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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난도어 산맥 줄기에 ‘인삼랜드’ 꿈 

미국에 한국산 장뇌삼 심는 교포 

박성균 중앙일보 워싱턴지사 기자
美 연방공무원 출신 박해주씨의 장뇌삼 도전 ‘한옥마을 힐링센터’도 추진

박해주씨가 셰난도어 산맥 줄기 끝자락에서 찾아낸 인삼랜드 부지. 12만1400㎡ 중 4만500㎡의 나무를 벌목한 곳에는 동물농장과 한옥마을이 들어설 예정이다.


“바쁘게 이민생활을 하는 한인 동포들과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사는 미국인들의 마음에는 쉼표가 필요합니다. 장뇌삼의 향기도 맡고 숲 속에 난 오솔길을 걸으며 삶을 돌이켜볼 수 있는 힐링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미국 동부의 등줄기인 셰난도어 산맥의 한 줄기에 ‘인삼랜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박해주씨. 숲 속에 지어진 한옥에서 잠을 자고 난 뒤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서 명상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널찍한 숙소와 회의실 등의 시설도 마련해 청소년들의 여름캠프도 운영할 수 있다.

30년 가까이 미 연방정부에서 근무한 그는 지난해 사표를 냈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들어가기 어려운 안정적인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며 만류했지만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 마음이 온통 인삼밭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쯤 우연히 한국에서 인삼밭을 운영하는 분을 알게 됐습니다. 그 때부터 마음을 빼앗기게 된 거죠(웃음). 웨스트버지니아와 버지니아에 걸쳐있는 셰난도어 일대의 땅을 찾아다녔습니다. 장뇌삼을 심기 좋은 토질의 땅을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미국 셰난도어 산맥 줄기에 한국 장뇌삼을 키우는 박해주씨(왼쪽). 인삼랜드 부지에서 벌목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캐낸 미국 산삼.
10년 헤맨 끝에 장뇌삼 재배 최적지 찾아

장뇌삼을 심기 좋은 곳은 나무가 적당히 우거져있고 배수가 잘 되며 건조하지 않는 숲이라고 한다. 거기다 햇볕이 직접적으로 내려 쬐지 않으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숲이어야 하는데 나무가 빽빽하면 너무 어두워 삼이 자라기 어렵다.

잣나무 등 침엽수와 참나무류의 활엽수가 적당히 섞인 숲이면서 유기물이 풍부한 검은색의 땅. 서부의 록키산맥만큼이나 넓고 긴 지역에 펼쳐져 있는 셰난도어 산맥이었지만 장뇌삼을 위한 명당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10년 간 땅을 찾아다니던 그의 눈을 사로잡는 숲이 발견됐다. 셰난도어 산맥의 줄기와 평지가 연결되는 지역인 컬페퍼 카운티의 12만1400㎡ 숲. 지난해 2월 이 땅을 구입한 그는 말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입고 다니던 연방공무원에서 흙투성이의 작업복에 수염이 덥수룩한 인부이자 예비 심마니로 변신했다. 나무들이 무성하게 있는 숲에 장뇌삼 씨를 심고 숲의 일부를 개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장뇌삼은 보통 5~6년 후에 캘 수 있기 때문에 성미가 급한 사람은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이다. 지난해 그가 숲의 일부에 심은 장뇌삼은 싹이 나서 잘 자라고 있는데 그는 올해 또 다른 구역에 장뇌삼 씨를 뿌릴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벌목 작업을 아직도 계속된다. 전체 12만1400㎡ 숲 가운데 4만500㎡ 정도 숲의 나무를 잘랐다. 숲에 길을 내고 한옥 등을 건축하고 오리 등 동물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골 백인 인부들을 고용해 대대적인 벌목 작업은 했는데 잘라낸 나무의 양이 산더미를 이뤘다. 숯을 만들거나 땔감·울타리 등으로 쓸 것을 제외한 나머지 잡목 등의 나무를 태웠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서 만든 큰 구덩이에서 이 나무들을 태우는 데에 5일이 걸렸다고 한다. 벌목 작업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셰난도어 자생 산삼을 캐는 횡재도 했다. 장뇌삼을 키우기 좋은 땅임을 확인한 셈이다.

요즘 그는 집에서 짐을 싸고 나와 숲에 친 텐트에서 기거한다. 다용도 포크레인을 구입해 직접 운전하며 세부적인 개간 작업을 혼자 계속하고 있다. 인부를 고용해서 할 수 있지만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인삼랜드’를 하나씩 일궈나가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음식과 옷가지를 챙겨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는 부인은 올 때마다 그에게 집에 가자고 설득한다고 한다.

“아예 텐트를 치고 이 숲에서 혼자 기거하고 있습니다. 카네기멜론대를 나온 뒤 의대에 다니는 딸과 아내는 왜 사서 고생하냐고 말리기도 했지만 사나이가 칼을 한 번 뽑았으면 뭔가 결과를 내야지요.”

숲에서는 해가 일찍 지기때문에 밤에 혼자 있는 그에게 외로움과 고독감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한다. 곰과 여우 등 야생동물이 많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엽총도 준비했다. 하지만 그에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녀처럼 살갑게 구는 것이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구해온 풍산개 두 마리. 진돗개만큼이나 용맹하기로 이름난 풍산개는 그의 든든한 보디가드다. 또한 거위와 오리·닭 등을 키운다. ‘인삼랜드’에 앞서 작은 ‘동물농장’을 운영한다.

한 번은 곰이 나타난 적이 있는데 이들 풍산개가 쫓아냈다. 숙소 근처에 갑자기 나타난 뱀을 물어 죽이기도 하고 숲 속에서 야생동물의 기척이 있으면 용맹하게 달려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이 곳을 방문한 백인 이웃이 데려온 독일산 셰퍼드가 풍산개를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자기방어에 나선 풍산개가 셰퍼드를 물어 셰퍼드가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미국에는 드문 이들 풍산개는 8마리의 새끼를 났는데 셰퍼드 주인이 분양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해왔다.

풍산개 보디가드 삼아 산 속 텐트 생활

온통 레드넥(백인 시골농부)들이 사는 지역에서 진셍(인삼)을 키우겠다고 숲에서 생활하는 황인종이라 이 지역의 명사가 됐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백인 농장주들도 이젠 친근한 이웃이 됐다. 박씨는 이들 사이에서 서부시대의 개척자에 빗대어 ‘진셍 파이오니어’라고 불린다.

셰난도어의 심마니가 된 박해주씨의 인삼랜드는 이르면 내년 말 일부 개장할 예정이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지인들이 캐나다와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박씨의 숲을 찾아와 캠핑을 하고 가기도 한다. 그는 하루에 대여섯 차례 숲 속을 거닐며 싹이 난 장뇌삼을 돌아본다고 했다. ‘인삼랜드’이자 ‘힐링랜드’의 비전을 차곡차곡 이뤄나가고 있는 그는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차근차근하게 일을 하면서 내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며 “셰난도어 숲 속에 장뇌삼 향기가 가득 찰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1214호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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