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대한민국 銀行이 수상하다 

건전성·수익성 악화→조달기능 마비 ‘악순환’
CDS 프리미엄 급등 빌미 은행 신용도 하락
돈맥경화 ‘우울한 봄’ 이기려면 원죄 씻고 다시 시작해야 

은행이 ‘우울한 봄’을 보내고 있다. 자산건전성엔 경고등이 켜졌고,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내외 자금조달도 원활하지 않다. 추락한 신용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은행 곳간이 마르면 돈줄이 끊긴다. 피해는 가계·기업에 전달된다. 게다가 ‘한번 막힌 돈줄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는 게 자금시장의 통설이다. 은행 스스로 ‘원죄’를 씻어야 할 때다.

우물이 막히면? 물장사는 물을 파는 대신 흙을 파야 하고, 사람은 갈증에 시달린다. 돈줄이 막히면? 기업은 도산위기에 빠지고, 가계는 휘청거린다.

돈맥경화의 ‘우울한 봄’ 시나리오다. 2009년 대한민국엔 돈이 돌지 않는다. 은행은 몸을 사린다. 세계 금융위기라는 거센 폭풍 속에 조각배처럼 흔들린다. 기업으로선 신규대출은커녕 만기연장도 어렵다.

흑자기업마저 도산하는 판국이다. 오죽하면 신용장 개설을 거부하는 수출기업까지 속출할까? 수출상(商)은 신용장을 통지 받은 후 수출이행 단계에 돌입한다. 신용장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이런 극한상황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은행 곳간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익은 전년 대비 50%가량 감소했다. 반면 당기순손실(지난해 4분기)은 3000억원에 달했다. 2000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기록한 적자다. 은행의 수익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얘기다.

건전성도 말이 아니다.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2월 말 현재 1.67%. 1년 전보다 0.66%포인트 상승했다. 연체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부실채권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충당금 전입액이 커질 수밖에 없고, 수익은 감소한다. 건전성 악화가 손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고리다.

여기까진 약과다. 은행의 부실화는 자금조달기능까지 마비시킨다. 요컨대 원화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면 은행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은행채 금리는 그만큼 높아진다. 당연히 해외조달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은행으로선 이런 비상시국을 돌파할 방도가 많지 않다. 당장 예금을 늘리기 어렵다.

증권사·보험사가 너나 할 것 없이 저축성 보험상품을 출시하기 때문에 예금자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금리도 낮다. 지난해 10월 5.2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현재 2%까지 떨어진 상태다. 그렇다고 대출 잔액이 껑충 뛰길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SK증권 신규광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신용리스크가 상승하면서 기업대출 증가세의 둔화가 불가피하다”며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의 저성장세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계대출의 성장세가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기침체에 따른 여신의 부실화 가능성으로 은행권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성장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규광 애널리스트는 이를 ‘모멘텀 없는 삼각파도에 휩싸여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무차별적으로 늘린 부동산 PF 대출이 은행 유동성 위기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2005년 은행의 기억 “되살려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 유수의 기관은 국내 은행을 향해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골드먼삭스는 올해 1분기 국내 은행들이 340억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계 신용평가기관인 피치(Fitch)는 “한국 은행들의 손실 규모가 내년 말까지 40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은행권의 반발은 거세다.

전국은행연합회는 “피치가 부정확한 평가를 했다”며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끼치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게 아니다. 돈줄이 왜 마르고 있는지, 은행이 왜 궁지에 몰렸는지를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그렇다면 은행의 원죄는 뭘까?

무엇보다 전통적 은행 영업으론 수익을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투자은행업(IB)에 섣불리 진출한 것이 문제다. IB의 기본 수익구조는 차입거래다. 외부에서 단기성 자금을 조달한 후 고수익이 예상되는 분야에 투자해 차익을 올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IB에선 금융상품 거래가 필수적인데, 지난해 국내은행의 유가증권 관련 이익은 90%가량(전년비) 급락했다.

IB분야에서 쓴맛을 봤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 간 외형 부풀리기 출혈경쟁도 이젠 사라져야 한다. 2004년 이후 국내 주요 은행들은 자산을 늘리기 위해 가계 및 중소기업 대출을 경쟁적으로 확대했다. 대출증가율이 연평균 15%에 달할 정도였다. 이는 명목GDP 성장률(7%)의 2배 수준이다. 무차별적으로 늘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도 은행 유동성 위기의 ‘뇌관’이 될 공산이 크다.

대출은 예금 범위 내에서 해주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은행은 이를 외면했다. 예대율(2007년)이 140%에 달했을 정도다. 대출금 잔액이 100이라면 예금잔액은 70이었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부동산 투기열풍에 펌프질을 한 것은 은행’이라는 비판까지 나올까? 이뿐만 아니다. 과도한 대출을 메우기 위해 은행채 등 자본시장 의존도를 확대한 것도 문제다.

저금리의 은행채를 발행해 대출자금을 조달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채 금리가 치솟자 금융비용 대는 데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채 발행잔액은 2006년 말 95조원에서 2008년 11월 말 140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불과 2년 사이 50%가량 증가한 규모다. 1953년, 1961년 두 차례 통화개혁을 이끌었던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렇게 비판했다.

“은행들은 지난 외환위기 때도 정부로부터 15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받았다. 그럼에도 예대마진 영업, 담보대출 등 단기실적 내는 데만 급급했다.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금융파생상품 파는 데 혈안이 됐다. KIKO 문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은행의 건전성은 뒷전이었고, 실적 올리기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은행권의 검은 머니게임이 한국 경제를 벼랑으로 몰아 넣었다는 일침이다.

은행 부실은 단지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신용도와 직결된다. 신용파산스왑(CDS) 프리미엄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가파르게 상승한 이면엔 국내 은행의 낮은 신용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DS 프리미엄은 기업이 파산해 채권 또는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 채무자가 부도 위험을 따로 떼어내 거래하는 것이다.

일종의 부도 보험료라고 이해하면 쉽다. CDS 프리미엄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이 되고, 국가 신용위험의 측정이 가능하다. 굿모닝신한증권 윤영환 연구위원은 지난해 ‘변곡점에 선 회사채 시장 보고서’에서 “은행의 신용이슈가 국가 신용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며 “이 같은 우려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 투자자산에 대한 저평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은행 부실로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면 외화차입 조달비용이 올라간다. 그러면 가계 및 중소기업의 대출금리도 함께 상승하게 마련이다. 은행 부실이 국가 경제는 물론 내 지갑 두께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은행은 지금 두 가지 방법으로 위기탈출을 꾀하고 있다. 지주회사채를 통한 증자, 후순위채 발행 등이다.

지난해 말 4대 시중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 및 지주회사채 규모만 12조3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역시 빚이라면 빚이다. 지주회사가 발행한 사채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후순위채도 부채성 자본이다.

“방짜에도 일정한 비율 있다”

은행은 지금 불만투성이다. BIS비율 높이라면서 거꾸로 대출을 독려하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뭣 하는지 모르겠다”며 목청을 높인다. ‘건전성을 확보하기보단 돈벌이에만 신경 썼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팔색조’를 빗대 말했다. “전통적 상업은행 기능만 했다간 수익을 올릴 수 없다”며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선 팔색조처럼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항변은 옳지 않다. IB분야 진출 앞엔 ‘섣불리’라는 말이, 자산경쟁엔 ‘무차별적’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은행의 원죄는 비율에 있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 비율을 78 대 22로 유지하지 않으면, 방짜(질 좋은 합금)가 퉁짜(쇠)로 전락하듯 예금과 대출 그리고 투자 비율을 적절하게 배분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는 얘기다.

은행은 바로 이것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돈벌이에 급급했다가 돈줄을 스스로 막아버린 원죄 말이다. ‘한번 막힌 돈줄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는 게 자금시장의 통설 아니던가?

980호 (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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