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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시락 넘을 프리미엄 시장 뜬다 

도시락의 재발견 

국내 도시락 시장 2조원대… 하림·동원수산 등 중견 기업도 속속 진출



도시락의 확산은 1~2인 가구 증가와 불황 영향이 크다. 가격이 저렴하고 먹기 간편한 도시락이 인기다. 편의점과 도시락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성장한 국내 도시락 시장은 2조원대로 컸다. 웰빙 트렌드에 맞춰 맛은 물론 영양까지 겸비한 다양한 제품이 쏟아진다. 도시락 업계의 지각변동도 한창이다. 일본 도시락 최대 업체인 호토모토도 한국 시장 진출 1년을 맞았다. 하림·동원수산같은 중견 기업도 도시락 시장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도시락 창업이 불황기 유망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일본 업계의 최신 트렌드도 짚어봤다.

#1.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그룹은 5월 16일 서울 여의도에 프리미엄 도시락 전문점인 ‘하이밀(HYmeal)’ 1호점을 열었다. 하림그룹이 쌀 가공식품 업체이자 도시락 매장을 운영하는 일본 유노타니와 손잡고 시작했다. 하이밀은 밥맛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하이밀 변동환 팀장은 “밥이 맛있어야 다른 반찬이 더해져도 더 맛있게 느낀다”며 “전국을 돌면서 쌀을 시식해 도시락에 가장 적합한 강원도 철원군 오대미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도시락 메뉴는 한국인이 즐겨먹는 닭고기·돼지고기 등으로 조리한 메뉴와 꼬치·튀김·생선 중심의 일본식 메뉴를 포함해 30여 가지다. 변 팀장은 “하루에 150~200개 가량 팔리고 3만원대의 프리미엄 도시락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까지 직영점을 3개로 늘린 후 연말부터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 일본 최대 도시락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호토모토가 한국에 상륙한 지 7월 10일로 1주년이 됐다. 호토모토는 일본에서 2600여 매장을 보유하고 연간 도시락 3억개를 파는 최대 도시락 브랜드다. 동원수산과 호토모토 가맹본사인 일본 플레너스의 합작법인인 YK푸드서비스가 지난해 7월 10일 서울 압구정동에 1호점을 열었다. 호토모토는 압구정역점에 이어 서울 구로와 경기도 일산에도 문을 열었다.

호토모토 관계자는 “5000~6000원대의 가격이지만 1만원이 넘는 패밀리레스토랑 도시락에 못지 않은 품질을 갖췄다”며 “매일 600개 이상의 도시락이 팔린다”고 말했다. 호토모토는 올해까지 5개 직영점을 열고, 3년 안에 국내에 가맹점을 200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국내 중견기업과 외국 도시락 기업이 속속 도시락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동안 도시락 시장은 전국 2만여 편의점(CU 7200개, GS25 6600개, 세븐일레븐 6300개)과 한솥도시락·본도시락 등 20여개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성장했다. 도시락 업계에 따르면 국내 도시락 시장은 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중 편의점 도시락이 7000억원, 도시락 프랜차이즈와 중소 외식업체 등이 1조3000억원을 차지한다. 2000년 초 2000억원이던 도시락 시장은 10여년 만에 10배로 성장했다.

토종에 일본 체인 가세해 힘겨루기

이에 따라 지난해 동원수산에 이어 올해는 하림그룹이 도전장을 냈다. 최근에는 일식 브랜드 ‘미소야’를 운영하는 보우앤파트너스가 서울 방배동과 압구정동에 ‘미소담은 도시락’ 1,2호점을 내고 도시락 시장에 진출했다.

하이밀 변동환 팀장은 “일본은 편의점이나 수퍼에서 도시락이나 반찬을 사다가 집에서 먹는 ‘나카쇼쿠(中食)’가 발달했다”며 “일본의 상황에 빗대어 볼 때 도시락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변 팀장은 “식품 회사들이 도시락 사업을 눈 여겨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솥도시락 황성환 팀장은 “도시락 시장은 앞으로 20년은 커질 수 있는 시장”이라며 “앞으로 도시락 업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락 시장은 불황일수록 커진다. 밥값부터 줄이겠다는 소비자가 늘게 마련이다. 1997년 외환위기 후 한솥도시락이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100호점을 돌파했다. 뒤이어 도시락 업체가 생겨나면서 도시락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500여개로 늘었다.

이후 한동안 정체기를 맞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시락 시장이 다시 커졌다. 최근에는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가 도시락 시장 성장에 기폭제가 됐다. 데우기만하면 조리 음식처럼 먹을 수 있는 간편 가정식(HMR·Home Meal Replacement) 열풍이 분 것도 도시락 인기의 요인으로 꼽힌다.





1인 가구 증가에 간편식 열풍도 한 몫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븐일레븐 도시락은 100%가 넘는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세븐일레븐 도시락 매출 신장률(전년 동기 대비)은 2010년 113.5%, 2011년 123.1%, 2012년 185.1%다. CU도 최근 2~3년 사이 40~50%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올 상반기 도시락 매출도 54.3% 늘었다. CU 윤형식 대리는 “편의점에서 2000년 초 도시락 판매를 시도했지만 반응이 미미해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편의점은 24시간 문을 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점과 10가지 넘는 다양한 도시락을 3000~4000원대 가격으로 먹을 수 있어 인기”라고 설명했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락을 가장 많이 구매한 고객은 20~40대 남성 직장인으로 분석됐다. 66.3%에 달한다. 상권별로는 사무실 밀집 지역과 학원가 비중이 컸다. 시간대는 점심(오후 12~2시)과 저녁(6~8시)이 각각 14.4%, 12%였다.

도시락 전문점을 찾는 고객도 늘었다. 7월 8일 서울 여의도의 본도시락 여의도 매장.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되려면 30분이나 남았지만 3개 테이블에 손님이 가득 찼다. 매장 직원은 주문을 받으면서 전화까지 받느라 쉴 틈이 없어 보였다. 33㎡(약 10평) 규모의 매장에서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팔리는 도시락은 배달까지 포함해 약 250개다.

본도시락 최복순 주임은 “지역과 상권에 따라 매출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140여개 매장의 평균 도시락 주문 건은 150~200개”라고 말했다. 이 곳을 찾은 직장인 고화라(31)씨는 “일주일에 두어 번 이용한다.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남은 시간에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휴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국내에 도시락이 본격적으로 선보인 건 1980년대다. 초기에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 야유회 등을 위한 단체 주문을 받는 식이었다. 그러다 1991년 미가도시락이 등장하면서 도시락 프랜차이즈 시장이 열렸다. 미가도시락은 일본 도시락 체인인 본가 가마도야와 기술 제휴로 만든 도시락이다. 이후 1993년 한솥이 국내 최초의 본격 테이크아웃 도시락 전문점을 열었다. 같은 해 진주햄도 도시락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토마토도시락·오봉도시락·본 도시락 등 20여개 도시락 중견 프랜차이즈가 성업 중이다.

2008년 이후 전문점과 편의점 도시락이 인기를 얻으면서 패밀리레스토랑도 도시락 열풍에 가세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는 찹스테이크와 네드켈리불고기 등의 메뉴를 약 40%가 할인한 도시락 5종을 출시했다. 베니건스와 애슐리도 도시락 메뉴를 늘렸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관계자는 “도시락 메뉴는 전체 매출의 5~10%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많아 아웃백의 효자 메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도시락 사업을 하는 개인 사업자가 늘었다. 도시락 프랜차이즈보다 메뉴는 적지만 고급화나 건강식을 내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하미순(46)씨는 지난해 초부터 ‘맛도’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도시락판다. ‘엄마표 도시락’이라는 컨셉트로 돈가스·계란말이·제육볶음 등 자신 있는 음식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하씨는 “인근 직장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입맛도 달라졌다. 과거 도시락은 대부분 학생이나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이 많이 찾았다. 그래서 간편하게 빨리 먹을수 있도록 반찬이 적은 김치볶음밥이나 덮밥 등의 도시락이 인기였다. 그러다 든든함을 채울 수 있는 도시락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치킨이나 고기가 포함된 메뉴가 인기를 얻었다. CU에서는 지난해 8월 옥수수가 토핑 된 쌀밥에 계란장조림·불갈비데리볶음·새우튀김 등 반찬 7종을 더한 ‘더블 빅 세트(3600원)’ 도시락을 내놔 인기를 얻었다.

세븐일레븐에서는 계란야채볶음밥·깐풍기·칠리새우·고추잡채 등 ‘중화요리 모둠 도시락(4000원)’을 3월에 내놔 인기를 끌었다. CU 윤영식 대리는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도시락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도시락 프랜차이즈에서도 고기와 돈까스 등의 메인 메뉴에 4~6가지의 기본 밑반찬을 제공한다.

가격은 평균 1만원을 웃돈다. 최복순 주임은 “최근 도시락의 변화는 ‘고급화’와 ‘건강식’으로 요약된다”며 “간편하게 사먹지만 한끼 때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갓 지은 따끈한 밥과 신선한 재료로 만든 반찬을 원한다”고 말했다. 가격대도 5000원대에서 3만원대로 다양해졌다.

한 끼 번듯한 식사로 거듭나야

웰빙 바람이 불면서 영양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다이어트·건강식 메뉴도 늘었다. 이런 도시락은 가정 식탁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 맞벌이를 하는 김유경(35)씨는 요즘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늦잠을 잔다. 매일 아침 도시락이 집으로 배달된다. 그동안 유치원생·초등학생 자녀와 남편에게 아침밥을 지어주기 위해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밥솥에 밥을 앉히고 찌개를 끊이고 간단한 밑반찬까지 차리려면 적어도 1시간 남짓 시간이 걸렸다.

최근 회사 동료가 매일 메뉴를 바꿔 도시락을 배달하는 업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과감히 바꿨다. 가족이 먹는 아침상에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는다는 게 낯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켜봤다. 아침식사 전문업체인 ‘에이엠푸드’였다. 에이엠푸드는 국·찌개 위주 식단으로 매일 아침 도시락을 배달한다. 김씨는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요즘 식재료 물가가 올라 직접 해먹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며 “당일 입고된 야채만 사용하고 위생 관리도 철저하다고 하니 믿을 수 있고 맛도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도시락을 찾는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도시락 창업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불황에 알뜰 소비 트렌드와 1인 가구, 직장인 수요까지 맞물려 도시락 창업시장은 당분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솥도시락과 토마토도시락은 저가형 도시락으로 시장을 공략했지만 후발주자들은 고급 한식이나 고가의 프리미엄 도시락을 선보였다”며 “건강까지 챙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국내 도시락 시장은 장기적으로 프리미엄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장도 “도시락 시장이 더욱 커지려면 도시락도 제대로 된 식사라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도시락 업체들은 중저가형 도시락과 테이크 아웃·배달로 운영되지만 일본은 반대다. 지난해 문을 연 호토모토는 33개의 테이블과 바 형식의 좌석을 마련됐다. 국내 도시락 매장은 매장에 테이블이 서너 개 안팎이다. 호토모토 김창한 부장은 “도시락은 단순히 한끼 때우는 저렴한 음식이 아닌 식당에서 주문해서 먹는 식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체들도 변신 중이다. 한솥도시락이 최근 선보인 ‘뉴 모델 점포’가 대표적 사례다. 간판 디자인을 비롯해 점포의 인테리어를 밝고 화사한 카페 분위기로 바꿨다. 도시락뿐이던 매장에서 음료수·컵라면·샐러드도 판다. 황성환 팀장은 “현재 650개 매장 중 70% 이상을 카페형 매장으로 바꾸고 있다”며 “다양하고 품질 높은 식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간편 가정식(HMR·Home Meal Replacement) 싱글족·노년층 등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겨냥해 만든 음식 제품. 가정식을 대신해 손쉽게 먹을 수 있다.

1197호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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