어 고위 관료들이 직접 해외로 나가 뛰고 있다. 최상의 대응은 ‘한국 경제 위기 우려’ 기사가 기우였음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긴장이 감도는 외환은행 딜링룸.

해외 언론은 지난해 가을 ‘한국의 제2 외환위기설’ ‘9월 위기설’ 등을 보도했다. 한국 경제는 이 우려를 헤쳐 나왔다. 올해 들어서는 ‘3월 위기설’이 등장했다. 외신 가운데 주로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와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경제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 매체가 지적한 한국 경제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외채가 너무 많고 외환보유액은 부족하며, 게다가 외환보유액 가운데 바로 쓰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래서 한국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갚아나갈 수 있을지 우려된다. 또한 한국 은행들은 예금보다 많이 대출해주는 바람에 건전성이 저하된 상태다.’

정부는 부정적인 외신 보도에 대해 해명 자료를 내고 반박문을 기고했다. 이어 해당 언론사를 직접 방문하고 경제설명회를 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런던에서 세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앞두고 한국경제 설명회를 열었다.

정부의 대응은 아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외신이 정부의 해명이나 반박을 되받아치면서, 신경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신흥시장 가운데 한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헝가리에 이어 세 번째로 위기에 취약하다고 평가하고 보도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박철규 기획재정부 대변인이 최근 반론을 기고했다.

반론은 3월 7~13일자 이코노미스트 독자란에 실렸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반론 바로 아래 ‘편집자 주’를 덧붙여 정부 반론을 다시 반박했다.

韓 정부 - 英 이코노미스트 신경전

외신 기사가 나온 다음 뒷북 대응하는 정부의 해외홍보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지적은 정부 내부에서도 나왔다. 금융위 이창용 부위원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해외홍보가 한국 축구의 병폐를 답습해 왔다”며 “공을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한다”고 비판했다.

일일이 통계를 대며 외신 보도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접근 또한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의견도 들린다. 2005년부터 약 3년 동안 영국 주재 한국 대사로 일한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언론이 전문 경제기관도 아닌데 (통계자료를 놓고) 시비를 걸면 안 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예대비율에서 예금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넣느냐 넣지 않느냐를 일일이 따지기란 쉽지 않다”고 예를 들었다. 조 교수는 “우리 정부가 과거에 외신에 과잉 반응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꼭 반론이 실리도록 (해당 언론과 기자를) 귀찮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과잉 반응하기보다 의연하고 세련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일례로 “해외 언론이 주로 인용하는 곳의 자료가 제대로 업데이트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외신과 반대로 스위스 금융회사 크레디스위스가 한국의 국가위험도를 낮게 평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10일 크레디스위스는 한국의 국가 위험도를 19위로 영국 11위, 미국 13위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했다. 조 교수의 조언에 따르면 정부는 충실한 자료를 해외 금융회사와 분석회사에 보내 이런 보고서가 더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런 와중,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최근 내년까지 발생할 한국 은행들의 부실 규모가 42조원에 이를 것이며 평균 단순자기자본비율도 지난해 6월 6.4%에서 내년엔 4%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진단해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이에 국내 은행들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이라며 피치의 보고서에 강력 반발했다.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주요 선진국은 제쳐두고 국내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그 결과를 서둘러 공개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 경제는 현재 부정적인 외신 기사와 크레디스위스 분석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실제로 어떤 상태일까? 가장 큰 시각 차이는 외환보유액 대비 외채의 비율에서 드러난다. 해외 매체가 문제 삼은 외채는 단기외채와 유동외채. 단기외채는 만기 1년 이내로 빌린 외채를 뜻한다. 유동외채는 단기외채 외에 장기외채 가운데서도 1년 내에 갚아야 하는 부분을 포함한 것이다.

외신은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올해 102%가 넘어설 것이라는 HSBC의 자료를 활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이 비율은 지난해 말 75%였고 올해 들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유동외채가 외환보유액에 거의 육박한다는 게 외신의 인식이다. 그러나 정부는 조선사 등의 환헤지용 차입금을 제외해야 한다고 해명한다.

조선사가 환헤지용으로 차입한 외화는 잔금을 받으면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헤지용 차입금을 빼면 지난해 말 유동외채 비율은 77%로 낮아진다. 단기외채나 유동외채를 외환보유액과 비교해 외채상환 여력을 평가한 외신의 접근엔 몇 가지 비현실적인 전제가 있다는 정부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외신은 은행과 기업의 외채상환 능력이 전혀 없음을 전제로 했지만, 은행권의 외화유동성 비율은 100% 수준을 넘으므로 은행이 외채를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정부는 반박했다.

한국 은행들 예대비율은 높은 수준

외신은 또 외채 만기연장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가정했지만 정부는 국제 금융시장이 가장 경색됐던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에도 만기연장 비율이 50%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들었다. 한국 은행들의 예대비율을 놓고는 외신이 130%, 한국 정부는 119%라며 서로 맞섰다. 그러나 위험도가 매우 높은 라트비아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을 제외한 17개국을 대상으로 하면 한국의 예대비율 119%는 브라질과 헝가리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부정적인 외신 기사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은 그런 기사가 기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무 관료 출신의 한 공기업 사장의 말이다. “우리가 그들이 지적하는 대로 되지 않고 잘해 나가는 게 부정적인 해외 언론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979호 (200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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