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Food - 폭염 이기고 기(氣) 살려주는 ‘탕·탕·탕’ 

여름 보양식 집중 분석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열(熱) 속성 지닌 삼계·추어·보신탕은 이열치열 음식 … 동물·식물성 식재료의 조화

▎1. 어죽 2. 복숭아 화채 3. 민어매운탕



음력 6∼7월은 한여름이다. 유두(流頭)·삼복(三伏)·칠석(七夕)·백중(百中)이 이어진다. 특히 음력 6월은 홍염(烘炎)의 달이다. 화톳불이 이글거리는 듯한 더위란 뜻이다. 삼복(三伏)에는 불꽃더위와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찾아온다. 음력 6월15일인 유두(7월22일)에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해 조상에게 올리는 풍습이 유두천신(薦新)이다. 유두 무렵에 제철을 맞는 참외와 수박은 갈증과 피로 해소제다.

폭염이 절정을 치닫는 초복·중복·말복을 통틀어 삼복이라 한다. 삼복은 양기가 성(盛)한 날이다. 조선 선조때의 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엔 ‘복날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 기술돼 있다. 우리 선조는 삼복을 더위에 지쳐 허(虛)해진 몸을 보(補)하는 날로 여겼다. 이런 관습은 지금도 전해져 복날이면 음식점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한방에선 ‘더위 먹는 것’을 서병(暑病)·주하병(注夏病)이라고 부른다. 서병 예방에 효과적인 것이 보양 음식이다. 여름 보양식이라고 하면 삼계탕·추어탕·보신탕 등 ‘탕탕탕’이 우선 꼽힌다. 세 음식은 열(熱)의 속성을 지닌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음식이며 동물성과 식물성 식재료가 잘 조화돼 영양이 골고루 든 음식이란 것이 공통점이다.

삼계탕·임자수탕

삼계탕은 외국에서도 꽤 알려진 음식이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소설에서 한국 최고의 요리라고 예찬했다.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 머우는 삼계탕을 ‘진생(인삼) 치킨 수프’라 부른다. 닭고기(영계)에 인삼·황기·대추·마늘 등을 넣어 푹 고은 뒤 베 보자기에 싼 음식이다. 예부터 여름철 성약(聖藥)으로 통한다. 복날에 더위를 이기기 위해 즐겼는데 이때 먹으면 땀이 덜 나고 기운이 솟는 느낌이 들어서다.

주재료는 ‘환상의 커플’인 닭고기와 인삼이다. 닭고기는 맛이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되며 쇠고기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더위에 지친 심신을 보양해준다. 쇠고기에 비해 불포화 지방(혈관 건강에 이로운 지방)의 비율이 높은 것도 돋보인다. 게다가 여름이 닭고기 철이다.

닭고기는 삼계탕 외에도 역시 복날 음식인 닭죽·임자수탕에도 들어간다. 인삼은 원기를 회복시켜 주며 피로·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능을 지닌다. 성기능도 강화한다. 약효 성분은 사포닌(진세노사이드)이다. 삼계탕엔 대개 백삼(수삼의 껍질을 벗겨 말린 것)이 들어가나 수삼(밭에서 캐낸 인삼)을 넣어도 괜찮다. 부재료로 각기 약성을 지닌 황기·마늘·쌀·밤대추 등이 듬뿍 들어간다.

삼계탕은 음식 궁합 면에서도 훌륭한 먹거리다. 동물성과 식물성 식품이 함께 들어가 서로 약점을 보완한다. 닭고기에 인삼을 넣으면 누린내가 싹 가신다. 복날에 삼계탕 한 사발 먹으면 무더위에도 잘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닭고기·인삼·황기가 모두 성질이 따뜻해서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겐 삼계탕을 권하기 힘들다.

개성의 양반들은 복날, 이열치열의 삼계탕 대신 시원한 임자수탕(荏子水湯)을 즐겨 먹었다. 이 음식은 흰 참깨(임자)와 영계를 재료로 해서 만든 냉 깻국탕이다. 푹 삶아서 기름을 걷어낸 닭고기를 사용해서 맛이 느끼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흰깨 대신 검은 깨, 닭고기 대신 오리고기를 넣기도 한다. 다만 평소 몸이 차거나 설사가 잦은 사람에겐 권장하진 않는다.

추어탕

추어탕은 본디 가을 음식이다. 그러나 주재료인 미꾸라지에 단백질이 풍부하므로 여름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추어탕은 여름에 찬 음식·음료를 먹어 냉해진 배를 따뜻하게 해준다. 냉방병으로 컨디션이 떨어진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여름 내내 더위에 시달려 약해진 원기도 되살려준다. 소화가 잘 돼 위에도 부담이 없다. 소화력이 떨어진 위장질환 환자나 노인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병치래 뒤 회복기나 수술 전후 기력 회복에도 그만이다.

여성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젊은 여성에게 흔한 빈혈과 아침에 얼굴이 붓는 부종 예방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비타민 A, 칼슘 흡수를 도와 뼈 건강 유지를 돕는 비타민 D도 풍부하다. 비타민 D는 햇볕을 쬐면 몸 안에서 합성되는 ‘선 샤인 비타민’이다. 피부가 망가질까봐 여름에 태양 앞에서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젊은 여성에서 결핍되기 쉽다.

추어탕은 멸치, 마른 새우와 함께 소중한 칼슘 공급 식품이다. 미꾸라지의 뼈까지 먹기 때문이다. 동물성(미꾸라지나 미꾸리)과 식물성 식재료(파·고사리·배추·우거지)가 함께 들어가 한 그릇만 먹어도 영양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다.

추어탕의 웰빙 효과는 옛 문헌에도 언급돼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엔 ‘추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 고종 때의 명의 황필수의 『방약합편』엔 ‘기(氣)를 더하고 주독(酒毒)을 풀어주며 소갈증(消渴症, 당뇨병을 가리킴)을 다스리고 위를 따뜻하게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추어탕은 서울과 영남 지역의 조리법이 다르다. 미꾸라지가 통째로 들어 있으면 서울, 미꾸라지 원형을 찾을 수 없으면 영남 추어탕이다. 추어탕의 재료로 미꾸라지 대신 미꾸리를 넣기도 한다. 생선을 어지간히 안다는 사람도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생김새가 약간 달라 미꾸리는 별명이 ‘동글이’, 미꾸라지는 ‘납작이’다.

맛은 미꾸리가 낫지만 미꾸라지가 더 빨리 자라 크기가 크며 사육하기 쉽다. 식당에서 먹는 추어탕은 대부분 미꾸라지 탕이다. 생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추어탕에 넣는 향신료는 산초가루·호박순·후춧가루·고춧가루 등이다. 이중 가장 효과가 뛰어난 것은 산초가루다. 매콤하고 상쾌한 향이 나는 산초는 몸의 습기를 제거한다.

민어 매운탕

민어 매운탕은 서울 양반의 복날 음식이다. 복날이 제철인 민어를 손질해 토막 내고 애호박·파·마늘·생강으로 양념한 뒤 고추장으로 간을 해서 얼큰하게 끓인 탕이다. 복더위에 ‘민어 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엔 ‘민어는 입과 비늘이 크며 맛이 달다. 익히거나 회로 먹는다’고 쓰여 있다.

한방에선 민어를 개위하고 하방광수 한다고 했다. 개위(開胃)는 식욕을 북돋아준다, 하방광수는 배뇨를 돕는다는 뜻이다. 이 생선은 살이 후해서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소화가 잘 된다. 어린이·노인의 보양식이나 큰 병을 치른 환자의 병후 회복 식으로 권할 만하다.

어죽

생선을 고아서 발라낸 살과 곤 국물에 쌀을 넣어 끓인 어죽(魚粥)도 훌륭한 여름 보양식이다. 조선 말기의 요리서인 『시의전서』엔 ‘제주도의 옥돔죽·게죽·전복죽, 강원도의 담치죽(담치, 섭조개), 함경도의 섭죽(섭조개죽), 여수의 홍합죽’ 등이 소개돼 있다. 향토 음식이면서 더위에 지치기 쉬운 여름에 입맛을 되살려주는 착한 먹거리다. 어죽은 다음 여섯 단계를 거치면 완성된다.

①쌀을 깨끗이 씻어 불린 뒤 건져 놓는다. ②생선에 물을 넉넉하게 부은 뒤 푹 고아 국물을 만든다. ③국물은 체에 밭치고 머리·뼈·가시를 골라낸 뒤 살을 살살 으깨 놓는다. ④국물을 생선살과 함께 냄비에 부은 뒤 불린 쌀을 넣고 끓인다. ⑤거의 꿇으면 소금, 후추, 다진 마늘 등 향신료로 삼삼하게 맛을 낸다. ⑥다시 뭉근한 불에 끓이다가 쌀알이 알맞게 퍼졌을 때 불에서 내린다. 어죽도 동물성과 식물성 식재료가 함께 들어간 균형식이다. 반(半) 유동식이어서 환자·노인·아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복숭아화채·수박화채

음력 7월7일 칠석(8월13일)은 견우·직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날 저녁엔 하늘을 보면서 동쪽의 견우성과 서쪽의 직녀성이 까치·까마귀가 놓은 은하수(오작교)에서 만나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상상해도 좋을 듯하다. 아직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늦더위를 우리 조상은 복숭아화채·수박화채를 즐기면서 이겨냈다.

과일 화채는 땀으로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고 비타민·미네랄을 보충하는데 효과적이다. 만들기도 쉽다. 수박화채는 씨를 뺀 과육을 한입 크기로 잘라낸 뒤 설탕을 뿌리면 완성 된다.

복숭아화채는 은행잎 모양으로 얇게 썬 뒤 꿀에 재운 복숭아(껍질 벗긴 것)를 설탕물이나 꿀물에 넣은 것이다. 음식의 멋을 중시한 우리 선조들은 화채 위에 실백을 띄워 드셨다.

밀국수·밀전병 등 밀을 원료로 한 음식도 칠석 절식이다. 과거엔 농가에서 쌀·보리가 거의 동 날 시기여서 대신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써서 음식을 장만했다. 묽은 밀가루 반죽에 곱게 채 썬 호박을 넣고 기름에 지진 것이 밀전병이다. 궁중에선 정월에 남겨둔 떡을 다시 불려서 떡국을 끓여 먹었다. 겨울 음식을 여름에 미리 먹어 더위를 이겨낸다는 심산이었다.




1196호 (2013.07.1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