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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금융상품 거의 개점휴업 

시들한 녹색금융 

위험 큰 중소·중견기업 많아 대출·투자 꺼려 … 정부의 정책 인센티브 필요



“녹색금융 회의요? 올 들어 일정과 관련해서 논의는 있었는데 아직까지 회의는 열리지 않았어요. 벌써 11월인데 올해는 열리기 어렵지 않겠어요?” 녹색금융협의회 관계자에게 회의 일정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녹색금융협의회는 2009년 4월 녹색성장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손해보험협회·생명보헙협회 등 국내 금융유관기관들이 녹색성장정책에 맞춰 창립했다.

이곳에서는 녹색성장기업의 금융지원과 정책방안 등을 논의한다. 매년 3월과 4월에 개최하는데 올해는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녹색금융협의회 관계자는 “녹색금융을 지휘한 녹색성장위원회가 총리실 소속으로 격하된 데 이어 금융권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업부서를 축소하거나 인원을 줄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7월에는 정책금융공사의 녹색금융추진단이 녹색금융팀으로 축소됐다. 정책금융공사는 2010년 녹색금융 선도기관으로 선정돼 녹색성장 지원에 앞장서왔다. 또 500억원 규모의 녹색산업투자회사를 국내 최초로 설립했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당시 녹색금융은 공사의 대표적인 금융정책이었던 만큼 녹색기업 지원에 나섰지만 지금은 조직이 축소되고 관심도 덜해지면서 지원도 미미하다”고 말했다.

2009~2010년까지만 해도 녹색금융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기대는 상당히 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 독려도 있었지만 신흥시장 개척이라고 생각해 각 금융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상품을 내놨다”고 말했다. 녹색금융상품은 친환경·신재생에너지·저탄소 산업 기업 등에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당시 2년 동안 은행들이 출시한 녹색 관련 상품은 20여개(특수은행·외국계 은행 제외)였다. 증권회사도 21개의 국내 녹색성장펀드를 출시했다. 녹색성장펀드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이나 온실가스 배출 저감 활동을 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이다. 보험회사도 녹색보험 상품인 자전거보험과 차량 주행거리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하는 마일리지보험 상품을 선보였다.

녹색금융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했지만 애초 목적과 달리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녹색 관련 기업은 대부분 중견·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대표주자로 꼽힌 태양광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태양광산업협회에 소속된 회원사는 98개지만 이 중 80~90%는 중소·중견기업이다. 대기업 또는 계열사 몇 곳을 제외하면 자금 사정이 넉넉한 곳이 별로 없다. 수출입은행은 내년까지 현재 태양광기업 중 75%가 정리되는 구조조정기를 거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사업부 줄이고 인원 대거 축소

실제로 2009년 이후 태양광산업은 유럽 금융위기로 업황이 좋지 않다. 세계 폴리실리콘 시장의 선두 업체인 OCI는 증설 계획을 미뤘다. LG화학도 5000억원 규모 태양광 설비 투자를 보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2위 태양광 업체인 한국실리콘이 어음 80억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지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2008년 11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우리은행의 ‘우리 그린솔라론’의 대출 금액은 올 11월 13일 현재 568억원에 불과하다. 2009년 3월과 9월에 각각 출시된 ‘우리 LED론’과 ‘우리사랑 녹색기업대출’도 각각 91억원, 179억원에 그쳤다.

신한은행이 지난해 6월 출시한 ‘그린愛너지팩토링’도 실적이 123억원으로 저조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녹색금융상품의 취지는 더욱 무색해지고 있다. 우리은행 이종수 과장은 “업종별로 만든 특정상품보다는 업종 관계없이 받을 수 있는 일반상품의 금리가 더 낮아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정책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녹색기술에 투자하기 위해 2009년 12월 조성된 산업은행의 ‘그린퓨처신성장동력 펀드’는 올해 12월로 투자가 종료되지만 현재까지 100억원 투자에 그쳤다. 자본시장연구원 노희진 선임연구위원은 “대출해주는 입장에서 수익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불확실성이 크다”며 “결국 녹색 분야 투자 대상은 리스크가 적은 대기업이나 실적이 양호한 일부 사업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성장 구호만을 외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새 정부가 전 정부의 녹색성장 기조를 이어가기로 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글로벌녹색성장포럼에서 “새 정부는 녹색성장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2015년에는 녹색제품과 기술 수출에서 세계 4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이 인천 송도에 문을 여는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GCF는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세계기구다.

그러나 활성화되기까지는 과제도 만만찮다. 먼저 녹색성장 기업들은 대부분 담보나 보증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손해를 입었을 때 일정 부분을 지원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또 녹색기업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전문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업을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재양성도 중요하다.

노희진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시장이 얼마만큼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기반을 어떻게 만드냐, 얼마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녹색성장 대출을 하는 은행들에게 중계 수수료를 지급하거나 세제 혜택 등을 주는 실질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GCF 셰크로흐 사무총장은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젝트별로 민간 금융회사에 인센티브를 준다면 자금을 더 유치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폴리실리콘 태양전지에서 빛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는 작은 실리콘 결정체가 있는데, 이들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1213호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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