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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주인의 마음 같은 머슴은 없다 

영화 <월스트리트:돈은 잠들지 않는다>의 ‘도덕적 해이’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

사진:중앙포토
한 때 월스트리트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투자자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의 좌우명은 두 가지다. ‘돈은 절대 잠들지 않는다’와 ‘탐욕은 좋은 것이다’이다. 그는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8년간 옥살이를 하고 이제 막 출감한 참이다. 부와 명예를 모두 잃고 파멸한 그에게 남은 것은 구식 핸드폰과 텅 빈 머니클립, 그리고 실크 손수건 한 장뿐. 금융계의 거물 시절 위풍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딱 하나 있다. 수감되기 직전 자신의 딸 위니(캐리 멀리건)의 명의로 스위스 계좌에 감춰둔 1억 달러의 재산이 바로 그것. 2010년 개봉한 영화 <월스트리트:돈은 잠들지 않는다(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는 과거의 영욕, 현재의 곤궁, 미래의 기대를 한꺼번에 품은 고든 게코가 교도소 문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돈을 인출하려면 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위니는 이미 돈에 눈 먼 아빠와 돌아선지 오래다. 위니에게는 풋내기 증권 트레이더인 제이콥(샤이어라버프)이라는 애인이 있다. 어느날 게코의 출판 기념회에서 만난 게코와 제이콥은 모종의 결탁을 한다. 제이콥은 게코 부녀의 화해를 돕고, 게코는 제이콥이 예전에 모시던 증권사 사장을 자살로 몰고간 자들에 대한 복수를 도와주기로 한다. 자, 과연 게코는 딸과 화해할 수 있을까? 좀 더 솔직하게는, 숨겨둔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제이콥은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영화는 2008년 발생한 미국발(發) 금융위기,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에는 은행 수장들과 정부 관료가 금융위기를 논의하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은 전혀 포기하지 않은 채 모든 손실을 정부 자금, 즉 일반 대중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메우려 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도 은행이 파산하면 전 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은근히 위협까지 한다. 한마디로 ‘BZR(배 째라)’이다. 이때 나오는 멘트 중 하나가 ‘도산하기엔 너무 크다(toobig to fail)’이다. 왠지 익숙한 표현 아닌가?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 속에 덩치 키우기에만 몰두했던 1980~90년대 한국 경제, 그리고 그 결과로 맞닥뜨린 1997년 외환위기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본가들이 비난받는 이유, 파렴치함의 극치, 바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다.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도 대마불사의 신화

게임이론에서 도덕적 해이는 통상 ‘주인(Principal)과 대리인 (Agent)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주인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대리인이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이다. 대표적 사례로 보험시장이 있다. 일단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사고 예방 노력을 등한시 한다. 사고가 나도 어차피 보험 회사가 물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험제도가 본의 아니게 가입자의 부주의를 유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사고로 인한 손실에 더해 보험금의 낭비까지 발생한다. 근로자가 고용주의 눈을 피해 일을 태만히 한다거나, 의사가 조합으로부터 의료 보험금을 많이 타내려고 과잉 진료를 하는 경우도 모두 도덕적 해이에 속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공무원들의 비리, 고객의 돈을 보호해야 할 금융기관의 부정,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할 회사 임직원의 배임횡령도 모두 마찬가지다.

매번 반복되는 낙하산 논란도 그렇다. 이번에는 관피아·군피아·해피아·철피아 등으로 유형까지 세분화 되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상표도용이나 명예훼손으로 들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낙하산의 문제는 사장 자리를 독차지한다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도덕적 해이를 잉태한다는 데 있다. 대개 전문지식도 없고 열심히 일할 의욕도 없는 분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 오자 마자 기강을 잡겠다, 혁신을 하겠다며 조직을 상하좌우로 흔들어 대며 한바탕 얼을 빼놓는다. 그리고는 어느 날. ‘올 때 그냥 그렇게 오셨던 것처럼 갈 때도 그렇게’ 연기처럼 가버리신다. 남은 것은 복지부동과 이전투구의 흔적뿐, 조직은 시름시름 병들어 간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도덕적 해이의 극치는 투기(Speculation)에서 보여진다. 영화 속 게코의 사무실에는 튤립이 그려진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1600년대 네덜란드에서 불었던 ‘튤립 파동(Tulip Mania)’을 묘사한 그림이다. 터키에서 수입된 튤립이 네덜란드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너도 나도 사재기 광풍이 불었다. 튤립뿌리 하나의 가격이 암스테르담에 저택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까지 폭등하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약삭빠른 투기꾼들은 이미 챙길 것을 챙기고 손을 털기 시작했다. 그 즉시 가격은 폭락하고 얼결에 투자에 나섰던 대다수 투자자들은 빈털터리가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부동산 투기, 뉴밀레니엄을 전후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닷컴 버블, 그리고 최근의 녹색 열풍까지 시장의 격변기에는 예외없이 투기 바람이 불었다. 투기의 이면에는 탐욕의 폭탄 돌리기와 도덕적 해이가 작동한다. 그 와중에 매번 애꿎은 희생자가 속출한다.

게코가 <탐욕은 좋은 것인가?>라는 책을 쓴 뒤 강연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9·11 테러 이후에 미국 정부가 금리를 낮춰 부동산 거품을 초래하고 모기지 담보부 증권과 자산유동화 증권 등 온갖 파생상품 투기를 부추겼다고 비난한다. 그는 이것이 대량살상 무기와 다를 바 없고 결국 파산으로 이어지는 미친 게임이라고 말한다. 게코는 도덕적 해이에 대해 ‘누군가가 당신의 돈을 가져다 쓰고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라는 명쾌한 해석을 내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영화 속 게코의 대답은 딱 세 마디. “내 책을 사세요(Buy my book)”.

탐욕의 폭탄 돌리기와 애꿎은 희생자

도덕적 해이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할 뿐 아니라 시장 자체를 위축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도덕적 해이를 없애려면 기본적인 감시체계 강화와 함께 유인제도 설계(Incentive mechanism)와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 완화가 필요하다. 우선 유인제도 설계. 누가 보든 말든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서는 성과급이나 스톡옵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치권에서는 열심히 의정 활동을 하는 것이 다음 번 선거나 공천에서 유리하 도록 하는 제도 개편이 해당될 것이다. 다음은 정보 비대칭의 완화. 도덕적 해이가 애초에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견물생심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기업들이 투명경영에 매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도 투명해야 한다. 물을 흐리는 일부 정치인들로 인해 정치권 전체가 비난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못 논다고? 혼탁한 물에는 고기가 씨가 마른다.

자,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할리우드의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1987년에 개봉된 <월스트리트>의 후속 편이다. 전편에서 ‘돈이냐 혹은 더 많은 돈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게코는 이제 ‘돈이냐 혹은 가족이냐’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게코는 딸을 속여서 스위스 계좌에서 돈을 빼내 다시 부자가 되지만, 마지막 순간에 빼돌린 돈을 모두 딸이 원하는 기관에 기부한다. 이어지는 부녀의 화해와 감동의 눈물. 결말이 갑작스레 가족 드라마로 끝나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만 추악한 자본주의에 대한 감독의 연민과 바람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 싶다.

1258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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