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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정부에 전하는 7가지 정책 제안 - 한국 경제 최대 리스크는 가계빚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 절실 … 경기 부양보다 가계부채 해결 급해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보다는 경기 부양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왼쪽),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가운데), 임종룡 금융위원장(오른쪽) / 사진:중앙포토
“단순히 총량을 갖고 가계부채를 평가하면 안 된다. (가계부채에) 전반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본다.”(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가계소득 개선이 부진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부채를 축소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 가계부채 관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임종룡 금융위원장)

“경기 회복세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으며,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는 경제활성화 노력을 한층 강화하고자 한다.”(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이만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정부 입장은 선명히 드러났다. 가계부채 관리보다는 경기 부양이 먼저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내놓는 정책은 오락가락이다. 최근 화제가 된 ‘안심전환대출’은 부채관리 방안이고, 지난 1월 야심차게 발표했다가 보류된 ‘1% 수익형 모기지’는 일종의 부동산 부양책이다. 정부 고민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경기는 살려야겠는데, 가계빚이 걱정이고, 빚 줄이는 데 주력하자니 경기 부양 기조가 훼손될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경기 부양에 미련을 둔다. 3월 초,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와 가계부채 안정화가 반드시 모순된 정책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통한 경기 활성화와 가계소득 제고가 부채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부양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로 내리며 정부의 경기 부양에 힘을 실었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가계부채를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다. 이런 위험을 놓고, 경기 부양을 외친들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 가계부채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것 역시 난센스다. 최근 디플레이션 논란의 원인은 소비 침체고, 소비 침체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가계부채이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는 가계 대출 총량을 일괄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부채 구조를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 보인다. 3월 중순 구성된 ‘가계부채관리협의체’ 역시 안심전환대출 같은 미시적 대책 마련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계부채 구조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용도로, 얼마나 빌렸고, 상환능력과 상환 부담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줄이고, 궁극적으로 부채 규모를 줄여가는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본지는 전문가 조언과 관련 보고서, 전·현정부 대책 등을 종합·분석해 가계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을 마련했다.

고정·분할상환만이 능사 아니다 - 정책 방향 맞지만 소비 위축 심화될 수도


변동금리대출이나 이자만 갚고 있는 대출을 낮은 고정금리(2.6%)와 분할상환으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이 인기를 끌었다. 상대적으로 상환 여력이 있는 중상위층 가계가 혜택을 봤다. 형평성 논란이 일자, 정부는 저소득층과 제2금융권 대출자를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요구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변동·단기·일시상환 대출을 고정·장기·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한다는 정책 방향은 잘 잡았다는 평이 많다. 중장기적으로 안착되면, 일시에 몰리는 상환 위험을 줄이고 가계의 과다 차입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가계 소득이 정체되고, 자산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원리금 분할상환으로 대출 구조를 바꾸면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특히 원리금 상환 부담이 위험 수위에 달한 저소득층은 당장 이자를 덜 내려다, 채무 불이행 상태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또한 안심전환대출 재원은 주택금융공사가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하고 은행이 이를 사들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사와 은행 모두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빚을 줄여줄 것이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면 부채 구조조정은 더 어려워진다. 대출 구조 전환은 점진적이고, 시장 자발적인 방식으로 가야 한다.

위험가계에 정책 집중하라 - 저소득·고령자·자영업 부채 먼저 해결해야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전세자금대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 사진:중앙포토
가계부채 1100조원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대출을 받은 가계의 소득이 다르고, 대출을 받은 용도가 다양하고, 상환 능력도 제각각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대책은 상환 능력이 약한 곳에 집중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저소득층 부채가 급증하고, 상환 능력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계층의 부채를 방치하면, 가계부채 부실이 더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 주로 제2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는 점, 다중 채무자가 많고, 연체가 늘고 있다는 점도 부실 위험을 키운다. 정부는 부실 가능성이 큰 저소득층의 부채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늘지 않도록 하는데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금융회사의 대출 심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담보 가치와 소득 이외에 보다 다양한 대출 심사 규정을 만들고, 금융회사가 이를 잘 준수하는지 관리해야 한다.

연령대별로 보면 은퇴를 앞둔 50대가 짊어진 부채가 가장 위험하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의 나이가 50대인 가구가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부채비율이 감소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연령이 증가할수록 부채비율이 오른다는 점이다. 이는 40~50대가 부채 규모를 줄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은퇴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특히 50대 이후 소득이 급감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향후 이들 세대의 부채 상환 능력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단기·일시상환 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은퇴가 가까워지는 시점에 상환에 따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고령층 대출자의 현재 소득뿐 아니라, 미래 소득 흐름을 감안하는 방향으로 DTI(총부채상환비율) 적용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50대의 자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점을 감안할 때 자산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막고, 주택연금·역모기지론 등 부동산을 유동화할 수 있는 정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영업자 부채도 심각하다.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추정 기관마다 큰 차이가 있는데, 대략 250조~450조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 상환 능력을 볼 때 자영업자 부채는 저소득·저신용·고령층 부채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나 원리금상환부담비율도 매우 높은 편이고, 연체율도 상승 중이다. 특히 자영업자 부채는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의 중간 성격인 것이 많아, 대책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별도의 대책이 시급하다.

전세자금대출도 들여다 봐야 - 6년 사이 4배 증가해 청·장년층 부채 급증

주택담보대출에 가려 위험성이 덜 알려진 전세자금대출도 빨간 불이 켜졌다. 금감원이 최근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제출한 ‘국내은행의 주택 및 전세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8조6000억원이던 전세대출 규모는 지난해 35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6년 사이 4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신규 전세자금대출 규모가 전년 대비 42%나 증가한 16조1000억원이었다. 원인은 전셋값 폭등이다. 같은 기간 전국 전세 가격은 44%(아파트 58%) 급등했다. 2년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전세금이 15%씩 뛰었다는 얘기다. 금리도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민주택기금 3.22%, 은행 평균 3.47%로 높은 편이다. 전세자금대출 급증은 자산이 부족한 청·장년층의 부채가 확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전세자금대출 연체율이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을 이미 초과했다는 점이 심각하다. 향후 청·장년층의 가계 소득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이 문제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저축 등 순자산이 아닌, 대출로 전세보증금을 마련한 가계는 향후 자가 주택으로 전환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전셋값 추가 급등 때 월세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곧 추가 전·월세 대책을 내놓을 방침인데, 전세금 보증 확대와 대출금리 인하는 물론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하는 이유다.

가계부채 통계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 주택담보대출 통계 부실해 면밀한 분석 불가능

만약 정부가 ‘가계부채를 유형별, 세부 내역별로 세밀히 분석해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가계부채 관련 통계가 워낙 부실해 세부적인 대출 증가 내용이나 대출 구조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지난해 말 내놓은 ‘주택금융통계의 한계와 개선 방향’에 따르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주택금융공사 등이 발표하는 주택금융통계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주택담보대출 잔액 통계에는 집단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이 모두 포함돼 있지만, 대출 목적이나 성격이 모호하고 대출 범위에 대한 근거도 부족하다. 또한 실제 주택구입과 무관한 사업자금, 생활자금 조달을 위한 대출도 구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통계가 신규 취급과 상환금액을 구분하지 않고 기말 잔액만을 발표해 대출 증감 원인이나 상환 유형 등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전월세보증금 규모가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 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가계부채를 관리하고, 적절한 대책을 내놓기 위해 주택금융통계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소구권 대출 적극 검토하라 - 담보대출, 채무·채권자가 책임 나눠야

“우리나라에서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소구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장기·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더라도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지난 2월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구권은 흔히 상환 청구권으로 불린다. 우리나라는 주택담보 대출자가 빚을 갚지 못하고, 담보물이 상환액 이하로 떨어지면, 은행이 담보 외에 다른 재산과 월급 등을 압류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하지만 미국 등 주요국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상환을 못 하면 은행은 담보로 잡은 주택만 압류해 처분할 수 있다. 이 경우 미상환 대출자는 다른 경제활동을 영위하면서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모두 대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소구권 문제는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금융개혁 과제로 폐지를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권의 반대로 ‘장기 검토 과제’로 분류됐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비소구제 도입은 소비자보호 필요성과 도덕적 해이 가능성, 은행건전성과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연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구권 문제는 다시 공론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올해 주택기금 대출에 대해 유한책임(비소구) 대출 제도를 이미 시범 도입했다. 또한 함진규 새누리당 의원은 3월 30일 ‘주택담보물 이외에 추가 상환 요구가 불가능한 대출인 유한책임대출 제도를 도입하고, 상환 의무를 주택가격 하락시에도 담보물인 주택으로만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부채관리 통합 컨트롤 타워 세워라 -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나와야

가계부채는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이다. 향후 상환 문제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디플레이션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도 가계부채에 있다. 또한 가계부채는 저성장·저금리 기조와 소득 불균형, 국내외 경제구조 변화, 대외 경쟁력 약화, 환율 전쟁, 노동시장 구조조정 지연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한 결과다. 가계부채를 방치하다 부실이 심화되면 곧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구성된 ‘가계부채관리협의체’ 정도로는 부족하다. 대책반을 위원회급으로 격상시켜, 국가·기업·가계 부채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를 세워 근본적인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계부채 구조조정 속도도 중요하다. 가계부채 조정이 장기간 지연되면, 1990년대 일본처럼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가계부실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성급한 정책 전환도 조심해야 한다. 급격한 가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은 자산 디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금융회사의 신용공급 위축을 불러오고, 가계부채 상환 능력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핵심은 속도조절과 정책 일관성이다.

소득 증대 대책이 근본 해결책 - 단기 부양보다 적극적 성장 정책 펴라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대책은 지난 수년간 쌓일 만큼 쌓였다. 최근 1년 사이 정부 산하 기관이나 민간 연구소에서 발표된 보고서만 100여 건이 넘는다. 물론 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주장이 맞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한 입으로 주문하는 것이 있다. 가계소득 창출 능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가계소득 증가율과 기업·가계 간 소득 재분배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는 가계부채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계부채는 경기 침체라는 늪 속에서는 해결이 어렵다. 생계형·저소득층·비은행권·투기형 차입이 동시에 급증하면서 복합형 가계부실로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때문에 단기 경기부양책보다는 내수 기반 확대와 고용 증대 노력 등 지속가능한 성장 정책을 펴야 한다. 부채를 더 늘리거나, 채무 불이행을 유도하는 정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금물이다. 더욱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탕감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그럴수록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기업들도 고용 확대, 임금 인상 등 가계의 고통을 다소 분담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여력이 있는 중소기업도 고용과 임금 인상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정부는 취약계층을 돕는다며 대출을 장려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가계부채를 줄여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채무 불이행자를 지원하고 재기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1280호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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