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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차의 변신엔 이유가 있다 

서울 지하철 5~8호선 효율·서비스 개선한 신형 전동차 개발 


▎서울 지하철 5~8호선 효율·서비스 개선한 신형 전동차 개발

“매연도 많이 마시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전동차의 좌우 균형을 맞춰주는 오일 댐퍼를 고칠 때면 전동차 밑 좁은 공간에 들어가 작업했어요. 공간이 좁다 보니 수리 시간도 오래 걸렸죠.”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10여 년간 대차장치 엔지니어로 근무해온 김성명 연구원이 이전에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대차장치는 전동차 차체의 하중을 받치는 핵심 장치로 바퀴와 바퀴를 연결해주는 윤축장치, 차체 하중을 떠받쳐주며 일종의 에어백 역할을 하는 공기 스프링, 오일 댐퍼 등으로 이뤄져 있다. 연구원들은 기존의 전동차 제작회사가 정해놓은 설계방식에 따라 전동차 차체 밑에 들어가 수리해야 했다.

서울시 지하철 5·6·7·8호선 운영 기관인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 전동차 제작회사인 국내 업체 로윈과 손잡고 전동차 ‘SR001’을 제작했다. 이 모델은 부품 선택부터 소프트웨어 설계에 이르까지 협업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김 연구원을 비롯한 대차장치 엔지니어들은 지금보다 넉넉한 공간에서 오일 댐퍼를 수리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12월 28일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도봉 차량기지에서 제1호 전동차 ‘SR001’ 1편성(8량)이 최초로 공개됐다. 총 7편성(56량)의 전동차는 올 3월부터 7호선에 투입될 예정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제작에 참여

제작 비용과 기간도 줄어들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1량당 제작 비용을 16억원에서 10억원으로 줄였다. 협업을 통해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기간을 단축했기 때문이다.

SR001 전동차의 핵심 부품은 99%가 국산이다. 기존 5·6·7·8 호선 전동차 핵심 부품의 90% 이상은 외국산이다. 전동차는 만들어진 지 15년이 넘다 보면 부품에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인데 부품을 교체하고 수리하기가 어려웠다. 완성차 형태로 차량을 납품 받아 운행하다 보니 부품 내역을 자세히 알기 어렵고 부품이 단종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로윈과 함께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를 찾아 나섰다. 박종헌 기술본부장은 “국내 업체는 규모가 작지만 해외 무대에서 인정받았고 기술도 뛰어난 편”이라고 평했다.

로윈을 비롯해 SR001 제작에 참여한 국내 업체는 50여 곳이다. 국내 업체 다원시스가 제작한 인버터는 기존 전동차의 인버터보다 무게는 30% 가볍고, 가격은 40% 싸다. 인버터는 자동차의 엔진 역할을 하는 전동차 핵심 장치다. 박 본부장은 “부품 교체, 수리 등에 드는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며 “이는 결국 시민에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고객 맞춤 서비스 가능해져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소프트웨어 설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승객과 기관사가 이용하기 편리한 전동차를 제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수주업체가 단독으로 전동차를 제작할 때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소프트웨어 설계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소프트웨어는 한 회사의 노하우가 담긴 비밀이지만 이번엔 계약조건 자체가 공동설계였다.


▎SR001 내부 모습.

현재는 기관사 한 명이 2000명의 승객이 탄 전동차를 운행한다. 2분30초마다 방송을 하고, 전동차 문에 끼인 승객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고객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SR001 전동차에선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객실 내 모든 정보가 기관사에게만 전달되지만 앞으론 인터넷이 연결된 서울도시철도공사 사무실 어디에서든 전동차 내부를 볼 수 있다. 부채질하는 승객이 보이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전동차 에어컨을 틀 수 있다.

SR001 제작 과정엔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 100명이 참여했다. 엔지니어들은 경북 김천의 전동차 제작 공장, 경기도 의정부시 도봉 차량기지 등을 돌아다니며 전동차를 제작했다. 인버터 엔지니어로 제작에 참여했던 정도훈 팀장은 “그동안은 남이 만들어준 인버터를 가지고 운영하다 보니 수리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그러나 직접 제작에 참여하며 전동차 성능과 구조를 자세히 알게 됐다”며 “우리 힘으로 제작했으니 수리하기도 더욱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제작 기간이 줄었다. 기존엔 전동차를 계약하는 데만 1~2년이 걸렸다면 이번에는 6개월이 소요됐다.

직원들이 지방 공장에 내려가 1700여 장이 넘는 설계도면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로윈 직원들은 곧바로 제작에 나섰다. 2층에서 도면을 그리면 1층에선 이를 받아 곧바로 제작하는 ‘논스톱’ 시스템이었다. 협력 제작을 하다 보니 공문을 발송하고 결재 받는 과정도 간편해졌다. 일각에선 제작 기간이 줄어 안전성에 신경을 덜 쓴 게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공사 측은 국내 공인 인증기관인 철도기술연구원에서 성능시험 및 제작검사를 받고 유럽 최고 기술 인증기관인 TUV에서 컴퓨터, 인버터 분야를 검증 받아 통과했으니 안전성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동차 운영기관인 서울철도공사가 전동차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위험을 스스로 떠맡는 일이다. 발주를 주고 완성차를 받아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돌리면 된다. 그러나 전동차를 10년 넘게 운영해온 기관이 제작에 참여하면 시민이 한층 편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박종헌 기술본부장은 SR001 제작의 의미를 이같이 밝혔다. 올해 2월 중순 SR001 시승식이 열린다.

■ [전동차 내부 설계 왜 바꿨나]

승객 마주보는 어색함 줄여

SR001은 서울도시철도공사(SMRT)와 Rail의 이니셜을 결합한 공사의 제1호 전동차 브랜드다. 8량 중 2량(셋째와 여섯째 칸)에는 중앙에 좌석을 배치해 승객이 마주 보고 앉아서 생기는 불편이 줄도록 했다. 중앙 좌석 칸에 서서 가는 승객들은 창 측에 설치된 성인 엉덩이 정도 높이의 받침대에 편하게 기댈 수 있다. 승객은 운전실 벽면에 설치된 투명 유리를 통해 객실에서 운전실과 터널을 보고, 각 칸 큰 벽면에 놓인 정보 스크린을 통해선 뉴스, 쇼핑, 게임, 전동차 운행 정보 등을 알 수 있다.

김혜민 기자 hasmin@joongang.co.kr

1072호 (20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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