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 e메일 볼 수 있게 해달라”2009년 스페인에서는 잊힐 권리 소송이 화제가 됐다. 변호사인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는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채무에 관한 내역이나 재산 강제 매각 내용이 담긴 1998년 기사가 검색된다”며 “이미 해결된 사건임에도 검색에 나와 자신의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문사와 구글에 해당 기사와 링크를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구글과 신문사는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며 삭제 요청은 검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곤잘레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결국 유럽사법재판소(ECJ)까지 넘어갔고 5년이 지난 올 5월 결론이 났다. ECJ는 ‘게시된 내용이 목적과 다르게 부적절하고 연관성이 낮아 과도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삭제할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했다. 사실상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관련 판례가 나오고 여론이 움직이자 인터넷 기업들 역시 대응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이 시행하고 있는 ‘휴면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서비스다. 구글에 가입한 이용자가 일정 기간 동안 구글 계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지정된 절차에 따라 계정을 삭제하게 된다. 이용자가 미리 지정을 해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정보(사진·e메일·게시 글 등)를 넘겨 줄 수도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이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세계 IT업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구글이 먼저 행동에 나서면서 동종 업계에서는 비슷한 서비스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에서도 미국 야후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고로 사망 한 장병의 유족들이 자녀의 미니홈피와 e메일 계정에 접근할 권한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해당 기업은 ‘이용자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자사 정책을 근거로 유족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2008년에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탤런트 이언 씨의 유족이 비슷한 요구를 했다가 역시 거절당한 사례가 있다.이후 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망한 사람의 유족이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무턱대고 유족의 입장만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작 문제는 기업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관련 법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대 국회 때는 관련 법안이 3건 발의됐다. 각각의 법안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사망자의 디지털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관련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체계를 모두 바꿔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이유였다.현재 국내 디지털 유산에 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서비스 제공업체가 갖는다. 많은 회원을 보유한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은 ‘개인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유족이 원할 경우 죽은 사람의 계정을 삭제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동의’를 할 수 없다. 결국 죽은 사람에 대한 정보를 유족들이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ECJ ‘잊혀질 권리’ 인정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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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권 이어 디지털 재산 상속권 논란물론 현재까지는 디지털 재산 상속 문제로 소송까지 간 사례는 없다. 디지털 유산은 대부분 재산상의 가치가 낮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이버머니 몇 만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수천만 원의 재산 가치를 지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게 게임 아이템이다. 게임회사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리니지’라는 게임은 15년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게임 상에서 사용되는 아이템은 고가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2005년에는 아이템 하나가 1800만 원에 거래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 아이템을 묶어 1억 원 이상에 거래 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때 불법거래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2010년 게임머니와 아이템의 현금거래는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이템은 개인의 노력과 시간이 투자된 결과물’이라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법원이 아이템의 재산상 가치를 인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그렇다면 수억원의 가치를 지닌 아이템을 보유한 리니지 이용자가 사망하면 법적 상속인이 그 아이템을 받을 수 있을까? 소송을 한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관련 법이 없는 이상 이 역시 게임 회사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리니지 약관에는 ‘계정·캐릭터·아이템 등을 제3자에게 양도, 대여하는 행위를 금한다’고 되어 있다. 다른 디지털 자산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애플의 아이튠즈 역시 구매한 음원에 대한 상속이나 양도가 허용되지 않는다. 구태언 태크 앤로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디지털 데이터는 분명한 개인의 재산이며, 유의미한 금액의 상속문제가 발생한다면 소송이 발생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일신전속권특정한 주체와의 사이에 특별히 긴밀한 관계가 있어 그 주체만 향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인격권과 가족권이 대표적 일신전속권에 해당한다.
디지털 유산 비즈니스 - “인터넷 평판 정리해 드립니다”누군가는 자신의 디지털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한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기록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게 달갑지 않다. 아직 관련 법안이 정비되지 않은 탓에 인터넷 이용자들은 불편을 느낀다. 불편은 누군가에게 사업의 기회가 된다.해외에서는 최근 특이한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개인의 인터넷 평판을 관리해주는 ‘디지털 세탁소’라 불리는 사업이다. 덴마크의 레퓨테이션닷 컴(reputation.com)이나 미국의 리무브유어네임(remove your name) 같은 회사다. 이들은 고객에게 돈을 받고 인터넷의 개인정보를 정리해 준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고객에 관한 정보를 모두 찾아서 필요에 따라 삭제를 대행하는 업체다. 주로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이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이용한다. 특정인에 대한 악의적 비방이나 허위사실을 담은 콘텐트를 찾아 없앨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 업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유명인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찾아 삭제 할 수 있어서다. 대중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디지털 유산 상속에 관한 논란으로 생겨난 비즈니스도 있다. ‘디지털 유품 관리 업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2008년 창업한 미국의 인트러스테트(Entrustet)다. 인터넷 이용자는 자신이 사망하면 인터넷 공간에 저장된 데이터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자신의 e메일 계정 접근 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미리 결정해 회사에 위탁한다. 일종의 디지털 유언집행 사이트로 봐도 무방하다. 독일에서 개발한 ‘데이터인헤리트(Datainherit)’라는 애플리케이션도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레거시 로커(Legacy Locker), 마이웹윌(Mywebwill) 등 비슷한 콘셉트의 회사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관련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사망자의 인터넷 정보를 청소해주는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정도가 있다. 그 밖에는 개인의 부탁에 의해 전문가가 돈을 받고 개인의 어두운 과거를 지워 주는 경우가 있다. 주로 음지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