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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덩치는 5대 그룹 수준인데…여성친화경영으로 이미지 변신 노려 

취업준비생들에게 비인기 설움 … ‘일본 기업’ 이미지 극복도 과제 


▎롯데그룹은 최근 여성친화경영으로 보수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인적자원(HR) 포럼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두번째)과 직원들. / 사진:롯데그룹 제공
2009년 대학 졸업반이던 A씨는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진행한 하반기 공채에 응시해 모두 합격했다. 우수한 성적에 유통 업계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경력을 인정받았다. 취업난에 업계 양대 그룹의 부름을 받았다는 기쁨도 잠시. A씨는 양자택일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고심 끝에 A씨는 롯데 대신 신세계를 택했다. 2015년 3월 현재 신세계의 한 계열사에서 대리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신세계는 젊고 진취적인 이미지가 있었던 반면, 롯데는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기업 문화에다 임금도 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서 “기업 규모가 더 큰 롯데 대신 가능성을 보고 신세계를 택했다”고 말했다.

A씨 같은 경우가 이례적일까 싶어 국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취업 관련 카페에 들어가 봤다. 회원 수가 150만명인 카페 ‘취업뽀개기(cafe.daum.net/breakjob)’의 익명게시판. 한 회원이 ‘대기업의 마지노선이 어디냐’고 묻자 바로 ‘롯동금’이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롯동금은 롯데·동부·금호아시아나그룹을 하나로 묶어 지칭한 표현이다. 각 그룹 이름의 앞 글자를 땄다. 뉘앙스는 부정적이다. 익명게시판에는 ‘롯동금은 지원자 학벌을 따지지만 임금은 짜고 노동 강도는 높다’ ‘합격해도 가야할지 고민이 된다’는 글이 쏟아졌다. 롯데 계열사에 입사했을 때의 평균적인 출퇴근 시간대와 연봉 추정치를 적은 댓글도 눈에 띈다. ‘아침 7시 출근에 밤 9시 퇴근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종종 일하며 초봉은 연 3000만원 초반. 웬만하면 다른 기업으로 가세요.’

롯데로서는 인재 채용 과정에서 이처럼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뼈아플 수밖에 없다.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우수한 인재를 그만큼 경쟁사에 뺏길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취업준비생들로부터 비교대상이 된 동부와 금호아시아나는 경영난에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는 롯데를 두 곳과 비슷한 선상에 놓고 있다. 최근 들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 관련 포털사이트인 잡코리아가 전국의 남녀 취업준비생 730명을 대상으로 올 상반기 취업하고 싶은 기업을 설문조사한 결과 1~4위는 현대차그룹(27.0%)·LG그룹(18.2%)·삼성그룹(17.9%)·SK그룹(13.3%)이 각각 차지했다. 여기까지는 재계 순위 상위 네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들끼리 엎치락뒤치락했지만 10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동안에도 재계 5위권인 롯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현대중공업그룹(6.0%)·CJ그룹(5.6%)·이랜드그룹(4.0%)·현대그룹(3.6)·한샘(2.1%)·아모레퍼시픽(1.5%) 순이다. 롯데는 공동 14위(1.2%)에 그쳤다. 기업 규모가 한참 작은 곳들에도 밀린 것이다.

취준생의 입사 희망 기업 10위권 밖으로


롯데도 할 말은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 회사인 롯데쇼핑의 경우 사업 구조상 많은 인원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 규모가 임직원 전체의 평균 연봉을 산출할 때 포함돼 (임금이) 낮아 보이는 것”이라며 “대졸 신입사원 초봉은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비슷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임금이 짜다’는 평가가 꼭 적절하지만은 않다는 주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 임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4월 기준 3400만원으로 롯데케미칼(6700만원)·롯데건설(6400만원) 등의 여타 계열사보다 크게 낮았지만, 정직원만 놓고 봤을 때는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업 규모만 놓고 보면 비교대상으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재계 10위권의 주요 그룹 계열사들에 비하면 임금 수준이 여전히 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열악해 보이는 근무 조건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롯데=일본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핸디캡이 있다. 지난해 롯데 계열사인 롯데홈쇼핑은 납품 비리 사건으로 회사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같은 해 롯데가 소유한 야구단인 롯데자이언츠는 선수들을 불법 사찰한 사실이 적발돼 홍역을 치렀다. 롯데가 야심차게 착공한 서울 잠실동 제2롯데월드의 초고층건물 롯데 월드타워는 4년 5개월 만인 올 3월 24일에 100층을 돌파했지만 크고 작은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그룹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롯데는 공통적으로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 비록 하나같이 비난받을 만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는 적었지만, 이를 감안해도 롯데에 쏟아지는 비난 수위는 상당히 높았다. 누리꾼들은 인터넷에 오른 관련 기사들을 읽고서 ‘일본 기업인 롯데가 부도덕한 경영을 하고 있다’ ‘친일 기업은 한국에서 철수하고 일본에서 장사하라’는 식의 댓글을 거침없이 남겼다. 이런 댓글은 많은 추천 수를 기록할 만큼 호응을 얻고 있다. 여론이 불리하게 작용할 때마다 과거 신격호 롯데 창업주가 1948년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먼저 설립했던 그룹 역사가 비난의 대상으로 부각되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 총수 일가는 모국인 한국에 대한 투자를 이어오면서 사업을 더 크게 키워 오늘에 이르렀음에도 반일 정서가 짙은 한국에서 유독 환대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소비재 기업인 롯데에 있어 일본 기업이라는 식의 낙인은 부정적인 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한국에서 악착같이 장사를 하는 이미지보다는, 재계 5위라는 기업 규모와 명성에 걸맞게 한국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인상이 남도록 (롯데가)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적극적인 사회공헌 사업과 그룹 이미지 개선 노력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좀 더 호감을 주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사건 있을 때마다 ‘일본 기업’ 따가운 눈총

그런가 하면 롯데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피인수 후보자들로부터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크고 작은 M&A를 시도해 그룹 몸집을 키워왔다. 최근에도 KT렌탈이라는 굵직한 매물이 나오자 인수전에 뛰어들어 약 1조원을 배팅한 끝에 SK그룹 등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다만, 인수 대상이 된 KT렌탈 구성원들은 롯데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KT렌탈 노조 지도부는 롯데의 인수 가능성이 커지자 직접 롯데 경영진을 찾아가 우려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 등 롯데가 특유의 이른바 ‘짠물 경영’으로 기존에 있던 근로자들을 힘들게 할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

앞서 롯데는 지난해에도 LIG손해보험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LIG손보 노조의 ‘결사반대’ 속에 인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LIG손보 노조는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반대집회를 여는 등 롯데의 인수를 막는 데 사활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롯데가 근로자를 착취하며, 경영하기 적합한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LIG손보 우선협상대상자로는 롯데 대신 KB금융그룹이 선정됐다. KB금융은 올 3월 25일 이사회에서 6400억원 규모의 LIG손보 인수안을 최종 확정했다. 기존 롯데손해보험에다 LIG손보 인수로 손보 업계에서 사세를 확장해보려던 신 회장의 전략도 빗나갔다.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인수에 나서고 있는 롯데로서는 이런 ‘롯데 기피증’을 바로잡는 것이 새 과제로 떠올랐다.

자동육아휴직제 등으로 기업문화 개선 노력

이런 상황에서 롯데도 문제점을 재확인하고 신 회장 주도 하에 이미지 변신을 적극 꾀하고 있다. 근로자가 일하기 좋은 기업, 그리고 한국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는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여성친화경영이다. 롯데는 지난 2006년부터 여성 인재 채용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는 신입사원 중 여성 입사자 비율이 전체의 35%를 넘어섰다. 올해는 이 비율을 40%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2008년 95명에 불과했던 과장급 이상 여성 간부 수도 2015년 현재 870여명으로 늘었다. 2012년에는 처음으로 내부 승진을 통해 여성 임원을 배출해 현재 그룹 내에 12명의 여성 임원이 있다. 신 회장은 올 초 그룹 임원들에게 “여성 인재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여성 중간관리자들이 조직 내 핵심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요 회의에 여성 인력을 반드시 배석하도록 할 것”을 지시할 만큼 여성친화경영에 적극적이다. 주력 사업인 유통 분야에서는 여성 고객이 많은 만큼 여성 인력의 섬세한 감각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신 회장의 지론이다. 이를 위해 롯데는 2012년부터 해마다 ‘롯데 여성의 길(Way Of Women) 포럼’을 실시해 그룹의 여성 인재 육성에 대한 의지를 공유하고, 여성 간부들의 자긍심을 키우는 데에도 나서고 있다.

이밖에 롯데는 여성 인재들이 역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2년부터 10대 그룹 중 최초로 모든 계열사에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출산을 앞둔 롯데 여직원들은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출산휴가가 끝나는 시점에서 자동으로 1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육아휴직을 하기 위해 상사의 눈치를 봐야 했던 관행에서 벗어나도록 한 제도다. 제도 도입 후 롯데 전 계열사에서 여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기존 59%에서 2015년 현재 91%로 껑충 뛰었다. 또한 롯데 임직원들에게 매주 수요일은 ‘가족 사랑의 날’이다. 보수적이고 관료적이던 기존 기업문화에서 탈피,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루는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롯데 전 계열사가 동참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사회공헌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백화점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67억원 규모의 친환경상품권 기금을 조성해 환경 보전과 기후변화 방지 활동에 사용했다. 롯데제과는 대한치과의사협회와 함께 매년 ‘닥터 자일리톨 버스’를 운영해 소외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구강 검사와 스케일링 등의 의료 서비스 제공에 나서고 있다.

1279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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