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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ABC마트 한·일 동업자 3년 법정 다툼 전말 - 독보적 1위로 키운 주역을 죄인 취급 

안영환 전 ABC마트코리아 대표 무죄 확정 … “보복하려 추진한 무리한 재판” 

박성민·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중앙포토 ABC마트코리아 서울 논현점.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피고 안영환에게 공소된 4가지 사실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 5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519호 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안영환(52) 전 ABC마트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ABC마트는 안 전 대표를 형사 고소했다. 안영환 전 대표가 ABC마트코리아 대표로 있을 때 배임·횡령·재물손괴 및 업무방해 등의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판사가 무죄를 확정하는 판결문을 읽는 동안 법정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안 전 대표는 고개를 떨궜다. 소리 없이 장면만 봤다면 영락없이 유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의 모습이었다. ABC마트코리아 한·일 동업자가 3년 간 벌인 법정 다툼은 쓰린 상흔만 남겼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처음엔 화가 났고, 형사 고소를 당한 이후에는 황당했죠. 수도 없이 법정을 드나들며 심신이 지쳐갔습니다. 지은 죄가 없고, 그래서 무죄를 받았는데 이미 벌을 받은 기분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재판을 준비하느라 많은 돈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청춘을 다 바쳐서 키운 회사에서 쫓겨 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재판장을 빠져 나오던 안 전 대표의 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월 ABC마트 한·일 동업자의 법정다툼 기사를 보도했다(1172호 참조). 당시 양측은 2년째 지루한 법정 공방 중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ABC마트코리아는 2002년 설립된 신발 카테고리 킬러(편집 매장) 회사다. 이 회사는 일본ABC마트와 안영환 전 대표가 공동출자 했다. 안 전 대표는 선경물산(현 SK네트웍스) 신발수출사업부에 근무할 때 ABC마트 미키 마사히로 회장(당시 사장)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함께 ABC마트코리아를 세웠다. 자본금은 30억원이었다.

한국에서 ABC마트는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2004년 240억원, 2005년 430억원 매출을 올린 ABC마트는 2009년 1348억원 매출에 2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남겼다. 2010년엔 매출 1856억원, 영업이익 320억원을 기록했다. 설립 초반에 연 50~100%, 최근 5년 사이에도 연 평균 40%의 매출 성장률을 보였다. 경쟁 업체가 즐비해도 신발 편집매장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지켰다.

순탄했던 동업, 느닷없는 갈등

그러면서 양측은 애초 약속대로 증권시장 상장을 추진했다. 동업은 순탄했고, 회사는 빠르게 컸다. 2008년 ABC마트코리아는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률은 15% 정도였다. 이 때 양측은 ABC마트코리아 상장 계획을 세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훗날을 기약했다. 양측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반대로 원화 가치는 떨어졌다. 원·엔 환율은 2배로 뛰었다.

이때, 일본ABC마트는 지분구조를 기존 51%(ABC마트)대 49%(안영환 전 대표)에서 7대 3 정도로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ABC마트코리아 전 임원은 “영업이익이 많이 나고, 특별히 지분을 조정할 이유가 없었을 뿐 아니라 동업을 깨자는 요구로 받아들여 한국 측이 완강히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상 밖으로 한국ABC마트가 급성장하면서 일본 측이 엔고를 활용해 싼값에 지분을 더 늘리려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미키 회장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리하고, IPO(기업공개)도 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결국 양측은 오랜 협의 끝에 지분 조정에 합의한다. 일본 ABC마트 67%, 안영환 대표 33%였다. 이때 양측은 네 가지 조건에 합의한다. ‘IPO를 진행한다’ ‘안영환이 책임 경영하고 IPO도 주도한다’ ‘IPO 후에도 증자를 통해 7:3의 지분구조를 만든다’ ‘관할법원을 일본동경지방법원으로 한다’였다. 안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여러모로 찜찜했지만 상장을 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일본 측 제안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은 기정사실로 보였다. 2010년 11월 초 ABC마트코리아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고, 그 해 12월 말 심사를 통과했다. 2011년 1월 안 전 대표는 일본으로 건너가 미키 회장을 만났다. 이 회사 전 임원은 “지분 조정으로 인해 생긴 갈등을 미키 회장이 안영환 전 사장과 만나 풀려는 자리로 알았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미키 회장은 “상장하면 돈을 챙겨 나갈 것 아니냐”며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했다는 것이 안 전 대표의 얘기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해 2월 일본 ABC마트는 느닷없이 한국 내 법무법인을 내세워 내부감사에 들어갔다. ABC마트코리아 측은 그동안 지정감사를 받아왔고, 상장 예비심사도 통과한 터라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일본 측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회계감사는 하지 않고, ABC마트코리아와 한 인테리어 회사와의 거래관계만 집중 조사했다. 안영환 전 대표가 소유하고, 그의 동생이 대표로 있던 디자인오소라는 회사였다.

일본 측은 ABC마트코리아가 매장을 개설할 때 내장공사를 디자인오소가 독점하도록 해 회삿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상장심사 때의 거래적정성 조사와 내부 감사를 통해 다른 인테리어업체와 계약한 것보다 ABC마트코리아가 더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지만 ‘일감 몰아주기’를 문제 삼은 것이다. 결국 이 문제로 ABC마트코리아는 2011년 3월 7일 금융감독원에 내기로 한 상장 신고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일본 측에서 내부감사가 다 끝난 후에 제출토록 요구해서다.

합작회사서 100% 일본회사로

그렇게 동업은 끝났다. 안 전 대표는 소유하고 있던 지분 32%를 주당 8500원에 일본 ABC마트에 양도하고 2011년 3월 11일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한·일 합작회사였던 ABC마트코리아는 100% 일본 회사가 됐다. 동업은 끝났지만 양측 갈등은 더 깊은 진흙탕으로 빠져들었다. 안 전 대표는 한국에서 점포를 개설할 때 회사가 지급해야 할 권리금·월세·중계수수료 등을 자신이 대신 지급했다며 11억원과 퇴직금을 돌려달라고 일본 측에 요구했다. 일본 측은 거부했고, 안 전 대표는 소송을 냈다.

ABC마트코리아는 전국에 매장을 내면서 기존 상가 임차인들에게 권리금을 지급해야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관행이었다. 대부분 임차인은 권리금을 받으면서 세금 계산서 발행을 원하지 않거나 축소해서 발급하기를 요구했다. 예를 들어 관행대로 권리금 2억원을 임차인에게 줬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안 전 대표는 우선 개인 자금으로 권리금을 준 후, 나중에 회사에서 반환 받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하고도 부족한 돈은 회사에서 부외자금을 조성해 충당했다.

안 전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이 부담한 권리금은 8개 점포에 10억8000만원이다. 물론 ABC마트 측도 이 권리금을 임차인에게 직접 지급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키 회장 측은 “안 전 대표가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ABC마트코리아 자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했고,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할 무렵 이에 관한 회계자료를 인멸했다”며 “원고가 자신의 비용으로 지급했다는 권리금은 회사의 비자금에서 지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이 안 전 대표 무죄 입증

서울지방법원 민사 47부는 2012년 8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안 전 대표에 패소 판결했다. ‘정상적인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없는 권리금을 지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회사 부외자금을 사용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개인 자금으로 ABC마트코리아가 지급할 권리금을 대신 지급했다거나 이를 보전해 주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안 전 대표는 즉각 항소했다.

여기까지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쓴 내용이다. 그 후 형사재판이 시작됐다. 검찰 측 공소 요지는 이렇다. ‘피고(안 전 대표)가 8억원 정도의 부외자금을 조성하고 그중 3억여원을 횡령했다’ ‘안전 대표가 비자금 등의 기록이 담긴 컴퓨터를 손괴해 피해자의 업무를 방해했다’ ‘피고가 최모씨(여)로부터 돈을 투자 받는 형식을 가장해 최씨의 임차료와 전차료의 차액을 취득했다’ ‘피고가 법인 명의로 승용차를 구입한 후 최모씨에게 무상으로 지급해 최씨가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게 했다’.

공소 내용을 두고 ABC마트코리아의 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 내용으로 형사 고소가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회사를 뺏은 일본ABC마트가 자신들 행위의 당위성을 얻고 안 대표가 민사 소송을 건 것에 보복을 하기 위해 일을 꾸민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25일, 양측이 증인을 신청하면서 재판이 시작됐다. 안 전 대표는 “검찰 조사를 거쳐 기소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이미 회사를 나온 지 꽤 지난 시점의 일이라 무죄를 증명할 자료를 찾는 게 쉽지 않았지만 충실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부외자금을 만들어 쓰다 보면 조금씩 흘리는 금액이 나오고 욕심을 부리게 마련인데 돈 관계가 너무나 깨끗했다”는 게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에 안 전 대표는 “자본금 30억원의 회사를 매출 2000억원, 영업이익 300억원이 넘는 회사로 만들었고, 상장을 꿈꾸며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며 “돈 몇 억원에 욕심을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별한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채 재판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검찰 측은 최초 신청한 증인들의 심문이 끝나고도 “비정상적인 돈의 흐름이 포착된 추가 계좌내역 사실조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찾았다는 계좌는 이미 민사재판 및 검찰조사에서도 사용된 증거로 당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혐의 입증이 어렵자 검찰은 과거 총무팀장으로 재직했던 김모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은 해를 넘겼고, 법원과 검찰의 인사 이동이 이뤄지며 담당 검사와 판사가 모두 바뀌기도 했다.

올 3월 12일, 과거 총무팀장 김모씨의 검찰 측 심문이 이뤄졌다. 새로 사건을 맡은 검사가 이전 검사가 신청한 증인을 심문한 것이다. 김씨는 과거 총무·인사·계약 등 ABC마트코리아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사건의 전말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다. 심문 당시에는 ABC마트코리아 감사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김씨는 심문에서 ABC마트코리아의 전·임대차 계약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디자인오소와 거래에 관한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증언은 지금까지 안 전 대표가 주장했던 내용과 대부분 일치했다. 안 전 대표가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해명하지 못한 일부 돈의 흐름이나 사건의 정황까지 김씨의 증언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됐다. 안 전 대표의 죄를 밝히기 위해 검찰이 신청한 증인이 되레 안 전 대표의 무죄를 입증한 것이다.

“회사도, 사람도, 돈도 모두 잃었다”

심문이 있은 다음 날, 김씨는 ABC마트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했다. “현 ABC마트코리아 대표(L모씨)가 재판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화를 냈다. 왜 회사에 유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느냐며 욕설을 내뱉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도 회사 측은 나를 불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답하도록 강요했다.” 김씨의 얘기다. 이에 ABC마트 측은 “김 팀장이 안 전 대표와 공모했다. 이미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한 상태였다. 고의로 안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답변했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상처는 깊게 남았다. 그가 키운 회사는 이제 완전한 일본 기업이 됐다. 20년 넘게 함께 일하며 유독 아꼈던 후배 L씨는 일본 ABC마트 쪽에 섰다. 그 후배가 현재 ABC마트코리아 대표다. 안 전 대표는 “회사도, 사람도, 돈도, 마음도 모두 잃었다”고 했다.

1240호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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