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시대착오적 교육, 미래 세대의 발목 잡아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

1960년대 후반 미국 시애틀 초등학교의 육성회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위해 컴퓨터를 한 대를 들여놓기로 결정하고 자선바자의 수익금으로 그걸 구입했다. 모니터도 없이 타자기처럼 생긴 초기형 컴퓨터에 몰려들어 오목과 같은 간단한 게임을 하는 아이들 중에 후일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는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있었다. 흠뻑 빠져든 빌 게이츠는 13살에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는 후일 “당시 학생들이 컴퓨터를 접한 건 참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시리아 출신 미국 유학생과 미국인 여대생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나 폴 잡스에게 입양된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와 기계에 관심이 컸던 양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전자회로에 관심이 많았다. 스티브 잡스는 1968년 창간된 기술잡지 ‘더 홀 어스 카탈로그’의 애독자였다. ‘기술이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잡지의 신념을 후일 제품철학으로 삼았다. 고등학생이던 1971년 최종판 뒷표지 ‘아침 시골길에 히치하이킹을 하는 사람 이미지’ 밑에 쓰여져 있던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를 가슴에 담아둔 그는 2005년 모교 졸업식 축사에도 이 문구를 인용했다.

손정의는 검정고시를 거쳐 명문 고교에 진학했지만 미국 연수를 다녀온 후 자퇴했다. 1974년 미국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감하고 사업 구상을 발전시키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195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손정의, 폴 앨런 등이 20대 초반부터 혁신적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창 감수성이 발달하고 기존 관념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10대 초중반에 마침 컴퓨터 시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1975년 1월 출시된 역사상 최초의 PC키트인 ‘알테어’에 열광했던 소수의 매니어들은 후일 글로벌 정보화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IT업계의 대표 주자인 네이버·카카오톡·엔씨소프트·넥센의 창업자들은 1966~68년생이다. 공교롭게 인터넷 확산을 배경으로 온라인 쇼핑사업을 시작해 유통산업을 변혁시킨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와 알리바바의 마윈은 1964년 동갑내기이다.

특정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공감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세계관은 성장기에 접한 기술과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의 10대 초반 청소년들이 접하는 기술과 사고방식은 2040년대 우리 사회를 규정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성세대가 감히 단언하기도 어려운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단지 열려있는 세계관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접하게 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일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계는 미래로 뻗어나가야 할 청소년들을 과거에 가두어두는 시대착오적 도그마에 매몰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대 운동권의 화석화된 세계관과 역사관을 ‘교육혁신’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미래 세대에게 교육시키려는 것이다. 교육 과정과 내용에 다양성을 확대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런데 국민소득 몇 천 달러 수준에, 글로벌과 정보화의 개념도 없던 1980년대에 유행하던 사고방식을 주입하려 하다니. 미래 세대를 과거로 퇴보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1259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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