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중고라고 남 눈치 보는 건 옛말 

각광 받는 중고 매장 

조득진 기자
중고차 시장 1998년형 마티즈 인기 … 소셜커머스에서 ‘리퍼브’ 제품 잘 팔려



중고차 시장에서 1998년식 경차 마티즈가 인기다. 중고차 전문기업 SK엔카가 올해 1~2월 자사 웹사이트 거래내역을 통해 매물 등록부터 판매까지의 기간을 조사한 결과 1998년식 마티즈는 매물로 나온지 약 17.3일 만에 팔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중 가장 빨리 팔린 차종 3위였다. 10위권 내 다른 차량들은 대부분 최근 3년 내에 출시된 차종이었다. 2000년 이전 차량으로는 마티즈가 유일했다.

이 모델은 최초 국산 경차 모델 티코가 단종된 직후 나온 것으로 ‘1세대 마티즈’로 불린다. 현재 이 차의 시세는 수동변속기 모델은 110만원, 자동변속기 모델은 150만원 안팎이다.


SK엔카 인터넷사업본부 박홍규 본부장은 “최근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본인의 구입 목적에 따라 차량을 선택하고 가격뿐 아니라 유지비·세금 등도 함께 고려해 실속을 챙기는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운전연습용 첫 차로 1년간 사용한 뒤 되파는 소비자가 많아 공급과 수요가 계속 발생한다”고 말했다. 중고 시장에서도 가치소비가 주류다.

‘엔트리카는 중고차로’ 인식 확산

최단기에 팔리는 차를 봐도 최근 가치소비 트렌드가 읽힌다. 1위는 2012년식 스포티지R이었다. 등록 후 판매까지 평균 14.4일이 걸렸다. 2010·2011년식 기아 쏘렌토R도 순위에 올랐다. 지난 2~3년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다.

박 본부장의 말이다. “엔트리카(생애 첫 차) 구입자는 대체로 사회 초년생으로, 신차 구입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중고차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가격이나 용도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하면 부담은 줄이고 만족은 높일 수 있다. 최근 인기가 높은 SUV도 중고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경기 불황에 중고시장이 날로 커졌다. 특히 최근엔 명품 중고 시장의 확장세가 눈에 띈다. 서울 압구정동과 명동 일대에는 중고 명품가게가 속속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유행이 다했거나 매년 출시되는 인기 명품백과 시계 등을 정가의 50~60%에 구입할 수 있다. 고객이 명품을 되팔 경우엔 구입가의 20~45% 정도를 받는다. 이 중에는 가격표도 떼지 않고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제품도 있다. 선물로 받았으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중고 명품시장에 나온 제품도 꽤 있다.

4월 초 서울 명동의 중고 럭셔리 매장 고이비토에서 만난 이경화씨(27)는 핸드백을 고르는 중이었다. 그는 “주변에서도 새 제품만 고집하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며 “인기 있는 제품을 사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고 되팔 수도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명품 시장에서 중고는 낡은 것이 아닌 합리적인 소비로 인식되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G마켓이 지난 한 해 동안 중고 해외 명품 매출을 조사한 결과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여성 의류와 남성 의류가 각각 26%, 70% 늘었고, 가방·핸드백·지갑류는 39% 증가했다. 액세서리도 배 이상(129%) 매출이 늘었으며 신발과 잡화 역시 96% 증가했다.

옥션에서도 중고 명품 매출이 지난해 50% 이상 증가했다. 옥션 내 중고장터 베스트 판매량 순위에는 버버리·루이비통 등 유명 명품가방과 머플러·시계 등 잡화 제품들이 30% 이상 등록돼 있다. 명품 유아 중고제품 판매량도 같은 기간 전년 대비 25% 이상 증가했다.

속옷도 중고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G마켓의 지난해 전년 대비 중고 속옷 판매는 24% 늘어났다. 속옷은 구매했다가 반품을 못한 제품이 중고 시장에 흘러나온다. 네이버 중고 상품 판매 카페인 ‘중고나라’의 회원 수는 1020만 명에 달한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중고 가구 전문 대형 매장 4곳을 운영하는 리마켓엔 주말이면 매장 당 손님이 200명씩 몰린다.

이유영 G마켓 패션실 팀장은 “장기 불황으로 쓰던 명품을 팔려는 이들이 많아진데다 중고 제품 구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달라지면서 해외 명품의 중고 거래가 활성화됐다”며 “과거에는 주로 컴퓨터 등 전자제품 위주로 중고제품 수요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의류나 잡화·가구·유아용품으로 범위가 넓어져 다양한 영역에서 중고 거래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가전제품이나 의류 등은 최근 신제품 출시 속도가 빨라지면서 제품 교체 주기가 짧아진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불황으로 중고 제품에 대한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중고 시장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감정 시스템·AS로 중고 제품 신뢰도 높여

지난해 국내 럭셔리 브랜드 시장의 매출 규모는 5조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중고 시장은 약 1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2005년 이전만 해도 진위 여부와 상태를 감정해 줄 곳이 마땅치 않아 중고 명품시장은 성장하지 못했다. 이후 전문 감정 시스템을 갖춘 중고 전담업체들이 등장하면서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해외에서 직접 제품을 매입하고 진품이 아닐 경우 판매가 이상을 보상해주는 제도를 운영한다. 일부 업체는 애프터서비스(AS) 비용을 지원해주는 등 명품 매출 확대에 나섰다.

최근엔 리퍼브 제품에 대한 관심도 높다. 리퍼브는 ‘새로 꾸민다’는 의미의 ‘리퍼비시(Refurbish)’를 줄인 말로 유통 업계에선 공장에서 출고될 때 흠이 있거나 반품된 제품, 전시상품 등을 다시 손질해 싼 값에 되파는 제품을 뜻한다. 주로 가전제품 가운데 신품과 중고의 중간 제품 정도로 인식된다.

소셜커머스 티켓몬스터의 리퍼브 제품 매출은 지난해 1월 690만원에 불과했지만 10월에는 3억1900만 원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해 7월에 판매한 삼성 노트북 리퍼브 제품은 정가 140만원짜리를 90만원에 내놓자 530대 물량이 순식간에 팔리며 2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린 리퍼브 상품들이 불황의 여파로 날개 돋친 듯 팔린다”며 “새 상품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AS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알뜰구매를 원하는 소비자 사이에서 리퍼브 제품 인지도는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1183호 (2013.04.1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