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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꿈꾸는 사보이의 도전 

조성식 사보이홀딩스 사장 

56년 전통 호텔 기업 … 부동산·교육·바이오 분야로 사업 확장
서울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만난 조성식 사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키우는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의 호텔 명가 사보이(Savoy)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호텔을 넘어 부동산·교육·바이오·외식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엔 대명그룹과 손을 잡고 서울 상암 DMC 오피스텔 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조성식 사보이홀딩스 사장은 “사보이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호텔명가 사보이그룹의 변화와 도전을 살펴봤다.

서울 명동은 언제 봐도 활기 넘치는 장소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놀러 나온 교복 차림의 청소년, 지도를 펴 든 외국인 관광객, 중국어와 일본어로 호객 중인 화장품가게 종업원 등으로 가득한 거리다.

현란한 패션숍과 새로 문 연 레스토랑, 공사가 한창인 빌딩이 어우러지며 명동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화려한 명동거리는 1960년대 개발시대에 조성됐다. 지금은 충무로 1가부터 명동 성당 앞길을 지나 을지로 1가 외환은행 본점 주변 골목까지 화려한 간판이 가득하지만 초기에는 서울지방우정청 뒷골목인 명동 8나길이 최고의 번화가였다.

이곳에 한때 명동의 랜드마크로 불린 사보이호텔이 있다. 여기서 11월 15일 만난 조성식(44) 사보이홀딩스 사장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지금은 수많은 호텔이 성업 중이지만 할아버지가 호텔을 세운 1957년에는 사보이가 명동의 유일한 호텔이었습니다.”

1950년대 명동의 유일한 호텔

사보이호텔은 1948년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9년 뒤인 1957년 정식으로 법인등록을 마쳤다. 호텔을 세운 조 사장의 조부 조준호 회장은 증권인 출신의 기업가였다. 일본 도쿄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조 회장은 사보이상사를 1930년에 세워 사업을 시작했다. 1934년에는 동아증권을 설립했다.

명동에 점포를 낸 후 국내 주요 도시와 일본 오사카에 통신망과 연락망을 가설했다. 도쿄와 오사카 주식시장 시세를 어느 중개점보다 신속히 전달해 광복까지 거래 수위를 놓치지 않았다. 현재 한국거래소 격인 조선취인소 전체 거래의 10% 이상이 동아증권을 통해 이뤄졌다. 주식 거래로 300만원(현재 가치 3000억원)의 부를 축적한 조 회장은 이를 호텔업과 무역업에 투자했다. 한국을 대표할 호텔의 필요성을 느껴서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 사람은 호텔에 출입할 기회가 제한됐습니다. 사보이호텔이 개장하자 여러 곳에서 투숙하게 해달라는 부탁까지 들어 왔습니다. 호텔에 어떻게 투숙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보이호텔은 금세 장안의 화제가 됐다. 기업인·공무원·정치인 같은 사회지도층이 모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행사가 열렸고 연예인들이 공연을 벌였다. 1970~80년대 서울에서 열린 주요 행사 상당수가 사보이호텔에서 열렸다. 깔끔하게 단장한 호텔 곳곳에는 여전히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지하 일층 구디구디는 한때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는 라이브클럽이었다.

김세레나·문주란·이은하·태진아 등이 공연을 펼쳤다. 지금은 뷔페식 레스토랑으로 변신했지만 은은한 조명과 목조 분위기를 살린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장소다. 조 사장은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장소지만 저녁이면 30년 전 명동을 기억하는 나이 지긋한 고객도 들려 회상에 잠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호텔 2층의 커피숍도 꽤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은 1970~80년 대 서울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한 맞선 장소였다. 사보이호텔 커피숍은 평일에도 하루 200∼500명이 몰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보이호텔 관계자는 “예전에 지체 있는 집안 사이에서 혼담이 오가면 우리 호텔 커피숍에서 선을 봤다”고 말했다.

사보이호텔 별관의 중국요리점과 일식당도 명동 최고의 음식점으로 이름이 높았다. 주방장 사관학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많은 요리사가 이곳에서 요리를 배우며 꿈을 키웠다. 이 역시 시간이 흐르며 하나 둘 문을 닫고 지금은 호텔과는 관계없는 패션 브랜드에 임대됐다.

그러는 사이 사보이호텔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경험했다. 라이브바가 레스토랑으로, 음식점이 패션숍으로 변했다. 조 사장은 “이제 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큰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부동산 개발사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명그룹과 손잡고 시작한 상암 사보이시티 DMC(Digital Media City) 프로젝트다.

그는 “사보이 미래의 중심에는 상암 사보이시티 DMC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상암동 상암DMC 상업업무용지 내 B6-1블록 5378㎡ 부지에 지하 4층~지상 16층 규모의 오피스텔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대명그룹과는 10월 22일 전략적 파트너십 조인식을 했다.

“부동산 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10년 넘게 착실히 준비했습니다. 시공과 빌라 사업, 투자 사업을 벌이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사보이의 차세대 성장 동력은 라이프 스타일 산업입니다.”

라이프 스타일은 사람의 의식주에 기반한 사업이라고 그는 말한다. 호텔업은 사람이 머물고 생활하는 주거 환경인 부동산에 기반한 사업이라고 했다. 사보이그룹은 꾸준히 부동산 관련 사업을 벌여왔다. 2000년대 초반 진로그룹에서 서울 서초동 수퍼빌 개발사업을한 부동산개발 법인을 인수해 전문성을 키웠다.

2003년 민자역사 개발 사업을 진행했고, 서울 을지로 명동성당 바로 옆에서 진행중인 을지로 개발 사업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2008년 중국 심양에서 주상복합빌딩 개발사업에 하나대한투자증권과 함께 금융 재무투자자로 사업을 벌인 경험도 있다.

“20차례 이상 중국을 방문해서 현지 상황과 시장 분위기를 분석하며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담당 공무원, 현지 개발업체와 씨름하며 일했습니다. 당시 중국 파트너가 지금 베이징과 칭타오에서 대형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데, 아직도 우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도 부동산 시장이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있다. 개발업체들이 문을 닫고 대형 건설사마저 휘청대는 현실이다. 조 사장은 지금 시장 상황을 옥석을 구분하는 시기라고 본다. 알짜 기업만이 살아 남고 수익성이 가장 확실한 사업에만 자금이 몰린다. 그는 상암 프로젝트가 그중 하나로 보고 있다. 조 사장은 “지난 10년 간 부동산 시장을 면밀히 관찰하며 사업을 준비했다”며 “상암 사보이시티 DMC를 시작으로 제2, 제3의 사보이시티를 전국 곳곳에 건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사보이시티 건설


기업의 변신을 주도하는 조 사장은 3세 경영인이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 국제학부를 수료하고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학과를 나왔다. 이후 일리노이대 MBA를 거쳐 중국 베이징대에서 국제경제법을 공부했다.

조 사장은 선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24세의 젊은 나이에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최연소 상장기업 대표이사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후 20년간 어머니 신현숙 회장과 형 조현식 부회장과 함께 기업을 이끌었다.

“다른 기업을 보면 선친이 경영 수업을 시켜주며 노하우를 알려주는데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대신 어머니와 형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시로 형과 이야기하며 기업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가족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사장은 자신의 역할을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키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보이그룹을 ‘라이프 스타일 기업’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머무는 곳, 재미와 더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행동을 지원하는 기업이란 의미다. 이를 중심으로 사보이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

조 사장은 경영 참여 초기 교육사업 쪽을 맡아 능력을 발휘했다. 사보이그룹은 1989년 설립된 CBS영재교육학술원을 인수했다. 2006년 조 사장은 CBS상호 사용을 중지하고 병행해서 사용하던 KAGE(Korea Academy of Gifted Education)로 상호를 통합·변경하고 제2의 창업을 선포했다.

영재 판별검사를 거친 상위 3%의 영재와 15%의 잠재적 영재를 뽑아 특수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지금 KAGE영재학술원은 전국에서 27곳의 영재교육원과 30개의 영재심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만 4~11세의 영재 약 400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 최대 규모의 영재교육원이다.

미국·중국에 영재교육 기관 수출 추진

“한국에선 인재가 재산입니다. 영재들이 그냥 묻히는 상황 안타까워 시작했습니다. 지능과 창의력이 탁월한 아이들에게 일반 학교 교육만으로 공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영재교육은 창의력 개발 교육입니다.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고, 응용학문의 기초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

그는 영재 교육원을 해외에 설립할 계획이다. 영재교육 이론의 종주국은 미국이다. 하지만 영재학급을 운영하거나 대학에 조기 진학하는 구조다. 한국처럼 독립 교육업체가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영재센터는 없다. 미국 교육기관이 KAGE교육학술원에 흥미를 보이는 이유다. 교육열이 높은 중국에서도 자주 문의가 온다. 뛰어난 영재는 많지만 적당한 교육기관을 찾지 못해 재능을 키우지 못한 사례가 많아서다.

“우리 시스템을 적용하길 원하는 미국과 중국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진출하고 또 현지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 기관을 운영할지 이들과 협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밖에 다양한 아이템을 검토하고 있다. 그간 새로 진출한 사업도 있다. 창의력·수학·영어 등 영재교육과 연계한 교육 콘텐트 제작 사업이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자 대기업에서 관심을 보였다. 조 사장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CJ에듀케이션즈와 손을 잡았다. 그는 현재 CJ에듀케이션즈의 지분을 소유한 주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조 사장은 성장 가능성이 큰 모바일 게임과 건강식품 분야에도 관심이 있다. 온라인 게임 크리티카 개발사로 유명한 올엠과 온라인 모바일 게임 합작법인 펀플로(Funflow)를 설립했다. 모바일 게임업체 게임빌과는 최근 모바일 퍼블리싱 조인식도 했다. 원광대 교수가 설립한 원광바이오를 인수해서 홍삼제품도 개발·생산하고 있다. 원광바이오에서 개발한 제품은 일본과 중국 판매를 코 앞에 두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바람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 브랜드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세븐일레븐 그룹과 손잡고 제품을 유통할 계획이고요. 중국에서는 동인당과 제휴를 협의 중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건강보조식품 홍삼을 대장금 브랜드로 수출하는 것이 세계 속에 한국이란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고령화가 한창입니다.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건강식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생각입니다.”

벌인 일이 많다 보니 조 사장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머물곤 한다. 명동 사보이호텔 5층의 10㎡(3평) 남짓한 집무실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였고, 또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많은 후계 경영자들은 짧은 기간에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조 사장은 일은 실무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CEO의 역할은 사업의 방향을 잡아주고 직원이 능력을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친이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결과 보겠다고 조바심 내지 말아라. 서두르지 않아도 쉬지 않고 꾸준히 가면 된다.’ 재촉하면 실수 합니다. 사보이의 위기관리 비결입니다. 조금 더 생각하며, 돌다리 두드리는 심정으로 사업 벌이고 있습니다. 천천히 오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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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호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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