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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불량노인 운동 - “왜 남의 눈치 보며 사나요?” 

 

은퇴 후 자신만의 인생 즐겨 … ‘불량노인구락부’도 탄생



일본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오자와 쇼이치(85)는 불량노인이다. 그는 방송 중에 대놓고 “몸이 이끄는 대로 살아야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매일 늦게 일어나서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먹습니다. 하루에 30개비 정도 담배를 피우고 술도 잘 마시지요. 시간과 돈을 나를 위해서 내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왜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살아야 하나요.”

고령화 국가 일본에는 ‘모범생처럼 살지 말고 세상을 삐딱하게 대하는 노인이 되자’는 ‘불량노인 운동’이 유행했다. 마음 속의 탐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살자는 주장이다. 불량노인 추종자들은 젊은 여성과의 로맨스를 적극 권장한다. 사람 좋은 노인인 척 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려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량노인 운동은 일본의 불교 조각가 세키 간테이(94)가 2001년 펴낸 책 <불량노인이 되자>에서 시작됐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늙었다고 기 죽을 이유가 없다. 세상 달관한 척 굴지도 말고 솔직해 지자는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내 나이가 몇인데 관두자’ 식으로 억누르거나 나이가 많으니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건 인생을 쓸쓸하게 만든다고 본다.

젊은 시절 ‘삶이란 무엇인가’란 고민에 빠져 전국을 방랑했던 간테이는 결국 답을 못 찾았다. 그는 어차피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는 체 말고 흔들리며 살아도 좋다는 결론을 냈다. 당시 간테이가 제안한 ‘불량스럽게 살자’는 주장은 일본 노인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은퇴 한 다음 가족에게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노인들에게 시간과 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자는 주장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불량’은 ‘시들지 않는 삶’이다. 불교 연구자이기도 한 그는 부처가 고행으로 얻었던 깨달음은 바로 ‘안주하면 생명이 혼탁해진다’는 진리였다고 해석한다. 생활의 때를 벗겨내고 번득이는 생명력을 찾는 것이야말로 노인이 가져야 할 태도라는 것이다.

생명은 늙으나 젊으나 똑같이 아름답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성적인 매력을 유지하라.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니 늙더라도 타성에 젖지 말고 죽을 때까지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살자고 말한다. 나이가 젊어도 늙은 사람이 있고, 늙어도 젊은 사람이 있다. 그는 노인이나 어르신이라는 말보다 바람둥이 영감, 난봉꾼 노인네로 불리기를 원한다.

실제로 간테이는 “여자들이 만지고 싶어하는 몸을 만들자”며 매일 밤 술집을 돌아 다니며 젊은 여성들과 연애를 즐겼다. 그는 환갑을 넘어선 이후에도 80명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품위가 없는 노인이라는 눈총을 받으며 결국 ‘불량노인’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불량하지만 그가 행복한 삶을 즐긴 노인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

불량이란 시들지 않는 삶

간테이의 주장에 동의하는 노인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불량노인구락부’다. 2006년 가진 첫 모임 장소에는 ‘뻔뻔한 할머니들에게 대항해서 세상을 바로 잡자’는 구호를 걸어놔 화제가 됐다.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통칭하는 단카이 세대는 일본의 고도성장 시대에 사회생활을 했다. 가족과 대화가 적은 무뚝뚝한 가부장적인 세대다.

은퇴 이후 많은 이들이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의 반응은 달랐다. 퇴직해 나이 든 남편을 지칭하는 ‘오찌 누레바(젖은 낙엽)’라는 말도 나왔다. 아내한테 딱 들어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는 뜻이다. 이에 반발한 노인들이 불량노인 운동에 적극으로 나선 것이다.

불량노인구락부는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누리겠다는 노인들을 회원으로 받는다. 회원 명단과 주요 활동은 비공개다. 주로 온천·등산·술집 등지에서 모임을 열고 서로의 불량스러움을 자랑한다. 연 1회 정기 총회를 여는데, 회원들이 자신의 불량활동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권장하는 활동은 0.1점에서 100점까지 수치화 되어 있다. 누계 1000점이 되면 대형(大兄)의 칭호를 준다.

불량 노년 행동 점수표를 보면 거리에 침뱉기 0.1점, 술 취하기 1점, 청년들과 어울려 다니기 2점, 혼자 여행가기 10점(아내와 동행 -30점), 젊은 애인 만들기 100점 등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노인들의 가벼운 반항인 셈이다. 일본 쥰텐도대(順天堂大) 면역학과의 오쿠무라 야스시 교수도 ‘불량노인 운동’ 지지자다. 그는 “불량노인이 무병장수한다”며 “원하는 행동을 하며 속 편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건강에 더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불량노인 운동의 이면에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일본 고령화의 현실이 있다. 독거노인의 자살이 늘고 있고, 사망했지만 돌보는 이들이 없어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 발견되는 무연고 노인 사망도 매년 수만 건에 달한다. 2012년 일본의 대표적 유행어는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를 의미하는 무연사회(無緣社會)다.

일본 특유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붕괴되자 수많은 노인이 인간관계가 끊어진 채 외로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의 노인 문제는 복합적이다. 사회·경제·문화·가족관계가 얽혀있다. 일본 인구 1억2700만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900만명으로 22%에 달한다.

이 중 대다수의 노인들이 사회 보호망 밖에서 외롭고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은퇴 순간 겪는 변화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노인들도 빠르게 늘었고, 궁지에 몰린 노인들이 저지르는 분노 범죄도 매년 늘어가고 있다.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노인을 지칭하는 폭주노인이라는 명칭까지 등장했다.

불량노인 운동은 고령자 스스로 ‘삶의 질’을 지켜가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노인이 그저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주도적인 인격체라는 것이다. 일본의 불량노인 운동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국민행복지수는 33위, 복지충족지수는 31위로 모두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특히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과 주관적 행복도가 낮아 국민행복 부문의 순위가 낮다는 분석이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 문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젊은 애인 만들면 100점

한국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들었고, 2050년이면 한국이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있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이미 한국에서도 고령층의 경제적 불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독거노인의 증가, 고독사 발생 등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정부는 매년 다양한 고령화 대책을 마련 중이다. 금융회사도 은퇴 노인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안정적인 노년을 위한 금융상품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준비해야 할 점이 있다. 은퇴 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가 불량노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간테이는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모두하면 된다”며 “남들 눈치 보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냐”고 말했다.

1237호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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