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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이거 살까? 저거 살까? 귀찮으니 알아서 해줘~ 

혼자 선택 못하는 ‘메이비(Maybe)’ 세대 위한 큐레이션 서비스 증가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백화점 피팅룸에서 옷을 입어본다. 옷 입은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사진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선택해 달라고 요청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옷을 고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분명 자신이 입을 옷인데 다른 사람에게 옷을 골라 달라고 부탁한다. 어디 옷뿐일까. 요즘 사람들은 ‘썸’ 타는 이성에게 고백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텍스트앳’은 마음에 드는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를 적어 넣으면,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고백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친절하게 코칭 해준다고 한다.

소개팅 때 입을 의상에서부터 아기 이름, 취업준비생의 회사 선택, 마음에 드는 이성들 중 누가 더 괜찮으냐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공과 사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타인에게 선택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는 이들을 일컬어 ‘예(yes), 아니요(no)’와 같은 분명한 의사표현 대신 ‘글쎄(maybe)’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고 해서 ‘메이비 세대(maybe generation)’라 이름붙이도 했다. 스스로 선택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미루는 결정장애인 것이다.

현대 소비자들이 여러 개의 대안 중 선뜻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가장 먼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이 점차 선진 시장으로 변화하면서, 하나의 카테고리에서 선택가능한 브랜드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가령 물 한 병을 사려고 하면, 옛날에는 브랜드가 한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젠 다섯 가지 이상의 물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특히 브랜드 간 명확한 차이가 없어지고, 품질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꼭 특정 브랜드를 고집해야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보기를 선택하길 주저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배리 슈워츠에 의하면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내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가정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보다는 후회가 커진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기를 포기하고, 최종 선택을 타인의 몫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중에 다른 대안에 대해 후회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시킨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며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을 선택하는데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두 번째 이유로는, 한국 소비자가 유난히 타인을 의식하는 소비를 많이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옷을 살 때 사람들이 신경 쓰는 포인트는 ‘내 마음에 드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새옷을 입은 나의 모습을 어떻게 볼까’하는 것에 있다. 타인이 새옷을 예쁘다고 칭찬해줄 때 나의 만족감도 훨씬 더 커진다. 타인의 의견이 곧 나의 의견이 되는 것이다. 결국 소비를 할 때에도 내 의견보다는 타인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를 더 중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베스트셀러 열풍이다. 한국에서는 베스트셀러의 위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편이다. 일단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따라 구매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므로 자동으로 판매지수가 높아지게 된다. 비단 도서뿐만 아니다. 영화든 뮤지컬이든 TV프로그램이든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면, 그것을 따라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느끼며 구매에 동참하게 된다. 한국에서 유난히 유행의 열풍이 강하게 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하기보단 타인에게 의사를 묻고 그것을 추종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한 전략은 ‘제대로 추천하는 서비스’일 것이다. 내가 스스로 선택했을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제공하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큐레이션 추천제도가 필수적이다. 국내 유통업계들은 이미 이러한 큐레이션 서비스의 필요성을 간파하고 핵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위메프는 PC와 모바일을 연동하는 ‘쇼핑 동기화 서비스’와 고객의 상품 클릭 및 구매 이력을 바탕으로 한 ‘개인화 추천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한다. 티몬의 경우 ‘라이프스타일 커머스’라는 분명한 목표로 개인화 상품 추천, 검색 결과 추천, 개인화 커뮤니케이션 등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G마켓은 매일 오전 9시까지 9가지 상품을 뽑아서 선보이는 ‘G9서비스’를 선보였다.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택을 대신해주는 배려기술도 중요하다. 가령, 어느 하나도 과감하게 선택하지 못하는 소비자를 위해 그야말로 운에 의지해 랜덤으로 상품을 제안하고, 이에 따라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식당에서 ‘아무거나’를 주문하면, 주인의 기호에 따라 적당한 메뉴가 제공되는 것과 같다.

실제 산업에서는 랜덤으로 음악이 재생되는 서비스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네이버 뮤직, 멜론, 벅스 등의 음원 사이트에서는 그때그때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소비자 대신 선택해 준다. 음원을 사용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처럼 스트리밍으로 내보내 주는 삼성전자의 ‘밀크’ 서비스가 큰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400여 년 전 ‘죽느냐 사느냐’를 갈등했던 햄릿이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대형 마트 맥주 코너에서 이 맥주를 살까, 저 맥주를 살까 결정하지 못한 채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소비사회가 진전되고, 선진국형으로 변화할수록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대안 앞에서 괴로운 현대 소비자들은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최상의 선택을 위해 결정을 유보하고 오랜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쏟은 사람들에게, 기업은 당신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확신시켜줄 임무가 있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65호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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