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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김태완의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③ - 원가 줄이려고 디자인 가치는 뒷전? 

부품값 덜 드는 디자인 요구하는 기업 많아 … 뱅앤올룹슨·애플 “디자인으로 승부” 

김태완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뱅앤올룹슨은 9월 26일 특유의 디자인 감성을 담은 초고화질(UHD) TV ‘베오비젼 아방트’를 선보였다. / 사진:중앙포토
첫인상이 좋으면 주변에 사람들이 잘 모인다. 알아갈수록 더 마음에 들고 내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첫눈에 사로잡혀 구입하게 되고 계속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 제품을 우리는 ‘좋은 디자인’이라 고 부른다. 좋은 디자인 제품이 가진 강력한 흡입력은 기업에 이익을 안길 원천적인 경쟁력이다. 해당 기업의 미래를 보는 주가 상승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글로벌 기업이 디자인에 집중하고 열광한다.

서점에 가면 디자인 경영, 디자인 파워 등 디자인을 강조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책이 수없이 많다. 심지어 디자인총괄임원(CDO:Chief Design Officer)가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레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랜 시간 글로벌 기업에서 디자인 조직에 몸담아 왔던 나로서는 속시원한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너무 먼 곳만 바라보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답답함과 조급함도 느껴진다.

디자인은 제조원가에서 1달러 줄이는 싸움?

디자이너에게 현실적인 디자인은 ‘제조원가에서 1달러를 줄이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얘기냐고? 좋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상품의 제조원가를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좋은 디자인에서 한발 양보해 저렴하게 제조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바꿔 줄 수도 있다.

GM에서 스파크를 디자인을 할 때다. 기존에 없던 모터사이클에 달린 형태의 새로운 미터 클러스터 디자인을 개발한 적이 있었다. 물론 기술적인 장벽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비용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더 컸다. 1달러도 채 안 되는 부품값을 두고 여러 차례 회의가 이어졌다. 그러다 기존 제품보다 생산비용이 올라가면 프로젝트 총괄 담당 부서에서는 보고와 승인 절차를 꽤 까다롭게 진행했다. 비교적 낮은 경차의 시장 가격에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스파크와 관련된 마케팅 비용을 본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마케팅 비용은 많이 책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의 대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일기획이 조사한 2013년 한 해 국내 광고 매출을 보면 9조5000억 원이 넘는다. TV의 경우 15초 광고 편성에 1000만 원을 넘긴다. 분명 마케팅이 제품 판매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건 사실이다. 그래도 마케팅은 기업과 제품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어떨 때 보면 마케팅 비용을 벌기 위해 디자인을 포함한 여러 조직에서 애를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달리 디자인과 직결되는 생산비는 계속 줄어든다. 생산비를 줄이는 게 원가를 절감하는 일이고, 원가가 절감되면 소비자 가격이 낮아진다는 이치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디자인이 제품의 경쟁력이라고 하면서 정작 디자인을 위한 투자에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인색한 게 현실이다..

제품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려면 좋은 디자인을 해야 되지만 해당 부품을 잘 만들 협력업체와도 상생해야 한다. 이런 부품을 잘 만들 수 있는 회사를 만나는 것도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대부분 제조업체들이 잘 할 수 있는 협력업체를 찾기보다 싼 비용에 해결해줄 회사를 찾는다. 2000년대 초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에서 소형차인 친퀘첸토를 디자인할 때다. 램프를 개발하던 한 회사가 내가 원하는 디자인에 가장 근접한 제안을 했다. 피아트 제품 계획 부서에서는 비용을 더 줄이는 디자인으로 수정하길 요구했다. 그걸 본 램프 회사담당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피아트는 제품을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묻지만, 폴크스바겐은 얼마를 더 투자하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폴크스바겐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 이유이자 자동차 판매량에서 피아트보다 2배 이상 앞선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기업들이 인건비가 낮은 해외에 의존하다 보면 품질 컨트롤이 어려워지고, 이는 곧 디자인 품질에도 타격을 준다. 무엇보다 낮은 생산비에 눈이 멀어 디자인 품질의 기준을 정확히 지켜내지 못하는게 문제다. 몇 주 전 고교 동창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은 ‘아직도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는 바보’라고 한탄했다. 모두가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제조업이 사라져가고 있다. 생산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 경쟁력이 한국에서 사라진 이상 제조업의 위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때 기업에서는 디자인 품질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도입하는게 절실하다.

원가 절감이 모든 제조업체에 보편화된 상황에서 디자인을 통한 브랜드 가치를 잃지 않는 기업들이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덴마크의 오디오 회사인 ‘뱅 앤 올룹슨’이다. 지난 9월 이 회사는 한국에서 1800만 원이 훌쩍 넘는 초고가 UHD 55인치 TV를 출시했다. 역시 뱅 앤 올룹슨다운 감성이 디자인에 잘 나타났다. 소재도, 적용시킨 기술도 기존 시장의 제품과 같게 만든 건 없었다. 한 예로 채광에 맞게 화질이 조절되는 기능은 기존 ‘원색’을 강조해 선명한 색을 보여준 기업들과는 달랐다. 뱅 앤 올룹슨 관계자는 “주변 환경에 맞게 색이 조절되는게 시청자가 볼 수 있는 원색과 가장 가깝다”고 설명한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이 전 세계 나라 중 뱅 앤 올룹슨 제품이 많이 팔린 5위 안에 드는 국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회사는 한국 시판가격을 비슷한 수준의 타사 제품보다 4~5배 높은 1800만 원대에 책정했다고 한다.

디자인은 ‘제조업 위기’ 현상 타개책

소비자들은 값싼 물건은 더 깎으려고 하지만 브랜드 가치가 있는 물건은 비싸도 제값을 치른다. 우리가 재래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는 이유다. 재래시장은 싸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한다면 생산비 절감만이 기업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해답은 아니다. 절충안이 필요하다. 아이폰의 뒷면을 보면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고 표기돼 있다. ‘Made in China’와는 차별화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 생산단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중국에서 생산하지만 절대 디자인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강한 어필이다.

얼마 전 스티브 잡스와 17년 넘게 일한 마케팅 담당자 켄 시걸이 <미친듯이 심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1997년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고 ‘Think Different’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애플의 가치관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이 캠페인은 애플의 제품은 진보하지만 가치관은 변하는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단순한 언어로 보여줬다. 이 브랜드 광고 캠페인은 지금까지도 모든 애플의 제품을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는 상징성을 가졌다. 거기에는 물론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모든 애플 제품의 디자인까지도 포함해서다.

기업은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기업의 가치를 담아낸다는걸 알리기 위해서도 올바른 투자를 해야 한다. 디자인만이 기업의 모든것을 보여주는건 아니지만 꽤 많은 경쟁력을 보여준다.

김태완 -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운송기기 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디자인 석사를 받았다. 자동차·항공기를 디자인하는 영국 IAD(후에 대우 워딩연구소)에서 일하다 이탈리아 피아트로 옮겨 친퀘첸토(피아트500)의 컨셉트 모델을 디자인했다. 이후 한국GM 디자인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1259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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