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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재계의 면세점 大戰 - 난공불락 롯데·호텔신라에 신세계·한화 도전장 

 

여행객·중국인 관광객 급증에 매출 사상 최대

▎올 2월 춘절 연휴를 맞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서울 을지로 롯데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최근 면세점 매출 중 중국인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요즘 인수·합병(M&A) 시장엔 유독 호텔 매물이 많다. 르네상스·인터컨티넨탈·콘래드·반얀트리호텔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특급호텔이다. 누적된 불황으로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내놨다. 봇물처럼 쏟아지는데 살 사람은 마땅치 않다. 과거 빠른 현금회전율 등의 이유로 호텔이 비싼 몸값에 거래됐던 걸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특히 ‘대한민국 상위 1% 클럽’을 표방하며 출발한 반얀트리는 불과 5년 새 쌍용건설·현대그룹을 거쳐 세 번째 주인을 기다리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2011년 1635억원에 반얀트리를 인수한 현대그룹은 비슷한 가격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미 회원권 가치가 많이 떨어져 제 값을 받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1조원에 달하는 매각대금(르네상스·인터컨티넨탈)도 부담스럽지만 인기가 떨어진 더 근본적인 이유는 호텔의 수익성에 예전만 못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저가 호텔이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관리 비용은 꾸준히 늘어 수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내수가 정체된 상황에서 기대할 건 외국인 관광객뿐이지만 관광객이 늘어도 특급호텔 매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호텔신라의 지난해 호텔 부문 매출은 약 900억원 가량 줄었다.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객실 개·보수로 몇 달 영업을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업황 자체도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호텔신라의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은 소폭 증가했다. 비결은 면세 사업 부문의 실적이었다. 최근 기업들이 전통적인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꼽히던 호텔과 백화점 대신 면세점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면세점 시장에서 탄탄한 ‘양강 구도’를 형성한 롯데와 호텔신라는 요즘 그야말로 중흥기를 보내고 있다. 호텔롯데의 면세 사업 부문 매출은 2010년 2조1531억원에서 지난해 3조55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면세 사업 비중은 2010년 76.1%에서 지난해 83.2%로 커졌다. 신라면세점 역시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2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불과 3년 새 매출이 2배 가까이 늘었는데 호텔신라의 면세 사업 비중은 처음으로 90%를 넘어섰다. 늘어난 해외 여행객과 외국인 관광객이 쌍끌이를 했다.


신라면세점 사상 첫 ‘매출 2조원 클럽’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에게 면세점은 필수 코스다. 가방이나 시계 등 값비싼 명품을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다 평소 갖고 싶었던 화장품도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공항 면세점이 해외 공항 면세점보다 물품이 다양하고, 멤버십이나 쿠폰 등 서비스가 더 뛰어난 점도 작용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행객은 해외 현지보다 출국 때 공항 면세점에서 더 많은 돈을 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1회 출국당 국내 면세점 평균 이용 금액은 약 46만원에 달한다. 해외 현지 쇼핑 지출액(약 39만원)을 웃돈다. ‘면세점에 가려고 해외 여행 간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만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도 한 몫 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012년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꾸준한 증가세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2009년 121만2306명 수준이던 중국인 입국자는 지난해 392만3190명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신라면세점의 전체 매출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외국인 매출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0%다. 2012년 외국인 매출이 내국인 매출을 추월한 것도 중국인 관광객이 지갑을 연 덕분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었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중국인 관광객이 화끈하게 쇼핑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시내 한 면세점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저우리핑(33)씨는 “한국 면세점에는 루이비통·에르메스 같은 명품뿐만 아니라 옷이나 액세서리 브랜드도 다양해 볼거리가 많고, 진품이란 신뢰가 있어 믿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올 때마다 쇼핑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의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국내 6곳 외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공항, 괌 공항 등 3곳의 해외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의 성적이 좋다. 지난해 롯데면세점은 자카르타공항에서 1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가수 이루를 모델로 활용하는 등 면세점에 대한 현지 인식을 바꾸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아직 투자단계라 매출이 많진 않지만 점차 속도를 높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미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다. 신 회장은 지난해 6월 자카르타 시내에 문을 연 복합쇼핑몰 ‘롯데쇼핑 에비뉴점’ 개점행사에 직접 참석해 면세점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에비뉴점은 롯데백화점과 롯데면세점이 함께 해외에 진출한 첫 사례이자, 국내 기업이 처음으로 해외 시내에 운영하는 면세점이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3월 괌공항 면세점 입찰 경쟁에서도 30년 간 운영해 온 세계 1위 면세점 미국 DFS를 제치고 운영권을 따냈다. DFS가 장기간 운영하면서 시설 투자를 소홀히 한 점을 잘 파고들어 푸드코트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 개선 투자를 제안한 게 주요했다.

면적은 총 2250m²(약 680평)로 향수·화장품·패션잡화·시계·주류·담배 등 전 품목을 취급할 예정이다. 10년 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대대적인 시설 개선 공사를 마치고 5월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동남아시아를 토대로 호주·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지역 진출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신라면세점 시계 편집 매장. 호텔신라는 최근 창이공항 면세점 향수·화장품 사업 운영권을 따냈다. 6년간 4조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롯데는 인도네시아, 신라는 싱가포르서 승부수

롯데와 함께 괌공항 입찰에 참여했다가 고배를 마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몇 달 뒤 싱가포르 창이공항 입찰 경쟁에서 더 크게 웃었다. 지난해 1월 창이공항에 첫 진출한 신라면세점은 현재 시계 편집매장 등 3곳의 소규모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오는 10월부터 창이공항 면세점 향수·화장품 사업 운영권을 넘겨받아 2020년까지 6년 간 매장을 운영하게 됐다. 매장은 1∼3터미널에 있는 20여 개고, 면적은 6600m²(약 2000평)규모다. 인천공항과 함께 세계 최대 허브 공항으로 꼽히는 창이 공항은 괌공항보다 면세점 규모가 훨씬 크다.

창이공항 면세점은 연간 매출액이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4위권의 면세점이다. 특히 화장품 부문은 2012년 매출액이 약 3300억원에 이르는 알짜 사업이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창이공항에서 6년 간 약 4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사업을 획득한 해외 면세점 매장이 모두 가동되면 해외 면세점 매출이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현재 신라면세점 전체 매출에서 외국인 매출 비중은 약 70%다. 해외 면세점 매출까지 포함하면 총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 비즈니스를 통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부진 사장은 창이공항 입찰 당시 직접 나서 사업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며 얻은 노하우를 강조했고, 한국 중소·중견 화장품의 입점을 적극 제안해 창이공항 측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사장은 2010년 신라면세점이 세계 최초로 루이비통 유치에 나설때도 각국 공항 면세점을 일일이 벤치마킹하고, 공항 이용객의 고객 욕구를 철저히 분석하도록 지시해 매장 유치에 성공했다.

창이공항 입성에 성공하면서 신라면세점은 글로벌 빅5 면세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연간 1조원에 가까운 추가 매출을 얻게 되면서 ‘면세유통사업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해 호텔신라를 글로벌 명문 서비스 기업으로 만들겠다’던 이 사장의 미래 전략도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이 사장은 3월 14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성장·내실·혁신을 3대 경영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과를 가시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일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창이공항 진출은 신라면세점의 가격 협상력이 개선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동시에 향후 해외 진출 속도를 높이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적극적인 한류 마케팅을 한국 면세점의 성공 비결로 꼽기도 했다. 롯데면세점은 장근석·김현중·이민호·엑소 등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스타를 모델로 발탁해 매머드급 모델 진용을 갖췄다. 모델 수만 33명에 달한다. 한류 스타와의 팬미팅이나 패밀리 콘서트 등을 개최하면서 호감도를 높였다. 지난해 개최한 11번의 팬미팅에는 1만여 명의 외국인이 찾았다. 소속 모델들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한다.

신라면세점 역시 한류 가수 동방신기를 활용한 여행 상품을 만들고, 팬미팅을 개최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면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에게 인기가 높은 미샤(화장품 브랜드), MCM 등은 한류 마케팅을 잘 활용해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경쟁사 사장 영입해 사업 확대

사업 전망도 밝은 편이다. 2012년 전 세계 면세시장 규모는 558억 달러다. 2011년 대비 21%나 성장했는데 최근 5년간 평균 10% 이상 꾸준히 시장이 커지고 있다. 세계 4위인 롯데와 8위인 신라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약 85%에 달한다. 두 회사 모두 국내 면세점은 유지와 확장, 해외 면세점은 개척에 무게를 두고 전략을 짜고 있다.

실제로 면세점 업체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창이공항 입찰에는 DFS·듀프리·뉘앙스 등 세계 유수의 면세점이 참여했다. 매년 25%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아시아 면세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일단 국내 선두주자인 롯데와 신라가 경쟁을 이겨내고 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사실 면세점은 영업이익률이 약 5~8% 수준에 그친다. 임대료가 비싸서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경우 제곱미터(㎡)당 평균 임대료가 3900만원에 달한다. 서울시 평균 공시지가(약 345만원)의 10배가 넘는다. 2009년 면세 사업에서 철수한 AK 역시 임대료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면세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건 성장 가능성이 커서다. 중국인 관광객 급증 추세에 정부가 추진 중인 크루즈산업 활성화까지 맞물리면 다시 한 번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해외 시장까지 개척하면 영역은 무한정 넓어진다.

이처럼 면세 시장이 해가 지지 않는 황금의 땅으로 부상하면서 후발주자들도 움직임이 바빠졌다. 성영목 신세계조선호텔 사장은 2월 “신세계그룹이 면세점 사업을 뒤늦게 시작했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면세점 입찰에 적극 참여하겠다”며 “역량을 더 키워 해외 진출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호텔신라 사장을 맡았던 성 사장은 면세유통 분야 전문가다.

면세점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숙원 사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경쟁사 사장을 영입할 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 성 사장 부임 이후인 2012년 9월 부산 파라다이스면세점을 인수하면서 면세 사업에 뛰어든 신세계는 지난해 7월 김해공항 출국장 면세점 운영권을 획득하며 세를 불렸다.

아직 시장점유율은 2.3% 정도로 미미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신규 출점에 나설 태세여서 신세계의 움직임에 따라 양강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신세계는 당장은 어렵겠지만 꾸준히 문을 두드리겠다는 각오다. 일단 신세계는 하반기에 있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내 면세점을 추가로 인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화그룹도 나섰다. 한화타임월드는 2월 제주국제공항 출국장 면세점 운영권을 따내는 이변을 일으켰다. 한화타임월드는 연간 임대료로 241억원을 제시해 사업을 따냈다. 롯데와 신라가 막판에 입찰을 포기했다. 두 회사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에 기회를 주는 취지에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직전까지 면세점을 운영했던 롯데는 연간 90~100억원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600억원대의 매출(2013년)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서 스타트 끊은 한화

제주국제공항 면세점은 410㎡(약 123평) 정도로 크기는 작지만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가파르게 성장하는 곳이다. 올해 예상 매출은 1000억원을 넘는다. 한화타임월드는 한화갤러리아가 지분의 69.5%를 보유한 자회사다. 갤러리아는 1990년 국내 최초로 서울 압구정동에 명품 전문 백화점을 열었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명품 백화점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면세점 사업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직 본격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현대백화점도 면세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백화점은 한화타임월드가 따낸 제주공항 면세점 입찰 당시 설명회에 참석했다. 결국 최종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신사업팀에서 면세점 사업 진출을 타진해왔고, 관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관계자의 발언이 나와 가능성은 열어뒀다.

현대백화점의 매출은 3년 연속 6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신규 출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아울렛 등 경쟁 업체가 늘었다.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최근 아울렛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성공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 정지선 회장 입장에선 면세 사업 쪽에 매력을 느낄 만하다.

1229호 (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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