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미스터리 투어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고객을 가장해 매장을 방문한 뒤 직원의 서비스 등을 평가하는 사람을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라고 한다. 일반 여행객을 가장해 고객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을 나는 ‘미스터리 투어’라고 표현한다.

CEO가 신분을 속이고 말단 직원으로 위장 취업해 현장을 체험하는 미국 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와 비슷하다. 다만 나의 경우엔 한계가 있다. 여권 정보를 노출할 수밖에 없으니 함께 가는 TC(인솔자)와 현지 가이드는 나의 존재를 알게 마련이다.

출국 날 공항에 도착하면 일행 사이에 탐색전이 벌어진다. 곁 눈질만으로도 가족인지, 친구인지, 연인인지 귀신같이 판별해낸다. 좌석 배치는 여행의 고통과 즐거움을 좌우하는 운명의 티켓이다. 대화에 굶주린 일행의 옆자리에 앉는다면 비행 내내 고문에 시달려야 한다.

‘왜 혼자 왔느냐?’는 단골 질문이 나오면 나는 “사정이 있어 그렇게 됐다”고 답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 하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 온다. “혹시 이혼하셨어요?” 웃으며 아니라고 답한다. 졸릴만하면 또 질문 세례다. ‘나이가?’ ‘혹시 직업은?’…. 한번은 시달리기 싫어 딸과 함께 갔더니 이번에는 아이를 붙들고 “왜 엄마는 안 왔느냐?”고 묻는다. 딸은 두 번 다시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가지 않겠단다. 괴롭다.

그런데도 왜 가느냐고?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인솔자를 보며 많은 걸 느끼고 배운다. 현지 상황에 맞는 가이드의 적절한 대응은 여행을 의미 있는 드라마로 만들어 준다. 한 동남아 국가에 갔을 때 일이다. 소수민족 거주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는데 가이드가 잠시 동네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낱개로 포장된 작은 과자들을 박스째 구입했다. 의아해 물어보니 동네 어린이들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따라 구입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멀리서부터 가이드를 보고 동네 아이들이 달려오기 시작하는데 그 조그만 마을에 아이들이 왜 그리 많은지.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나눠주는 건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가이드는 “오지라 찾아 오는 이가 거의 없는데다, 아이들이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 모른 척하기 어렵다”며 “일부 관광객이 돈을 주는 것보다는 이 편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과자 몇 봉지에 담긴 작은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지 그 때 깨달았다.

인솔자의 재치 있는 말투도 여행을 더 맛깔 나게 만든다. 유적지를 한창 설명하고 있는데 재미없다는 듯이 앞질러가는 고객을 발견하곤 외친다. “시대는 앞서가야 하지만, 가이드는 절대 앞서 가지 마라.” 설명 도중에 조는 관광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가이드가 말한다. “결혼 후 가족과 여행을 와서 맨 뒷자리에 앉아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할 때 꾸벅꾸벅 조는 게 내 소원입니다.” 버스 전체에 웃음이 번진다.

매번 미스터리 투어를 다녀오면 피곤함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그 여행 가운데 새로움을 얻고, 전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돌아온다. “은퇴하면 해외 여행이나 실컷 해야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여행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가 있는데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바로 지금 떠나자. 새로움과 배움이 있는 낯선 곳으로.

1246호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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