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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센터링경제학 ⑤ 양강의 독주 깨는 다크호스의 비결 - 조직력 기르고 차별화 전략 갖춰야 

국내 산업계 분야별 양강 체제 굳어져 … 레알·바르샤 아성 깬 AT 마드리드 전략 참고할 만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를 양분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대표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왼쪽)와 리오넬 메시. / 사진:중앙포토
만약 당신이 일생에 단 한번만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다면 어떤 팀의 대결을 볼 것인가? 아마 대다수의 축구팬들이 ‘엘클라시코(el clasico)’를 꼽을 것이다. 엘클라시코는 스페인어로 ‘전통의 대결’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인 프리메라리가(라 리가)의 레알마드리드(레알)와 FC바르셀로나(바르샤) 사이의 경기를 일컫는 말이다.

두 팀이 라이벌이 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있다. 레알은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을 연고로 왕족과 관계가 깊은 클럽이다. 이와 달리 바르샤는 카탈루냐 지방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다. 정치적으로 쌓인 일종의 지역감정이 경쟁심에 불을 붙인 셈이다.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나타난 양상과 비슷하다. 다만, 이 뿐만이었다면 엘클라시코는 흔한 라이벌전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대결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빅매치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팀이 절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엘클라시코의 승자는 리그 전체 우승팀이 될 확률이 높다. 라 리가에 레알과 바르샤의 양강 구도가 워낙 굳건해서다.

엘클라시코의 굳건한 양강 구도


*괄호 안은 승점
기록을 보면 레알과 바르샤는 라 리가를 양분해왔다. 레알은 통산 32회 우승으로 라 리가 최다 우승팀이다. 바르샤는 22번 우승했다. 준우승 횟수도 눈에 띈다. 레알은 21번, 바르샤는 24번 준우승했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레알이 우승하면 바르샤가 준우승, 바르샤가 우승하면 레알이 준우승을 한 셈이다. 라 리가에서 제3의 클럽이 우승한 건 29회다. 그나마 2000년대 이후 우승은 단 세 번 뿐이다. 나머지 팀과의 격차도 크다. 2010년 이후 4시즌 동안 레알과 바르샤가 우승과 준우승을 할 당시 두팀 간의 승점 차는 평균 7.8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2위와 3위의 승점 차이는 21.2점에 달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레알과 바르샤를 신‘ 계(新界)’ 나머지를 ‘인간계(人間界)’라고 부르는 이유다. 라 리가의 주요 기록 역시 두 팀이 독식하고 있다. 역대 최다 승점, 연승, 연속 무패, 득점, 득실차 등 모든 기록의 주인공은 둘중 하나다. 이 정도면 감히 ‘둘이 다 해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와 비교한다면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을 보는 듯하다.

산업계에서도 양강 체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글로벌 스마트폰 기기 시장의 애플과 삼성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롯데호텔과 호텔신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롯데쇼핑과 신세계, CJ오쇼핑과 GS홈쇼핑 등은 각 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기업이다.

특히 최근에는 그동안 업종별로 1강 또는 3강 체제를 유지해 오던 업종에서도 양강 체제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먼저 올해 10월 나온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추진소식은 ‘조선 빅3’ 체제의 변화를 예고했다. 지난해 조선 업계 빅 3의 연 매출을 살펴보면 현대중공업이 24조2827억원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중공업 14조7061억원, 대우조선해양 14조800억원으로 2위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삼성엔지니어링(8조2347억원)과 합병하면 매출은 22조9408억원으로 커진다. 다만, 주주의 반대로 두 회사는 11월 19일 합병 계약을 해지했다. 나중에라도 합병의 성사되면 두 회사는 대우를 제치고 현대중공업과 1위 경쟁을 벌일 수 있다.

외환위기 거치며 한국 재계에도 양강 체제 고착


양강 구도를 깨고 우승한 후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는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 사진:중앙포토
철강 업계에서 현대제철의 최근 움직임은 업계 판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 전기로 시설에 고로제철소까지 더해 상· 하공정 체제(쇳물생산에서 제품 생산까지 일괄적으로 수행)를 완성한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의 냉연사업 부문 인수에 이어 특수강 사업 진출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특수강 사업이 본격화 되면 현대제철은 쇠로 만드는 모든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포스코보다 더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된다. 물건을 팔 곳도 많다. 그룹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건설·현대로템과 함께 범현대가에 속하는 현대중공업까지 수요처가 막강하다. 현대제철의 외형 성장으로 3위 업체인 동국제강은 사실상 3강 경쟁에서 밀림에 따라 포스코·현대제철의 양강 구도가 굳어질 전망이다.

네이버 독주 체제였던 인터넷 포털 업계는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법인 ‘다음카카오’가 나서면서 1강에서 양강체제로 바뀐 경우다. 네이버는 PC 기반에서 다수의 경쟁사들을 제치고 현재의 지위에 올랐지만 모바일 환경에서는 카카오의 위력이 만만치 않아 향후 업계 판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거리다.

국내 산업계에서 양강 체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다. 외환위기 당시 D램 사업 구조개편으로 현대반도체가 LG반도체를 인수해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로 출범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만 생존하고 있다. 또 IT제조업체 중 유일하게 연간 매출 1조원을 넘어서며 승승장구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은 결국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양대 기업과의 규모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기업회생절차를 통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으나 당장 두 기업과 맞대결을 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

대우그룹 해체는 여러 업종에서의 양강 체제를 낳았다. 대우전자(현 동부대우전자)는 삼성전자·LG전자와 각축을 벌이다가 그룹 해체로 생존에 몰두하다 경쟁에서 밀려났다. 대우자동차는 GM에 매각돼 외국인 투자기업이 됐다. GM의 대우차 인수로 국내 자동차 산업은 한 지붕 아래에 있는 두 회사(현대차· 기아차)의 경쟁 구도로 바뀌었다.

양강 체제 순기능도 무시 못해

산업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위 1~2위 기업이 전체 시장을 지배하는 구도로 바뀐다. 산업 초창기 다양한 기업이 등장했다가 경쟁과 시장 재편을 거치면서 소수 기업이 독과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 번 형성된 양강 구도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강력한 진입장벽으로 제3자의 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라 리가에서 양강 구도가 오랜 기간 이어지는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다. 특히 클럽 간 재정적 불균형은 양강 구도를 단단하게 하는 진입장벽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TV중계권 수입이 적당히 분배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이탈리아 세리에A와는 달리 라 리가는 TV 중계권을 팀별로 계약하기 때문에 인기도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이로 인해 TV 중계권 수입의 대부분이 레알과 바르샤로 흘러 들어간다.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이들이 받는 TV 중계권료는 연간 1억 4000만 유로(약 1912억원) 정도다. 가장적은 수입을 얻은 라요 바예카노는 1800만 유로(약 245억원)의 중계권료를 얻는 데 그쳤다.

인기가 많은 팀들은 더욱 많은 TV 중계권 수입을 통해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할 자금력을 확보한다. 이와 달리 중소 구단들은 적은 수입으로 선수들의 연봉을 맞춰 주기에 급급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어쩌다 중소 구단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가 나타나도 구단이 선수를 잡아두지 못하고 방출을 통해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다고 양강 체제를 무조건 나쁜 시스템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이 체제는 두 강자는 물론 전체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선 레알과 바르샤의 전력은 전 세계 축구 클럽 중 2강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력하고 화려하다. 이는 서로 간의 경쟁의식으로 최고의 위치에서도 팀을 계속 채찍질한 덕이다. 일례로 바르샤의 연속 리그 우승과 2010~2011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자극 받은 레알은 2기 ‘갈락티코(은하수라는 뜻으로 스타 선수를 대거 영입하는 정책)’로 맞섰다. 그 결과는 2011~2012 시즌 리그 우승과 지난 시즌 라데시마(챔피언스리그 10번째 우승)로 이어졌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바르샤도네이마르·수아레즈 같은 스타플레이어 영입에 큰 돈을 투자하며 대응하고 있다. 우리 경제와 비유하자면 양강 기업이 경쟁력을 길러 글로벌 무대에서 선전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두 팀의 강세가 나머지 18개 팀 전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리그 안에서야 양강과의 격차가 크지만 발렌시아·세비야·아틀레티코(AT) 마드리드 등은 유로파리그 등 유럽 클럽대항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10년 간 스페인 클럽은 5번의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양강의 틈바구니 안에서 좋은 선수를 팔아야만 하는 재정적 악순환에 적응하고 조금씩 자구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AT 마드리드는 라 리가에서 양강의 독주를 깨기도 했다. AT 마드리드는 지난 시즌 승점 90으로 바르샤(승점87)를 승점 3점 차이로 따돌리고 리그 1위를 차지했다. 1995~1996시즌 이후 18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올랐다. 레알이나 바르샤가 아닌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한 건 2003~2004시즌 발렌시아 이후 10년 만이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AC밀란·첼시·바르샤 등 세계 최고 클럽을 침몰시키며 준우승을 달성했다.

AT 마드리드는 대표적인 ‘셀링(선수를 파는) 클럽’이다. 라 리가의 명문 클럽이지만 양강과는 자금력 차이가 크다. 자체 배출한 페르난도 토레스, 디에구 포를란, 세르히오 아게로, 다비드데헤아 등 걸출한 스타들을 부족한 구단 재정을 메우기 위해 거의 해마다 떠나 보내야 했다. 지난해에도 2012~2013시즌 인간계(호날두·메시 제외) 득점왕인 라다멜 팔카오가 프랑스의 AS모나코로 옮겼다.

그러나 AT 마드리드는 셀링 클럽으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유망주를 꾸준히 발굴하는 한편 이적료로 벌어들인 돈으로 적절한 대체선수를 영입해 공백을 메웠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조직력으로 메웠다. 레알이나 바르샤처럼 이렇다 할 대형 스타가 없고 가용 선수층도 얇지만 디에고 시메오네 AT 마드리드 감독은 팀을 강하게 결속시켜 다진 조직력으로 강팀 선수들의 개인기에 맞섰다.

수비 전술과 세트피스 공격을 보면 AT 마드리드의 조직력이 돋보인다. AT 마드리드는 개인기가 뛰어난 상대팀 스타플레이어가 공을 잡으면 순식간에 두세 명씩 달라붙는 압박 수비를 펼쳤다. 사실 수비 압박은 몇몇 선수만 달라붙는다고 이뤄지는게 아니다.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효과를 발휘한다. 잘못 펼치는 압박전술은 빈 공간을 만들어 팀 수비에 큰 구멍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AT 마드리드는 잘 짜인 압박수비 전술로 강팀을 무력화시켜 지난 시즌 리그 38경기에서 불과 26골만 내줘 최소 실점을 기록했다.

양강 구도 깬 ‘셀링 클럽’ AT 마드리드

AT 마드리드의 지난 시즌 좋은 성적 비결 중 다른 하나는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력이다. 지난 시즌 기록한 77골 중 12골을 세트피스로 넣었다. 이는 라 리가 20개 팀 중 최다 기록이다. 스페인 연수 시절 아틀레티코의 비공개 훈련을 참관한 적 있는 김용갑 전 강원FC 감독은 “세트피스 훈련이 매우 치밀했고, 기발했으며 집중도가 높았다”고 전했다. 부족한 개인기를 자신의 장점을 살린 팀플레이로 극복한 것이다.

기업이 양강 체제의 산업 구도를 헤쳐나가는 것도 AT 마드리드의 전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경영 전문가들은 “양강 체제에서는 선두기업의 지배력이 크기 때문에 후발 기업들은 그만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되지만, 자신만의 전략을 갖추면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인재 유출을 두려워만 말고 잘 갖춰진 채용·훈련 시스템으로 대응한다. 촘촘하게 짜놓은 재무구조 및 리스크 관리 능력으로 위기를 피할 수 있다. 양강이 가질 수 없는 차별화와 창의성을 집중적으로 개발해 잠재시장을 깨워라.” 한국 경제의 여러 업종에서 양강 구도가 고착화되는 지금 많은 기업이 참고할 만한 말이다.

1264호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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