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200년 역사 기업의 안전의식 

 

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회장



최근 200년의 역사를 가진 한 외국계 기업에서 조찬 회의를 가졌다. 회사를 소개하던 발표자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 재난 발생 때 회의실 탈출 방법부터 안내했다.

그는 건물 양쪽 비상계단의 위치를 안내하면서 유사시 대응 요령을 자세히 알려줬다. 신기한 광경이라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봤다.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늘 안전 교육부터 시작한단다. 이 회사에는 독특한 규정이 또 있다. 건물 양쪽에 비상계단이 없는 건물에는 계열 회사가 입주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 모든 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정이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회의조차 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원칙이었다. 200년의 역사는 그냥 얻어낸 게 아니었다.

얼마 전의 일본 출장길에도 깨달음이 있었다. 평상시 재난에 대비하는 일본인들의 자세다. 일본 아파트의 베란다에는 우리나라처럼 섀시로 창문 전체를 막아버린 곳이 없다. 옆집과의 사이 벽은 임시 칸막이처럼 약한 재질로 만들어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옆집으로 탈출할 수 있게 했다. 옆집뿐만 아니다. 베란다 바닥에도 비상구를 설치해 아랫집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탈출 때 안전까지 고려했다.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비상구는 지그재그 형식으로 만들어 낙상에 의한 충격을 받지 않도록 설계했다. 강화유리 등 깨지지 않는 창문에는 빨간 삼각형 모양의 스티커를 거꾸로 붙여 구조대원이 신속하게 구조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지진과 쓰나미 등 대형 재난에 익숙한 일본인에게 이 정도의 준비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재난에 대비한 펀더멘털이 생활화돼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수많은 사건, 사고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필자는 주변을 탓하기 전에 당장 우리 자신의 평상시 안전 상황부터 점검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필자의 회사부터 점검했다. 본사와 공장에 소화기를 비치하고 그 사용법 등을 알려주는 소방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빈틈이 있었다. 새로 입사한 직원이나 업무 때문에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던 직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 심장제세동기 또한 비치해뒀지만 사용법은 물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직원들이 제법 있었다. 최근 한 아파트에서 심근경색으로 운명을 달리한 주민이 있었는데, 그가 쓰러진 불과 몇 미터 옆 경비실에 심장제세동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가족이 경비실에서 심장제세동기를 발견한 후에도 경비 직원은 그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남 얘기가 아닌 것 같아 뜨끔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뒤늦게 반성하는 일이 되풀이 되는 요즘 우리 지금 당장 자신의 주변부터 돌아봐야 한다. 반복적인 확인과 점검만이 재난을 막는다. 안전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시간과 비용의 차원이 아니다. 안전 문제가 대두되자 최근 안전 교육 시간을 늘리고 체험을 중시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해도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더 이상 인재로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잃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재난대응시스템과 매뉴얼도 각자의 노력이 뒷받침 돼야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내 집, 내 직장부터 돌아보자. 우리 민족은 위기를 항상 기회로 창출해 왔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시작하자!

1242호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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