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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 상표권 수익 논란, 다른 기업은? 

대기업 지주사도 ‘봉이 김선달’ 놀음 

계열사로부터 수백억~수천억원 받아 상표권 사용료 과도하고 산출 근거 불분명

▎세월호 침몰 사고를 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강연을 하고 있다.



‘고물배’ 세월호가 출항할 때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는 100만원씩 챙겼다. 이른바 상표권 수익(브랜드 사용료)이었다. 검찰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세월호 이름을 지은 유병언 전 회장은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이름값으로 매년 1억원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지난 15년 간 유 전 회장이 지배하는 11개 계열사가 그의 일가에 지급한 브랜드 사용료는 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진미디어라는 곳은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220억4000만원을 상표권 사용료와 컨설팅 자문료로 지급했다. 매년 평균 15억원 정도다.

다판다(187억6000만원)·세모(123억8000만원)·청해진해운(122억7000만원)·아해(116억5000만원)·천해지(101억3000만원) 등 계열사들도 같은 기간, 같은 명목으로 유 전 회장 일가의 축재를 거들었다. 유 전 회장과 4남매 대균·혁기·섬나·상나씨가 특허청에 출원한 상표권은 1663개에 달한다. 심청이·매끄니·멋나라·네모(유병언), 다판다·힘보태·힘세지·주저리 주저리(유대균), 온세계·참맛나지·소쿠리(유혁기) 따위의 상표로 앉아서 돈을 벌었다. 언론은 그들을 ‘봉이 김선달’이라 칭했다.

과연 유병언 전 회장 일가만의 일일까. 국내 대·중소기업은 대부분 계열사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다. 브랜드 사용료는 상표를 가진 기업이나 개인이 이름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것을 말한다. 상표권을 소유한 기업이나 개인이 사용료를 받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 사용료의 산출 근거가 불명확하고 액수도 지나치게 많아 오너 일가나 대주주의 축재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농협도 브랜드 사용료 4000억원 넘게 받아

농협중앙회는 2012년 한 해에만 계열사로부터 4351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걷어들였다. 전체 계열사 매출 대비 1.6%로 다른 금융지주회사보다 평균 9배 많은 사용료를 챙겼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금융지주회사의 브랜드 사용료 수취 현황’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명칭 사용료’라는 명목으로 각 계열사로부터 선지불로 수수료를 받았다.

각 계열사는 적자가 나거나 수익이 적어도, 직전 3개년 영업수익의 2.5% 범위 내에서 수수료를 선지급해야 했다. 실제로 농협금융은 2012년 순이익의 78%인 2267억원을 상표권 사용료로 지급했다. 농협이 인수한 우리투자증권이 사명을 바꿔 ‘농협’을 사용하면 해마다 약 90억~100억원 정도의 사용료를 농협중앙회에 지급해야 한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올해부터 브랜드 사용료 요율을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농협뿐 아니다. 같은 해 신한금융지주는 1142억원, 우리금융지주는 625억원, KB금융은 435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챙겼다. 일반 지주회사도 마찬가지다. SK는 같은 해 그룹 내 계열사에서 브랜드 사용료로 2105억원을 받았다. LG는 2711억원, GS는 828억원을 이름값으로 벌었다. 형(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동생(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오랜 경영권 분쟁을 겪은 금호그룹도 상표권 소송으로 그 실체가 드러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금호아시나아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상표권료를 내라는 소송을 냈다. 금호석유화학과 계열사 2곳이 2009년 11월 이후 미지급했다며 금호산업이 낸 소송가액은 260억원이다. 다시 말해 금호석유화학 한 계열사 당 매년 평균 30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냈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대기업 지주회사는 계열사에서 받는 브랜드 사용료가 주수입원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2003년 19곳에서 2008년 60곳, 지난해는 127곳(일반 지주회사 114곳, 금융 지주회사 13곳)으로 늘었다. 이들 지주회사에 속한 기업은 자회사 680곳, 손자회사 696곳, 종손회사 74곳 등 1450곳에 이른다.

지주사가 벌어들이는 브랜드 사용료는 엄청나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브랜드 사용료를 받지 않던 지주회사들도 손‘ 안 대고 코 푸는’ 돈벌이에 동참하고 있다. CJ그룹 역시 최근 공시를 통해 5개 계열사와 맺은 2014년 브랜드사용료 계약 내용을 밝혔다. CJ제일제당 188억원, CJ대한통운 167억원, CJ E&M 69억원 등이다. 5개 계열사와 맺은 브랜드 사용료 총액은 552억원으로 전년 대비 40억원이 늘었다. 2012년 SK에 편입된 하이닉스는 첫 해 브랜드 사용료로 80억원을 냈고, 이듬해는 180억원을 지급했다.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브랜드 사용료 요율이 기존 매출 대비 0.1%에서 0.2%로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14조1650억원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올해 브랜드 사용료로 240억원 가량 지급해야 한다. 2012년부터 계열사에서 브랜드 사용료를 받기 시작한 포스코는 지난해 19개 계열사로부터 87억원를 벌어들였다.

한편, 계열사가 브랜드를 무상으로 사용하던 한화그룹은 내부적으로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 것을 검토 중이다. 삼성그룹은 20개 계열사가 ‘삼성’ 브랜드를 공동 소유하고 있어, 나머지 계열사가 20개 계열사에 사용료를 낸다. 지주사가 없는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3250억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여기에는 자동차 캐릭터 사용료와 특허권 이전 대가 등이 포함돼 있다.

오너 일가 축재에 악용 소지

브랜드 사용료는 통상 지주사와 자회사 간 계약이나 정관 등을 통해 정해진다. 기업마다 산출 근거는 제각각이다. 일반 기업은 통상 매출의 0.1~0.3%를 받는다. 영업이익의 3~4%를 받는 곳도 있다. 금융사는 브랜드 자산을 평가한 액수에 정기예금 이자율을 곱하거나, 직전 연도 영업수익에 일정 요율을 곱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오너 마음’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주사의 브랜드 사용료가 대주주나 오너 일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브랜드 사용료가 많으면 지주사에 지분이 많은 오너 일가의 배당금이 늘기 때문이다.

정부의 오락가락 행정도 문제다. 지난해 국세청은 신한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5년 간 4600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지급한 것과 관련, 부당거래라며 1350억원을 추징했다가 취소했다. 추징 통보 후 열린 내부 심의(과세 적부심 심사)에서 신한금융지주가 브랜드에 대한 최종 사용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용료를 받는 게 맞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세청은 2005~2007년 신한은행이 브랜드 사용료를 신한금융지주에 내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은 적이 있다. 내도 문제, 안 내도 문제라며 이중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경쟁 당국도 마찬가지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 “지주회사가 계열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이나 브랜드 사용료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계가 없다”며 “하지만 계열사에 특별히 임대료를 비싸게 받아서 부의 이전이 문제되는 경우가 있고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업계에선, 지주회사 지분이 많은 오너 일가가 브랜드 사용료를 통해 과도한 배당을 받는 것 역시 ‘부의 이전’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미국 지주회사의 경우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일본은 일부 기업만 받는 정도다.

1236호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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