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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일어나나? - 대출구조 꼭 닮아 vs 파생상품 닮지 않아 

‘월세 내느니 집 사라’ 분위기 비슷... 변동금리·단기·일시상환 대출 많아 한국이 더 위험할 수도 


▎11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를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2007년 발생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다들 알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다만, 멈출 수 없었다. 폭주하는 기차를 멈춰 세울 방법을 그들은 몰랐다. 얼마 뒤 기차는 멈춰 섰다. 엄청난 대형 사고를 낸 이후에야.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사고는 1년 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확산됐고, 세계 경제는 그 후유증에 지금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2007년 6월 19일 미국 5대 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는 채권자들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 HGSC는 투자자에게 6억 달러를 모은 뒤 이를 담보로 60억 달러를 더 빌렸다. 그리고 이 돈을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관련 상품에 투자했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안겨주고, 회사 역시 쏠쏠한 재미를 본 방식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금리가 오르고,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상품가치가 떨어졌고, 수익률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베어스턴스는 펀드를 살리려 현금을 쏟아 붓고 돈을 빌려준 은행에게 이자 지불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베어스턴스의 파산까진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때 시가총액 270조원에 달했던 대형 은행은 이듬해 3월 JP모건에 매각됐다. 주당 2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금융의 나라’ 한 방에 날린 ‘비이성적 과열’


회사 하나 망하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베어스턴스 사태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은행들은 담보로 잡고 있던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을 회수해 대거 시장에 내놨다. 그러나 아무도 이 CDO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동안 CDO가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팔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 매수자가 많고 매도자가 적으면 가격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불안감에 우후죽순 팔기 시작하자 살 사람이 사라졌다. 손실은 빠르게 투자은행 곳곳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신용등급이 급락했고, 엄청난 투자금은 공중에 분해됐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렇게 출발했다.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애초에 언젠가는 폭발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은 대출자의 신용도가 높은 순서에 따라 프라임(Prime)·알트 에이(Alt-A)·서브프라임(Subprime)으로 구분된다. 비교적 신용등급에 엄격했던 미국 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에 속하는 이들에게도 본격적으로 대출을 해주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부터다. 부동산 경기 회복에 따른 것이었는데, 이후 매년 약 25%씩 대출이 늘어났다. 2000년대 들어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졌는데 저금리가 맞물린 결과였다. 2000년 5월 6.5%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2003년 1%로 떨어졌고, 2004년 5월까지 이 수준을 유지했다. 저금리에 수익성이 떨어진 금융회사는 심사 조건을 완화하며 대출 고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이자 부담이 줄어든 대출자 역시 거리낌 없이 돈을 빌렸다.

금융의 나라답게 미국 금융회사는 이 대출의 가치를 높일 방안을 모색했고, 머지 않아 여러 파생상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기지 회사 입장에선 대출채권(담보)을 그냥 보유하는 것보다 파는 게 낫다. 그래야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그만큼 대출을 늘릴 수 있어서다. 그래서 대출채권을 프레디맥이나 매니메이와 같은 정부 기관이나 투자은행(리먼 브라더스 등)에 팔았다. 채권을 사들인 이들은 모기지를 증권화해 투자자에게 팔았다. 주택저당증권(MBS)이 대표적이다. 이를 사들인 또 다른 금융회사는 이런 모기지 대출채권이나 회사채 등을 적절히 섞은 CDO 등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또 다른 투자자(헤지펀드·연기금 등)에게 판매했다. 텍사스주 시골에 사는 한 농부가 대출을 받으면서 담보로 맡긴 집의 지분을 뉴욕에 있는 투자자가 소유하는 게 그래서 가능했다.

CDO를 묶은 또 다른 합성CDO가 등장했고, 시간이 흐르자 기초자산이 뭔지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시장은 혼탁해졌다. 너도나도 찍어내듯 상품을 만들어 팔았지만 수익률이 탄탄했다. 그러나 2004년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균열이 시작됐다. 대출자의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2005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급증했다. 2005년 2분기 10.3%였던 연체율은 2006년 3분기 12.6%로 상승했다. 이와 함께 주택 매매건수가 급감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가격도 요동쳤다. 기초자산이 흔들리니 파생상품이 안전할 리 없었다. 투자 손실이 커졌고, 이미 쪼갤 대로 쪼갠 채권은 회수가 안 됐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출회사와 은행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제 코가 석자’인 마당에 아무도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세계 제일이라던 미국 금융시장은 와장창 무너졌다.

조용히 잊혀지는 듯했던 그 ‘서브프라임’이란 단어가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 11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를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서브프라임 사태를 들먹이는 건 지나친 우려일 수 있다. 사실 서브프라임 사태의 근본 원인은 대출 자체가 아니었다. 2007년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비중은 10%에 못 미쳤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지만 전체를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비이성적으로 과열된 금융시장이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도화선이 된 CDO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일부 회사가 회사채를 자산으로 한 합성CDO를 판매하긴 해도 모기지 관련 CDO는 지금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 역시 복잡한 CDO 시장이 없다. 올 초 수익과 손실을 금융회사와 함께 공유하는 수익공유형 모기지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안심대출 열풍에 판매가 잠정 중단됐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담보 가치 하락에 따라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금융 업계의 급속한 연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이게 2007년 미국과 2015년 한국의 가장 큰 차이다.

원리금 상환 없이 이자만 갚는 대출자가 65%

그래서 안심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금융회사 대신 가계가 안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03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80% 내외로 상승했다. 낮은 금리에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과 저금리 기저에 깔린 거시경제 흐름이 금융위기 4~5년 전 미국과 유사하다. 2000년대 초 미국은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낮은 금리를 유지하면서 여러 부양책을 썼다. 그렇게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 가격을 지탱했다. 그러다 갑자기 금리가 올랐다. 미국 기준금리는 2004년 초부터 이후 2년 동안 약 4.5%포인트나 급상승해 5%대에 진입했다. 이자 부담이 커진 사람들이 집을 팔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은 추락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선 ‘월세를 내느니 차라리 이자를 내고 집을 사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금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는 중이다. 사실상 정부가 최근 1~2년 동안 각종 부동산 정책을 동원해 그렇게 하도록 유도해왔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70%, 60%로 완화한 게 대표적이다.

집값이 올라주기만 한다면 별 걱정 없지만 만약 부동산 시장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우리가 받을 충격은 미국보다 훨씬 더 크다. 대출 구조를 뜯어보면 취약함이 확연히 드러난다. 2004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중 일시 상환 방식은 0.08%에 불과했다. 30년 이상의 장기 대출(고정금리)이 64%였다. 지금도 장기·분할상환 방식이 주를 이룬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추락했다가 비교적 빠르게 회복에 성공한 것은 이런 대출 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가계 대출은 대부분 단기·일시상환 방식이다. 3년 이하 단기 계약이 18%, 만기 때 일시상환 방식이 30% 이상이다. 분할상환이라면 일시적으로 집값이 하락해도 큰 부담이 없지만 당장 만기 때 전액을 상환해야 하는데 집값이 떨어진 상태라면 답이 없다.

미국은 소구권을 불허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집값이 떨어져 원리금과 이자를 상환할 능력이 안 되면 집만 포기하면 끝이다. 한국은 아니다. 나머지 재산과 소득에 손을 대서라도 끝까지 갚아야 한다. 원리금 상환 없이 이자만 갚아나가는 대출자가 전체의 65%나 되고, 이들 중 상당수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또 집을 산 사람들이다. 빚과 빚이 꼬리를 물고 상황에서 집값 하락이 가계에 줄 충격은 불 보듯 뻔하다.

변동금리의 리스크는 철저히 대출자의 몫

더구나 가계대출 중 70%(은행 기준) 이상이 금리 인상에 민감한 변동금리다. 최근엔 일정 기간 고정금리로 내다가 이후 변동금리로 전환하는 혼합형 대출(우리나라 시중은행은 이를 고정금리로 분류)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 방식은 서브프라임 사태 직전 미국에서도 유행했다. 우량 모기지의 경우 대부분 고정금리였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2년 고정, 28년 변동’ 형태의 혼합형 변동금리 상품이 약 80%였다. 이는 대출자를 늘리려는 은행 간 경쟁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서브프라임 등급은 프라임 등급에 비해 대출금리가 2~4%포인트 높았는데 이 상품의 초기 2년간 금리는 일반 고정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낮았다. 조삼모사지만 대출자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 만했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 대출 중 상당수가 이런 상품이다.

변동금리는 모 아니면 도다. 금융회사가 고정금리 대출 상품을 팔 때는 장기적인 추세를 예상해 금리를 결정한다. 기준금리가 올랐다고 더 받을 수 없으니 금리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금융회사가 어느 정도 부담하는 셈이다. 그러나 변동금리의 리스크는 철저히 대출자의 몫이다. 금리가 떨어지면 득을 보겠지만 오르면 손해를 피할 수 없다. 대출금리가 1%에서 2%로 1%포인트 오르면 대출자가 낼 이자는 두 배로 늘어난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금리가 1%대에 계속 머물긴 어렵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우리만 안 올리고 버틸 수 없다. 정부가 장기·분할상환 방식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들고 나온 게 바로 안심전환대출이다. 그러나 신규 대출은 여전히 단기·일시상환 계약이 많다. 이걸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가계부채의 폭발력은 그대로다.

한 가지 긍정적이라면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가능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지만(2005년쯤에야 학계에서 위기론이 등장했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를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위기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란 대답만 하고, 해답을 못 내놓고 있다.

1280호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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