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아동출판사 예림당 나춘호 회장-나성훈 대표 인터뷰 

아버지는 종이책을 폈고, 아들은 전자책을 켰다 

『Why?』 4000만 부 판매 눈앞에 둔 아버지 나춘호 회장…한국의 월트 디즈니 꿈꾸는 아들 나성훈 대표

▎해여림식물원 카페에서 포즈를 취한 나춘호 회장과 나성훈 대표.

종이책이 힘을 잃는다. 전자책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진다.

태블릿PC의 인기 덕이다. 출판사는 괴롭다. 기존 먹을거리였던 종이책의 실적은 시원치 않다. 전자책 시스템과 콘텐트를 마련하지 못한 출판사도 적지 않다. 종이책의 산증인과 전자책의 전도사가 4월 27일 경기도 여주 해여림식물원에서 마주 앉았다. 아동서적 출판사 예림당 나춘호 회장과 나성훈 대표다. 부자지간인 두 사람은 예림당의 성장 이야기와 함께 종이책·전자책의 미래를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울러 전자책 시장의 새로운 판도를 분석했다.


전날 내린 봄비로 도로는 촉촉했다.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 서울에서 1시간30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 해여림식물원이 있다. 해여림은 ‘해’가 지지 않는 ‘여주의 숲’이라는 뜻이다. 봄비에 젖은 해여림에서 나뭇잎이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이 식물원은 종이책의 산증인 나춘호(69) 예림당 회장이 직접 만들었다. 19만8000㎡(약 6만 평)의 대지에 4000여 종의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이에겐 놀이터, 어른에겐 산림의 향을 준다. 나춘호 회장은 2001년부터 해여림식물원을 조성했다. ‘책 장사를 하던 사람이 이젠 땅 장사를 하느냐’는 오해를 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어린이에게 살아 있는 ‘식물도감(圖鑑·그림이나 사진을 모아 실물 대신 볼 수 있도록 엮은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나 회장에게 해여림식물원은 외도가 아니라 출판의 연장선이었다.

그와 잡은 인터뷰 시각은 4월 27일(수요일) 오후 3시. 첫째 아들 나성훈(41) 예림당 대표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일찍 도착한 기자를 맞은 이는 둘째 아들 나도연(38) 해여림식물원 대표. 그는 “아버지에게도, 형에게도 해여림식물원은 소중한 공간”이라며 반겼다. 2시40분쯤 나성훈 대표가 들어섰다. 동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그는 “동생이 싫어해서 (이곳에) 잘 오지 않는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10여 분 후 화사한 옷에 베이지색 중절모로 멋을 낸 나 회장이 나타났다. 악수를 청하며 건넨 첫마디는 “미안합니다”. 이틀 전인 4월 25일 장염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나 회장은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고 살았는데, 요즘은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이어 걱정스레 말했다. “오늘 사진촬영도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비가 온다고 하던데….”

기자가 TV로 확인했느냐고 물으니 스마트폰을 꺼내 보였다. 날씨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확인했다는 몸짓. 종이책의 산증인이 최신 디지털 휴대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낯설었다. 사실 나 회장을 조금만 알면 낯선 일도 아니다. 1981년 애플의 8비트 PC로 예림당의 전산화 작업을 완료한 이가 나 회장이다. 국내 최초였다. 그는 “기자가 보낸 질의서도 e메일로 받았고, PC와 스마트폰은 누구보다 잘 사용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해여림식물원 안에 있는 펜션 ‘H’에서 진행됐다. 나 회장은 얼마 전까지 여기서 살았다. 그는 “양평으로 이사 갔는데, 아직도 내가 여기 사는 줄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더라”며 빙긋이 웃었다.

해여림식물원을 두고 ‘나 회장이 외도를 한다’는 말이 많았더군요.

나춘호 회장(이하 나춘호) “(크게 웃으며) 절대 아닙니다. 어린이를 위해 살아 있는 식물도감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게 해여림식물원을 조성한 첫째이자 마지막 이유입니다.”


▎청년 시절의 나춘호 회장.

나 회장은 1992년 7월 『어린이 식물도감』을 선보였다. 출판업계 최초였다. 후속 작품으로 1억5000만원을 들여 『초등학교 식물도감』(1992년)을 만들었고, 『동물도감』(1993년), 『곤충·물고기도감』(1994년)을 출간했다. 나 회장은 도감을 “출판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어떤 책이든 참고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도감은 그래서 중요하죠.”

해여림식물원 이야기가 끝날 무렵, 종이책이 곧 인생인 나 회장과 나 대표에게 준비한 책을 선물로 건넸다. 일본의 IT저널리스트 사사키 도시나오(佐佐木俊尙)가 쓴 『전자책의 충격』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전자책이 대세다. 아이패드·킨들처럼 전자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기기가 생겨서다. 책을 좋아하는 젊은이가 줄지 않고 아이패드가 인기를 끌면 전자책 시대가 올 것이다.”

나 회장은 오랫동안 표지를 봤다. 내용이 궁금한지 목차와 큰 제목을 자세히 살폈다. 나 대표도 책장을 유심히 넘겼다. 책만 보면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두 사람. 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책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한다는 건 모험이다. 벌써 읽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미래를 이들보다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먼 길을 달려 두 사람을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책 이야기를 해 볼까요. 1973년 예림당을 창업한 나 회장은 2005년 나 대표가 취임할 때까지 종이책이라는 한 우물만 팠습니다. 종이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나춘호 “종이책이라….”

나 회장은 뜸을 들였다. 인터뷰 내내 그랬다. 쉽게 답하는 스타일이 아닌 듯했다. 생각은 길게, 말은 짧게 했다.

나춘호 “음미할 수 있는 도구죠. (『전자책의 충격』표지를 슬쩍 보더니) 종이책과 전자책은 분명히 다른 느낌이에요. 전자책은 ‘읽으면 내 것이 된다’는 느낌이 종이책보다 덜한 것 같아요.”

나 회장은 ‘책을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바꾼 주인공이다. 예림당을 창업한 1973년 선보인 아동도서 『코스모스 그림책』은 화제만발이었다. 당시 책은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했다. 그림·삽화는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Why?』 시리즈를 잇는 기획물 구상 필요”

아들 “아직은 『Why?』 시리즈로 충분히 견딜 만”


『코스모스 그림책』이 국내 최초의 그림책이죠?

나춘호 “아마 그럴 겁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중학교 미술 선생님에게 삽화를 그려 달라고 했던 건 유명한 일화인데요.

나춘호 “어린이가 잘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동서적이 없었어요. 일본 등 외국 서적을 복사한 게 전부였죠. 어떤 어린이가 책을 읽었겠어요.”

책의 비주얼 시대를 연 건 큰 업적인 듯한데요.

나춘호 “비주얼 시대요? 과대평가예요. 『코스모스 그림책』은 2도(두 가지 색깔) 동화였어요. 단색에 색깔 하나를 더 넣으니까 비주얼이 강조된 것처럼 보였겠죠. 그뿐입니다.”

나 회장은 겸손했다. 출판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춘호의 업적’이라고 평가하는 대목에서도 자세를 낮췄다. 분명한 것은 그가 한국 출판계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어린이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맸고, 행동에 옮겼다. 그중엔 책과 오디오를 결합한 서적도 있었다.

1985년 책과 오디오를 접목한 『이야기 극장』이 출간됐습니다. 책의 내용을 성우가 읽어주는 방식인데요.

나춘호 “1980년대 초 아이들의 놀이는 녹음기를 메고 들로, 산으로 가는 거였어요. 어떻게 하면 녹음기를 책과 연결할까 고민했죠. 아이디어는 우연히 떠올랐어요. 1981년 일본 도쿄에 있는 대형 서점에 들렀는데 묘한 모양의 책이 있더라고요. 32쪽의 얇은 책이었어요. 문득 ‘아! 테이프를 넣은 책을 이런 모양으로 만들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죠. 우여곡절 끝에 사람의 목소리가 녹음된 책이 탄생했죠.”

나성훈 대표(이하 나성훈) “아버지는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책을 만들까 고민했어요.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번뜩이는 아이디어. 트렌드를 좇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나 회장도 그렇게 말했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이었죠. 틈만 나면 신세계백화점과 남대문시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봤어요. 밤낮을 가리지 않았죠. 세상이 보이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나 회장은 불치병이 있다고 했다. “밤에 잠을 잘 못 자요. 그때의 후유증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예림당의 히트작 『왜』와 『Why?』시리즈도 나 회장의 아이디어다. 『왜』와 『Why?』는 국내 최초 아동서적 기획물이다.

1989년 출간된 『왜』 시리즈는 10년 동안 장수하면서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왜』가 씨앗이었다면 『Why?』는 열매였다. 2001년 선보인 『Why?』시리즈는 과학학습만화의 원조다. 초등학생 엄지와 꼼지 등 캐릭터가 벌이는 모험을 중심으로 과학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올 3월 현재 똥·미생물·새·공룡·물·사춘기 편 등 88권이 출간됐고, 3728만 권이 팔렸다. 21세기 들어 1000만 부 이상 팔린 책은 『해리포터』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뿐이다. 모두 2000만 부는 넘지 못했다.

역대 최고 히트 작품인 『Why?』 시리즈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춘호 “기획의 힘입니다. 『Why?』를 만들기 전 수년에 걸쳐 캐릭터의 컨셉트와 줄거리 등을 기획했죠. 작가는 우리가 기획한 내용을 토대로 썼고, 인쇄는 외주를 줬어요. 감각적인 만화·사진기법을 도입한 것도 성공의 원인이라고 봐요.”

바로 이것이 『Why?』시리즈의 저작권 100%가 예림당에 있는 이유다. 『Why?』시리즈는 중국·대만·태국·러시아·프랑스·UAE 등 세계 9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저작권 수출 방식이다. 저작권료만으로 한 해 3억~4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올 6월 이후엔 예림당이 직접 만든 『Why?』를 영어권 국가에 수출할 방침이다. 나성훈 대표는 “저작권 수출보다 규모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 대표에게 묻겠습니다. 예림당을 이끄는 CEO로서 나 회장의 업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시절 CEO였다면 아버지만큼 실적을 올렸을 것 같나요?

나성훈 “천만에요. 절대 못 했을 겁니다. 아버지는 어려운 시절을 몸소 이겨냈어요. 책 판매원 시절 가정방문을 하면서 독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저도 영업사원부터 시작했지만 그 부분에선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나 회장은 어린 시절 가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았다. 15세 때 아버지를 여읜 탓에 그는 학업을 계속할 형편이 못 됐다. 1967년 군에서 제대한 그는 고향(경북 달성군)을 떠나 무작정 상경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신문보급소 총무를 하다가 출판사에서 책 판매를 시작했다. 방문판매원이었다. 당시 판매원 가운덴 질이 나쁜 이가 적지 않았다. 허위 실적으로 수당을 챙긴 후 도망치는 건 다반사. 독자의 할부금을 떼먹는 판매원도 있었다. 그는 달랐다. 피해를 본 독자가 있으면 사재를 툴툴 털어 보상했다. 출판사와 독자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은 그는 월급사장이 됐고, 5년 만에 독립해 예림당을 차렸다.

나 대표는 평사원(1996년)으로 예림당에 입사한 지 10년 만에 대표가 됐다. 그 역시 영업사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 회장과 나 대표의 경영방식은 비슷하다. 직원에게 자율을 준다. 남의 말을 먼저 듣고,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부자(父子)의 공통점은 또 있다. 격변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운명이 같다. 나 회장은 오디오 시대를 겪었고, 나 대표는 디지털(전자책) 시대를 살고 있다. 나 회장이 역경을 뚫었다면 나 대표의 가시밭길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종이책은 갈수록 힘을 잃고 전자책이 득세할 공산이 크다. 미국출판협회 자료를 보면 미국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의 비중은 2007년 0.6%에서 2010년 8.3%로 7.7%포인트 커졌다. 전자책 매출은 같은 기간 13.7배(2007년 3억2000만 달러→2010년 44억 달러)가 됐다. 국내도 전자책의 파고가 밀려든다. 전자책 등장 이후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출판사가 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이 없는 출판사는 3만2568곳으로 전체의 93%에 달했다.

전자책 시대가 열리면서 출판계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있습니다. 대처방안은 무엇일까요.

나춘호 “오디오 서적 『이야기 극장』을 처음 냈을 때 ‘서점에서 팔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카세트테이프가 달린 서적을 두고 ‘책이냐 음반이냐’는 논란도 있었죠. 트렌드를 잘 좇으면 정면돌파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을 봐도 그래요. 필름이 없으면 책을 만들지 못할 줄 알았죠. 지금 어때요? 필름이 필요한가요?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나성훈 “종이책은 살아남을 겁니다. 하지만 출판사로선 종이책에만 기댈 수 없는 시대가 왔어요. 종이책에 의존하는 출판사는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나 대표는 지금 디지털 시대를 정면돌파하고 있다. 전자책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5월 아이패드용 앱을 출시할 예정이다. 온라인 교육사업에도 뛰어들었다. KT 쿡TV에 『Why?』 콘텐트를 독점 공급하고(2009년), IPTV 교육서비스 사업(2009년)에 진출했다. 지난해 SK텔레콤과 스마트 러닝사업(인터넷 문제은행 서비스 스쿨테스트)을 시작했다.

올 3월엔 엔터테인먼트 업체 초록뱀미디어와 미디어 콘텐트 개발·유통과 관련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자회사 예림디지털이 추진하는 SNS게임, 교육용게임도 주목된다. 조만간 일본 닌텐도 3DS게임에 예림당의 『Why?』 콘텐트가 공급된다.

사업 다각화에 전력을 기울이는 듯합니다.

나성훈 “종이책 시대엔 종이책이라는 콘텐트만 팔면 됐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우리가 가진 콘텐트를 공급하고 유통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실적은 괜찮은 것 같아요. 가령 2009년 시작한 『Why?』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이란·브라질·말레이시아·터키 등 9개국에 수출됐어요. 지난해 월트 디즈니와 콘텐트 제휴 관련 독점 계약을 한 것도 성과입니다.”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기초체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초록뱀미디어와 MOU를 맺은 건 위험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나성훈 “그렇지 않아요. 초록뱀미디어에서 만든 드라마 ‘추노’를 예로 들어 볼게요. 초록뱀미디어로선 예림당을 통해 드라마 추노를 책으로 만들어 팔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초록뱀미디어가 가진 동영상 편집기술을 얻을 수 있죠. 윈-윈(win-win)입니다. 혹자는 초록뱀미디어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는 이유로 예림당이 본업을 경시한다고 비판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예림당의 뿌리는 책입니다.”

아버지 “예전엔 책 팔았지만 이젠 콘텐트 팔아야”

아들 “종이책과 전자책은 한 몸 될 가능성 커”


전자책의 실적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옵니다

(※HMC투자증권 김지효 연구원은 “예림당은 올 1월 멀티기능을 갖춘 아이패드용 앱 개발을 완료하고 앱스토어를 통해 판매한다고 밝혔다”면서 “하지만 아이패드용 앱 출시 소식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게 예림당의 주가가 떨어진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나성훈 “지난해 10월 애플 아이패드 국내 출시가 임박하면서 예림당에 대한 기대심리가 주가에 반영됐어요. 제 기억으론 2010년 10월 28일 8070원까지 올랐죠. 지금은 5000원대로 떨어졌는데, 이를 두고 말이 많은 것 같아요. 멀티기능이 탑재된 아이패드용 앱을 왜 예정대로 출시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많았죠. 변수가 있었습니다. 아이패드가 출시된 후 전자책 시장이 달아오르지 않았어요. 예상 밖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날짜를 늦춰 적절한 시기에 내놓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올 5월 『Why?』 전용 앱이 출시될 것이고, 그 후 여러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전자책 시대가 열렸지만 예림당의 기초는 결국 종이책 아닌가요?

나춘호 “기업의 안정성을 위해선 축이 단단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Why?』를 잇는 또 다른 종이책을 선보이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나성훈 “저는 조금 다릅니다. 『Why?』시리즈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만들 수 있는 기획거리가 200종이 넘어요. 예림당이 『Why?』시리즈를 1년에 몇 권 내는지 아십니까? 많아야 30권입니다. 그것도 많이 내는 거죠. 아직은 『Why?』시리즈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대표의 첫 번째 반박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반론을 조용히 들었다.

다른 출판사가 『Why?』와 비슷한 책을 발간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성훈 “각 출판사에서 『Why?』와 같은 표지 컨셉트의 미투 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Why?』시리즈는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보다 경쟁력이 월등할 것입니다. 백광균 편집이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이키를 키운 건 나이스’라고요. 우리에게 『Why?』는 그런 존재입니다.”


▎해여림식물원을 걷고 있는 예림당 3부자 나성훈 대표(왼쪽), 나춘호 회장(가운데), 나도연 대표(오른쪽). 세 사람은 `수십 년 만에 함께 걸어 봤다` 며 감회에 젖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미래는 어떨까요.

나춘호 “전자책 시대가 열린 건 부인할 수 없어요. 종이책은 어쩌면 한계에 직면했을지 모르죠. 수백, 아니 수천 년 동안 종이책의 틀이 변하지 않았잖아요. 물론 고전성 등 매력 때문에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다만 전자책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출판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합니다. 예전엔 책을 팔면 됐지만 이젠 콘텐트를 팔아야 해요. 나 대표가 초록뱀미디어와 MOU를 체결한 건 긍정적으로 봐요.”

아버지 “사업 서두르면 다쳐, 안정적 성장 중요”

아들 “안정만 생각하면 예림당 생존 보장 못해”


나성훈 “저는 전자책의 미래를 1차, 2차로 나눕니다. PDF를 보여주는 1차 전자책은 결국 앱으로 통일될 것으로 봅니다. 지금도 그렇잖아요. 태블릿PC에 떠돌아 다니는 앱이 얼마나 많습니까. 클릭만 하면 책을 볼 수 있잖아요. 제가 주목하는 전자책은 2차입니다. PDF로 만든 1차 전자책에 동영상·소리 등 멀티기능이 포함돼야 진짜 전자책으로 대접 받을 겁니다. 그럼 전자책을 두고 TV냐 영화냐는 논란이 일 수 있겠죠. 아버지 시대에 오디오 책이 그랬듯 말입니다.”

종이책은 어떻게 될까요?


▎예림당 백광균 편집이사
나성훈 “종이책과 전자책이 결국 결합될 것으로 봐요. 종이책에 QR코드(제품의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는 일종의 바코드)를 심는 것처럼 말이죠.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전자책 시대가 활짝 열린 지금, 예림당은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요?

나춘호 “너무 빨리 가면 다칩니다. 안정적으로 갔으면 해요. (아들에게) 자제를 부탁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봐요.”

나성훈 “안정적으로 갔다간 예림당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은 도전해야 할 때죠. 그래야 월트 디즈니 같은 글로벌 미디어콘텐트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 대표가 아버지의 말에 조심스럽게 반론을 냈다. 두 번째 반기였다. 이번엔 나 회장이 반박했다.

나춘호 “예림당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눈을 팔지 않아서입니다. 하고 싶은 걸 한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했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는 공격적으로 도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수단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차근차근 도전하라는 뜻입니다.”

나성훈 “물론입니다. 예림당이 건설업에 진출하겠어요?(웃음)”

아버지는 그제야 안심한 듯 감았던 눈을 뜨며 아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아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몸짓으로 대신했다. 아버지의 말도, 아들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아들은 “배고프다고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굶어 죽는다”고 했다. “그런 때일수록 씨를 뿌려야 또 다른 열매가 영근다”고 했다.

아버지는 “제아무리 급해도 자리를 봐 가며 씨앗을 심으라”고 조언했다. 사과 씨를 배나무 밑에 뿌려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아버지는 종이책 시대를 살았다. 아들은 전자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경영의 지혜는 같았다. 부전자전이다.

■ 예림당의 인재경영

10년 이상 근속자만 20명


예림당의 임직원 140명 중 10년 이상 근속자는 20명이다. 전체의 70%는 5년 차 이상이다. 국내 출판사 중 예림당처럼 장기근속자가 많은 곳은 드물다. 이런 결과는 나춘호 회장과 나성훈 대표의 대를 이은 ‘인재경영’ 덕분이다. 두 사람은 ‘결국은 사람’이라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직원을 중시해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예림당은 그래서 직원의 재량권이 많다. 업무를 자율적으로 하기 때문에 성취감이 크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데 한몫한다. 예림당 인재경영의 성과는 창의력 함양이다.

예림당 백광균 편집이사

■ 애널리스트가 본 예림당

월트 디즈니와 맺은 독점 계약, 신성장동력


아동도서 전문 출판업체 예림당의 주요 도서는 『Why?』 시리즈다. 예림당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예림당의 투자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Why?』 시리즈다. 자체 제작 도서이기 때문에 평균 마진율이 60%에 이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는 전자책 시장 진출의 가시화다. 현재 예림당의 애플리케이션(앱)에선 『Why?』 시리즈를 권당 5.99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앱은 PDF 전자책, 다시 말해 1차 전자책을 말한다). 총 6권이 등록됐고, 2011년 안으로 나머지 50권이 전부 등록될 예정이다. 셋째는 해외수출이다. 무엇보다 미 월트 디즈니와 독점 체결한 판권 계약은 예림당의 성장동력이다. 2009년 4월 디즈니와 판권 계약을 한 예림당은 지난해 6월부터 디즈니 출판물을 판매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턴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한 다양한 출판물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향후 예림당의 외형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예림당의 지난해 매출은 542억원, 영업이익은 146억원이었다.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660억원, 17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솔로몬투자증권 이달미 연구원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1086호 (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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