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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형 소비·마케팅 확산 - 좋은 제품 더 싸게 ‘합리적 소비’가 대세 

저비용항공·아울렛·SPA브랜드 인기 … 유통 업계는 미끼상품으로 유인 


▎백화점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아울렛이 인기다. 사진은 롯데 아울렛 서울역점의 모습.
본지는 해마다 한 해를 빛낸 히트상품을 조사해 발표한다. 올해는 유독 선정 작업이 쉽지 않았다. 내수시장이 얼어붙으며 눈에 띄게 잘 팔린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선정한 히트상품은 대부분 콘텐트·서비스 분야에 속한다. 제조업에서 빛을 본 히트상품은 ‘셀카봉’이 유일했다. 그나마도 최근 트렌드에 깜짝 히트를 친 제품이다.

글로벌 경기 불황의 여파로 내수시장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월에는 세월호 사건이 겹치며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1월 소비자 심리지수는(CCSI) 103으로, 1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자 심리지수는 경제에 대한 소비자의 전반적 인식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지표로 100보다 높을수록 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연초 108~109를 유지하다 세월호사고 이후 105로 급락했다. 이후 조금씩 회복하는 듯 했지만 다시 세월호 사고 직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어둡다. 한국경제인연합회는 매달 매출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해 발표한다. 소비자심리지수와 마찬가지로 100이 기준이다. 기업경기실사지수(실적 부문)를 보면 3월(100.7) 이후 줄곧 100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8월 89까지 떨어졌고, 9월(92.3)과 10월(93.1) 잠깐 반등했다가 11월에는 다시 90까지 떨어졌다.

말 그대로 불황이다. 그나마 성과를 낸 제품이나 서비스를 봐도 불황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울렛·SPA브랜드·저비용항공·렌털시장’이 성과를 냈다. 관련 제품을 보면 합리적 소비가 대세임을 알 수 있다. 경기가 어렵다고 소비자가 무턱대고 지갑을 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가격과 질을 충분히 따져 물건을 구매하는 합리적 소비계층이 늘었다. 기업들은 그런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춘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내놨다.

소비자심리지수 2012년 이후 최저치


“백화점에 와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무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한 백화점 관계자의 말이다. 비싼 가격표를 보고 아예 구매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다음으로 향하는 곳이 아울렛 매장이다. 동일한 브랜드와 같은 품질의 제품이라도 아울렛 매장에서는 10% 이상 싸게 구매할 수 있다. 출시한 지 1년이 넘었거나 계절이 지난 상품은 50% 이상 할인을 받는 대박 기회도 맞을 수 있다. 백화점에서 전반적인 제품의 라인업을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면 더 싼 곳을 찾아 떠난다. 이런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듯 국내 아울렛 시장은 성장세가 뚜렷하다.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전체 시장 규모가 10조원을 훌쩍 넘겨 11조2000억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 1~2% 수준의 성장으로 정체가 뚜렷한 백화점 시장의 성장세와는 대비되는 결과다.

SPA브랜드의 약진도 눈에 띈다. SPA란 ‘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다. 한 브랜드가 기획부터 생산·유통·판매까지 직접 맡는 것을 말한다. 여러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한다. 단계가 줄어드는 만큼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저렴하면서 질 좋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2005년 국내에 진출한 일본 유니클로, 2008년 선보인 스페인 자라, 2010년 문을연 스웨덴 H&M 등 글로벌 브랜드가 시장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에잇세컨즈(제일모직)·스파오(이랜드) 등 국내 브랜드가 가세해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저비용항공사는 항공시장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토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저비용항공은 국내 항공시장 점유율 49.9%를 기록했다. 전체 항공기 이용객 중 절반은 저비용 항공을 이용한다는 소리다. 2009년 27.4%에 비해 크게 성장했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사소한 서비스의 질보다는 저렴한 가격을 택했다. 국내외 관광객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최근에는 저유가라는 호재가 겹쳐 더욱 가파른 성장이 예상된다.

아예 물건을 사지 않고 빌려서 쓰는 사람도 늘었다. 렌털 시장이 성장하는 배경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 3조원 수준이던 국내 렌털 시장 규모는 지난해 10조원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해 2016년에는 25조9000억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렌털 업체만 2만5000여개에 달하고, 관련 업계 종사자는 15만명이 넘는다. 불황과 합리적 소비의 증가, 1인 가구의 증가가 렌털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유통 업계는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어떻게든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들려는 기업과, 싸지 않으면 사지 않겠다고 버티는 소비자 간의 눈치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등장한 제품이 자체브랜드(PB) 상품이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의 자체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상품으로 생수· 음료·과자 등이 PB브랜드를 달고 시중에 유통 중이다. 기존의 브랜드 제품과 비교해 맛과 질은 비슷하면서 가격이 싸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3000~4000원대의 도시락 PB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한끼 5000원이 넘는 점심값을 아끼려는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뛰는 기업 위에 나는 소비자

PB제품은 그 자체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노림수가 있다. 저렴한 PB상품이나 파격할인 제품을 앞세워 고객을 유인한 뒤 다른 제품까지 구매하도록 하는 일종의 유인책(미끼상품)으로 쓰는 것. 편의점에서 주로 판매하는 도시락의 경우 가격대에 비해 구성이 알차다. “재료 값만 합쳐도 판매가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대신 다른 곳에서 이윤을 남긴다. 도시락을 구매하러 온 사람이 음료나 과자 같은 간식거리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나 할인점에서도 파격할인을 하는 제품을 앞세워 고객을 유인한 뒤 소비를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기업이 뛰자 소비자는 날았다. 올 한 해 크게 유행한 단어 중 하나는 ‘체리피커’다. 가장 맛있는 체리만 쏙 골라 빼먹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기업 매출에 도움이 되는 상품은 구매하지 않고, 파격할인 품목이나 사은품, 카드 혜택만 골라 챙기는 사람들이 늘었다. 대형마트나 수퍼 4~5곳을 다니며 할인된 품목만 골라서 쇼핑을 하니 미끼상품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다.

1266호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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