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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김태완의 ‘디자인 싱 킹(Design Thinking)’② - 기술·안전규제가 디자인 창의성 걸림돌 

자동차 앞모습 비슷해져 … 그릴·헤드램프 디자인으로 승부 


디자이너가 의도한 대로 멋을 부린 1950년대 캐딜락 엘도라도. 뒷면 모습이 달을 정복하고 싶어했던 인류의 꿈을 담은 듯 로켓과 흡사하다.
기술 개발은 동시에 디자인의 영역과 흐름을 바꿔 소비자들에게 이용 가능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디자인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규제(예를 들면 자동차에서 보행자 충돌 규제)가 생겨난다. 또 기술 개발에 치중하다 보면 자칫 디자인의 강점인 다양성을 잃고 디자인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자동차산업이 그렇다. 안전 규제가 강화되면서 신차 디자인이 보편적으로 비슷해져 가는 게 대표적인 예다.

자동차 산업의 태동은 1900년대 초 미국의 포드와 GM이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대량 생산을 하면서 본격화했다. 독일의 벤츠(Benz)와 다임러(Daimler)가 약 130년 전 세계 최초로 가솔린 기관이 장착된 3륜차와 4륜차를 선보인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는 앞다퉈 새로운 신기술을 개발했다. 초기에는 자동차가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이거나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속도광들의 욕구와 기대를 만족시키면서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차 디자인의 황금기인 1930~1960년대에는 디자이너가 의도한 대로 신차가 생산됐다. 여기서 말한 ‘의도한 대로’라는 것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중심이 돼 신차를 개발했다는 의미다. 당시 미국 빅3(포드·GM·크라이슬러)의 차들은 그야말로 형태와 볼륨에서 독창적이었다. 특히 캐딜락 엘도라도(Eldorado)의 뒷모습은 로켓 형태로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콜벳의 스팅레이(Sting Ray) 또한 가오리 형상 디자인으로 아직까지도 많은 자동차 매니어들이 좋아한다. 이때만 해도 각 브랜드마다 확실한 프로포션(비율)에 맞춘 디자인을 추구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분명했다.

그렇게 50여 년이 흘렀고 자동차 선진국들은 앞다퉈 자동차 업체들에게 안전과 친환경 규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속속 추가했다. 각국 정부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 환경오염을 막는 책임이 자동차 업체에 있다고 봤다. 이런 변화에 맞춰 자동차 회사들 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과 성능테스트를 하고 디자인에 결과를 반영하도록 체계화시켰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보행자의 상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행자 충돌 안전규제는 승용차와 승합차의 앞모습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자동차 앞부분의 볼륨뿐 아니라 보닛 후드의 길이와 범퍼의 높이 등 가장 기본적인 전면 디자인의 선들이 규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양했던 신 차의 전면 디자인은 점점 비슷해졌다.

자동차 회사들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헤드램프에도 새로운 디자인 성격을 부여했다. 이런 추세는 역사가 깊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회사에서 주도했다.



1930~1960년대가 자동차 디자인 황금기

자동차 매니어를 제외한 일반 소비자는 자동차 앞면의 그릴을 보지 않고서는 브랜드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전면부가 비슷해졌다. 몇 년 전 한국과 유럽의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신차 디자인 선호도 조사를 할 때 참관한 경험이다. 당시 시판 중이던 몇몇 자동차에 브랜드와 모델 이름을 없애고 모두 똑같은 그릴로 교체한 뒤 브랜드를 구별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어느 브랜드의 차량인지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만큼 안전과 환경 규제로 인해 디자인의 독창성이 줄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친환경 규제에 맞춰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해야 하는 회사들은 기존 자동차 디자인에 내연 기관을 바꿔 출시하는, 이른바 디자인의 ‘틀린 그림 찾기식’ 신차를 앞다퉈 내놨다. 새로운 동력기술에 치중한 나머지 외관상 바뀐 것은 ‘에코’나 ‘하이브리드’라는 문구가 추가되거나 헤드램프 일부가 친환경 느낌을 주는 ‘블루 컬러 라이팅’으로 교체된 게 전부였다.

이런 상황은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도전을 강요했다. 새로운 타입이나 세그먼트의 신차 디자인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다. 기아 쏘울이나 레이, GM의 올란도와 같은 차들이 여기에 속한다. 필자가 한국 GM에서 올란도 디자인을 개발할 때 GM 전 상품총괄 부회장인 밥 루츠는 최종 디자인 결정 단계에서 두 가지 안을 놓고 현재의 올란도를 선택했다. 각종 규제로 남들과 비슷하게 생긴 차를 GM이 만들 필요가 없다는 명확한 판단 아래 만든 다목적 자동차(MPV)이지만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 (SUV) 같은 크로스오버 타입을 택한 것이다. 밥 루츠의 결정은 신차 디자인이 정체된 상태에서 디자이너에게 막강한 구원투수 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필자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다.

기술의 발전이나 전파 속도는 어느 회사나 비슷하다. 이런 현 상은 전자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중국의 화웨이라는 스마트폰 업체가 국내에 신제품을 출시했다. 삼성과 LG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했다. 놀라운 것은 화웨이의 스마트폰 기술이 삼성·LG와 비교 해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자인도 국내 기업 제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

대부분 자동차 회사도 해당 국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년 정도의 무상 서비스(워런티)를 제공한다. 소비자가 자동차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연비 역시 동급차량의 경우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점점 기술력의 차이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디자인의 차별화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사회 체제의 변화도 디자인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 자유시장 경제가 동유럽이나 구(舊)소련, 중국 등에 도입되면서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산업재의 수요와 공급이 늘어났다.



사회 체제 변화도 디자인 발전에 영향

필자가 영국 디자인회사 IAD에서 근무했던 1993년, 체코의 자동차 회사인 스코다(SKODA)로 파견돼 프로젝트를 했을 때다. 스코다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자동차 회사 중 하나로 당시 독일 폴크스바겐이 인수한 직후였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필자는 스코다의 박물관에 가봤다. 그곳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십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정말 아름다운 디자인의 차들이 전시돼 있었다. 체코가 공산주의 체제로 극심한 변화를 겪는 동안 이렇다 할 신차가 없었던 스코다는 ‘프라하의 봄’ 이후 새로운 신차 디자인을 준비했다. 폴크스바겐의 소형차인 폴로 차체(A04)를 이용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강화된 안전 규제로 신차 모델은 과거의 아름다운 스코 다를 재현할 수 없었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각종 규제는 필수 불가결이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은 삶의 질을 높여준다. 다만 이러한 이유들로 디자인의 영역을 좁히는 건 타협이 될 수 없다. 디자이너가 시대 흐름에 맞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1257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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