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세계는 뛰는데 우리는 걷는다 

더딘 녹색성장 

경기침체 겹쳐 스마트그리드·신재생에너지 게 걸음 … 박근혜정부 뒤늦은 시동

▎제주시 구좌읍 일대에 조성된 스마트그리드 실증 단지에서 전기차 한 대가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환경수도를 목표로 제주시가 전기차 보급에 적극 나섰지만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익숙한 구호다. 지난 정부에서 5년 내내 홍보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녹색’은 뒤로 밀렸다. 녹색이 빠진 자리를 창조가 대체했고, 기업들은 눈치보기 바빠졌다. 국내외 경기침체로 수요 부진까지 덮치면서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녹색산업은 전 세계가 비슷한 출발점에 서 있는 미래 산업이다.

얼마든지 선점할 수 있고, 반대로 언제든지 뒤질 수 있다. 우리가 멈칫한 사이 미국·유럽·일본은 한걸음 앞서 갔다. 우리나라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형 에너지경제를 꺼냈다. 녹색성장위원회 역시 활동을 개시했다. 다행스럽지만 추진력이 궁금하다.


제주도 애월읍과 조천읍을 연결하는 구국도대체우회도로. 처음 타 본 전기자동차는 기대 이상이었다. 가속 페달에 발을 얹으니 부드럽게 가속이 시작됐고, 제동력 또한 좋았다. 소음은 월등히 덜했다. ‘전기차는 가속이 좋지 않다’ ‘힘이 달린다’ 등은 그야말로 선입견이었다. 게다가 연료비는 가솔린과 디젤 차량의 10분의 1 수준이다.

성능뿐만 아니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된 충전이나 배터리 문제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1번 충전 때 운행거리가 150㎞ 정도로 늘었고, 300㎞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전기차도 곧 나온다. 5~6시간이 필요한 충전 시간 또한 문제였는데 급속 충전(30분 이내)이 가능한 양산차가 이미 나왔다. 개선의 여지가 남았을 뿐 상용화를 위한 기술적인 준비는 거의 끝났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전기차는 늘고 충전기는 줄고

운영 시스템 역시 거의 완성 단계다.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을 계기로 포스코ICT·대경엔지니어링 등 5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립한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는 전기차 운전자의 편의를 위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2년이 채 안 됐지만 이 회사의 전기차 통합운영관리 시스템은 합격점을 받았다. 미리 가입한 회원의 위치정보와 배터리 정보를 기반으로 충전소 및 배터리 교환소를 안내해 주는 게 대표적이다.

배터리 잔량이 떨어질 때쯤 스마트폰을 활용해 가까운 충전소와 대기 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휴대전화 사용자가 통신사에 가입하듯 전기차 운전자가 서비스에 가입하면 충전 요금과 서비스 요금을 합산해 월 단위로 납부하도록 하는 멤버십 서비스와 위급한 경우에 대비한 긴급 구난서비스도 갖췄다.

문제는 인프라다. 아무리 좋은 전기차라도 충전소가 있어야 탄다. 제주도는 실증단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주 지역 곳곳에 총 386개의 충전기를 설치했다. 그런데 5월에 사업이 끝난 이후 충전기는 오히려 줄었다. 사업을 추진한 한국전력·SK 등이 충전기를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일부 공공기관이 관리비용 등의 문제로 철거한 때문이다. 제주공항이 대표적이다.

직접 가보니 10여 대의 충전기가 있었다는 공항 주차장 입구는 다시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공항 관계자는 “쓰는 사람도 없고 해서 철거했다”고 말했다. 철거한 충전기는 한 업체가 보관하겠다며 가져갔다고 한다. 버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곳뿐만 아니다.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건물에 있던 충전기 2대도 철거됐다. 일부 공공기관은 멀쩡한 충전기에 ‘고장’ 표시를 붙여 놓기도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충전기는 실증사업 기간 동안 국비와 기업의 투자로 설치됐다. 충전기 1대당 연간 운영비용은 약 50만원. 겨우 몇백 만원 아끼자고 국가적인 사업에 공공기관이 재를 뿌린 셈이다. 제주도는 수년 전부터 전기차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세계 환경수도로 가는 첫 시작이 전기차임을 수 차례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전국 최초로 전기차 민간 판매도 시작했다. 160대를 공급했는데 이 중 일부는 11월부터 차량 인도가 시작됐다. 탈 사람은 많아지는데 인프라는 부실해졌다.

기업들은 한숨을 쉴 만하다. “충전기 사업자 보조금 문제나 전기차 보험 제도 등 개선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르겠다. 실증이 끝났으면 사업화를 하고, 민간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도리어 되돌아 가니 누구 탓을 해야 할 지….” 사업에 참여했던 한 기업인의 넋두리다.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시스템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집 안에는 전력량과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미터가 설치돼 있다. 낮에는 요금이 비싸고, 밤에는 싸니 전자제품 이용은 가급적 밤에 한다. 꼭 그러지 않더라도 저장장치가 있으니 걱정 없다. 밤에 전기를 충전했다가 낮에 쓰고, 남으면 내다 팔기도 한다. 출퇴근은 전기자동차로 한다. 한달 교통비는 2만원이면 충분하다.

스마트그리드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다. 스마트그리드는 기존 전력망(Grid)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전력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전력망이다. 이명박정부는 2010년 1월 스마트그리드 국가 로드맵을 발표하고 2030년 전국 확대를 목표로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들어갔다. 당시 ‘에너지 분야의 대운하사업’이라 불릴 만큼 무게가 실렸다.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그리드

하지만 약 4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그리드의 현장은 그리 ‘스마트’하지 못하다. 기술은 어떻게든 앞으로 가려 하는데 정부는 시간을 허비했고, 발목을 잡는 규제도 여전하다. 전기차 사례에서 보듯 실증 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근거 또한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주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스마트그리드 홍보관.

홍보관을 둘러본 뒤 실제 주민들에게 적용된 사례를 취재할 수 없겠냐고 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실증사업이 끝나면서 스마트미터 등 각종 장비를 모두 수거해 갔다는 거다. 굳이 세금을 들여 갖춰 놓은 시스템을 사업이 끝났다고 원 상태로 돌려놓은 것도 이해가 안 됐지만 더 황당한 이야기가 들렸다. 주민 김모씨는 “알지도 못하는 장비를 갖다 놓기만 하고 1년 내내 설치도 안 하다가 가져 갔다”고 했다. 그는 “설치했더라도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스마트미터는 스마트그리드의 핵심적인 장비 중 하나다. 가정에서 쓰는 전기 관련 정보를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데 사용한 전력량을 시간별로 데이터베이스화해 사용 패턴을 분석한다. 전력요금에 따라 어떻게 전기를 사용해야 할 지 알려준다.

그런데 스마트미터가 아무리 전기 사용량을 자세히 알려줘도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같으면 소용없다. 전기 생산원가는 사용량에 따라 시간대별로 최대 5배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일반 가정의 사용요금은 시간에 관계 없이 거의 같다. 스마트그리드가 현실화되려면 생산 원가의 차이만큼 전력 소비량에 따라 전기요금도 차이를 둬야 하지만 요금체계 개편은 아직 요원하다.

장밋빛 전망 홍보만 무성

전력 재판매 허용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전력 재판매는 값싼 시간대에 전기를 충전했다가 비싼 시간대에 팔거나,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설비를 구축해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민간기업들은 한국전력이 전력 판매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스마트그리드가 활성화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통신사업과 같이 판매시장을 개방하고,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전력은 부정적이다. 표면적으로는 전기요금이 낮은 상황에서 재판매를 도입하면 소비자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독점을 깨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이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대한 활성화를 늦추고 싶어한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정부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보급 활성화 등에 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히면서도 유독 요금체계 개편과 전력 재판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8월 12일 열린 ‘스마트그리드 정책간담회’에서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ESS 보급 활성화 방안’이나 ‘스마트미터 전환 계획’ 등은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하면서도 핵심인 요금체계 개편과 전력 재판매 허용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세부 계획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미빛 전망을 홍보하는데 급급했을 뿐 정책을 세밀하게 다듬지 못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10년 발표한 스마트그리드 국가로드맵을 통해 정부는 지능형 전력망, 지능형 운송 등 분야마다 단계별 추진전략을 세웠지만 기술개발 부분을 제외하고 제도 개선, 상용화 등은 진전된 것이 거의 없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세운 애초 기본 계획과도 현실은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7월 발표한 제1차 지능형전력망 기본 계획에서 2016년까지 전체 고객의 50%(약 1000만호)에 스마트계량기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올해까지 305만호 보급 목표도 세웠다. 전기자동차용 충전기 역시 올해까지 6000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내년까지는 무려 3만2000기다. 지금도 불가능하지만 내년 목표 역시 달성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업통상자원부 또한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실질적인 성과 확보에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세계적인 대규모 실증사업을 추진했지만 요금 현실화, 전력 판매시장 경쟁 도입 등 핵심 이슈를 추진하는데 부진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이 일단 스타트를 끊었다는 점이다. 5월에 끝난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에서 검증된 기술·사업모델을 민간 중심으로 사업화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한국전력·KT·LS-LG 등 총 8개 컨소시엄을 예비사업자로 선정했다. 문제는 시행 시점이다.

산업부는 이들 예비사업자의 예비타당성 검토결과를 올 연말까지 기획재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검토 결과는 내년 4~5월쯤 나온다. 이를 통해 내년 말에 최종 사업자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한 컨소시엄 관계자는 “애초 로드맵에 따르면 2011년 거점도시 사업자가 선정되고 올 상반기에는 사업에 들어갔어야 했다”며 “이렇게 되면 결국 2년을 늦추는 셈인데 수년 간 수익을 못 내고 있는 기업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재원 조달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비 비중을 50% 이내로 제한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많다. 산업부가 추산한 사업비는 약 1200억원. 600억원은 민간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수익을 거두려면 최소 5~10년이 걸리는 사업인데 민간기업에 부담을 과도하게 떠 넘기는 것 아니냐”며 “제주 한 곳에서 실증단지 사업을 하면서도 2000억원 넘게 투입했는데 확산사업에 더 적게 투자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매출·수출액 3년 연속 감소

녹색성장의 총아라던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어두운 현실이다. 스마트그리드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녹색산업이 침체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연 1조원 가량을 쏟아 부은 신재생에너지의 침체는 뼈아프다. 세계 수요는 부진했고, 내수 성장은 더뎠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 매출은 2010년 8조1280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가 2011년 7조8840억원, 작년에는 7조4980억원으로 연속 감소했다. 신재생에너지 수출액 역시 2010년 45억3500만 달러에서 2011년 43억800만 달러, 지난해 41억7900만달러로 줄었다. 올해는 38억200만 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광 부흥의 상징이라 했던 OCI의 새만금 투자 계획은 규모가 3분의 1로 줄고, 알맹이가 빠졌다. 2010년 계획 발표 당시 OCI는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규모는 3조원으로 축소됐고, 이마저도 애초 지으려던 태양광 소재 생산라인이 아닌 열병합발전소와 카본블랙 생산라인이다.

2009년부터 추진한 새만금 풍력단지 조성사업 역시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중단됐다. 삼성·LG·포스코 등 대기업도 너나 할 것 없이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우후죽순 쏟아졌던 녹색금융상품 역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상황이 이러니 시장의 반응 역시 미지근하다. 한국거래소 녹색산업지수(KRX Green)는 이 상황을 잘 말해준다. ‘KRX Green’은 정부로부터 녹색인증(녹색전문기업·녹색기술 등)을 취득한 기업 20개를 대상으로 산출하는 주가지수다. 녹색산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다.

2010년 10월 21일 1212.70포인트였던 KRX Green 지수는 적극적인 녹색산업 육성 의지가 반영되면서 2011년 4월 21일 1312.23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태양광 열기가 식고, 삼성전자에서 태양광 사업을 이관 받은 삼성SDI, 태양광 소재를 만드는 OCI 등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불과 6개월 뒤인 10월에 700포인트대로 떨어졌다. 그리곤 2년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녹색산업에서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수요의 부진과 기업의 소극적 투자 등을 침체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 태양광 업체 이사는 “지난 정부는 장미빛 전망을 앞세워 산업계를 과하게 독려했고, 현 정부는 집권 초기 창조경제를 앞세우느라 녹색 산업을 외면한 측면이 있다”며 “정부가 방향을 못 잡으니 기업도 망설이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올 초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녹색성장은 뒤로 밀렸다. 녹색이 빠진 자리는 창조가 대체했고, 부처의 조직 이름에서도 ‘녹색’은 속속 빠졌다. 서울 광화문 KT 사옥 1층에 있던 녹색성장체험관이 미래창조과학부가 운영하는 청년경제 교류공간으로 바뀐 게 상징적인 사례다. 녹색성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녹색성장위원회는 집권 9개월만인 10월 말에야 겨우 첫 회의를 열었지만 대통령 직속이던 위상은 국무총리실 산하로 격하됐다.

지난해 10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치에 성공한 건 기적’이라고까지 홍보했던 녹색기후기금(GCF)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조직에서 GCF 담당하던 곳은 사라지거나 축소됐고, 재원 마련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주도해 설립한 첫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역시 의장의 공금 유용 논란으로 일부 회원국이 지원을 중단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그나마 녹색성장위원회의 활동 재개와 함께 하반기 들어 녹색 성장이 다시 주요 정책 과제로 떠오를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16일 세계에너지총회(WEC) 연설에서 “에너지 산업은 창조경제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라면서 “에너지저장장치, 에너지 관리시스템(EMS) 등 ICT를 활용해 전력 소비를 줄이고, 절약된 전력을 전력 거래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럽 순방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날에는 르노 전기차 체험센터를 방문해 2인승 전기차에 직접 탑승하면서 “전기차 개발은 창조경제의 좋은 사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힘을 보탰다. 황 대표는 11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창조경제는 녹색산업과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며 “더 큰 관심과 투자를 통해서 녹색산업을 창조경제의 한 축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2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김상훈 의원은 “조력이나 풍력도 여의치 않고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는 앞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발전 수단”이라고 했고, 이강후 의원은 “지난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하게 추진했지만 이것을 현실적으로 할 수 있을지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런 걸 두고 손발이 안 맞는다고 한다.

4대강 사업 등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전략 부재로 사업이 내실 있게 진행되지 못했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이란 구호를 내세운 타이밍과 방향까지 틀렸다고 보긴 어렵다.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와 자원효율 개선, ICT와 환경을 연계한 신사업의 창출은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다.

신재생에너지만 봐도 그렇다. 올해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4% 성장한 2713억 달러로 추정된다. 2020년에는 3492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0년 5.8%에서 2020년 11.8%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황이 좋지 않다고 투자를 멈출 분야가 아니라는 뜻이다.

속도 높이는 유럽·중국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러려면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첫 번째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는 5년만 한다고 결과를 낼 수 없는 큰 그림이란 점에서 유사하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 공과 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든 꾸준히 챙겨야 할 정책이란 뜻이다.

양수길 전 녹색성장위원장은 “기업은 정부의 일관성 있는 시그널을 기대한다”며 “녹색성장과 에너지 분야 중장기 비전을 재확인하고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시장이 자극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존 화석연료의 수요는 억제하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릴 수 있는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그러려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시장기능을 도입해 전력 판매 시장에도 경쟁을 유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는 지금 ‘녹색성장’이란 출발점에 서 있다. 기술이나 인프라 격차가 크지 않다. 의지와 전략이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정권교체기를 거치면서 동력을 약간 잃었는데 이 사이 다른 나라들은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의 기세는 매섭다.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패러다임의 하나로 창조형 에너지경제를 이야기한 만큼 속도를 높여야 한다. 지난 정부가 녹색성장이란 구호를 만들었다면 이번 정부는 산업과 시장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한다. 지체하지 말고 치고 나가자.”

서울대 전기공학부 문승일 교수의 조언이다. 반대로 해석하면 조금만 시간을 허비하면 금세 뒤쳐진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1213호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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