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폴·포숑도 망한 중국서 한국 빵 판다 

기름진 음식 즐기는 중국선 빵에 고기 많이 넣어…인도네시아에선 한국식 단팥빵 인기 

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한국이 원조가 아닌 식료품도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김치나 불고기, 비빔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빵을 해외에서 팔며 ‘빵 한류’를 만들고 있는 기업이 있다. 국내 제과제빵업계 1위인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9월 27일 중국 베이징 난잔에서 100호점을 열었다. 2004년 중국 상하이에 1호점을 개설하면서 처음 해외에 진출한 지 8년 만의 일이다. 이 회사는 현재 중국에 100개, 미국에 21개의 파리바게뜨 직영매장을 열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에도 올해 매장을 개설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2015년까지 1000개, 2020년까지 3000개의 해외 매장을 연다는 목표”라며 “중국과 미국에 더해 동남아와 중동, 남미를 잇는 SPC 글로벌 벨트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2위인 CJ푸드빌의 뚜레쥬르는 동남아에서 선전하고 있다.


베트남 23곳, 필리핀 3곳, 인도네시아 5곳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에도 진출했다. 2005년 진출한 중국에서는 1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인테리어를 변경하는 등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벌인 결과 매출이 전년비 30% 증가했다. 미국에도 18곳이 있다. 뚜레쥬르는 “연내 전 세계에 20곳 이상을 추가 출점하고 2017년 세계 1위 브랜드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부터 미국까지 두루 진출

이들은 치밀한 전략으로 코리아 빵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우선 현지화다. 파리바게뜨는 선진국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현지인 입맛에 맞는 밀가루를 써야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걸로 봤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바게트를 만들 때 자국에서 생산된 밀가루만 쓰듯 미국에서는 북미산 밀가루만을 써야 통한다는 것이다. 그 나라 입맛에 맞는 원료로 ‘맛의 친근감’을 유발하는 전략이다. SPC그룹은 이를 위해 국내에 100여명 규모의 제빵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70~80% 인력은 파리바게뜨와 파리크라상 등의 해외 진출용 빵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해외 기술자를 초빙해 고급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SPC그룹 식품기술연구소장인 손병근 상무는 “빵에서는 우리가 유럽보다 후발주자이지만 그들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빵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육송빵’이라는 특유의 빵으로 현지화를 이뤘다. 파리바게뜨 홍보팀 송기우 과장은 “중국인들은 기름지고 배부른음식을 좋아한다”며 “특히 고기를 넣은 빵을 좋아해 빵 위에 다진 고기를 얹어서 만든 육송빵으로 중국인의 입맛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독특한 식습관과 음식 취향으로 해외 브랜드들이 성공하기 힘든 시장으로 꼽힌다. 프랑스의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인 ‘폴 ’과 ‘포숑’도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가 텃새를 이기지 못해 수 년 만에 철수했다. 국내 업체들은 철저한 현지화로 이런 텃새를 극복한 것이다. 동남아에서도 맛의 현지화가 활발하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인 반미(Banh mi)가 인기다.

다음으로 한국식 맛으로 승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식 단팥빵이 인기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대부분이 술과 담배를 금하는 이슬람 종교를 믿기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 단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뚜레쥬르는 이 점을 감안해 달콤한 단팥빵을 현지 전략상품으로 활성화했다. 레시피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전까지 인도네시아에서는 팥을 주요 메뉴로 사용한 빵 종류가 없었고 빵에 앙금을 넣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뚜레쥬르 관계자는 “빵 위에 올라가는 토핑으로 맛을 내고 토핑을 화려하게 보여주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도 “다소 투박해 보이는 한국식 단팥빵이 겉보기와 다르게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에서는 한국식 고로케도 인기 품목이다.

셋째 비결은 서비스다. 뚜레쥬르는 베트남에서 매장 측이 오토바이 대리주차를 무료로 해주는 등의 서비스로 다가선다.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널리 이용되지만 대개는 정해진 주차장에 유료로 주차해야 한다. 뚜레쥬르 홍보팀 이화선 과장은 최근 출장을 갔다가 한 베트남인 손님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 현지 매장에 갔는데 거의 난생 처음 환대를 받으면서 빵을 고를 수 있었다는 거였다.

일본에서 탤런트 배용준씨가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친절한 모습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켰듯 한국 빵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이화선 과장은 “베트남은 공산국가라 평등의식이 강해 공급자 중심의 문화가 만연했다”며 “초창기 진출 때 현지 직원들한테 우리식의 친절한 고객응대와 예절을 교육했더니 10명 중 8명은 도망가 버렸다”고 말했다. ‘왜 우리가 고생해가며 일하면서 손님들한테 일일이 인사하고 친절하게 굴어야 하느냐’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빵집에 왜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베트남 정부는 처음에 베이커리 카페 형태 매장의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 과장은 “지금은 현지 사람들도 적응돼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고 정부나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며 “친절한 서비스로 한국 빵의 진짜 맛을 알리는 데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철한 서비스, 위생관리는 기본

그런가 하면 파리바게뜨는 중국 진출 초기에 프랑스 정통 브랜드인 줄 아는 소비자들의 착각에 시달리는 등 웃지 못 할 일도 겪어야 했다. 한국의 빵 브랜드가 생소했고 파리라는 지명이 붙어서다. 뚜레쥬르의 베트남 사례처럼 초창기 현지인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공을 들여야 했다. 진출 초기 국내에서처럼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남은 제품을 폐기할 것을 교육하자 현지 직원들은 멍하니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다른 중국의 업체들은 남은 제품도 며칠씩 두고 판매하는 게 관행이었던 것이다. 주재원이 직접 폐기 봉지에 폐기하는 시범을 보이자 비로소 직원들이 이를 따라 했다. 이후 종종 “버리는 당일 제품을 할인해서 팔라”는 고객 문의가 들어왔지만 원칙을 고수하자 소비자들의 신뢰감도 높아졌다.

한 제빵 전문가는 아직 한국의 빵이 세계에서 ‘갈 길이 멀다’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 또한 크다고 말한다. 우리 빵으로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그곳에서 사랑 받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손병근 소장은 “나라에 따라 입맛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위생적인 음식에 대한 애호는 만국공통어”라면서 “조직적으로 규격화해 위생적인 빵을 만든다는 마음을 갖고, 이를 널리 알리는 데 나설 때 세계인들도 우리 빵에 마음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1159호 (2012.10.2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