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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110세 시대 - 수퍼 센테니얼(100세 이상 생존) 시대 미리 준비하라 

‘60세 은퇴, 80세 사망’ 틀에서 벗어나야
노인도 인간적으로 당당해져야 

최성재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석좌교수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ngjoo@joongang.co.kr
의료기술의 발전과 소득 증가로 인간의 수명이 날로 길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10여 년만 지나면 황수(皇壽·110세)잔치가 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100세 이상 사는 ‘수퍼 센테니얼(Super Centennial)’ 시대의 명암을 짚었다. 길어진 노년에 필요한 자산·건강관리 방법을 알아보고 외로운 노년을 극복할 수 있도록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방법도 들어봤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6세. 의학기술의 가파른 발전 속도, 평균 수명의 신장세를 보면 앞으로 10년 이후 수많은 100세 생일잔치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주요 노인성 질환만 극복한다면 100세를 넘어선 110세 시대까지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센테니얼(100세)’를 넘어섰다는 의미로 ‘수퍼 센테니얼’이라고 부른다.

수퍼 센테니얼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유엔은 2009년 ‘세계인구고령화’ 보고서에서 2000년에 평균수명 80세를 넘는 국가가 6개국뿐이었지만 2020년에는 31개국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은 이를 인류의 평균 수명이 새로운 기준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들어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라고 명명했다. 2020년쯤에는 인간이 다들 100세쯤은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최빈사망연령(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연령)이 90세가 될 때를 ‘한국의 100세 시대 진입 시점’으로 정의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현재 최빈사망연령 자료로 추정해볼 때 한국은 2020~2025년에 100세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한다. 10년 정도만 지나면 꿈꾸던 일이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실제 110세 시대를 여는 가장 큰 관건은 의학기술의 발전이다. 암, 심혈관계질환, 당뇨, 뇌질환의 완치가 수명을 늘리는 1차 관문이고, 좀 더 건강한 노후를 위한 관절염 치료 등이 2차 관문이다. 인공장기를 비롯한 재생의학도 110세를 여는데 중요하지만 아직은 인공심장 외 다른 대체 기계 장기가 믿을만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의학계는 줄기세포로 세포를 되살리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세포를 재생해 인간의 장기 기능을 유지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관점이다.

110세 시대가 쉽게 열리긴 어렵다. 현재 65세에서 100세까지 한국인 생존율은 남자 1.8%, 여자 7.5%에 불과하다. 실제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현재 수명 연장의 추세로 볼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2005년에 100세 이상인 한국인은 961명에 불과했으나, 5년 뒤인 2010년에는 1836명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의학이 후퇴하지 않는 한 현재 100세인 사람 다수가 10년 뒤 110세가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미래 장수는 ‘청춘의 회복’

수명을 110세까지 늘리기 위해서는 노화를 막는 수준을 넘어 젊어질 필요가 있다. 한국 노화연구 전문가인 박상철 가천대 이길려암·당뇨연구원장은 최근 의미심장한 연구결과를 냈다. 늙어서 퍼진 세포에 특정 물질을 주입해 봤더니 세포가 탄력을 회복하고 세포분열을 재개한 것이다. 늙은 세포가 다시 젊어졌다는 의미다. 이제까지 세포는 한 번 노화되면 재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장수의 방법은 최대한 노화를 늦추거나 막는 ‘안티 에이징’이 상식이었다. 박 원장 주장대로라면 머지않아 장수는 ‘청춘을 회복’하는 것으로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박 원장은 2~3년 내 임상실험을 거쳐 이 연구결과를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또 다른 의학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유전자 정보 중 ‘노화 유전자’는 없고 ‘장수 유전자’는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의학자들은 세포의 시계 역할을 담당하는 유전자 조각인 텔로미어(telomere· 말단소립)가 짧아지는 것으로 노화가 진행된다고 봤다.

그러나 이것이 노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가 대두하고 있다. 사망은 개별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죽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장기도 모두 같은 나이로 늙지 않는다. 심장의 나이, 간의 나이, 신장의 나이도 각기 다를 수 있는 것처럼 전체적인 인간의 기능이 재생 불가능할 때 사망한다는 이론이다. 대신 주변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는 ‘장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유독가스나 황사 등에서도 비교적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더 장수할 수 있다는 논리다.


늙은 쥐와 젊은 쥐의 복강을 서로 연결한 실험이 있었다. 혈류와 영양소를 두 쥐가 공유하는 것이다. 실험결과 늙은 쥐의 세포와 장기는 활발해지고 젊은 쥐는 반대로 장기의 기능이 떨어졌다.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노화는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고 ‘오랫동안 다양한 환경에 노출된 늙은 세포는 오히려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회복 가능한 것, 적응하는 것이라고 바라보면서 110세 시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면 보편적으로 장수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 기술로는 질병만 잘 피하면 자연스럽게 자연사 할 수 있고, 자연사 하는 연령대는 110세까지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 수명이 110세까지 늘어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수명 연장이 불러올 사회적 변화가 상당히 크지만 이에 대한 준비는 미흡하기 때문이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다. 지난해 정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4명은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가족 사이 불화, 배우자와의 사별, 부족한 재산, 일자리 부족 등이 불행하고 긴 은퇴 이후 생활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21세기에 고령화가 가장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국가로 분류된다. 2010년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11.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14.8%)에 못 미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저출산 현상이 이어진다면 2030년에는 OECD 평균을 넘어선 24.3%, 2050년에는 OECD 평균 25.8%를 훨씬 뛰어넘는 38.2%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40년 후 한국이 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노인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국민 40% “장수가 축복 아니다”

노인인구 증가로 예측되는 고령화 사회의 모습이나 결과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첫째, 고령화가 진행되면 노동인력이 부족해지거나 노동인력 자체가 고령화된다. 둘째, 노동인력 고령화로 노동 생산성이 떨어진다. 셋째,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노인인구에 대한 사회복지 비용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넷째, 퇴직으로 수입이 감소한 노인인구 증가로 저축률이 감소하고 경제성장도 둔화된다. 다섯째, 노인인구 증가로 연금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곧 근로세대의 사회보장 부담을 증가시켜 이들의 사회적 불만과 노인세대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여섯째, 늘어나는 초고령 노인을 위한 건강보험료와 조세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일곱째, 노인세대 부양을 위해 국가가 재정적자를 감수해 장기적으로 국민 부담이 커진다는 것 등이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노인인구가 사회적 자원을 소진시키는 가장 큰 인구집단’이라는 편견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65세 이상 취업자를 무시하고 생산성만을 경제적인 것으로 판단하면서 고령인구를 기피하기 위해 나온 논리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건강한 노인인구가 늘고 노동생산성을 유지하는 은퇴자가 늘어나면 이런 우려가 차츰 잦아든다는 전망이 속속 나온다.

미국 정신의학자 베일런트(Vaillant)는 하버드대학 졸업생을 장기적으로 추적 관찰한 연구보고서에서 80세까지 살아남은 졸업생의 90% 이상이 그 나이가 돼서도 각자의 지적 재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오래된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래된 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차의 수명은 어디까지나 운전습관과 관리 상태에 달렸다는 비유를 들었다. 노인의 두뇌는 사고가 없도록 관리만 잘하면 젊은 사람의 뇌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령 통합의 사회로 패러다임 바꿔야

문제는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한 한국의 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다. 사회학자들은 노인에 대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면 고령화 사회를 지속가능하고 발전가능 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사회’다. 연령 통합의 사회인 것이다.


학계가 제시하는 것은 어차피 고령화를 막을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자는 전략이다. 노인연령 계층의 사회 참여를 보장해 활동적 노화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노년층 사회보장을 확립하면 세대 간 갈등이 줄어든다는 것, 노년층의 지식과 기술을 활용할 기회를 제공해 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주며, 계속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시켜 노년기 생산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110세 시대에는 사회의 모습도 격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110세 시대가 되면 재혼은 물론, 삼혼, 사혼 등의 결혼 형태가 늘어나 가족의 구성과 개념이 상당히 복잡해질 것으로 봤다. 결혼 횟수가 증가하면서 동거하지 않는 사실혼 관계가 늘어난다는 예상도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인구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인제도와 상속제도를 둘러싸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결혼제도를 회피하는 노년층 결혼도 예상할 수 있다. ‘황혼 이혼’보다 ‘황혼 결혼’이 더 흔해질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년을 넘겨서도 활발하게 산업활동을 하려는 인구가 늘어나면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일어날 수 있다. 혹은 정년퇴직을 물리적 연령에 따르지 않고 총 근무연수에 따를 수도 있다. 노동 가능 연령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면 은퇴 이후 새 로운 직업을 찾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110세 시대가 현실화 되기까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한국의 제도와 시스템은 여전히 ‘60세 은퇴, 80세 사망’에 머물러 있다. 당장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연금, 복지, 보건, 국가재정 등이다. 2차적으로는 교육, 취업, 정년제도, 개인의 재테크와 인생 플랜도 다시 짜야 한다.

박상철 원장은 “95세 이상 인구가 3만 명을 넘어서면 장수가 보편화 되는데, 이때는 나이 차이가 별 의미 없어질 것”이라며 “110세 시대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에 대한 관점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박 원장은 “노인이 못할 것이라고 하는 편견, 스스로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고령자가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스스로 역할을 찾아나서는 것이 절실하다”며 “건강한 노인이 인간적으로 당당해지면 고령화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고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선시티는 55세 이상 은퇴자 2만6000여 가구가 사는 시니어 전용 도시다. 많은 사람은 이 도시의 복지 시설과 주민의 기부 금액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연중 320일 쬘 수 있는 햇볕이나 도시 내 9개에 달하는 골프시설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취미 동아리 단위로 시 곳곳에서 벌이는 자원봉사 활동에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스스로 사회에 쓸모 있는 인간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그런 나라다.

1134호 (201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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