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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3대 악재에 휩싸인 현대중공업 - 잇단 산재, 노사 갈등, 실적 추락 

 

증권사 13곳 목표주가 대폭 하향 ... 해양플랜트 부실 현실화 가능성도

▎4월 21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내 5도크에 있는 LPG운반선 건조 현장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8명. 두 달 새 울산 현대중공업과 계열사에서 산업재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직원의 숫자다. 아무리 현장이 위험하고 거칠기로 유명한 조선업이라지만 해도 너무하다. 3월 7일 현대삼호중공업에서 2t 무게의 철판이 추락해 근로자 1명이 깔려 숨졌고, 20일에는 안전점검 중이던 근로자 1명이 추락사했다. 닷새 뒤에는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에서 족장(높은 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난간이나 발판 등)이 붕괴돼 3명의 근로자가 바다로 추락, 이 중 1명이 사망했다. 회사 측이 긴급 안전점검 등에 나섰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4월 7일 현대미포조선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명이 추락사했다. 21일에는 현대중공업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건조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협력업체 근로자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근처에서 130여 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었는데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 했다. 세월호 참사 닷새 뒤였다. 26일에는 선행도장부에서 일하던 근로자 1명이 목에 에어호스가 감긴 채 추락해 숨졌고, 28일에도 근로자 1명에 바다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4월 28일은 태국의 한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188명의 근로자가 사망한 뒤 지정한 세계 산업재해(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었다.

‘때가 어느 땐데…’ 두 달 새 산재로 8명 사망

연이은 사고에 울산고용노동지청은 5월 2일 현대중공업 내 18개 하역부두 가운데 4곳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현대중공업 역시 잇단 사고에 사과문을 발표하고 조직개편 등 재발 방지대책을 내놨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안전경영부 등 각 사업본부 산하 9개 안전환경조직을 대표이사 직속의 안전환경실로 개편하고, 현장에서 중대한 안전수칙 위반이 있을 경우 안전관리자가 작업중지권을 즉각 발동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이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노조는 강력 반발하는 분위기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4월 29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하청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단체협상(임단협)과 맞물린 시기라 갈등이 더 증폭되는 분위기다.

19년. 현대중공업의 연속 무분규 기록이다. 1987년 울산시청 점거 농성, 1988년 128일간의 파업, 1990년 크레인 점거 농성, 1994년 LPG선 점거 농성 등 한 때 강성 노조의 텃밭이라 불리던 현대중공업은 1994년 총파업 이후 이듬해 첫 무분규 타협에 성공했다. 근로자 사이에 ‘이러다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면서 온건 노조가 자리를 잡은 덕분이었다. 회사 역시 고속 성장을 바탕으로 고용 안정과 양호한 근로조건을 보장해줬고, 이후 20년 가까이 무분규가 이어지면서 기업 노사문화의 모범사례로 자리잡았다.

올해는 공기부터 다르다. 무분규 기록이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안팎에서 계속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번 임단협을 앞두고 기본급 대비 6.51%(13만2013원) 인상과 성과금 250% 인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2002년 13만8912원 인상을 요구한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조 측은 호봉승급분도 현재 2만3000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내놨다.

단체협약 요구안으로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주차장 추가건립, 출·퇴근버스 신설,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의 처우 개선 등이 포함됐다. 김형균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12년 전 13만원과 지금의 13만원은 같지 않다”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노조가 과도한 인상을 요구하는 것처럼 몰아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조, 민노총 재가입설

이에 회사 측은 단체협약 개정안 15개항과 신설 요구안 6개 등 모두 22개 요구안을 4월 28일 노조에 전달했다. 휴일노동 임금 축소, 월차휴가 폐지, 연차수당 축소, 생리휴가수당 폐지 등이다. 특히 ‘노조 방문자의 출입 제한’을 요구한 게 눈길을 끌었다.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 관계자의 사내 노조 방문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민노총 재가입을 추진한다는 설이 돌자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은 2004년 강경투쟁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대중공업 노조를 제명했다. 현재 사내 협력업체 노조는 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지만 현대중공업 노조는 상급단체가 없다.

실제로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가 10년 만에 민주노총 재가입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해 10월 정병모 위원장이 당선된 직후부터 나온 얘기다. 정 위원장은 강성 성향의 군소 조직이 연대한 ‘노사협력주의 심판 연대회의’ 출신으로 ‘강한 노조’를 내세워 당선됐다. 정 위원장은 당선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급단체 가입 여부는 조합원의 뜻에 달려있고, 조합원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여지를 남겨뒀었다. 그러다 정 위원장이 2월 25일 열린 민노총 국민총파업에 참석하

면서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김 실장은 “재가입이란 단어 쓴 적도, 준비한 적도 없다”며 “심정적으로 연대를 생각하더라도 조합원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고, 이런 계획을 진행하긴 이르다는 게 현재의 판단”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임단협이나 통상임금 등 여러 현안에 대해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민노총이든 현대차든 연대할 수 있다는 취지”라면서 “연대와 가입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말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회사 측에선 재가입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상급단체에 가입할 경우 올해뿐만 아니라 향후 협상마다 노조와 부딪힐 게 뻔하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조선업계에서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며 “자동차 업계에서 현대자동차와 유사한데 현대차 임단협 결과가 동종 업계 협상에 영향을 미치듯 현대중공업 노조가 민노총에 가입해 업계의 대표 역할을 하게 되면 노조로서도 더 강하게 임단협에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임단협의 가장 큰 쟁점은 통상임금 확대와 정년 연장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단협이 열리기 전 노사협의회를 통해 통상임금 범위 확대 협상을 하자고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노사간 통상임금 확대 대표소송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 측은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노조와 함께 통상임금 확대에 관한 공동 대응에 나설 태세다.

노조는 또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벼르는 중이다. 현재 노조 조합원이 가진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정년 연장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만이 지난해 집행부 선거 표심에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최근 4~5년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걸 양보해왔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파업까지 이어지는 것은 원치 않지만 이번만큼은 단결력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이와 달리 회사 측 관계자는 “노조가 업황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물론 여전히 노조 내에 온건파가 많아 정 위원장이 뜻대로 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19년째 사측과 조정을 잘 해온 만큼 이번에도 무난하게 합의될 것이란 시각이다.




4개월 새 주가 26.6% 빠져

더 큰 걱정은 실적이다. 올 1분기 현대중공업은 1889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이익률은 급격히 나빠졌다. 전 분기보다 적자폭이 더 늘었고, 전년 동기 3777억원의 흑자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추락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경기 침체에 따른 선가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고, 정유사업(현대오일뱅크)의 마진율 하락까지 겹쳐 영업이익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실적 우려는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연초(1월 2일) 25만3500원이던 주가는 4개월 새 18만6000원(5월 7일)까지 급락했다.

증권사들도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투자의견은 대부분 ‘매수(BUY)’를 유지했지만 목표 주가는 대폭 하향 조정했다. 3개월 새 목표 주가를 낮춘 증권사만 모두 13곳. KTB투자증권은 2월 7일 34만원이던 목표 주가를 24만원으로 대폭 낮춘 데 이어, 실적 발표 직후인 5월 2일 2만원을 더 낮춰 22만원으로 수정했다. 현대증권과 동양증권 역시 각각 32만원, 33만원이던 목표 주가를 두 차례에 걸쳐 23만원으로 낮췄다.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조차 30만원에서 26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부실 우려가 현실화한 것도 아닌데 증권사가 특정 기업의 목표 주가를 30% 가까이 낮춘 것은 이례적이다.

주요 증권사 중 현대중공업의 목표 주가를 그대로 둔 곳은 3곳뿐이다. 동부증권은 32만원, KB·이트레이드증권은 27만원을 유지했다. 사실 현대중공업은 누적된 실적 우려에도 증권사들이 비교적 좋은 평가를 해왔던 기업 중 하나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가 5월 1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10대 그룹 상장사 중 목표 주가와 실제 주가 간 괴리율이 가장 컸다. 평균 30만원 정도였던 목표 주가에 비해 실제 주가는 40% 가까이 낮은 10만원대 후반이었다.

전망도 밝지 않다. 기자와 통화한 5명의 애널리스트 전원은 ‘올해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1980년대 초 세계 조선 업계 1위에 오른 이후 가장 큰 위기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노무라금융투자는 현대중공업의 이번 어닝쇼크에 관해 “주로 조선과 해양, 플랜트 부문으로 인해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며 “수익과 비용에 대한 인식의 불일치로 해외 손실을 일시적으로 가져올 수 있지만, 노무라는 조선의 손실이 3분기 연속될 것을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플랜트 마진에 대한 가시성이 매우 낮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현대중공업의 사업 부문은 크게 조선, 해양플랜트, 정유로 나뉜다. 매출 기준 비중은 정유 부문이 가장 크지만 영업이익률이 1~3% 정도라 실적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핵심은 조선과 해양플랜트다. 회복기에 접어들었다지만 조선업 경기는 아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사들의 선박 발주량이 크게 감소했다. 수요가 줄자 조선소들이 저가 수주 경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떨어졌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조선 부문 매출은 17조4130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영업이익은 130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률이 고작 0.07%다. 저가 수주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2010년과 2011년 영업이익률은 각각 34.23%, 16.17%였다. 공장을 돌려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싸게 수주했지만 만들어 팔아도 마진을 남기기 어려운 처지란 얘기다.

마진 적은 해양플랜트 손실 우려 커져

올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수주잔고를 유지하고 있는 점, 지난해 하반기부터 선가가 상승해 수익성 개선 여지가 있다는 점 등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이강록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2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수주한 저선가 선박이 투입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익성이 좋은 LPG선 건조에서 경쟁사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비해 약점을 가진 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 약점으로 지적된다.

해양플랜트 역시 마진이 문제다. 덩치는 큰데 실속이 없다. 이재원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정형화된 상선과 달리 비정형 구조물인 해양플랜트는 건수마다 설계도 다르고 필요한 기술도 달라 프로젝트별 수익성 편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500억~2000억원 정도인 상선과 달리 해양플랜트 구조물은 한 건 당 보통 1조원이 넘는다”며 “워낙 크고 복잡하다 보니 수주 단계에서 추정한 비용과 실제 공사 단계에서 쓰는 비용 사이에서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업 수주 단계에서는 기본 설계만 가지고 시작하지만 막상 사업을 진행해 상세 설계에 들어가면 예상 못한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상선과 달리 반복 생산의 이점도 없다. 컨테이너선 등은 5~10척씩 시리즈로 수주할 경우 수익성이 좋아진다. 설계 도면의 반복 사용, 공기 단축, 경험 축적 등 여러 면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다. 정상적인 경우 상선 등의 마진율은 20% 내외다. 이와 달리 해양플랜트는 잘해도 10% 정도다. 업체마다 수조원 규모의 대규모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선전하지만 대개는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2007년 전까지만 해도 수익성이 좋고, 건조 기간이 짧은 상선에 집중했다. 하지만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줄면서 해양플랜트로 빠르게 눈을 돌렸다. 올 3월 기준 현대중공업의 수주 잔량(현대삼호중공업 제외)은 573억 달러다. 이 중 32%가 해양플랜트다. 41%인 조선 다음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이 50% 이상 받쳐줘야 탄탄한 수익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불안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강록 애널리스트는 “국내 업체가 해양플랜트 시장에 뛰어든 지 이제 10년 정돈데 나중에 경험이 쌓이고, 견적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이익을 많이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1조원대 부실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우려를 키운다. 저가·부실 수주의 결과다. 해양플랜트 부문은 중국 등 해외 기업과 기술 격차가 크다. 사실상 국내 조선 3사 간의 수주 경쟁이다. 해외 입찰 때마다 3사가 과도한 수주 경쟁으로 가격을 낮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경기가 안 좋으니 돈이 되든 안 되는 일단 따 놓고 보자고 수주에 뛰어든다. 막상 해보니 원가도 더 들고, 한꺼번에 많은 물량을 해결할 기술 인력도 부족하다.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건설 업계에서 논란이 된 ‘승자의 저주’가 조선 업계에서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현대중공업은 3사 중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가장 오랜 경험과 원가 관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흑자를 기대했던 올 1분기 적자로 전환했다. 작업량 증가에 따른 인력 부족과 생산 효율성 저하, 공정 지연에 따른 원가 상승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대중공업도 부실 우려에서 예외가 아니란 뜻이다. 만약 부실이 현실화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1237호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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