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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④ 미생 - 그래, 장그래는 바로 내 얘기네 

웹툰→드라마 인기몰이 … 방송 후 단행본 200만부 돌파 


“지난주 미생 봤어?” 요즘 월요일 아침마다 자주 들을 수 있는 직장인의 인사말이다. 매주 금· 토요일 저녁 방영하는 tvN 드라마 <미생> 줄거리를 나누는 것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바둑 용어에서 따온 말인 ‘미생’은 두 집을 만들어야 완전히 사는 바둑에서 한 집만 가지고 있어 아직 살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한 수 한 수 돌을 놓듯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20대 청년 장그래가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입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오직 프로 바둑기사 입단을 목표로 했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열심히 살았지만 돌아오는 시선은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는 반응이다. 명문대 출신에 토익 만점, 출중한 어학능력을 갖춘 동료 인턴들에 비하면 주인공 장그래의 스펙은 초라하기만 하다.

동료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그는 바둑에서 기른 특유의 통찰력과 끈기로 어렵사리 종합상사 영업팀 계약직으로 합류한다. 그러나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다. 무역용어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밤새 만든 사업계획서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그는 여전히 갈 길이 먼 말단 사원이자 계약직사원이다.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 모습이 곧 우리 사회 젊은 세대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비단 장그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장그래를 안쓰러워 하면서도 정작 본인도 ‘주류’에 밀려 힘들어하는 오 차장이나 이제 더 이상 대기업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1등 신랑감’이 아닌 현실에 씁쓸해하는 김 대리 등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의 현주소다.

본지는 지난해 ‘2013 한국인의 삶 바꾼 히트상품’ 중 하나로 웹툰 ‘미생’을 꼽은 바 있다. 해가 바뀐 뒤에도 ‘미생’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모르고있다. 오히려 더 진화했다. 탄탄한 기존 스토리에 인물의 생동감이 더해지며 기존 웹툰을 모르던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게 된 것이다. 총 20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 <미생>은 지난 10월 17일 첫 방영된 후 케이블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7%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단행본 역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윤태호 작가가 2012년 9월 발간해 2013년 10월 9권으로 완간된 ‘미생’ 단행본은 올해 10월 초까지만 해도 누적 판매량이 약 90만부에 그쳤다. 그러나 드라마 방영 일주일 만에 100만부를 판매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2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관계자는 “기존 독자층이 주로 30~40대 남성이었다면 방송 이후 20대와 40~50대 비율과 여성 독자 비율이 늘었다”며 “불황으로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다소 가격부담이 있는 9권 세트 구성으로, 그것도 만화 장르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해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출판사 측은 “200만부 돌파 기념으로 올해 안에 특별보급판을 제작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노출 상품 판매량도 ‘껑충’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인기 비결은 공감대 형성에 있다. 사회초년생들의 힘겨운 적응기를 토대로 하지만 직장 생활이 녹록하지 않은 건 직급과 관계가 없다. 잇단 회의와 야근,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 업무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여기에 여직원에 대한 보이지 않는벽, 계약직의 서러움,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죄인일 수밖에 없는 워킹맘의 모습 등이 매회 다른 인물을 통해 비춰지며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제작진의 사실감 넘치는 연출과 드라마 속 캐릭터의 실감 나는 연기도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실제로 드라마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무명의 연극배우 출신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계기로 각종 CF에 출연하는 등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밖에 방송에서 노출된 음료수와 A4 복사용지, 커피믹스 등 관련 제품의 인기도 높아져 판매량이 급증했다.

바둑에 샐러리맨의 이야기를 접목한 작품이다 보니 유통 업계에서는 바둑 관련 상품 판매도 늘었다. G마켓이 11월 한달 동안 바둑 관련 상품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전년 대비 1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바둑을 배울 수 있는 교재나 DVD 등도 주목 받고 있다”며 “마켓 내 인기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바둑이 랭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생>은 10월 4째주부터 6주 연속 콘텐트파워지수(CPI) 1위를 달리고 있다. CPI는 지상파 3사와 CJ E&M 채널 드라마·오락·정보·음악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뉴스 구독 순위, 직접 검색 순위, 버즈 순위 등 세 영역의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드라마 연장을 요청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줄을 잇지만 <미생> 제작진에 따르면 예정대로 12월 20일 20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한다는 계획이다. tvN 관계자는 “대중의 성원에 보답하는 뜻으로 스페셜 방송 2회를 추가 방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이미 웹툰으로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진 ‘미생’이 올해는 드라마로 연속 히트에 성공하며 ‘완생’으로 거듭났다.

지상파보다 인기 끈 종편·케이블 히트작 - JTBC ‘비정상회담’, tvN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 등

올 한 해 한국인의 사랑을 받은 TV프로그램 가운데는 유독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방영작이 눈에 띄었다. <미생>에 버금가는 인기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을 뿐 아니라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비지상파 출신 작품이 적지않았다. JTBC에서 7월 7일 첫 방영을 시작한<비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한국인보다 한국말에 능숙한 외국인들이 출연해 한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현상 등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각국 정상들이 모이는 세계 정상회담에 빗대 세계 청년들의 재기발랄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는 취지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미국·일본·중국·독일 등 다양한 나라를 대표해 나온 청년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우리가 아는 한국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시청자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 각국의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청춘들의 회담답게 이별· 사랑 등 연애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인종 차별이나 사형제도와 같은 다소 무거운 이슈를 주제로 삼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반응이다.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방송 7회(8월 18일 방송분)만에 시청률 4%를 돌파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밖에 지난해 <꽃보다 할배>로 시작된 tvN의 ‘꽃보다~’ 시리즈는 올해 성별과 연령대를 보다 다양화해 <꽃보다 누나>와 <꽃보다 청춘> 편을 선보였다. <꽃보다 할배>가 장· 노년층 사이에서 ‘해외 배낭여행’ 바람을 불러 일으킨 데 이어 이젠 전 연령대에서 ‘떠나자’는 반응이 일고 있는 것. 특히 프로그램의 촬영지였던 크로아티아·페루·라오스 등이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해 항공권 예매가 일찍이 마감되는 등 여행 업계에 준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삼시세끼>를 통해서는 ‘힐링에 장소는 중요치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연예인들이 한적한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매끼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이 시청자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시골생활에 대한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힐링·웰빙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다. 이같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신선한 소재의 예능프로그램의 인기는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266호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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