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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상속 논란 - 억대 리니지 아이템 물려받을 수 있나? 

디지털 재산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봇물 … ‘잊힐 권리’ 논란도 거세 

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온라인 세상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죽음을 맞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에 자신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남긴다. 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안을 놓고 ‘잊힐 권리’와 ‘알 권리’가 팽팽히 맞선다. 관련 법이 미비해 정보를 가진 기업 입장에서도 골칫거리 다. 사망자가 남긴 정보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끊이지 않는 논란의 해법을 모색했다. 또 혼란을 틈타 생겨난 신종 비즈니스도 알아봤다.

#1. 만약에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유서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눠야 할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니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집에 전용선이 들어온 1997년부터 줄곧 인터넷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17년 동안 인터넷을 쓰지 않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인터넷에서 정처없이 떠돌고 있을 겁니다. 철없던 시절에 쓴 글이나 무심결에 달았던 부끄러운 댓글도 있겠죠. 수많은 사이트에 가입했던 기록이나 다운로드 받은 자료들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정보도 있을 겁니다. 나도 모르게 찍혀 업로드 된 사진도 있을 수 있겠죠. 이런 정보들로 인해 우리는 죽어서도 기억될 것입니다. 원하지 않는 모습이나 일부 잘못된 정보도 남아 저를 묘사하게 됩니다. 그렇게라도 기억되는 걸 행운이라 생각해야 할까요? 차라리 잊히는 것이 더 나은 걸까요?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후자에 가깝지만 현재의 제도와 기술로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2. 18살 아들을 먼저 보낸 부모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지금 심정이 그렇습니다. 아들이 생전에 운영하던 미니홈피와 페이스북을 둘러봤습니다. 아직도 몇몇 친구들이 들러 글을 남기고 아들을 추억하고 있더군요. 읽기도 민망한 비난의 글도 있었습니다. 아들을 대신해 그 공간을 가꾸고 싶지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모르는 탓에 방법이 없습니다. 아들이 생전에 주고 받았던 e메일이나 비밀글로 남겼던 글도 읽어 보고 싶습니다. 해당 사이트에 문의해봤지만 개인정보인 탓에 본인 동의 없이는 넘겨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온·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터넷 보급률이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많은 정보를 남긴다. 국내에 인터넷이 보급된 것은 1993년 종합 정보통신망(ISDN)이 구축되면서부터다. 이전에도 인터넷이 있었지만 주로 연구기관이나 국가기관에서 사용했다. 20년 가까이 인터넷을 사용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인터넷 세대 사망자가 늘면서 그들이 남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은 명확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정보가 인터넷 상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잊힐 권리’ 또는 ‘잊혀질 권리’라 불리는 내용이다. 반대로 유가족이 사망자 정보를 열람할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다. ‘기억할 의무’나 ‘알 권리’에 해당한다. 개인의 정보를 취급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쪽이 든 풀기 어려운 숙제다.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같은 논의가 지속됐다. 새로운 발단이 된 건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된 한 미국 병사의 죽음이다. 사망한 병사의 아버지는 아들을 추억하고 싶다는 이유로 아들의 야후 e메일 계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권한을 달라고 야후 측에 요구했다. 야후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자신들의 정책을 근거로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했다. 병사의 아버지는 야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아버지의 손을 들어줬다. 야후는 병사의 e메일을 프린트해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죽은 아들 e메일 볼 수 있게 해달라”

2009년 스페인에서는 잊힐 권리 소송이 화제가 됐다. 변호사인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는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채무에 관한 내역이나 재산 강제 매각 내용이 담긴 1998년 기사가 검색된다”며 “이미 해결된 사건임에도 검색에 나와 자신의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문사와 구글에 해당 기사와 링크를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구글과 신문사는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며 삭제 요청은 검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곤잘레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결국 유럽사법재판소(ECJ)까지 넘어갔고 5년이 지난 올 5월 결론이 났다. ECJ는 ‘게시된 내용이 목적과 다르게 부적절하고 연관성이 낮아 과도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삭제할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했다. 사실상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관련 판례가 나오고 여론이 움직이자 인터넷 기업들 역시 대응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이 시행하고 있는 ‘휴면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서비스다. 구글에 가입한 이용자가 일정 기간 동안 구글 계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지정된 절차에 따라 계정을 삭제하게 된다. 이용자가 미리 지정을 해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정보(사진·e메일·게시 글 등)를 넘겨 줄 수도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이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세계 IT업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구글이 먼저 행동에 나서면서 동종 업계에서는 비슷한 서비스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에서도 미국 야후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고로 사망 한 장병의 유족들이 자녀의 미니홈피와 e메일 계정에 접근할 권한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해당 기업은 ‘이용자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자사 정책을 근거로 유족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2008년에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탤런트 이언 씨의 유족이 비슷한 요구를 했다가 역시 거절당한 사례가 있다.

이후 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망한 사람의 유족이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무턱대고 유족의 입장만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작 문제는 기업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관련 법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대 국회 때는 관련 법안이 3건 발의됐다. 각각의 법안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사망자의 디지털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관련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체계를 모두 바꿔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국내 디지털 유산에 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서비스 제공업체가 갖는다. 많은 회원을 보유한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은 ‘개인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유족이 원할 경우 죽은 사람의 계정을 삭제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동의’를 할 수 없다. 결국 죽은 사람에 대한 정보를 유족들이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ECJ ‘잊혀질 권리’ 인정 판결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디지털 유산과 관련해 큰 사건이나 소송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점점 더 많은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쌓이고 있다. 최근에 사망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e메일 계정을 가졌거나 개인홈피·블로그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최근 카카오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을 유족들에게 전달하지 않 고 검찰에만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며 문제가 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최근 디지털 유산의 적절한 처리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대법원은 사법제도 비교연구회를 중심으로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국내에서 소송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대비에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잊힐 권리의 법제화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2015년까지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도 구축 방안을 위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를 담당하기 위한 연구반도 구성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 이후 망자들이 인터넷에 남긴 글·사진 등을 삭제할 것인지, 유족들에게 전달할 것인지 등에 대해 아직 제대로 얘기된 바가 없다”며 “여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검토해 방향을 잡을 것” 이라고 말했다.

19대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해 7월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다.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가 자신의 사망 이후 개인정보 처리 방법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현재 국회에서 검토 중이다. 국회 미래 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이인용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사망 이후 개인정보 처리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게 해 이용자의 권리를 적극 보장하는 것은 필요한 입법조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현행법상 몇 가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최근엔 인격권과 재산권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인격권은 타인에게 양도나 상속이 불가능한 ‘일신전속권’에 해당한다. 이 권리를 어떻게 법적으로 보호하고 인정할 것인가 가 지금까지는 주된 쟁점이었다. 일각에서는 더 진일보한 논의 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른바 ‘재산권’에 관한 논의다.

‘개인의 정보가 재산상의 가치가 있다면 사후에 타인에게 상속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중에는 재산상 가치가 있는 것이 많다. 유료로 다운로드 받은 파일, 유료 사이트 이용권(정액권), 사이버머니, 인터넷 게임의 아이템 등이 예다. 이 중 일부는 이용자가 현금을 주고 구매한 것이다. 개인이 작성한 글이나, 찍은 사진, 그림으로 그려서 만든 이미지 파일 등도 재산상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카페나 블로그 그 자체의 운영권에 대한 재산상의 가치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한국상속문제연구소 임채웅 변호사는 “누군가가 인터넷 상에 작성한 저작물은 설사 그 가치가 0원으로 평가된다 하더라도 한 개인의 엄연한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디지털 재산도) 당연한 상속의 대상이며 세금 문제 역시 일반 상속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며 “만약 법 기술적으로 과세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세법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지 논리적으로는 과세 대상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인격권 이어 디지털 재산 상속권 논란

물론 현재까지는 디지털 재산 상속 문제로 소송까지 간 사례는 없다. 디지털 유산은 대부분 재산상의 가치가 낮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이버머니 몇 만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수천만 원의 재산 가치를 지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게 게임 아이템이다. 게임회사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리니지’라는 게임은 15년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게임 상에서 사용되는 아이템은 고가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2005년에는 아이템 하나가 1800만 원에 거래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 아이템을 묶어 1억 원 이상에 거래 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때 불법거래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2010년 게임머니와 아이템의 현금거래는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이템은 개인의 노력과 시간이 투자된 결과물’이라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법원이 아이템의 재산상 가치를 인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수억원의 가치를 지닌 아이템을 보유한 리니지 이용자가 사망하면 법적 상속인이 그 아이템을 받을 수 있을까? 소송을 한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관련 법이 없는 이상 이 역시 게임 회사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리니지 약관에는 ‘계정·캐릭터·아이템 등을 제3자에게 양도, 대여하는 행위를 금한다’고 되어 있다. 다른 디지털 자산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애플의 아이튠즈 역시 구매한 음원에 대한 상속이나 양도가 허용되지 않는다. 구태언 태크 앤로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디지털 데이터는 분명한 개인의 재산이며, 유의미한 금액의 상속문제가 발생한다면 소송이 발생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일신전속권

특정한 주체와의 사이에 특별히 긴밀한 관계가 있어 그 주체만 향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인격권과 가족권이 대표적 일신전속권에 해당한다.

디지털 유산 비즈니스 - “인터넷 평판 정리해 드립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디지털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한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기록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게 달갑지 않다. 아직 관련 법안이 정비되지 않은 탓에 인터넷 이용자들은 불편을 느낀다. 불편은 누군가에게 사업의 기회가 된다.

해외에서는 최근 특이한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개인의 인터넷 평판을 관리해주는 ‘디지털 세탁소’라 불리는 사업이다. 덴마크의 레퓨테이션닷 컴(reputation.com)이나 미국의 리무브유어네임(remove your name) 같은 회사다. 이들은 고객에게 돈을 받고 인터넷의 개인정보를 정리해 준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고객에 관한 정보를 모두 찾아서 필요에 따라 삭제를 대행하는 업체다. 주로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이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이용한다. 특정인에 대한 악의적 비방이나 허위사실을 담은 콘텐트를 찾아 없앨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 업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유명인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찾아 삭제 할 수 있어서다. 대중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디지털 유산 상속에 관한 논란으로 생겨난 비즈니스도 있다. ‘디지털 유품 관리 업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2008년 창업한 미국의 인트러스테트(Entrustet)다. 인터넷 이용자는 자신이 사망하면 인터넷 공간에 저장된 데이터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자신의 e메일 계정 접근 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미리 결정해 회사에 위탁한다. 일종의 디지털 유언집행 사이트로 봐도 무방하다. 독일에서 개발한 ‘데이터인헤리트(Datainherit)’라는 애플리케이션도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레거시 로커(Legacy Locker), 마이웹윌(Mywebwill) 등 비슷한 콘셉트의 회사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관련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사망자의 인터넷 정보를 청소해주는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정도가 있다. 그 밖에는 개인의 부탁에 의해 전문가가 돈을 받고 개인의 어두운 과거를 지워 주는 경우가 있다. 주로 음지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1258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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