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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윤의 ‘요리로 본 세상’ ⑤ 독일 ‘슈톨렌’ - X-마스에 어울리는 새콤달콤한 부드러움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버터 듬뿍 넣은 속은 부드러워 

디저트 전성시대다. 싱글족은 간단한 디저트류와 음료로 식사를 해결한다. 주말마다 디저트를 찾아다니는 젊은 맞벌이 부부도 많다. 이왕 먹는 거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분위기다.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디저트는 포기할 수 없다는 여성도 많다. 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 ‘몽슈슈’, ‘제르보’ 등이 국내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는 것도 디저트 열풍을 반영한다. 국가별 대표 디저트와 이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다.




▎사진:김정윤 푸드칼럼니스트 제공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아무래도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빠진다. 행여 모양 흐트러질까, 지난해 고이 간직해두었던 트리를 꺼내 장식하거나, 연인과 함께 떠나는 로맨틱한 여행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빨강·초록 등 형형색색 불빛으로 단장을 마친 대형 빵집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 가게 앞 쇼케이스에 각종 케이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걸 보면 크리스마스가 1년 중 최고 대목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요즘에는 케이크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유명 디저트들이 속속 등장해 총총걸음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과 입맛을 당긴다.

커피숍·대형마트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


▎독일 디저트 ‘슈톨렌’
‘빵의 나라’, 저 멀리 독일에서 건너온 ‘슈톨렌(Stollen)’도 그중 하나다. 사실 볼품없는 이 디저트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이젠 일반화됐다. 슈톨렌이 이처럼 단 시간 내에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 답은 독일 고유의 맛과 실용주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뭉퉁한 외관 대신 내실을 살펴보자. 첫인상은 아기 포대기처럼 생긴 넓적한 타원형의 빵에 눈처럼 하얀 슈거파우더로만 덮어씌운 투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슈톨렌 안에는 각종 럼에 절인 말린 과일과 아몬드 크림인 마지팬이 들어있다. 덕분에 부드럽고 고소한 향은 물론이고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다른 빵과 달리 버터를 듬뿍 넣은 부드러운 질감이 슈톨렌을 여느 나라 호화 디저트에 뒤지지 않을 만큼 실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500년 전의 슈톨렌은 향긋하거나 달달하지도, 더욱이 부드럽지도 않았다. 16세기 유럽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끼치던 중세 카톨릭은 모든 생활양식에서 ‘절제’를 강조했다. 먹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당시 슈톨렌 역시 귀리와 밀가루·물·이스트만 들어가던 독일의 질긴 빵들과 다를 바 없었다. 맛보다는 양이 중요하던 시대였으니까. 특히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예수의 탄생을 기리며 버터와 우유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도 했다. 대신 식물에서 짜낸 기름은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 무에서 얻던 식물성 기름은 구하기도 어려웠고 가격도 비싸 빵에 넣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말린 과일과 럼 역시 사치품으로 지목돼 디저트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입맛에 동서고금이 따로 있으랴. 예나 지금이나 성대한 만찬 뒤에는 달고 부드러운 ‘진짜 디저트’가 당기는법. 독일의 동쪽에 위치한 작센의 귀족이었던 에른스트와 그의 동생 알브레히트는 크리스마스 슈톨렌에 버터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교황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당시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8세는 1491년 이들의 요청을 허락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버터편지(Butter brief 혹은 butter missive)’ 사연이다. 편지 한 장으로 어떻게 버터 사용이 허가됐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슈톨렌의 고향 드레스덴 제빵사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버터를 듬뿍 넣은 디저트는 눈깜짝할 사이에 팔려나간다. 이렇게 모인 성금 덕분에 프라이부르크 교회는 무사히 완공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제빵사들은 버터를 쓸 수 있게 됐고, 교황은 교회를 늘렸으니 서로 윈-윈 한 셈이다. 이후 슈톨렌에는 향신료와 말린 과일 등이 첨가돼 오늘날의 달콤한 슈톨렌이 완성된다.

슈톨렌의 고향 드레스덴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장인 슈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와 함께 슈톨렌 축제가 진행된다. 사실 ‘슈톨렌’의 다른 이름인 ‘슈트리첼(Striezel)’은 여기서 유래되기도 했다. 대림절(크리스마스 4주 전 일요일) 두 번째 토요일에 진행되는 이 축제에는 마을 제빵사들이 참여해 2~4t에 달하는 거대한 슈톨렌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슈톨렌은 자체 품질이 슈톨렌 보존협회의 엄격한 심사를 받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파는 제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12월 겨울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날짜를 맞춰 독일 슈톨렌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협회의 인증을 받은 진짜 슈톨렌을 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재료 함량, 맛, 향 엄격하게 평가

드레스덴의 제빵사들은 축제 외에도 슈톨렌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슈톨렌 보존협회를 만들어 제품에 들어가는 재료 함량과 맛, 향, 종류, 형태 등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다. 독일다운 발상이다. 현재 이들의 인정을 받은 빵집은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금색 씰을 받는다. 이렇게 인증 받은 매장은 드레스덴 슈톨렌 협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슈톨렌은 대개 크리스마스가 되기 한 달 전에 미리 만들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우선 럼에 절인 과일과 마지팬에서 배어 나온 습기가 밀가루 빵에 제대로 흡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드레스덴의 제과점들은 12월 초에 슈톨렌 선 주문을 마감하기도 한다. 느긋하게 기다렸다가는 맛보지도 못하고 한 해를 넘길 수 있다. 앞서 말했던 재료들은 원래도 보존 기한이 길기 때문에 빵이 상하는 걸 막아준다.

슈톨렌은 하루에 한 조각씩 얇게 잘라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조금씩 먹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곶감 빼먹듯 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재미가 쏠쏠하다. 취향에 따라서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뜻하게 먹어도 상관없다. 오래 두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자른 단면이 마르지 않도록 가운데부터 잘라 남은 두덩이를 붙여놓고 보관해야 한다.

만드는 방법

재료: 오렌지 필 등 설탕에 절인 과일, 말린 건포도, 크렌베리등 말린 과일, 아몬드 약간, 럼주(혹은 오렌지 주스), 강력분 500g, 설탕 100g, 활성 이스트 10g, 소금 10g, 무염버터 150g, 우유 250ml, 넛맥 약간, 정향 약간, 계피가루 약간, 마지팬 225g, 슈거파우거 약간

우선 과일과 견과류를 럼에 넣고 하루 이상 절여 놓는다. 큰 볼에 강력분과 설탕을 넣고 밀가루에 구멍 두 개를 뚫어 한쪽에는 이스트, 다른 한쪽에는 소금을 넣어 이 둘이 서로 닿지 않게 만든다. 준비된 가루에 실온 놔둔 말랑한 버터와 우유를 넣고 잘 섞어준다. 이때 글루텐이 형성되지 않도록 너무 치대지 말아야 일반 빵과 다른 부드러운 식감이 나온다. 어느 정도 반죽이 섞이면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면포를 덮어 30분 정도 1차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반죽에 넛맥과 정향, 계피가루(없으면 생략 가능), 럼에 절여놓은 과일과 견과류를 넣고 잘 섞어준다.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10분간 휴지시켜준 다음 반죽을 타원형으로 밀어 타원형을 만들어준다. 타원형 반죽 가운데 원기둥 모양으로 둥글린 마지팬을 올려놓고 다시 반으로 접어 어린아이 포대기 모양으로 만들어준다. 이 상태에서 다시 반죽에 면포를 씌워 약 1시간 동안 (반죽이 두 배정도 커질 동안) 2차 발효를 시켜준다. 발효가 끝난 반죽은 19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50분 정도 익혀준다. 완성된 슈톨렌이 식으면 그 위에 슈거파우더로 코딩해준 뒤 상온에 놓고 한 조각씩 잘라먹는다. 이때 볕이 들지 않는 선선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김정윤 - 쉐프이자 푸드칼럼니스트.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스타 쉐프로 유명한 제이미 올리버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Jamie’s Italian’에서 쉐프로 일했다.

1267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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