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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전제는 임금피크제 

경제장관에게 듣는다 |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이필재 전문기자
소득 줄더라도 근로시간 줄일 필요 베이비부머 해외서도 일자리 찾아야



“젊은 사람이나 여성이 들어가고 싶은 회사라야 합니다. 산업단지도 사람들이 가서 일하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어야죠.” 방하남(56) 고용노동부 장관은 심각한 구직난 속에서도 구인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에 “쓸 만한 인력을 뽑으려면 우선 좋은 회사, 살 만한 지역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정부도 나름대로 정착할 만한 환경, 공동기숙사·보육시설 같은 복지 시설 등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지원해 중소기업의 이 같은 인력 미스 매치 현상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는 인천에서 벌인 중소기업 맞춤형 인력공급 시범사업을 예로 들었다. 중소기업들이 역내 한국폴리텍대학, 일자리 전문가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3~5년 후 필요로 하는 인력 수요를 조사한 후 그에 맞춰 인력을 양성한 결과 취업률이 80%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방 장관은 “올해 4개 지역에서 실시한 이 시범사업을 내년엔 20여 곳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9월 30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서 그와 만났다.

인프라와 근로 환경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임금 격차가 나기는 하지만 지역에도 강소기업이랄까 좋은 중소기업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가장 고민하는 게 장래성입니다. 결국 중소기업도 성장해야 원하는 인력을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경쟁 환경에 놓여 경쟁력 있는 회사는 강소기업으로 크고, 아닐 말로 봉급도 제대로 못 주는 회사는 퇴출돼야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소기업 정책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중소기업을 온전하게 만들려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대기업 의존형 산업 구조도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정부가 단가 후려치기 같은 관행을 없애 대기업·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려는 겁니다. 선진국의 경우 중소기업들이 주력할 만한 틈새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시장에 대기업이 수십 년 간 문어발 식으로 진출했고 이 오래된 뿌리를 자르려니 진통이 큰 거죠.”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합니다. 고령층 10명 중 4명은 향후에 취업을 원한다고 합니다. 당장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야죠. 특히 대기업에서 나오는 화이트칼러가 문제입니다. 이들 중 경영전략·마케팅·국제무역 등에 밝은 관리직은 이런 업무에 서툰 중소기업과 연결해 주려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을 채용하는 중소기업엔 정부가 연간 1000만원 정도 지원합니다. 또 사회적 기업에서 일할 기회나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찾아주려고요.

한 가지 더, 이들은 영어도 좀 하는 사람들인데 해외에 수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미 코트라·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을 통해 인도네시아 등지에 나가 있습니다만, 정부가 다리를 놓으면 진출하기가 한결 수월하죠. 청년들뿐 아니라 베이비부머도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고용 분야 지출(11조8042억원)이 올해보다 7.7% 늘었다. 복지 분야 지출만큼이나 증가 폭이 크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정부 주도로 예산을 투입해 늘리느냐는 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만들어 내는 일자리는 고용의 질과 안정성이 낮아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직접 창출하는 일자리 예산은 2조원 가량으로 꽤 많기는 하지만 지난해 수준입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투자를 통해 만드는 겁니다. 정부는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도록 정책을 짜고 기존의 일자리를 최대한 유지하려 고용 유지지원금 예산을 편성하죠. 이 점에서 정부가 주도한다는 말은 어폐가 있고 지원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노동시장에 새로들어온 구직자와 기업에서 나온 사람들이 일자리를 빨리 찾을 수있게 고용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펴고 있는 건 맞습니다. 이런 정책을 통해 결국 인력 수급의 불일치가 해소되고 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를 정부가 구직자와 매치시켜 채우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죠.”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100만 개 가까이 만든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자리입니까?

“박근혜정부 임기 5년 동안 만들겠다는 겁니다. 시간제 근로에 맞는 은행 일, 최근 수요가 많아진 건강검진 사업, 텔레마케팅 같은 감정노동이 좋은 예입니다. 풀 타임 근무는 부담스러운 경력 단절 여성에게 잘 맞는 일자리들이죠. 양질의 일자리란 기업은 물론이고 구직자의 수요와 맞을뿐더러 저임이 아니고 4대 보험도 되는 그런 일을 말합니다.”

주로 여성 일자리군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를 채우는 인력의 3분의 2가 여성입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70%가 여성이에요.”

정년이 연장되면 임금피크제의 실효성도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300인 이상 사업장에 60세 정년제가 도입되는 건 2016년입니다. 이때가 돼 60세 정년이 의무화되려면 단계적인 임금 체계 개편이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임금피크제는 기업은 시행하려 하고 노조나 근로자는 꺼리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고령화 등을 내다볼 때 정말 필요하다고 해 도입한 제도입니다. 이번에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지원하기 위해 꽤 많은 예산을 책정해 뒀습니다.”

정년 연장은 임금피크제 시행을 전제로 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와 더불어 연공급(年功給) 임금체계를 성과 위주의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합니다. 우리 임금제도는 굉장히 복잡하고 노사가 힘의 논리로 밀고 당기는 식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후진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를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바꿔보자는 겁니다. 기본급과 성과급 두 범주로 단순화하되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수용할 가능성이 큰 쪽으로 제도를 개선하자는 거예요. 한 마디로 선진국 스타일로 손보자는 거죠.”

통상임금 문제는 어떻게 풀 건가요?

“전통 시장에서 온누리 상품권의 유통량이 30% 줄었다고 합니다. 생일을 맞은 직원 등에게 지급한 이 상품권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이 나온 후 기업이 물량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지닌 실질적 기능과 법원이 보는 통상임금 개념 간엔 괴리가 있어요. 핵심 쟁점은 부가급부(fringe benefits) 성격의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것인가인데 종합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무엇보다 장시간 근로라는 개발경제 시대의 유산이 여태 남아 있습니다. 직무 시스템에 따라 직무에 대한 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죠. 예를 들면 사내 공인회계사에게 ‘당신이 회계사이지만 사람이 없으면 인사 일도 할 수 있는 거지’ 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생산성에 대한 개념이 부족합니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13개국 중 가장 낮습니다.

고용률 70%라는 양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문화, 노동 관련 제도와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영원히 후진적인 노동시장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반면 선진국은 일과 가정의 양립, 시간제 일자리를 통한 노동시장 참여, 가구당 1.5명이 소득을 올리는 구조를 실현했죠.”

장시간 근로 문제를 지적했지만 소득이 줄지 않는다면야 누구나 근로시간 단축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소득이 줄어들까봐 두려워하는 거죠.

“대기업에 다니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사람이 연 2000 몇 백 시간씩 일하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일본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1700시간이에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소득이 주는 반면 60세, 65세까지 평생 일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소득이 줄더라도 다른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지않습니까? 가령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다든지 저녁시간을 여유 있게 즐길 수도 있고 노후에 대비할 수도 있겠죠.”

양극화의 심화로 교육적 지위마저 세습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학력간 임금 격차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요?

“사회 보상 시스템을 일거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졸자는 50만명이 공급 초과, 고등학교를 나온 기술·기능인은 30만명이 수요 초과인 시대가 옵니다. 대졸자는 남아돌아 취업을 못하고 기술·기능인은 없어서 못 쓰는 세상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선(先)취업 후(後)진학’풍조를 확산시키려 합니다.

또 고교 또는 대학 졸업 전 1년 간 기업에서 체계적으로 현장 학습을 하게 하는 ‘일·학습 듀얼 시스템’을 도입하려 합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은 기술·기능인들이에요. 젊은 세대들이 다시 한번 기술의 르네상스를 꽃피워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할 겁니다.”

일자리 늘리기에 초점을 맞춘 신성장 동력 정책은 뭔가요?

“창조경제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으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해양 플랜트,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거의 모든 디지털 제품에 내장되는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 주조·금형 등 뿌리산업, 섬유·패션 산업을 4개 전략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자동차는 일종의 전자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차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80%를 외국에서 들여옵니다. 우리도 이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조선산업의 경우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후발국에 왕좌를 물려줘야 하는데 이때 남는 인력을 고부가가치 업종인 해양 플랜트 쪽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방 장관은 설립 초기 고용부 산하 노동연구원 출신이다. 산하 기관 격인 연구기관의 간부가 상급 부처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셈이다. 고용부가 주도하는 고용률 70%는 박근혜정부가 유일하게 수치로 내세운 국정목표다.

취임 후 주요 성과가 뭡니까?

“범부처적으로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했고 정년을 60세로 연장했습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한 것, 청년 연령을 29세에서 34세로 조정한 것도 보람입니다. 이에 따라 30대 미취업자도 내년에 시행되는 청년고용의무화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됐죠.”

좌우명은 뭔가요?

“성경에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사관계가 그렇듯이 우리 사회에 양보와 배려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윗물이랄까 사회 지도층과 사회적 강자가 양보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키워야 우리 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합니다.”

1207호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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