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현정은 회장의 현대글로벌 지분 매입 그 후 - 현정은 회장 ‘1석 3조’ 포석 

경영권 강화, 재무구조 개선, 순환출자 완화 현대상선 등의 실적 개선이 과제 

김유경 이코노미스트 기자 neo3@joongang.co.kr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그룹 지배구조를 바꿔 경영권을 강화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글로벌 지분을 전량 매입하며, 순환출자였던 그룹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했다. 계열사 의 그룹 영향력을 끊어냄으로써 오너의 경영권을 공고히 한 것이다. 이로써 현대그룹은 외부의 경영권 위협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평을 받는다. 신규 사업 추진의 안정적 토대도 마련했다. 또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선 제 대응한 결과로 이어지는 한편, 현대상선 등 주요 계열사의 재무구조도 개선시켰다. 돌 하나로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오너 중심 친정체제 강화

현정은 회장은 지난 2일 현대상선이 보유 중이던 현대글로벌 주식 125만 6410주(24.8%) 전량을 332억 원에 매입했다. 현 회장의 현대글로벌 지분율은 기존의 59.21%에서 91.30%로 훌쩍 뛰었다. 지분 매입 대금은 일본 오릭스에 넘긴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대금 중 현 회장의 지분 13.43%을 통해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현 회장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현대상선을 지원하는 한편 현대글로벌 지분을 늘린 셈이다. 현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 자녀와 함께 현대유엔아이가 보유한 현대글로벌 지분 41만 257주(8.1%)도 108억 원에 추가 매입했다. 이로써 현 회장과 장녀 정지이(현대유앤아이 전무) 7.89%, 차녀 정영이(현대상선 대리) 0.23%, 장남 정영선 0.58% 등 현 회장 일가가 현대글로벌을 완전 소유하게 됐다.

현 회장 일가가 현대 글로벌 지분을 모두 사들이면서 현대그룹의 지배구조는 ‘현 회장→현대 글로벌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으로 바뀌게 됐다. SK그룹이 ‘최태원 회장→ SK C&C → SK홀딩스 → SK텔레콤’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구조다.

이로써 현대글로벌에 대한 각 계열사의 영향력은 사라졌고 오너 일가의 지배력은 커졌다. 지난 2005년 설립한 현대글로벌은 그룹의 핵심회사이자 사실상 지주회사로 부상하게 됐다. 현대 글로벌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78%를 갖고 있고, 현대엘리베이터는 중간 지주회사 격인 현대상선(지분율 25.31%)을 지배하게 됐다. 현대상선은 현대아산 등 여타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이번 지분 조정을 통해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도 1.1%에서 5.03%로 높였다.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상선 지분율도 35%(우호지분 포함)로 확대됐다.

현 회장이 지배구조를 바꾼 가장 큰 목적은 ‘경영권 안정’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0년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형제의 난’ 이후 끊임없는 경영권 도전을 받아왔다. 2003년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벌인 ‘숙부의 난’, 2006년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과 벌인 적대적 인 수·합병(M&A)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0년에는 현대상선의 주요 주주인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현대차와 다시 한번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현대그룹 경영권 향방의 ‘열쇠’였던 현대상선은 이번 과정에서 현대글로벌의 손자회사로 지위가 떨어지며 더 이상 경영권을 좌우할 수 없게 됐다. 현대중공업(13.30%)·현대건설 (6.27%)은 현대상선의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분 확대를 통해 그룹 경영권을 넘본 바 있다. 특히 글로벌 해운업의 침체 탓에 현대상선의 실적이 크게 나빠지며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경영 위협이 커져 왔다. 현대그룹은 막대한 물량의 자사주를 매입했고, 이 영향으로 그룹 전체의 재무상태가 나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경영권 분쟁의 씨앗을 없애는 한편 재무적 부담을 한결 덜었다.

현대상선은 지난 3년 6개월간 계속된 적자로 그룹 전체에 폐를 끼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러나 현대상선이 그룹 경영권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관계사들은 모두 사활을 걸고 현대상선 살리기에 집중했다. 여러 차례 도전으로부터 현대상선을 지켜 냈으나, 그룹 전체의 실적은 초라해졌다. 현대상선은 지난 2011 년부터 3년 반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관계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분법·파생상품 평가손실로 매출 및 이익 증가에도 적자를 기록하거나 영업이익이 축소돼 왔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러나 이번 지배구조를 종속적으로 개편함으로써 자금 지원 등 그룹 차원의 재무적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현대그룹은 또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하며 지난해 말 내놓 은 3조3000억 원 규모의 자구안 가운데 약 80%를 이행했다. 이달 중순 본입찰을 실시하는 현대증권만 매각하면 자구안을 사실상 마무리하게 된다. 앞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LNG사업 부 매각(9700억 원), 주식 및 부동산 처분(3500억 원), 부산신항 터미널 가치 재산정(2500억 원),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자본 유치(2943억 원), 담보대출(2000억 원) 등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 현대로 지시틱스 매각과 현대글로벌 지분 매입을 통해 경영권 안정은 물론 구조조정까지 마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 지분과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지주사 체제 추구로 남은 회사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앞으로 현대그룹의 경영정상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현대그룹은 적극적인 시장 공략을 통한 재도약에 시동을 걸고,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 등 주력 계열사의 해외 시장 진출과 수익성 개선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현대상선은 주력인 컨테이너사업 부문을 강화하고 원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대서양과 중미·남미 등지로 확장시킬 계획도 세워놨다. 현대엘리베이터도 해외 수주 목표를 높여가는 한편, 중국·브라질 등지에서 설비투자도 늘리고 있다. 현 회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업에도 적극적인 투자와 확장 전략이 진행돼야 한다”고 독려하기도 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를 단순하고 투명하게 바꾸는 한편 재무적으로 안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며 “핵심사업인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의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신사업 추진 동력 확보

다만 단기간에 현대상선을 포함한 현대그룹의 재무상황이 개선되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7월 현 대상선의 재무 상황에 대해 ‘업황이 나쁘고 불확실성이 많아 펀더멘털 개선은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한기평은 이후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BBB-(부정적)로 두 단계 하향조정했다.

한편 이번 현대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구조의 개선을 요구하기에 앞서 선수를 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개정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했지만 기존 순환출자는 해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기존 순환출자 완화를 요구한 상태고, 기업들도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줄이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지난 7월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제도가 시행된 이후 삼성·롯데 등 주요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고리는 483개로 전년대비 9만 7천175개(99.5%) 급감했다.

1257호 (2014.10.2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