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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 ④ 마린하베스트] ‘푸른혁명’ 주도하는 글로벌 수산기업 

세계 최대 연어 양식 업체 … 연간 41만t 생산해 70개국에 수출 

‘헤이(Hej)’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에서 모두 통하는 인사말이다. 철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하나다. 북유럽 4개국은 비슷한 언어만큼이나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나라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재빨리 침체를 벗어난 점도 닮았다. 위기 극복의 저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 나왔다. 각국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출신 ‘히든챔피언’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시장을 휘젓는 북유럽의 숨은 강자들을 소개 한다.

▎마린하베스트의 노르웨이 바다양식장 전경.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연어는 낯선 식재료였다. 고등어나 갈치처럼 우리 바다에서 나는 어종이 아니다 보니 먹을 일도 별로 없었다.


▎자료: 마린하베스트, 2013년 기준
선홍빛 속살에 특유의 향이 밴 이국적인 생선은 서양식 레스토랑에서나 나올 법한 메뉴였다. 그런 연어가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오메가3가 풍부한 영양식품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웰빙 바람을 타고 우리 식탁 위에 등장했다. 일본 방사능 유출 사건 이후 먹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계기가 됐다.

국내 식품 업체들이 앞다퉈 ‘연어캔’을 출시하며 연어 대중화에 앞장섰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국내 연어캔 시장은 약 55억원 규모였다. 올해 같은 기간 시장은 276억원으로 5배 이상으로 커졌다. 참치캔의 뒤를 이어 ‘제 2의 국민 식품’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진다.

국내 연어캔 시장 규모 급격히 커져


▎마린하베스트는 지난 1월 수산업계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 사진:마린하베스트 제공
아직까지 연어와 우리 밥상은 어딘가 어색한 조합이지만 북유럽 식탁 위에선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회는 물론 훈제·스테이크·샐러드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거의 매 끼니마다 등장한다. 특히나 중저가 호텔이라도 조식 메뉴에 연어 요리 5~6개가 기본으로 등장할 만큼 북유럽 사람들의 연어 사랑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연어가 가장 많이 나는 나라는 어딜까. 바로 노르웨이다. 피오르드를 따라 이어진 노르웨이 연안은 차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차가운 북극해와 따뜻한 멕시코 만류가 만나는 지리적 이점도 한몫을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힘입어 노르웨이는 세계 최대의 연어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환경적인 요인만이 성공 비결은 아니다. 노르웨이 수산업의 경쟁력은 이 나라 대표 글로벌 기업인 ‘마린하베스트(Marine Harvest)’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르웨이 베르겐에 본사를 둔 마린하베스트는 세계 최대의 연어 양식 기업이다. 냉동·활어 연어를 주로 생산·판매하지만 백넙치, 대구류 생선, 훈제·튀김 해산물 등 다양한 수산물을 취급한다. 올해 이 회사의 연어 생산량은 41만4000t에 달한다. 이는 업계 2~4위 업체의 생산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양으로, 압도적인 1위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양식 연어의 약 25%가 이 회사에서 생산된다. 연어 양식부터 가공식품 제조까지 오직 연어로 벌어들이는 매출이 3조722억원(2013년 기준)에 달한다. 그야말로 수산 업계의 초우량 기업인 셈이다.

국내에서 수산업은 아직까지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로 인식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가 대표산업 중 하나다. 지난해 노르웨이의 수산물 수출액은 10조 5000억원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인구가 500만명이 채 안 되는 이 나라에서는 매일 3700만명이 먹을 수 있는 수산물을 생산한다.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 역시 1만 여명으로, 한국 어업 인구의 7%에 불과하지만 수산물 수출액은 우리나라보다 4배가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노르웨이 수산물 양은 2만5000t, 1100억원어치에 달한다. 그 가운데 상당량을 마린하베스트가 책임지고 있다.


▎바다양식장에서 14~22개월 동안 자란 연어가 가공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세계 최대 양식 기업의 성공 비결은 뜻밖에도 기술력이다. 이 회사는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세계 최초로 연어 양식에 성공했다. 연어 양식업은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이다. 낮은 수온과 청정 수질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인데다, 환경오염 우려로 신규 양식장 건설이 어렵다. 이 때문에 연어 수출 1위 국가인 노르웨이에서도 2009년 이후 신규 양식장 면허 발급건수가 전무하다. 이와 달리 연어 소비량은 급증해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두 자리 수 이상의 증가세를 보인다. 특히 러시아와 브라질의 경우 연어 수입량이 연평균 20% 가까이 성장했고, 중국 역시 최근 3년 새 수입량이 12배나 증가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제한적이다 보니 기존 양식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연어 양식은 노르웨이 베르겐 인근에 위치한 부화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수한 품종의 암수를 선별해 부화장에서 교배작업에 들어간다. 이때 엄선된 연어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연어(약 70cm)보다 커서 평균 1m가 넘는다. 생산된 알은 인공수정을 통해 부화시키는데, 선별기를 통해 알 내부를 일일이 스캔한다. 부화 전부터 단계를 나눠 불량인 것은 폐기해 품질을 높인다.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연어에 인식표도 부착한다. 암컷 한 마리에서 생산되는 알의 수는 1만2000개 남짓. 이렇게 생산되는 연어 알은 연간 1억개가 넘는다. 이 중 약 95%가 생존해 바다양식장으로 나간다.

부화 전 선별해 품질 높여


▎아일랜드 공장 직원들이 2차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바다양식장은 얼핏 보기엔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로 보인다. 바다 가운데 떠있는 인공섬에 양식장을 관리하는 사무소가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바닷속 세상은 딴판이다. 둘레 약 150m, 깊이 15m의 양식 그물망이 수십 여개에 달하고 곳곳에 파이프가 있어 사료가 자동으로 공급된다. 이렇게 14~22개월 동안 자란 연어가 가공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1차 산업이지만 철저한 과학연구를 바탕으로 한 정보기술(IT)로 양식장을 관리한다. 컴퓨터 시스템으로 운영되다 보니 양식장을 관리하는 인력도 지역별로 5명 남짓에 불과하다. 이런 대규모 양식장이 노르웨이를 비롯해 칠레·캐나다·스코틀랜드 등 6개국에 위치해있다. 그밖에 23개국에 지사를 둬 보유·가공시설을 갖췄다. 세계 곳곳의 마린하베스트 양식장에서 자란 연어는 전 세계 70여 개국에 수출된다.

마린하베스트가 지금과 같은 규모와 기술력을 갖추게 된 데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끊임없이 인수·합병(M&A)한 것이 주효 했다. 마린하베스트는 1965년 스코틀랜드에서 설립됐다. 이때부터 연어 양식업과 관련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칠레로 진출해 양식장을 열었다. 이후 1992년 미국·네덜란드 등지의 수산물 업체와 M&A를 거듭한 끝에 2007년 독자적인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역경 속에서도 마린하베스트가 여전히 건재한 까닭은 노르웨이 정부의 수산업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 노르웨이에는 어획량보다 어업종사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어민들의 소득은 줄어만 갔다. 정부는 이들에게 일시적으로 보조금을 주는 대신 수산자원을 보존하는 정책을 펼쳤다. 수산자원을 우선 보호해야 미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어민들을 설득했다. 소규모 영세업자이던 어민들에게는 폐업 인센티브를 주고 직종 변경을 도왔다. 어선별로 어획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도 도입했다. 잡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 보니 상당수 어민들이 양식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처음에는 지역 어민들이 창업한 소규모 양식장이 주를 이뤘지만 허가제도를 도입하며 점차 기업화됐다.

물고기와 사료의 품질을 높이는 연구 지원도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다. 노르웨이 국립영양수산물연구소(NIFES)가 주도해 수산물 품질·안전 관리를 위한 연구를 실시한다. NIFES는 유럽연합(EU)의 기준에 따라 양식 어종의 유해물질 여부를 철저히 조사한다. 수은과 다이옥신은 물론 양식업에 사용된 의약품 잔여물과 미생물, 기생충까지 검사해 식품 안전성을 높인다. 사료부터 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져 사실상 수산물의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셈이다. 수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노르웨이는 수산대국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마린하베스트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출발은 지역 어민이 창업한 소규모 양식장이었지만 이후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업체들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이 같은 노력은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도 마린하베스트는 파산절차가 진행 중인 칠레의 한 양식 업체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기존 오슬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올해 1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도 상장했다. 수산기업이 뉴욕 증시에 상장된 것은 마린하베스트가 처음이다. 글로벌 연어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실적도 급증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연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고, 매출은 66.1%, 순이익은 320% 급증했다. 올해도 전년 대비 3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이 예상 돼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수산업계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마린하베스트 연어가 우리집 식탁까지 오는 길
한국 시장 공략도 본격화했다. 마린하베스트는 지난해 10월 인천 고잔동에 국내 최초로 생연어 가공공장을 준공했다. 830㎡ 규모의 공장은 일주일에 생연어 10t을 가공할 수 있는 인력과 설비를 갖췄다. 인천공장은 노르웨이에서 머리·내장 등을 제거한 1차 가공 상태의 연어를 대한항공 전세기를 통해 전달받아 인천공장에서 뼈를 분리·포장하는 2차 가공 작업을 해 시장에 유통한다. 노르웨이 양식장에서 연어를 포획해 소비자 식탁에 오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3~4일에 불과하다.

마린하베스트 코리아는 기존 냉동상태 연어에 비해 맛과 신선도를 높여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계획이다. 마린하베스트가 추구하는 가치는 이른바 ‘푸른 혁명(The blue revolution)’이다. 농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인 식량난을 수산물 공급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맛과 영양, 안전을 모두 충족시키는 수산물 생산이 이 기업의 목표다. 맛과 안전을 최우선가치로 삼는 글로벌 수산기업 마린하베스트가 국내 소비자들의 밥상에도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1264호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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