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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 서늘한 그늘에 풀냄새 가득 

무더위 날리는 시원한 트레킹 코스 4선 

글·사진 김영주 일간스포츠 기자
삼척 덕풍계곡, 울릉도 내수전, 제천 능강계곡, 가평 연인산

▎강원 삼척 덕풍계곡에는 ‘용소’가 곳곳에 있다.



한여름 트레킹은 보약이다. 셔츠가 적당히 젖을 만큼 걷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땡볕은 부담스럽다. 서늘한 그늘과 풀냄새가 가득한 시원한 트레킹 길을 소개한다.

삼척 덕풍계곡 매니어 유혹하는 중상급 코스

강원 삼척 덕풍계곡은 10여 년 전에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일부 트레킹 동호회를 중심으로 매니어만 다니는 길이었다. 매니어들은 강원도 내륙 삼척으로 들어온 다음, 험난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경북 울진 응봉산(999m) 정상을 찍고, 동쪽으로 하산한다. 울진 방향으로 내려오면 국내 온천 중 다섯 손가락에 안에 꼽히는 울진 덕구온천이 나온다. 약 20km의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다 헤매다 계곡에서 내뿜는 온천을 만나면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기분이다.

요즘 덕풍계곡은 매주 전세버스가 트레커를 실어 나르는 유명 코스가 됐다. 피서철이면 가족 물놀이하기 좋은 장소로 알려질 정도다. 그러나 계곡 입구에서 시작하는 트레킹은 여전히 쉽지 않다. 굳이 난이도를 따지자면 중상 이상이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적은 드물어 호젓하다. 무엇보다 울창한 삼림과 산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물길이 있어 서늘하다. 또 힘들면 어디서든지 신발을 벗고 노닐다가 들어온 길로 돌아내려 갈 수가 있다.

음식점을 비롯한 위락 시설이 있는 풍곡리에서 한참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야 비로소 제1용소폭포를 만난다. 용소(龍沼)는 말 그대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 거대한 물기둥이 쏟아져 내리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광경을 만나기까지는 절벽 사이 협곡을 통과하고, 바위와 징검다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장마 때나 큰물이 질 때는 위험하기 때문에 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며, 갑자가 소나기가 내릴 때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1용소에서 제2용소까지는 앞서 왔던 구간의 반복이다. 다만 물길 위로 곳곳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발을 헛디딜 위험은 덜한 편이다. 거대한 절벽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자갈밭이나 모래밭이 있다. 마을에서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3시간. 가족 단위 트레킹이라면 이 정도가 적당하다.

이 계곡의 세 번째 폭포인 제3용소폭포까지는 들어온 길의 반복이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도는 ‘S’자 형 길이다. 더러는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이나 서아시아의 적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온통 붉은빛의 협곡을 통과할 때도 있다.

물길이 가늘어지면 응봉산 정상이 가까웠다는 의미다. 응봉산을 넘어 덕구온천으로 내려오는 길은 약 20km에 달한다. 평지가 아니기 때문에 하루에 소화하기에는 힘든 코스다. 만약 종주를 계획한다면 해가 뜨자마자 길을 나서야만 하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배낭 안의 비상식량도 충분히 준비하는 게 좋다. 트레킹 계획을 반대로 잡아 덕구온천에서 시작해 응봉산을 넘어 덕풍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이 난이도는 덜 한 편이다.

이곳에 대중교통으로 가긴 쉽지 않다. 종주를 해서 산을 넘어간다면 다시 차를 찾으러 와야 하기 때문에 이 경우 끌고 간 차가 애물이 된다. 기왕이면 팀을 꾸려 자동차 2대로 나눠가는 게 좋다. 삼척과 울진, 산행 들머리에 각각 차를 세워두면 자연스럽게 교통 문제가 해결된다. 여름에는 트레킹 도중 갑작스런 폭우를 만날 수도 있으므로 혼자는 위험하다.


▎울릉도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시원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장마 때 걸으면 낭만적이다.
울릉도 내수전-섬목 사람 때가 묻지 않은 고샅길

울릉도 동쪽 도동항에서 시작한다. 울릉도의 관문인 저 동항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섬의 어업 기지인 도동항이다. 근해에서 조업하는 크고 작은 배의 안식처다.

트레킹 코스는 도동에서 시작해 내수전 숲으로 접어든 다음, 이 섬의 가장 깊숙한 곳인 섬목항에 이른다. 약 10km가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코스, 한나절이면 왕복할 수 있다.

울릉도는 저동항을 기점으로 시계방향으로 일주도로가 나 있는데, 유일하게 내수전~섬목 구간만 찻길이 없다. 그러니까 울릉도에서도 사람의 때가 가장 묻지 않은 길을 두 발로 걷는 트레킹인 셈이다.

내수전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는 독특하다. 울릉도 개척 당시에 김내수라는 사람이 이 지역에서 화전(火田)을 일구고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지라는 뜻일 게다.

예전에는 종이를 만드는 닥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자전포가 불렸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울릉도의 바닷가는 거칠어 맨발로 돌아다니기에 부담스러운데, 그나마 이곳이 가장 온화한 곳이다. 둥글둥글한 돌과 자갈이 많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함이 밀려온다. 울릉도 중산간 지역에 걸쳐 가장 많이 분포하는 섬고로쇠를 비롯해 동백나무 등이 무성한 잎으로 하늘을 가리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시원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여름에는 촉촉이 젖은 나뭇잎과 촉촉이 젖은 흙냄새가 상쾌하다. 특히 장마 때 걸으면 낭만적이다. 숲 나무 풀이 비에 흠뻑 젖어 있을 때 오히려 걷기에 좋다. 사람 한 두 사람 다니면 딱 좋을 정도의 ‘고샅길(시골 마을의 좁은 길)’이다.

울릉도 내에서도 오지로 통하는 북쪽 섬목 마을 사람들이 도동항으로 나올 때 걸어 나오는 길이기도 하다. 길은 산비탈에 칼질을 하듯 나 있는데, 그래서 웬만한 비에도 물은 금방 해안가로 스며들어간다. 큰 빗방울이 아니라면 우산이나 고어텍스 소재 재킷 없이 걸어도 좋다. 머리 위로 솟은 큰 나무의 잎이 빗방울이 머리 위로 바로 떨어주는 것을 막아준다. 머리를 때리는 작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이 한없이 상쾌한 곳이다. 물론 많은 비가 왔을 때 입산은 위험하다.

울창한 숲을 30분 정도 들어가면 정매화곡 쉼터가 있다. 정매화곡 역시 사람 이름에서 유래했다. 예전 이곳에서 큰물이 졌을 때 정매화라는 사람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했다고 한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조금만 더 걸으면 와달리. 해안가로 내려가는 오솔길 들머리가 나온다. 여기서 바닷가까지 1㎞ 내리막길은 최근에 열렸다.

와달리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다. 집터만 남아 있어 호젓하다. 더구나 와달리 주변에는 소나무·섬고로쇠·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운치가 있다. 길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면 거대한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곳은 예전 군부대 초소가 있었던 자리. 현재 콘크리트 초소는 비어 있다. 거대한 폭포 아래서 시원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가는 길은 간단하다. 내수전일출전망대를 조금 지나면 포장도로가 끝이 난다. 여기서부터 트레킹 시작이다. 도동항에서 택시를 타면 이 곳까지 15분이면 당도한다.




▎얼음골은 굵직한 돌무더기가 산을 이루는 너덜지대 끝에 있다.
제천 능강계곡 얼음골 연중 찬 기운 흐르는 자드락길

충북 제천시는 청풍호 주변 걷기 좋은 오솔길에 자드락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자드락은 비탈에 난 작은 길이라는 뜻으로 모두 7개 코스가 있다. 이 중 얼음골 가는 길은 3코스로 지정돼 있다. 길은 청풍호를 굽어보는 명산, 금수산(1015m) 산중턱에서 시작돼 호수로 빠져드는 6km의 능강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얼음골은 예로부터 한양지(寒陽地)로 불렸을 정도로 유명한 냉풍 지역이다. 동쪽에서 충주호를 호위하는 금수산(1015m) 중턱에 자리해 연중 차가운 기운이 흐른다. 남북으로 산봉우리가 많아 여름에도 햇볕이 드는 시간이 적고, 겨울에 생긴 얼음이 쉬 녹지 않는 곳이다.

전국에 얼음골이라고 붙은 곳은 여러 곳 있다. 모두 한여름이면 피서객들의 엔터테인먼트 장소가 된다. 제천 얼음골 또한 그렇다.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한 여름의 신비 금수산 얼음골’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있다. 한 여름, 계곡 입구엔 사람들로 붐비지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리 시끌벅적할 정도는 아니다.

길은 시종일관 그늘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물은 바닥까지 비칠 정도로 맑다. 계곡 양 옆으로는 깎아 세운 듯 절벽이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곳을 능강구곡이라 부르기도 했다. 쌍벽담·몽유담·외룡담·관주폭·춘주폭·금병당·연자탑·탈당암·취적대다.

오솔길과 능강계곡은 50보 이상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란히 이어진다. 그래서 계곡을 따라 올라갈수록, 산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서늘한 정도는 더해진다. 길을 걷다 보면 상당한 노고가 들어간 돌탑 행렬을 만나기도 한다. 금수암에 기거하는 스님이 절 앞에 있는 돌을 모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상류 가까이 가면 집터가 흔적도 있다. 화전민의 터였다고 한다.

얼음골 초입에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은 절정에 달한다. 계곡에 발을 담그면 시릴 정도로 차다. 굳이 발을 담그지 않더라도 잠시 물길 옆에 앉아 있으면 그 자체로 피서다. 푸른 이끼들이 성하고, 너른 잎들이 사방을 가리고 있어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한참을 앉아 있다보면 묘한 현상을 보기도 한다. 밑바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광경이다. 대기와 계곡 밑바닥의 온도 차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얼음골은 굵직한 돌무더기가 산을 이루는 너덜지대 끝에 있다. 돌무더기는 바깥 공기의 열을 차단하는 단열 기능이 있다. 또 돌무더기 틈이 기온을 낮춰 얼음을 얼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돌무더기가 냉동고인 셈이다. 이곳의 얼음은 초복에 가장 많이 얼고, 중복에는 바위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말복에는 바위를 들어내 캐내야 한다.

예로부터 이곳의 얼음을 캐먹으면 만병이 통치된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얼음골에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를 빠져 나와 청풍대교를 지나 5분 정도 가면 능강교가 나온다. 여기가 계곡 입구다.


▎연인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소나무를 비롯해 단풍이 많다.
가평 연인산 남녀노소 부담 없는 소나무 숲 길

경기도 가평 연인산은 서울의 북한산처럼 ‘들머리(들어가는 맨 첫 머리)’가 많은 곳이다. 길을 잘 찾아가면 주말에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산행 들머리는 가평군하면 마을리 국수당이다.

마일리 마을 언덕에서 우정고개까지는 실개천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중간에 제법 큰 계곡이 나오는데, 야영하기에 좋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1.6km로 약 30분이면 족하다.

고갯마루까지는 일반 등산로다. 이후 임도에 진입해 연인산과 산 아래 마을 중간에 놓인 8㎞ 길을 가로지른 뒤 백둔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산 중턱을 우회하는 임도라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또 소나무를 비롯해 단풍 등이 많다.

우정고개에서는 다섯 갈래의 길이 펼쳐진다. 이정표의 화살표는 연인산 정상, 우정능선, 매봉으로 올라간다. 용추 휴양소 방면으로 들어서야 임도의 시작점이지만 화살표의 방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화살표를 찾는 것보다 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황톳길이 임도다. 임도는 단풍나무가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한적한 가운데 키 작은 단풍이 고요한 길을 선사한다. 단박에 ‘단풍 들면 참 예쁘겠다’고 생각할 만한 길, 연인끼리 도시락 싸가지고 나와 데이트하기 좋은 길이다.

평탄한 길을 천천히 내려오니 뒤편으로 연인산 정상을 향하는 능선이 보인다. 꼭대기 아래 ‘안부(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는 아홉 마지기로 불린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옛날, 연인산 어디쯤에 화전을 일구고 숯을 굽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산 아래 참판댁 종살이 하는 처자를 마음에 두게 됐다. 참판에게 여종과 혼인하고 싶다고 하자 ‘조 100가마를 가져오라’는 말을 듣게 됐다.

첩첩산중에서 조 100가마를 구할 방법을 궁리하던 그는 연인산 아래에 화전을 만들어 조를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참판은 끝내 약속을 들어주지 않았고, 둘은 사랑을 위한 도피를 감행하지만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두 사람이 죽고 난 자리에 철쭉이 만발했다는 설이다. 철쭉 많은 연인산의 작명 설화란다. 하지만 예부터 연인산에 숯 가마터가 많았다니 하니, 산 아래 마을에서 있을 법한 스토리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펑퍼짐한 연인산 봉우리가 좀 더 근사해 보이기는 하다.

임도는 이정표가 없어 자칫 등산로로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 MTB 코스를 표시하는 표지판이 곳곳에 있다. 우정고개에서 장수고개까지 임도는 매년 봄에 열리는 ‘연인산 MTB’ 대회 코스다. 동그라미 모양의 표지판이 2.5㎞ 간격으로 ‘20㎞’에서 ‘15㎞’까지 박혀 있다. 하지만 나무 그늘 아래 깊숙이 있어 눈에 띄지 않는 곳도 더러 있다.

걷다 보면 종종 잣나무와 밤나무 숲을 만난다. 특히 잣나무가 많은데, 지도상에 ‘잣나무 창고’라고 표시된 군락이 있다. 이곳을 지날 때면 나뭇잎 향이 풍긴다. 샛노란 낙엽이 깔린 길은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다. 산을 내려와 백둔리로 내려가는 길, 가평 잣막걸리를 내놓는 매점이 줄지어 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길이다.

백둔리는 연인산 캠핑장이 있다. 마일리는 현리 버스터미널에서 약 5km. 하루에 다니는 버스가 많지 않다. 여러 명이라면 택시를 타면 1만원 정도다. 직접 운전해서 가더라도 현리에 차를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이 나중에 차를 찾을 때 더 편하다.

1196호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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