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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 바람에 압박 받는 위안화 

[world]일본 엔화 사상 최고치 근접 … 미국은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력 가중 

정재홍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

글로벌 환율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유럽과 중국은 위안화 절상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엔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6년6개월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중국·일본은 자국의 통화 가치 상승을 꺼리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가 오를 경우 수출 경쟁력이 낮아져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유럽은 자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위안화와 엔화가치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아시아 통화의 가치를 올리려는 미국·유럽의 움직임과 이를 저지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의 이해가 엇갈리며 국제 외환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이번 환율전쟁은 일본 정부가 9월 15일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본격화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2조 엔을 풀어 달러를 사들였다고 한다. 환율 방어를 위해 전면전에 나선 것이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최근의 외환시장 동향은 경제·금융 안정에 악영향을 주고 있어 간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엔화가치는 달러당 83.34엔까지 상승해 1995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그해 4월 18일 기록한 역사적 고점(달러당 80.63엔)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22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엔화 환율이 다시 요동치면 시장 개입은 불가피하다”며 외환시장에 다시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시라카와 마사키 일본은행 총재도 최근 요미우리신문과의 회견에서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증폭은 일본 경기회복의 위험성이 증가함을 의미한다”며 엔화가치 급등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미야오 루조 일본은행 통화정책 담당 이사는 외환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은 물론 21조6000억 엔에 이르는 일본 국채 매입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은행 통화정책회의가 열리는 다음달 4~5일이 행동 개시에 나서는 첫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일본의 강경 대응은 미 중앙은행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9월 21일 국채 매입을 통한 통화량 증가 조치를 발표한 데 자극 받은 것이다. FRB의 발표가 달러 유동성 확대에 따른 엔화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자 외환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미국은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9월 20일 “중국은 위안화 저평가로 무역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11월 서울에서 열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환율 시스템 개혁을 위한 지지세력을 규합하겠다”고 가세했다.

아시아 통화 동반 강세 전망

미 하원 세입위원회는 중국 정부의 위안화 저평가 정책을 수출 보조금으로 간주해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 법안’을 24일 처리한다.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민주·공화 양당 의원 133명이 공동 발의해 제출된 법안이다. 하원 세입위원회가 법안을 통과시키면 이번 주 중 하원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22일 성명에서 “미국 기업 및 근로자들이 좀 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의회가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론 커크 USTR(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산업계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글로벌 서비스 서밋’에서 “중국에 요구하는 바는 규정에 따라 행동하고,우리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에 대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중국의 환율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투자 및 저축 구조가 원인”이라며 “위안화 절상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중국 수출 기업들의 도산이 잇따를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미·중 우호단체들이 마련한 환영 만찬 연설에서는 “미국의 요구대로 위안화가치를 20~40% 올리면 얼마나 많은 중국 수출 기업이 도산할지 알 수 없다”며 “위안화를 급격히 절상할 근거가 없다”고 못 박았다.


중국은 급격한 위안화 절상이 중국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과거 일본이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라 선진국 간 정책 공조를 통해 엔화가치를 급격히 절상시켰다가 경제를 파탄시켰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엔화가치는 플라자 합의 2년 뒤 거의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그 결과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

환율전쟁, 한국경제에 긍정적

전문가들은 이번 환율전쟁으로 달러화는 약세를 이어가고 엔화와 위안화, 원화 등 아시아 통화들의 강세 속도는 좀 더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 이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지금보다 더 큰 폭의 위안화 절상을 유도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시장 개입 자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또 달러화를 시중에 풀고 있어 달러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연준은 21일 정책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현재의 연 0~0.25% 수준에서 동결했다. 또 미국의 경기 회복세와 고용이 둔화되고 있다며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동원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 엔화와 위안화, 원화 강세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또 중국이 달러화 약세를 우려해 외환보유액 다변화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엔화 자산을 매입하고 있어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만으로는 엔화 강세를 꺾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엔화를 사들이고 있어 엔-달러 환율은 85엔 수준에서 보합을 유지하고 원-달러 환율은 1개월 내 115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주요국의 통화 움직임은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더라도 엔화 등 다른 통화의 절상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면 국내 산업의 수출 경쟁력은 나빠지지 않는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엔화 강세는 한국 내 물가 상승을 부추기겠지만 경제성장률과 경상수지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산업은 해외시장에서 주로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엔화 강세는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을 올려 한국 제품의 수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반면 엔화가치 상승이 일본산 중간재의 수입 가격을 올려 국내 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하는 폭은 미미할 것으로 분석됐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올 하반기 달러당 엔화가치가 올 상반기(평균 91.3엔)보다 2.5% 상승할 경우 국내 경제성장률은 0.14%포인트 오르고 경상수지는 4억9000만 달러 개선될 것으로 추정했다. 엔화가치가 5% 오르면 국내 경제성장률은 0.28%포인트 상승하고 경상수지 개선 폭은 9억8000만 달러에 이른다. 산업별로는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자동차·가전·기계·철강 기업들이 엔화 강세의 수혜를 볼 전망이다.

1056호 (201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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