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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더 큰 버블이 필요하다 

노무라증권 ‘금융위기 끝났다’ 주장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경기회복 낙관하기엔 불황의 골 깊어 … 美 양적완화 유지 불가피

▎11월 26일(현지시간) 미 로스앤젤레스의 월마트에서 고객들이 예년보다 이른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에 나온 모니터 제품을 살피고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재정정책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11월 27일 ‘2014년은 종말론 종말의 해’라는 리포트를 내놓았다. 지난 5년 간의 금융위기는 마침내 끝났으며, 시스템 리스크(체제 위험)는 더 이상 투자자들의 마음을 짓누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자산시장은 20개월 이상 회복 중이며 미국 가계의 재정상태는 크게 개선됐다. 중국 위안화 강세로 미국·중국 간의 무역 불균형은 감소했고 중국은 개혁에 나섰다. 유로존은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차이가 실질적으로 좁혀졌다. 유럽은 다시 성장하고 있다.’(노무라 전략가 마이클 쿠르츠).

하지만 시스템 리스크가 사라졌다고 해서 꼭 시장에 좋은 것은 아니다. 노무라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년은 거시적 체제 위험이 증시를 지배하지 않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동시에 그 결과로 내년은 위험 압착(인위적인 국채 수익률 하락)이나 주가수익비율(PER) 비율 증가에 의해서만 증시 수익이 결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계 증시는 기업들이 약속한 이윤을 제대로 낼 수 있느냐에 따라 현재의 상승 추세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하락할 것이다.’

미국 증시는 올 들어 25% 가까운 상승률(S&P500 지수 기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상승 요인의 대부분은 기업 이익의 증가가 아니라 유동성 요인(주가수익비율 증가)에 의한 것이었다. 일본과 유럽은 다르다. 일본 증시의 상승은 기업 이익(EPS·주당순이익)의 증가 덕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일본 증시 상승이 대부분 엔화 약세에 기인했음을 보여준다.

노무라 ‘내년은 종말론 종말의 해’

일본 증시는 미국과 유럽과 달리 주가수익비율의 변화로 인한 상승 정도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주가수익비율의 변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금리와 유동성 그리고 인플레이션 전망에 의한 변동이 가장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일본에서의 주가수익비율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일본 시장이 아직도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덜 풍부하거나 혹은 인플레이션 전망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으로 만일 일본에서의 성장 전망이 확인된다면, 닛케이 지수는 더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유럽 증시 상승은 기업 이익의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다. 거의 전적으로 주가수익비율 확대에 기인했다. 이는 2010~2012년 사이에 유로존 붕괴 위기에 따라 주가수익비율이 크게 떨어진 것에 따른 반사효과이기도 하다. 유로존 위기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기업의 존폐 위기에 우려가 희석됐고, 이는 주가수익비율 확대로 이어졌다. 만일 유럽에서 경기회복이 가시화돼 기업의 이윤 증가 전망이 나온다면 유럽 증시도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노무라증권은 시스템 리스크가 사라짐에 따라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투입이 감소하면서, 결국 실적이 모든 걸 좌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증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동성 장세는 끝나고 실적 장세가 시작되는 원년이 내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무라증권은 역시 실적이라는 관점에서도 낙관적이다. 노무라 측은 “우리(노무라)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년의 세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의 6.1%보다 증가한 7.9%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 실적 전망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경기회복 가속화는 선진국에서 더 두드러질 것이며, 신흥시장 성장률은 올해와 유사할 것이며, 중국의 성장률은 6.9%로 정도로 하락할 것’이라고 본다. 선진국 중에서도 일본과 유럽에 대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이다. 미국 증시는 양적완화 축소로 인해 주가수익비율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있으며 신흥시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과연 이 같은 경기회복 낙관은 현실적인 것일까. 금융위기는 정말로 끝난 것인가. 19세기 초반 산업자본주의 이후 세계적인 위기는 이제까지 6차례 있었다. 안와르 샤이크 미 뉴스쿨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그 근본 원인은 ‘기업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것은 1872~1892년의 20년에 걸친 대공황이었다. 역설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은 가장 짧게 끝났다(1928~1938년). 경기 주기를 연구한 콘트라티에프의 장기 파동설에 따르면 이 같은 위기는 약 40년마다 반복되며 평균 지속 기간은 약 15년이다.

그리고 대공황 때마다 자본의 가치 파괴가 발생하며, 이 과정을 거쳐서 이윤율이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금 값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대공황 이후 회복된 이윤율은 이전의 고점을 넘지 못한다. 즉, 전체적으로는 지속적인 하락 경향을 유지한다. 샤이크 교수는 미국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이번 위기가 2005년도에 시작됐다고 본다. 그런데 1970년대의 위기 이후에는 과거의 위기와는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일반적으로 대공황은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통해서 나타난다. 즉, 기존의 금융자본이 축소되고 생산 시설이 폐쇄되며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투자를 통해 이 두 가지는 병행적으로 되살아난다. 그런데 ‘그레이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불린 1970년대의 대공황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해결했다.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금 태환화 정지였으며, 이를 통해 화폐를 상품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말하자면 통화체제 전환을 기획한 것이다.




80년대 美 호황 노동자 희생 덕

1970년대의 대공황이 과거와 다르게 진행된 가장 중요한 배경에는 부채가 있었다. 과거의 대공황처럼 디플레이션을 감당하기에는 부채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이를 ‘재정 국가의 위기’라고 불렀다. 즉, 명목부채 과중으로 디플레이션을 유지하기에는 국가가 파산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시 선진국들은 노골적인 인플레이션 정책을 수행했다.

이런 인플레이션 정책의 핵심에는 통화체제 전환과 이자율 인하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80년대 기업이 호황을 누린 결정적 요인은 실질임금의 감소였다. 샤이크 교수는 만일 1960년대의 실질임금 증가 추세가 1980년대에도 유지됐다면 이윤율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를 재구성했다.

1960년대의 임금 상승 추세가 유지됐다면,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은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1980~1990년대 미국의 호황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임금 상승분을 기업이 가져간 결과였다. 이 같은 경제적 조건에 대한 정치·이념적 표현이 ‘레이거노믹스’ 또는 ‘대처리즘’이었다. 그렇다면 사실상의 실질 임금 삭감에도 소비가 증가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정부는 이를 부채와 자산 가격 상승으로 해결했다.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s)’다.

예컨대 주식 가격이 상승하거나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주식·주택 보유자는 자산 증가분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부자라고 느끼고 소비를 늘린다. 그리고 이런 효과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대중들은 부채를 늘려 앞다퉈 주식이나 주택에 투자를 한다. 사실상 피라미드 판매 모델에 가까운 이런 경제 모델은 어느 순간에는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그 결과가 한국에서 나타나는 ‘하우스 푸어’나 미국에서의 주택 버블 붕괴로 인한 2008년의 금융위기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이후 대공황의 진행 과정은 1930년대 정책과 1970년대 정책의 혼합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1930년대의 디플레이션을 회피하고, 1970년대의 높은 인플레이션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미 금리가 너무 낮은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금리 인하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것이 양적완화(QE)를 수행한 근본적인 이유가 됐다. 즉, 명목금리는 0% 이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양적완화를 통해 실질 금리를 낮추려고 한 것이었다. 지금 미국의 국채 수익률(10년물 기준)의 실질금리는 약 마이너스 1%에 달한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설계 자체가 자산 종류(asset class)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미국연방준비제도가 시장에 풀어놓는 초과 유동성이 집중되는 섹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이 바로 증시와 국채 시장이었고 연방준비제도는 이 같은 자산 리플레이션을 통한 부의 효과가 경기를 회복(이윤율 상승)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을 벗어나지만 심한 인플레이션 상태에는 도달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문제는 리플레이션이 거의 한계 상황에 도달했는데도 이윤율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윤율이 회복되기는 했는데, 지속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데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다우지수 상장 기업들의 올해 실적은 매출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오히려 매출은 감소했다. 이마저도 올 들어 알코아 등 3개의 부진 기업을 다우지수 구성 항목에서 퇴출하고 나이키·비자·골드먼 삭스 등 우량기업으로 대체한 덕에 더 양호한 지표가 나왔다.

만일 양적완화를 중단한다면, 이는 실질금리의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업의 이윤은 오히려 감소 경향을 나타낼 것이다. 그래서 내년을 한없이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노무라증권조차도 미국 증시는 ‘역사적 평균으로의 회귀’ 압력 아래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다. 같은 노무라증권 소속이지만 다른 입장을 취하는 리처드 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일반적인 불황 아래에서는 중앙은행이 창조해 낸 돈은 경제 전반에 침투하며 시장을 상승시킨다. 그러나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 아래에서 민간 섹터는 순예금자(net saver)이기 때문에 민간 섹터가 디레버리징과 예금으로 축적한 자금들은 금융섹터로만 흘러 든다.” 즉, 금융섹터는 버블이 되는데 실물 경제는 오히려 불황이 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것이 바로 최근 폴 크루그먼 교수나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될 뻔 했던 로렌스 서머스가 미국 경기의 영구 침체를 거론하며 “우리는 (더 큰) 버블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증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초과 수요에 의한 버블이 필요하다.

1970년대의 위기 탈출 방식이었던 실질 임금 삭감에 의한 기업 이윤 증가 방식은 이미 경제 양극화가 너무 극심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의 재정정책에 의한 버블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같은 주장은 정치적으로 지지자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론·정치적으로 결국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내년 중간선거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업 이윤율 증가에 재정정책 필수

노무라증권이 말한 ‘시스템 리스크’는 사실은 이윤율 저하의 경제·정치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내년에도 여전히 그 위험은 지속될 것이다. 이는 미국 연방 준비제도가 지속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써서 시장을 부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 미국 주식시장은 버블 우려에도 사상 최고가 경긴 랠리를 거듭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현실이기 때문에 증시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양적완화가 아니라면, 국채수익률에 상한을 정하든지, 아니면 대규모 재정 부양책과 국가 부채 확대를 하든지 뭔가 수가 필요할 것이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

1215호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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