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ssue | 삼성생명, 중간금융지주사로 가나?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대비해 지분정리·구조조정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중간지주사 전환 이미 시작 …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 끊어나가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삼성화재·삼성카드 등 금융 계열사만 골라 하나의 지배구조 안에 묶는다는 의미다. 삼성의 비금융 계열사가 삼성생명 지분을 팔고, 삼성생명이 다른 금융 계열사 지분을 넘겨받으면서 이런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생명의 지주회사 전환론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근거는 ‘지분 개편’이다. 4월 22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10월 29일 이후 176일 만에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출근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증시 마감 직후 삼성전기(0.6%)·삼성정밀화학(0.47%)·삼성SDS(0.35%)·제일기획(0.21%) 등 삼성의 비금융 계열사 4곳은 보유 중인 삼성생명 주식 전량(총 328만4940주, 1.63%)을 대량매매 방식으로 기관 등에 처분하겠다고 공시했다. 곧이어 삼성카드는 자사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모두(29만8377주, 0.63%)를 삼성생명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삼성 비금융 계열사, 삼성생명 주식 처분

시장에 나온 삼성생명 주식을 삼성그룹 관계사가 재매입하지 않는다면, 이건희 회장과 삼성 계열사 등 삼성생명 특수관계인이 가진 삼성생명 주식 보유 비중은 51.1%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49.5%로 소폭 준다. 이럴 경우 남은 특수관계인 지분은 이건희 회장 20.76%, 삼성에버랜드 19.34%, 삼성문화재단 4.68%, 삼성생명공익재단 4.68%만 남는다. 비금융 계열사의 삼성생명 지분이 정리되는 것이다. 동시에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화재 지분율은 10.38%에서 11.01%로 높아졌다.

지난해 말에도 삼성생명은 삼성전기·삼성물산·삼성중공업이 가진 삼성카드 지분 6.38%를 넘겨받았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율은 28%에서 34.41%로 높아졌다. 모두 삼성생명의 금융 계열사 지분 확대 흐름의 일환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삼성이 지분 정리를 통해 금산분리 원칙에 맞추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 준수는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되기 위한 기본 요건이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지분 구조가 복잡해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다”면서 “이번에 판 물량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니 ‘시작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어떤 시작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주회사 전환이든 뭐든 되겠지만, 현재 중간 금융지주회사는 법령도, 규칙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번 지분 정리를 이에 대응하는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지주회사 전환론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단초는 ‘조직 슬림화’다. 삼성생명은 요즘 약 10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미 500~600명 규모 인력을 5월까지 자회사 삼성생명서비스(고객관리서비스 전문회사)로 보낸다는 계획을 사내 게시판에 공지했다. 삼성생명 인사팀의 한 직원은 “4년차 이하 사원들을 희망에 따라 삼성의 제조업체 등 비금융 계열로 보내고 있고, 과·차장급은 명예퇴직을 받는 방식으로 인원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인원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금융 계열사 전체 조직 규모를 줄인다는 의미다.

삼성그룹의 한 간부는 “저금리가 길어지면서 금융 계열사 수익이 악화될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일 뿐”이라며 “이미 증권은 (구조조정을) 했고, 카드도 조금씩 하고 있고, 화재도 어느 정도 인원을 줄이는 등 금융 계열사 전반에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계에서는 각 부문에서 점유율 수위를 차지하는 삼성 금융 계열사의 조직 규모 축소를 두고 초대형 이벤트 대응력을 키우는 방편으로 보고 있다. 삼성 금융 부문에서 초대형 이벤트는 지주회사 설립 밖에 없다는 것이 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세 번째 단초는 삼성그룹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배구조 재편’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뒤이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자 부문을,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건설과 화학 부문을,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 부문을 뭉칠 것이라는 큰 그림이 떠오르고 있다. 이 중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 고리 중 하나다.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되면 그룹 전체의 순환출자 구조가 끊어져 지배구조 전반이 크게 변동될 수 있다. 단순히 계열사를 모으고 지주회사를 만드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삼성그룹은 75개 계열사 지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중 삼성에버랜드는 19.3%로 삼성생명을 지배한다. 삼성생명은 7.6%로 삼성전자를, 삼성전자는 37.5%로 삼성카드를, 삼성카드는 5%로 에버랜드 지배한다. 순환출자 고리 중 하나라도 끊어지면 삼성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가 크게 달라진다. 어차피 삼성이 지배구조를 재편하려면 삼성생명의 지주회사 설립은 한 번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금산분리 관련법 국회 통과하면 지분 구조 바꿔야

삼성이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건 국회에 계류 중인 금산분리 관련 법안(특히 중간금융지주회사 법령)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은 억지로라도 지분 구조를 한꺼번에 재편해야 한다. 이에 앞서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번 삼성생명 지분 변화만으로 지주사 전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두 회사에 걸쳐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6%를 쥐고 있다. 주당 140만원으로 환산해도 약 15조원에 달한다. 매각을 하려 해도 매입할 수 있는 주체가 불분명하고, 시장에 무턱대고 내놓을 수도 없다.




1235호 (2014.05.0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