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줄줄이 적자에 한숨 가득 

계륵(鷄肋) 신세 대기업 신수종 녹색사업 

경기침체로 2차전지·태양광·LED 사업 고전 … 사업 축소·포기도 속출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던 대기업의 도전이 위기에 직면했다. 당장이라도 멋진 미래를 펼쳐 줄 것 같던 2차전지·태양광·발광다이오드(LED)·바이오 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장밋빛 시장 전망은 여전하다. 하지만 속도가 더딘 게 문제다.

그 사이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일부 사업은 축소하거나 포기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먼 미래를 생각하고, 지금까지 투자한 걸 생각하면 쉽사리 물러서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언제 불붙을지 모르는 시장을 기다리며 적자를 감내하기엔 인내심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전기차의 역사에 중요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전기차 시래가 도래한다’는 말만 무성했을 뿐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시기를 놓고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전기차 보급에 필수라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늦어진 게 가장 큰 이유다. 배터리 발전 속도 또한 더뎌 소비자들이 만족하고 탈만한 주행거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GM·현대자동차·BMW 등 많은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가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올해는 다르다. 전기차 전문업체 태슬라가 개발한 전기차 ‘모델S’가 북미 시장에서 4750대 팔리며 시장에 불을 지폈다. 모델S는 8000만원의 높은 가격이 흠이긴 하지만 스포츠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성능으로 인기를 끌었다. BMW의 양산형 소형 전기차 i3도 11월 독일을 시작으로 판매에 들어간다.

제네럴모터스(GM)의 볼트, 르노삼성 SM3 ZE 등과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유럽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관한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추세다. 앞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브랜드는 울며 겨자 먹기라도 전기차 혹은 대체연료 자동차 개발에 공을 들여야 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기차 민간보급에 들어갔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2차전지를 생산하는 업체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LG화학과 삼성SDI·SK이노베이션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의 2차전지 업체들은 2010~2011년 전통의 전지 강국 일본을 제치고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언제든 시장만 열리면 달려 나갈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준비만 하다 경기가 끝날 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간 많은 내상을 견디며 투자를 했는데 기대 만큼 시장이 빨리 크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전기차 시장 열릴 조짐에 2차전지 업계 반색

LG화학은 국내 기업 중 가장 활발하게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펼쳤다. 충북 오창에 연간 20만대 전기차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생산시설을 갖췄다. 미국 미시건주 홀랜드에도 3억 달러를 들여 배터리 생산공장을 지난해 6월 완공했다. GM·르노삼성·현대자동차와 공급계약을 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해 LG화학이 GM에 공급한 배터리는 2만5000개, 현대·기아자동차에는 6만개를 공급하는데 그쳤다. 오창 공장에서 생산한 양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3억 달러를 투자해 지은 미국 공장은 완공 1년이 넘도록 가동조차 못했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조금씩 살아나며 7월부터 미국 공장의 가동을 시작했지만 그나마도 3개 라인 중 1개만 돌리는 상황이다. 미국 공장 1개 라인에서 연간 생산하는 배터리 양은 1만2000개 수준이다. 투자 원금을 회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

일단 LG화학은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향후 전기차 수요가 늘 것에 대비해 생산라인을 더욱 늘릴 계획을 밝혔다. 박진수 LG화학 대표는 “미국 전기차 시장이 회복 기미를 보여 미국 공장 가동을 결정했다”며 “2015년까지 미국 공장의 생산라인을 2개 더 늘리겠다”고 말했다.

삼성SDI의 상황도 좋지 않다. 삼성그룹은 2008년 독일의 보쉬와 50대 50 합작으로 SB리모티브라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회사를 설립했다. 2009년에만 9억원의 순익을 기록했을 뿐 2010년 698억원, 2011년 1236억원, 지난해 71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1년 보쉬와 삼성은 1600억원의 자금을 출자해 투자를 하는 등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적자가 계속되자 결국 보쉬가 먼저 손을 들었다.

지난해 9월 삼성그룹은 보쉬의 지분을 넘겨받았다. 올 1월 SB리모티브가 삼성SDI에 흡수·합병됐다. SB리모티브가 삼성SDI에까지 타격을 주고 있다. 삼성SDI는 올 1분기 333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4년 만에 적자 기업이 됐다. SB리모티브의 순손실이 결정타가 됐다.

삼성SDI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미래를 위한 사업으로 몇 년 실적이 나빠도 큰 문제는 아니다”며 “자동차나 대규모 시설에 들어가는 중·대형 배터리 시장에서는 완급조절을 하고 스마트폰·태블릿 보급 증가로 수익성이 좋은 소형 2차전지 비중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투 트랙(Two-Track)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해 나갈 계획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패는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내수 시장에서 수입차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대규모 리콜사태로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침체기를 겪는 동안 글로벌 위상은 크게 높아졌지만 갈 길이 멀다.

BMW·폴크스바겐·아우디 등 독일 브랜드와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다. 어느새 전열을 가다듬은 도요타·혼다 등 일본 브랜드의 상승세가 무섭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여 판매량 늘리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도 뜻대로 되지 않는데 이젠 전기차 시장까지 챙겨야 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2009년 전기차 블루온, 2011년 레이 EV 등을 개발하며 미래 시장에 대비했다. 하지만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시장에 무작정 투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았다. 현대·기아자동차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쉐보레나 르노삼성이 빠른 기술발전을 이뤘다.

올 8월 제주도에서 시작한 예약판매에서 르노삼성의 SM3 ZE가 기아 레이 EV를 제치고 가장 인기가 많은 차가 됐다. 지금과 같은 기술 발전 속도로는 전기차 시장에서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입장에서는 내년 전기차 쏘울과 탐스의 성공 여부가 중요해졌다.

수입차 막으랴, 전기·수소차 개발하랴

현대자동차는 올 2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자동차(FCEV) 투싼ix의 양산체제를 갖췄다. BMW나 도요타보다 뒤늦게 뛰어 들어 이룬 성과라 값지다. 미래 수소차 시장에서는 현대차와 도요타가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아직 시장이 열리지도 않았고 수소차 한 대의 가격이 1억원이 넘어 상품성이 떨어진다. 국내는 수소차에 대한 관심이 작아 마땅한 판매처도 없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가 대세라고 하는데 아직 극복할 과제가 많아 보급률이 일정 수준 이상까지 올라가는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며 “그 사이 수소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자동차가 시장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전기차·수소차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태양광 산업도 미래의 먹거리로 큰 관심을 모은 분야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한화그룹이 이 시장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2010년 중국의 솔라펀파워홀딩스를 3억8000만 달러에 인수해 한화솔라원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태양광사업에 진출했다.

2011년에는 독일의 큐셀을 인수해 한화큐셀을 설립했다. 올 9월에는 전남 여수에 1만t 규모의 폴리실리콘 생산공장도 지었다. 이로써 한화는 태양전지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생산, 태양전지판을 구성하는 셀과 모듈, 태양광 발전소 건설 및 운영까지 모두 가능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대거 이 사업에 진출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폴리실리콘 가격이 급락했고 많은 기업이 줄지어 도산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는 각국에서 태양광 관련 사업 보조금을 줄이는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웅진홀딩스도 2008년 시작한 태양광 사업의 실패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한화는 태양광 사업의 부침을 겪는 시기에도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그룹 오너인 김승연 회장의 의지가 강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태양광은 한 두 해를 보고 하는 사업이 아니니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 태양광업계는 일종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미국 GTM리서치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5년 즈음 태양광 사업이 활황기로 접어 들 것이며, 전 세계에 난립한 태양광 모듈 업체 중 소수의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 시장을 선도할 기업 9개를 꼽았는데 그중 하나가 한화그룹이다.

최근 일본을 중심으로 수요가 살아나며 폭락했던 폴리실리콘 가격이 오름세를 보인 건 위안거리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안상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수요가 늘고 한화솔라원의 공장 가동률이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재고가 많고 태양광 시황은 안개속”이라며 “오너 부재 리스크까지 있어 앞으로도 많은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SK그룹도 태양광의 쓴맛을 봤다. 2008년 태양광 업체 솔믹스(현재 SK솔믹스)를 인수하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SK솔믹스는 지금까지 태양광 사업에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해 70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는 상반기에는 17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1년 220.21%였던 부채비율은 올해 반기 말까지 413.62%로 늘었다. 최근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SK솔믹스 관계자는 유상증자를 위한 투자설명회에서 “태양광 시장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나 자본력과 경쟁력이 다소 열위에 있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해 앞으로 험난한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태양광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사업이 또 있다. 삼성과 LG가 뛰어든 LED 사업이다. LED 일반 백열전구보다 뛰어난 에너지 효율을 발휘해 미래형 전기장치로 2000년대 중후반 각광을 받았다. 많은 업체가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져 수익성이 악화됐다.

삼성·LG·금호전기·우리조명지주를 비롯해 수많은 중소기업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적자다. TV 시장의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한데다 LED 판매단가는 갈수록 떨어져 앞으로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지난해 LED 백라이트유닛의 개당 판매가격은 1.83달러였는데 이는 전년 대비 33.9% 하락한 가격이다.

태양광 업계는 치킨게임

삼성은 LED를 미래 5대 신수종 사업으로 꼽고 공격적 투자를 이어왔다. 2020년까지 LED 사업에만 8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의 신수종사업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2009년 삼성전자에서 LED 부분을 떼내 삼성LED를 설립했다. 하지만 예상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삼성LED는 올 4월 삼성전자 LED 사업부로 이관됐다. LG이노텍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회사는 2010년 1조원을 투자해 경기도 파주에 LED 공장을 준공했다. 하지만 실적은 갈수록 나빠졌다. 지난해 LG이노텍의 LED 사업부문의 당기순손실은 2500억원에 달한다. 회사 내부에서 “LG 계열사 건물의 LED 램프를 교체하면서 겨우 연명해 나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태윤 미래산업팀장은 “미래 녹색산업은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하는데 경기가 나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투자가 줄어들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1213호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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