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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귀농·귀촌 바람 - 관광·유통·교육···새로운 귀촌 비즈니스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50대 귀농·귀촌 가구 수 해마다 급증 … 도시에서의 경력·경험을 밑천으로 활용



“은퇴하고 나면 촌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지.” 은퇴를 앞둔 직장인들이 푸념처럼 흘리는 말이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가족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다. 나빠진 경기 탓에 대기업마저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은퇴 이후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의 귀농·귀촌 관심이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 인구는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2년(2만7008가구)과 비교해 지난해만 1.2배 증가해 3만2424가구가 귀농·귀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수로 보면 2012년(4만7322명)보다 8945명(18.9%) 늘어난 5만6267명이 농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955년부터 1963년까지 9년 동안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이런 귀농·귀촌의 붐을 주도하고 있다. 50대 귀농·귀촌 가구 수는 지난해 전체 3만2424가구 중 1만420가구로 32%를 차지한다. 국토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대도시에 사는 베이비부머 576만명 중 13.9%가 10년 내에 농촌으로 이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 귀농·귀촌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전 재산을 털어 농지를 매입하고도 매년 농사에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 몇 년 동안 배웠다고 자신하던 농업기술이 현실에 맞지 않아 빚만 지고 물러나기도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 쏟아 붓는 투자액이 매월 눈더미처럼 불어나기도 한다. 결국 가산을 탕진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도 들린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는데 주변에서는 실패한 이야기만 들리는 게 현실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송미령 농촌정책연구부장은 “농사는 상당히 전문적인 일이라 과학적인 정보력과 특별한 경영능력이 필요하다”며 “농업은 관련 시장상황과 기술교육 등을 사전에 충분히 받아야 진입할 수 있는 전문 분야”라고 말한다. 은퇴 관련 전문가들은 “도시에서만 살던 은퇴자라면 현실적으로 귀농보다 귀촌에 관심을 둘 만하다”고 조언한다.

귀농과 귀촌은 다르다. 귀농은 생활에 필요한 소득의 대부분을 영농을 통해 조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농업이 주업이다. 이와 달리 귀촌은 연금, 이자, 임대소득,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이나 체험시설 등 비농업에서 나오는 수입이 주가 되는 농촌에서의 삶을 뜻한다. 보통 귀농을 바라는 사람들 역시 실제로는 귀촌이나 전원생활을 꿈꾼다. 농업은 초심자에게 쉽게 고수익을 몰아주지 않기 때문에 귀농에서 성공하는 도시인은 실제로는 흔하지 않다.

농사에 자신 없다면 귀농보단 귀촌

그럼에도 귀농과 귀촌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법적으로 1000m² 이상의 농지나 330m² 이상의 비닐하우스 등의 시설농지를 가지고 영농활동만 하면 귀농인이 될 수 있다. 농사와 관련없는 직업으로 전원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귀촌인도 집이 들어선 대지 외에 농지를 1000m² 이상만 확보하면 귀농인으로 인정받는다. 귀농인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귀촌인인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귀촌 가구 수는 2만1501가구(3만7442명)로 전체 귀농·귀촌 가구 수의 약 3분의 2를 넘어선다. 하지만 실제 귀촌인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농지만 가진 귀촌인이 귀농인으로 등록한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귀농인이 되면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실제 정부 지원 때문에 귀촌인이 귀농인인양 하는 경우도 많다. 귀농 연령이 만 45세 이하면 영농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훨씬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귀농인에 대해 농지 구입, 시설 설치 등에 대한 구입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가공시설을 만드는 비용이나 그에 따른 운영자금 이자 등도 보조한다. 원래 농촌에 거주하던 농민들과 비슷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도시민이 낯선 농촌 생활에 진입하는데 도움이 된다. 정부가 정한 농산물 생산량만 충족하면 귀농인으로서의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

송미령 연구부장은 “귀농·귀촌인의 생활도 달라지고 있다”며 “전에는 농촌에서 거주만 하려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40대)은 농촌이라는 자원을 활용해 다른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귀촌인들이 영농 외에 생산물을 가공·포장·판매하는 등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익힌 각종 마케팅, SNS 등을 활용한 광고 및 직거래 방식 등으로 영업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농촌의 노인을 상대로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귀촌인도 늘고 있다. 이들은 농촌에 진입하기 위해 수 년 간 받던 특별한 교육과정 없이도 각자 사업성을 고려해 농촌에서 특별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실제 적극적인 귀촌으로 시골마을을 살려낸 곳이 있다. 관광 수입만으로 마을이 연 10억원을 벌어들이는 강원도 정선의 개미들마을이다. 대표적인 귀촌마을인 이곳은 매년 전국에서 4만 여명의 학생들이 찾는 수학여행 코스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자연경관을 엮은 체험형 교육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이는 마을 토착민들과 귀촌자들이 합심해 만든 관광상품이다. 2006년 도시민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프로그램 20개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매년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원래 이 마을은 농사로만 생계를 꾸려가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귀촌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26가구가 전부였다. 주민들도 대개 60~80대 노인들뿐이었다. 가구마다 각각 5000만~8000만원씩 농가부채를 지고 있었다. 농사를 지어도 뚜렷한 소득이 생기지 않으니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그러던 마을이 관광산업을 시작했다. 도시에서 10여 년 간 교편을 잡던 최법순씨가 2003년부터 이 마을 이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최씨는 “빚 때문에 망가진 마을공동체를 농업이 아닌 다른 소득으로 회복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마을 어르신들을 오랫동안 만나 설득하는 한편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전념했다”고 말했다.




귀촌마을의 대명사 개미들마을

최 이장은 막연히 농업에만 전념해오던 사람들에게 마을의 전통 문화와 자연경관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설득했다. 평생 농업에 종사한 주민들에게 서비스업의 가치와 필요성을 역설했다. 교직 생활에서 알았던 수도권 동료 교사들에게 농촌 체험형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도시 교사들은 2006년 선보인 교육프로그램에 만족했다. 2007년 본격 시행된 수학여행 프로그램에 수도권 7개 학교가 동참해 2000여명의 학생들이 개미들마을을 찾았다.

4월~11월까지 개장하는 수학여행 사업으로 개미들마을은 매년 10억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마을 주민들은 1년 중 70일 동안 마을일에 참가하고 2500만원의 농외소득을 번다. 개미들마을은 관광 사업으로 농가부채를 없애고 인심이 두둑한 공동체로 변모했다. 마을 주민들은 프로그램이 폐장되는 겨울 동안 전문 강사를 초빙해 서비스 마인드를 기르는 교육을 받는다. 서비스 교육은 새로 온 귀촌인과 토착민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귀농귀촌 관련 펀드도 나와

개미들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이곳으로 귀농·귀촌하겠다는 문의가 늘고 있다. 농업보다 관광업에 관심을 가진 귀촌 지망자가 많다. 귀촌인이 늘면서 마을은 현재 41가구로 늘었다. 최 이장은 농촌마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농업에만 매달리지 않는 젊은 귀촌인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귀촌을 하겠다고 해서 무한정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최 이장은 “올해도 귀촌을 받아 50가구를 채우고 싶지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현실을 모르고 귀촌을 하겠다는 사람이 문의하는 사람의 반을 넘는다”면서 “귀촌이 귀농보다는 쉽다고 생각해 낭만적으로 보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귀촌은 휴양과 달리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버는 문제이기 때문에 심각하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개미들마을은 새로 귀촌할 사람들을 위해 마을에 나온 빈 집을 모두 매입해 둔다. 귀촌이 확정된 사람에게 매입가 그대로 매각하기 위해서다. 마을의 공동 사업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받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최 이장은 직접 채용도 한다. 개미들마을에 필요한 인재를 널리 찾아보고 마을 사업을 위해 귀촌을 유도하는 것이다.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직접 운용하는 5명 중 3명이 이런 과정을 거쳐 귀촌했다.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이들 운용자들은 관광학 전공자가 운영이나 진행을 담당한다. 또 전자통신 전문가가 마케팅을, 무역학과 출신자가 관리, 법무사 사무실에서 경리를 봤던 사람이 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개미들마을에 귀촌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사업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 마을공동체에 참여하지 않으면 어렵게 만든 공동체 사업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3개월 이상을 개미들마을에서 직접 살아봐야 한다. 농사를 지어보고 옆집 일도 도와주면서 마을의 실상과 귀농의 현실 등 몰랐던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또 2년 동안은 귀촌 구조상 소득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농업기술·경지면적 확보 등으로 자본이 의외로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최 이장은 “이런 과정을 넘겨서 귀촌을 해야 후회 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귀촌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 보려면, 일단 여러 지역을 다녀보는 것이 좋다. 귀촌 비즈니스는 주거지에 근거한 비즈니스이기때문에 사는 지역이 가장 중요하다. 각 지역별로 할 수 있는 일이나 사업 기회가 판이하기 다를 수 있다. 정착하려는 지역의 농촌기술센터, 농축산 관련 지방대학을 찾아가 현지 사정과 비즈니스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지역에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챙겨봐야 한다.

이와 관련 지역 40개 시군에 있는 귀농귀촌정보센터를 방문하면 부동산 매입부터 각종 정부 지원, 해당 지역에 필요한 비즈니스 수요 등을 맞춤형으로 상담 받을 수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인턴처럼 1~2달 해당 지역에서 살아보면서 사업을 구상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특히 귀농귀촌한 사람들로 구성된 지역 민간협의체는 은퇴하려는 사람들의 자산과 재원, 전문 직종에 맞춘 일거리를 상담해주기도 한다. 서천귀농귀촌연합회는 폐교를 빌려 관련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는 등 교육 수익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괴산·홍성·진안 등에서도 민간협의체 활동이 활발하다.

귀농·귀촌을 목적으로 한 펀드도 눈 여겨 볼만 하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귀농·귀촌을 지원하는 ‘플랜팜 펀드’를 출시했다. 은퇴 후 여유로운 시골 생활을 바라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타깃으로 만든 상품이다. 은퇴 이후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자산관리서비스와 귀농·귀촌 준비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다. ‘플랜팜’ 가입자에게는 전국적인 농협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귀농·귀촌 준비와 선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도시민 귀농 귀촌 따라잡기’ ‘하루에 끝내는 귀촌 정착’ ‘전문가에게 듣는 귀농 귀촌 팁’ 등 테마별 전문 강좌를 들을 수 있다. 또 실제 농가에서 숙식하며 은퇴 후 삶을 직접 체험해보고 농가의 각종 축제에 참여해볼 수 있는 농촌 체험 서비스(팜스테이)도 경험할 수 있다. 귀농·귀촌 관련 최신 정보를 받을 수 있고, 우수 고객은 프리미엄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다.




1237호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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